Share

제4화

Aвтор: 주광
“야... 설마 결혼하고 몇 년 동안, 매일 이렇게 아침밥 차린 건 아니지?”

은주의 말에 예진은 민망하게 웃었다.

“부윤제 위가 안 좋잖아. 입맛도 까다롭고... 그래서 요리 수업도 몇 달 다니고, 매일 메뉴 바꿔가면서 해다 바쳤지, 뭐.”

‘그땐... 잘해주면 언젠간 마음 돌리겠지 싶었어.’

‘하지만, 사람 마음은... 그런 게 아니더라.’

은주는 입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하... 진짜 부윤제 그 개XX는 전생에 나라를 몇 개는 구했나 보다. 우리 예진이가 매일 아침상까지 차려줬는데...”

예진이 맞은편에 앉자 두 사람은 조용히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은주가 핸드폰을 꺼내 예진에게 명함 하나를 툭 보내줬다.

“참, 변호사 일은 내가 알아봤어.”

예진이 받은 명함 위엔 ‘서민혁 변호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민혁? 이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은주는 달걀부침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우리 사촌 오빠야. 너보다 두 학번 위였을 거야. 진대영 교수님 제자였지, 아마? 너도 교수님 수업 들었잖아. 기억 안 나?”

그 말을 듣자 예진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맞아... 대학교 때 법대에서 서민혁 선배 이름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

‘뛰어난 성적으로 항상 상위권에 있었고, 얼굴까지 잘생겨서 학교 안팎에서 인기가 많았던 그 인물...’

‘교수님이 특히 아끼던 제자이기도 했지.’

‘졸업하자마자 바로 사법시험 붙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법원에서 일하라는 제안도 거절하고 자기 로펌 차렸다는 말도 들었는데.’

“원래는 너한테 다른 변호사 붙이려고 했거든? 근데 어제 오빠한테 네 사정 말했더니, 오빠가 직접 맡겠다고 하더라. 완전 바쁜 사람인데도 말이야.”

은주는 마지막으로 찐빵 하나를 입에 욱여넣더니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너 일단 민혁 오빠랑 연락해서 만나서 얘기 잘 해봐. 나는 출근해야 해서 이만.”

“응, 조심해서 다녀와.”

은주가 나가고 난 뒤, 예진은 서민혁에게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서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은주 친구 고예진입니다. 오늘 혹시 시간 되시면 뵙고 상담하고 싶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그럼 오늘 점심시간에 루미에르에서 뵐 수 있을까요?]

예진은 잠시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곧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장을 보냈다.

[네, 그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진짜 시작이야.’

‘이번엔, 누구한테도 휘둘리지 않을 거야.’

...

예진은 과일을 사러 나갔다가 카드가 정지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계산대 앞에서 ‘승인 거절'이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예진은 피식 웃었다.

‘그래, 올 게 왔네.’

‘이걸로 부윤제가 뭘 원하는지, 너무도 뻔하다.’

‘이쯤 되면 내가 굴복하고, 전화를 걸어서, 미안하다고 울며 빌 줄 알았겠지.’

‘부윤제, 당신은 아직도 날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난... 이미 준비 다 해놨어.’

예진은 아무 말 없이 다른 카드로 결제했다.

다른 통장, 다른 카드, 이혼을 입 밖에 내기 전부터 이미 만반의 준비를 다 해 둔 상태였다.

과일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막 건물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이안이 어머니시죠? 지금 좀 와주실 수 있나요?]

유치원 선생님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이안이가 다른 아이랑 놀다가 상처 부위를 건드렸는지... 계속 울고 있어요. 통증이 심한가 봐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예진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가 다쳤다는데...’

발걸음이 저절로 택시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어제 병원에서 아린의 품에 안겨 ‘고모가 엄마였으면 좋겠다’라는 말과 함께 환하게 웃던 이안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자리에서 예진의 발이 딱 멈췄다.

[이안이 어머니, 듣고 계세요?]

선생님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온 예진은 이를 꾹 깨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저... 이안이 아버지랑 이혼했습니다. 앞으로 아이 일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순간 얼어붙었다.

전화를 듣고 있는 이안을 보며 안쓰럽게 입을 열었다.

[이안아... 엄마랑 통화해 볼래?]

이안은 울다 지친 얼굴로 전화를 받아서 들었다.

그리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빨리 와. 나 병원 가야 해. 상처 터졌단 말이야.]

그 말투는 어김없이 명령조였다.

