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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주광
[지금 당장, 본가로 와. 물어볼 게 있어.]

윤제의 명령 섞인 목소리에 예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아직도 본인이 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부윤제 씨,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우리 지금 이혼 준비 중이에요. 더 이상 당신의 명령을 받을 이유 없어요.”

단호하고 냉정한 예진의 목소리에 윤제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그래, 아주 잘하고 있어.]

예진은 더 듣고 싶지도 않은 듯, 전화를 단번에 끊어버렸다.

‘딱 그 수준이야, 부윤제.’

...

윤제는 순간 멍하니 핸드폰을 쳐다보다가, 곧 들고 있던 핸드폰을 격하게 벽에 내던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옆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아린의 시선을 느끼고는 겨우 참아내며 핸드폰을 억지로 아린에게 내밀었다.

“고마워.”

윤제의 기색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간 도순희가 들이받듯 말했다.

“거 봐! 내가 뭐랬니! 고예진, 완전히 미쳐 돌아가는 거야. 이제 우리 집 망가뜨리려고 작정했지, 작정했어!”

윤제는 이를 악물며 낮게 말했다.

“이혼하고 싶다고? 좋아, 원한다면... 내가 해주지.”

그 말을 들은 아린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눈동자는 흔들렸고, 어딘가 모르게 서운하고 불안한 표정이었다.

“예진 씨... 혹시 어제 일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내가... 괜히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닐까... 혹시 내 존재 때문에 오빠 결혼이 망가지는 거라면, 나... 나 그냥 나갈게.”

아린은 말끝을 흐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모, 가지 마! 아빠가 엄마랑 이혼하면, 고모가 우리 엄마 해주는 거잖아! 나 진짜로 고모가 엄마 됐으면 좋겠어!”

이안은 두 팔로 아린을 꼭 끌어안으며 애처롭게 매달렸다.

“이안아, 그런 말 하면 안 돼... 오빠, 예진 씨 좋은 사람이야. 잘 지켜야지...”

아린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이안을 소파에 앉히고 돌아서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윤제가 조용히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만둬. 이건 네 잘못 아니야. 고예진 혼자 지랄하는 건데, 왜 네가 떠나야 해?”

곧이어 도순희도 벌떡 일어나 아린의 앞을 막았다.

“그래, 너까지 왜 이러니?! 여기가 네 집이야, 아린아! 나갈 사람은 고예진 그것이지, 네가 왜 나가? 넌 절대 못 가!”

“하지만...”

아린은 한없이 난처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이모, 저 하나 때문에 오빠 가족이 무너지는 건 아닌가 해서...”

그러나 도순희는 그녀를 이끌어 이안 옆에 강제로 앉혔다.

“그런 말 마. 네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날 찾아와서 부탁했어. 내가 끝까지 널 지킨다고 했어. 이제... 우리는 가족이야.”

이안은 아무 말 없이 아린을 꼭 껴안고 있었다. 마치 진짜 엄마인 것처럼, 두 눈에는 아린에 대한 의지와 애정이 가득했다.

윤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 진짜 시끄러워.”

결국 그는 모두를 뒤로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책상 앞에 앉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별일 아니야. 고예진이잖아.’

예진이 이렇게 집을 나간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한두 번, 기분이 상하면 며칠 간 연락을 끊고는 혼자 멀어지곤 했지만, 결국 돌아오기 일쑤였다.

서투른 사과와 함께, 늘 그랬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윤제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불안한 감정을 목구멍으로 꾹 눌러 삼켰다.

‘고예진... 날 두고 진짜로 떠날 리가 없어. 내가 다친 걸 알면, 눈물까지 쏟으며 끝까지 곁에 있어 주던 여자가... 나 없이 어떻게 살아?’

그래서 그는 내버려뒀다.

‘그래, 실컷 떠들게 둬. 돌아올 데가 없어지면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보자고.’

...

밤이 깊어져 가고, 아린은 이안을 재우고 있었다.

이안은 아린의 팔에 얼굴을 묻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모, 오늘 내가 말한 거... 진짜 연기 잘했지?”

아린은 이안의 볼을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그럼! 우리 이안이 최고였지. 완전 자연스러웠어.”

“그럼... 진짜 고모가 내 엄마 되는 거야?”

아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속삭였다.

“그럼! 이안이가 원하면, 고모는 뭐든 할 수 있어. 엄마 자리도, 다 줄게.”

그녀의 눈동자엔 흔들림 없는 야망이 담겨 있었다.

‘이 집, 이 자리... 원래 내 거였어.’

‘부씨 집안의 작은 사모님 자리, 되찾을 거야.’

...

밤 10시가 넘은 시간.

예진은 막 정리를 끝내고 침대에 누우려던 참이었다.

그때, 민혁에게서 도착한 메시지와 하나의 파일.

바로 이혼협의서였다.

곧이어 도착한 짧은 음성 메시지.

[우선 협의 이혼으로 진행하죠. 상대가 거부하면 소송으로 갑니다.]

예진은 문서를 열어 살펴봤다.