예진은 그 말투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익숙했다.

‘그래... 내 아들... 항상 이렇게 말했지.’

예진은 핸드폰을 귀에서 떼었다. 잠시, 말없이 눈을 감았다.

예전엔 이안에게 감기 기운만 있어도 예진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유치원으로 달려갔다. 하물며 머리카락 하나만 빠져도 걱정할 정도였다.

그렇게 몇 년간 모든 것을 쏟아부은지라, 이안은 당연하게 예진을 ‘엄마’가 아닌 ‘부리는 사람’쯤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 없어.’

‘아들은 날 원하지도 않는데, 왜 내가 또 달려가야 하지?’

예진은 수화기 너머, 울상 짓는 이안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이안아, 어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잊었니? 나는 더 이상 네 엄마가 아니야. 앞으로 나한테 전화하지 마.”

그리고, 예진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

한편, 이안은 핸드폰을 든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엄마가... 전화를 끊었어? 진짜... 안 올 거야?’

이안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이었다. 늘 자신이 아프면 가장 먼저 달려오던 엄마, 조금만 찡찡대도 손부터 잡아주던 사람이 오늘은 너무도 차가웠다.

‘그냥... 화나서 그런 거겠지?’

불안한 마음에 이안은 곧바로 윤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회의실.

윤제는 프레젠테이션 도중 전화를 받고 즉시 회의를 중단한 뒤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내 전화기로 예진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길게 울리고, 예진이 받자마자 윤제는 다짜고짜 말했다.

“이안이가 다쳤어. 상처 부위가 다시 벌어졌다고. 당장 유치원으로 가서 병원에 데려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예진은 막 씻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비웃듯 웃음을 흘렸다.

[참 속 편하네요. 필요할 땐 부르고, 필요 없을 땐 밀어내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앞으로 당신들이 무슨 일을 하든, 나하고는 상관없어요. 나는 이제 이안이 엄마 아니에요.]

그 말에 윤제는 순간 이성을 잃었다. 탁자를 주먹으로 세게 내려치며 외쳤다.

“고예진! 너 진짜 너무한다. 아무리 이혼한다고 해도 이안이는 네 아들이야! 애한테까지 이러는 건 아니지!”

하지만 예진은 서늘한 어조로 말했다.

[부윤제 씨, 그 말... 당신 어머니가 이안이를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했어야죠. 그땐 조용하더니, 지금 와서야 ‘내 아들’이라고 해요?”

‘당신들은 나를 배제하면서 엄마 노릇은 계속하라고 하고... 이제 더는 안 해.’

[그건 이안이가 먼저 말한 거예요. 자기 입으로 ‘엄마가 싫다’ 고 했죠. 난 그냥 그 아이의 바람을 들어준 것뿐이에요. 그리고 이혼 서류 보내기 전까지... 당신도, 부씨 집안 그 누구도 나한테 연락하지 마요.]

예진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단칼에 끊었다.

‘이제야... 정말 끝이 보인다.’

‘그래, 고예진. 이제 진짜 너를 위해 살아야 할 때야.’

...

윤제는 예진이 그런 차가운 말투로 자신에게 말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순간 얼어붙은 듯 멍하니 서 있다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입술이 파랗게 질린 만큼 얼굴빛도 하얗게 질렸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 건데.’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윤제의 마음을 들쑤셨다. 온몸을 아무리 의자에 붙여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가 예진과 싸운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진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행동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안이 문제에 있어서는, 늘 마음 약해지던 예진이었다.

‘이번엔 정말,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구나...’

이안의 상태는 심각했다.

그런데 하필 윤제는 중요한 회의 중이라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결국, 마지못해 아직 회복 중인 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린은 부씨 가문의 본가 정원에서 물을 주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화가 난 예진이 아이를 데리러 가지 않을 거라는 소식을 들은 아린은, 전화를 끊자마자 홀로 미소를 지었다.

윤제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피로감이, 그녀에겐 꽤 유쾌하게 들렸다.

그러고는 재빨리 도순희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 이안이 유치원에서 상처가 벌어졌다고 전화가 왔어요. 윤제 오빠가 지금 회의 중이라 저더러 대신 데리러 가달래요.”

그 시각, 도순희는 쇼핑 중이었다. 말을 듣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뭐라고? 이안이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심하진 않은 거 같아요. 심각했으면 유치원에서 바로 병원에 보냈겠죠.”

그제야 도순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근데 너도 아직 몸 다 안 나았잖아. 윤제도 참... 어떻게 너한테 그런 부탁을 한다니? 이안이 에미라는 고예진은 도대체 뭐 하는 X이야? 꼭두각시야 뭐야?]

아린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차가운 미소였지만, 목소리엔 그늘 한 점 없는 걱정이 묻어났다.

“이모... 제 마음이 괜히 불편해서요. 혹시 어제 일 때문에 예진 씨가 화가 나서, 오빠랑 다툰 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이안이 데리러 가는 것도 일부러 안 나서는 건가... 싶어서요...”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30화

    아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안은 더 크게 엉엉 울기 시작했다.아린은 소파에 앉아 이안을 안고 다독였다.“이안아, 울지 마. 괜찮아. 다 고모가 잘못했어.”“고모, 나 이제 엄마 안 볼 거야. 엄마는 나쁜 사람이야!”‘어떻게 내 아들이, 내 아들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지...’윤제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굳어졌다.그런 윤제를 힐끗 바라본 아린은 살짝 난처한 얼굴을 지었다.“오늘 이안이가 나한테 먼저 전화했어. 부모 참여 행사가 있다고... 예진 씨가 오기로 했다면서... 근데... 내가 혹시라도 가면 예진 씨가 또 뭐라고 할까 봐 망설였어.”“요즘 오빠랑 예진 씨 사이도 좀... 민감한 시기잖아. 그래서 내가 괜히 이안이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 같아서... 다 내 잘못인 것 같아.”아린의 조심스러운 말투와 자책하는 표정에, 윤제는 더더욱 예진에 대한 불만이 치밀어 올랐다.“이게 어떻게 네 잘못이냐? 전부 고예진 잘못이지. 고예진은 정말 미쳤어. 나한텐 아무리 소리 지르고 화내도 상관없지만, 어떻게 애한텐... 아직 어린애라고!”아린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맞아... 이번엔 예진 씨가 정말 너무했어.”이안은 여전히 흐느끼며 몸을 떨었지만, 아린이 계속 안아주고 달래자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하지만 아침도 먹지 못한 이안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자, 이안이 아린을 올려다보며 말했다.“고모... 나 케이크 먹고 싶어.”아린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우리 착한 이안이. 고모가 지금 당장 만들어줄게.”아린은 재킷을 벗고 부엌으로 향했고, 이안은 윤제의 다리를 꼭 안았다.“아빠... 엄마랑 진짜 이혼할 거야?”윤제는 잠시 굳어버렸다.‘이혼? 그 사람이 진짜 그럴 거라곤 생각도 안 했는데... 늘 말뿐이라고 생각했어.’“그건 어른들 일이고, 넌 신경 쓰지 마. 다시는 혼자 밖에 나가는 일 없어야 해. 알았지? 다음엔 정말 혼나.”이안은 윤제의 대답에 실망한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얼마 뒤, 아린이

  •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29화

    “도대체 왜 맘대로 뛰쳐나간 거야!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예진의 목소리는 이성을 잃은 듯 떨렸다.이안은 예진에게 맞은 엉덩이를 감싸며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엄마가... 진짜로 나를 때렸어?’그때, 영호가 서둘러 차에서 내려와 예진의 팔을 가볍게 붙잡았다.“진정하세요. 아직 어린아이잖아요.”예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애써 진정을 시도했다.“내가 너한테 몇 번 말했니? 밖에서 파는 케이크나 디저트 같은 건 절대 먹지 말라고 했잖아!”이안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이를 악물고 버럭 소리쳤다.“먹을 거야! 왜 나만 못 먹어! 왜 맨날 엄마가 만든 것만 먹어야 해!”“왜냐면 넌 우유 알레르기가 있으니까! 내가 만든 건 모두 네가 못 먹는 재료 빼고 만든 거야!”예진의 말에 이안은 순간 움찔하더니 고개를 홱 돌리며 눈물을 훔쳤다.“이제 내 엄마도 아니잖아! 상관하지 마!!”그 말에 예진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그래... 결국 이 아이도 날 버리는구나.’사실 예진은 원래 요리, 특히 제과 같은 방면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하지만 이안이 단 음식을 좋아하고 또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고는 밤낮으로 배우고 연습해서 만들어냈던 게 바로 그 ‘우유 없는 케이크’였다.영호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말렸다.“애들은요,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아무 말이나 해요. 너무 마음에 담지 마세요.”그러면서 예진의 어깨를 조용히 두드렸다.‘괜찮아... 익숙해지면 되잖아. 기대할 것도 없고, 상처받을 것도 없어.’예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부이안, 이게 마지막이야. 이젠 네가 뭘 하든, 나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아.”그 순간, 저 멀리에서 윤제가 급히 차에서 내려 달려왔다.“부이안!”이안은 윤제를 보는 순간 울음이 폭발했다.“아빠! 나 엄마 싫어... 엄마는 나쁜 사람이야...”윤제는 이안을 꼭 끌어안고 눈살을 찌푸리며 예진과 영호를 번갈아 바라봤다.예진은 윤제의 시선을 무시한 채 고개를

  •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28화

    마음속 억울함이 올라오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자, 이안은 눈앞에 보이는 과일을 세게 밀쳐내고 벌떡 일어나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선생님이 당황해 곧바로 따라나섰지만, 그때는 이미 이안의 모습이 유치원 정문 밖으로 사라진 뒤였다.예진은 선생님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이안 어머님, 큰일 났어요. 이안이가 방금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지금 유치원 여기저기 다 찾아봤는데 아이가 보이질 않아요.]비록 마음속으로는 ‘난 더 이상 엄마가 아니야’라며 선을 그으려 했지만, 막상 아들이 사라졌다는 말에 예진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선생님, 유치원 쪽에서도 계속 찾아주시고요. 저도 아이 아빠에게 연락하고 바로 가겠습니다.”전화를 끊자마자, 예진은 결국 또다시 윤제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사무실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윤제는 핸드폰 화면에 ‘예진’이라는 이름이 뜨자 입꼬리를 스치듯 올렸다.‘역시 고성그룹부터 압박하니까 꼬리 내리는군.’‘결국 먼저 연락 하는 건 늘 이 여자야.’전화를 받은 찰나, 예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이안이가 유치원에서 도망쳤대요. 지금 없어졌어요.]윤제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쾅!그는 벌떡 일어나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뭐라고 했어, 지금?!”30분 후, 예진과 윤제가 유치원 앞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들은 이미 유치원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이는 없었다.결국 CCTV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안은 경비원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몰래 대문 밖으로 빠져나갔던 것이었다.‘실종 신고는 시간이 좀 지나야 받아준다는 말도 있던데...’예진은 본능적으로 경찰에 신고하려다, 괜히 헛수고만 하게 될까 봐 망설이며 이를 악물고 포기했다.유치원 앞을 벗어나자 윤제는 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들을 총동원시켜 아이를 찾으라 지시했다.전화를 끊고 나자마자 예진을 쏘아보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이안이에게 아무 일 없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이랑 난 끝이야.”

  •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27화

    [여보세요? 이안아?]“고모, 오늘 유치원에서 부모 참여 수업 있는데, 고모가 대신 와줄 수 있어?”아린은 손목시계를 흘깃 봤다.[이안아, 엄마는?]“엄마가 또 삐졌어. 안 오겠대. 완전 유치해. 나도 이제 그런 엄마 필요 없어.”아린은 순간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다.‘고예진... 이번엔 진짜 단단히 각 잡고 싸우는 거네?’머릿속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잘됐네. 이 기회에 이안이가 고예진을 미워하게 만들어야지. 그래야 내가 들어갈 틈이 생기지.’그렇게 생각한 아린은 일부러 난처한 목소리를 냈다.[이안아, 고모도 오늘 회사에서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지금은 나가기 어려울 것 같아. 그리고 엄마가 약속했다면 꼭 올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그 말을 끝으로, 아린은 전화를 끊었다.이안은 뭔가 더 말하려다 전화를 뺏긴 듯한 기분에 말문이 막혔다.‘다 엄마 때문이야! 약속도 못 지키고!’속상함에 이안은 다시 아빠 윤제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윤제는 회의 중이었고,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이번엔 할머니 도순희에게 전화했다.[우리 착한 손주! 지금 할머니는 고스톱하는 중이라 바빠. 엄마한테 부탁해. 엄마는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하나둘 전화를 돌렸지만,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다.이안은 교실 앞 계단에 주저앉아 눈시울을 붉혔다.‘엄마도, 아빠도, 고모도, 할머니도... 아무도 안 와...’그때 선생님이 이안을 발견하고 조심스레 다가왔다.“이안아, 혹시 집에서 어른들이 다 바쁘신가 보네? 그래서 못 오시는 거야?”이안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예진이 직접 만든 디저트로 친구들에게 칭찬받을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모든 계획이 무산됐다.선생님은 이안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렸다.“괜찮아. 그럼 오늘은 선생님이랑 짝꿍 해서 게임을 하면 어때?”“네...”이안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선생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갔다.그 순간, 아까 그 무리의 친구들이 또 몰려왔다.“이안, 너희

  •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26화

    유치원 행사장.작은 소파에 이안만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잔뜩 찌푸린 얼굴로, 예진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엄마는 한 번도 늦은 적 없었는데... 오늘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이미 부모 참여 수업 시작 직전, 아이들과 부모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행사장을 누비고 있었다.그때, 몇몇 아이들이 이안 쪽으로 다가와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이안아, 너희 엄마 왜 아직도 안 왔어? 혹시 안 오는 거 아냐?”“지난번에 너 다쳤을 때도 안 왔다며? 너희 엄마... 너 싫어서 안 온 거 아냐?”“...”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말.어른이었으면 상처가 될 말들이, 아이들 입에서는 쉽게 튀어나왔다.이안은 더 깊이 찌푸린 얼굴로, 단단히 말문을 열었다.“그럴 리 없어! 우리 엄마 분명 올 거야. 내가 말했잖아. 오늘 엄마가 직접 만든 디저트 가져올 거라고.”그 말을 듣고, 아이들 눈이 반짝였다.“진짜? 너희 엄마 디저트 진짜 맛있잖아! 오늘 또 먹을 수 있어?”이안은 목을 꼿꼿이 세우며 당당하게 말했다.“당연하지.”“와! 이안이는 좋겠다. 맨날 그렇게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어서 부럽다.”그제야 이안의 얼굴에도 조금 웃음이 돌았다. 역시 친구들의 칭찬은 아이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고, 행사장은 어느새 완벽하게 세팅을 마쳤고, 아이들과 엄마들은 지정된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런데 예진만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선생님은 이안을 바라보다 조용히 다가와 무릎을 굽혀 말했다.“이안아, 엄마는 어디 계셔?”그 순간, 이안은 표정 하나 없이 고개를 들었다.그 얼굴은 마치... 윤제를 빼닮았다.“엄마가 잊어버렸나 봐요. 선생님, 전화해 볼게요.”이안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출입문 옆에 있던 작은 의자에 가서 스마트워치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예진은 고씨 본가에서 막 나오던 길이었다.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인도를 빠르게 걷던 그녀는 핸드폰 진동에 멈춰 제자리에 서서 전화를 받았

  •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25화

    “이미 다 생각해 봤어요. 이안이는 부윤제가 키우게 두고, 나는 그 사람 재산 반만 받으려고 해요. 그 외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예진의 말에 고환일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그만해! 너희 부부싸움이 지금 어디까지 가는 건데! 이혼은 절대 안 돼. 난 동의 못 해!”“아빠!”“이혼할 생각이라면, 다시는 날 아빠라고 부르지 마라!”고환일은 격분한 듯 가슴팍을 손으로 눌렀고, 송승예는 깜짝 놀라 급히 그를 부축했다.예진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알고 있어... 지금 고성그룹은 위기야.’‘부윤그룹이 손을 뗀다면, 수백 명 직원들의 생계까지 흔들릴 수 있어.’‘하지만... 나는... 더이상 이 집안의 방패막이로 살고 싶지 않아.’그렇게 생각한 순간, 예진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죄송해요.”갑작스러운 행동에 고환일과 송승예 모두 당황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아빠, 엄마. 제가 이기적인 거 알아요. 하지만... 그동안 제가 어떤 수모를 견뎌왔는지 말한 적 없죠?”“항상 좋은 이야기만 전했잖아요. 근데... 며칠 전에 있었던... 그 일은 생각만 해도 아직도...”그날, 그 연기 속, 숨이 막히던 순간이 떠올라 예진의 목소리는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그날... 정말 죽을 수도 있었어.’‘하지만 걱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다들 ‘왜 연락 안 됐냐고’만 따졌을 뿐.’부모 앞에서는 늘 강한 척하던 예진이 이 순간만큼은 더없이 여려졌다.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그 모습을 본 송승예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며칠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예진아, 너희 부부는 겉으로 보기엔 잘 지냈잖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동안?”예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그동안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말하자면 끝이 없었다.‘실망은 단 한 번에 오는 게 아냐.’‘작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폭발하는 거야.’“이제 와서 다 말하는 게 무슨 소용 있겠어요. 하지만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