재산 분할은 혼인 이후 공동 소유 자산 50:50, 부동산 포함.

아이의 양육권은 남편 측.

‘예상했던 대로네. 감정 따위 다 걷어내야 할 때야.’

예진은 곧 민혁에게 음성으로 답장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내일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볼게요.]

보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화면에 뜬 발신인은 ‘동부경찰서 수정지구대’.

“여보세요?”

[고예진 씨 되시죠?]

“네, 접니다.”

[여기는 동부경찰서 수정지구대입니다. 고예진 씨 지인 서은주 씨가 김기남 씨라는 남성과의 마찰로 경찰서에 계십니다. 서은주 씨가 연락할 수 있는 분으로 고예진 씨를 지목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예진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은주가 그랬다고? 걔가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리 없지.’

예진은 급히 겉옷을 걸치며 문을 나섰다.

‘은주는 감정적이지만, 절대 선을 넘는 애는 아니야.’

‘상대가 먼저 뭔가 했겠지. 분명히... 뭔가 잘못됐을 거야.’

예진이 수정지구대에 도착했을 때, 문을 열기도 전부터 안에서 은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장난해요? 먼저 손댄 건 저 남자예요! 우리 바 여직원한테 자기 손 함부로 놀렸는데, 내가 따귀 두 대 때린 게 그렇게 잘못한 거예요? 그건 사람 되라고 한 방 먹인 건데, 내가 왜 돈을 물어줘야 해요?”

그 뒤로는 경찰의 다소 무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은주 씨, 일단 진정하세요. 상황이 어떻게 시작됐든, 결국 선제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쪽은 서은주 씨입니다.”

“지금 상대측에서 합의 의사를 밝혔으니, 조용히 끝내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합의를 거절하시면, 상대측에서 ‘상해죄’로 정식 고소하겠다고 해서요. 피해가 클 수 있습니다.”

은주는 책상을 ‘쿵’ 하고 치며 일어섰다.

“하든지 말든지! 무서워서 벌벌 떨 줄 알아?”

바로 그때, 예진이 안으로 들어섰다.

은주는 예진을 보자마자 얼굴이 밝아지며 다가와 껴안았다.

“예진아! 네가 말 좀 해봐. 저 김기남이라는 놈이 우리 직원한테 손대서 내가 딱 두 대 때린 건데, 지금 나보고 돈을 물어내래! 이게 말이 돼?”

예진은 당황한 경찰들을 의식하며 은주의 어깨를 가만히 토닥였다.

“알았어, 알았어. 너는 조금만 진정하고, 나한테 맡겨.”

‘은주는 평소에 아무리 욱해도 선 넘는 스타일이 아닌데...’

‘진짜 뭔가 있었나 보네. 하지만 여기선 더 흥분하면 안 돼.’

은주는 입술을 깨물며 한숨을 내쉬고는, 억지로 벽 쪽 의자에 앉았다.

팔짱을 낀 채,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경찰을 노려봤다.

예진은 담당 경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성함이...?”

“예영호입니다.”

“예영호 경찰관님, 안녕하세요. 저는 서은주 친구 고예진입니다. 방금 상황은 문밖에서 대충 들었습니다.”

“우선 감정적 대응은 삼가야 한다는 점 인정하고요, 합의를 원하신다니 액수부터 여쭙겠습니다. 상대 쪽 요구액이 얼마인가요?”

예영호는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십만 원입니다. 크게 부상이 있는 건 아니고, 상대도 길게 끌고 싶진 않다네요.”

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금액은 문제가 되지 않으니, 합의서 작성 절차부터 진행해 주시겠어요?”

‘이건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야.’

‘은주가 저렇게까지 격해졌다는 건, 그 남자 쪽도 분명 선을 넘었겠지.’

‘일단 정리하고, 따로 제대로 밝혀야 해.’

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금액이 많진 않네요. 경찰관님, 죄송하지만... 혹시 그분을 잠깐 이 자리로 모셔줄 수 있을까요? 제가 직접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요.”

예진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예영호는 그런 예진의 침착한 태도에 신뢰를 느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은주가 벌떡 일어나 예진에게 다가왔다.

“야, 너 설마 진짜로 돈 줄 생각은 아니지? 난 잘못한 거 없어. 그딴 인간한테 단돈 10원도 못 줘. 진짜로.”

예진은 은주의 팔을 가볍게 붙잡으며 말했다.

“알아, 너 잘못한 거 없는 거.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은주가 욱하긴 해도, 진짜 선 넘는 짓은 안 해.’

‘이건 분명 상대가 문제야. 이대로 대충 마무리하게 놔둘 수는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예영호가 한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바로 김기남이었다.

은주는 그를 보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노려봤고, 김기남은 오히려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며 도발적인 표정을 지었다.

“모셔 왔습니다. 대신, 여기서 대화하세요.”

예영호는 중간 자리에 앉고, 예진과 은주는 한쪽에, 김기남은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예진은 먼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김기남 씨, 우선 제 친구가 손을 댄 건 명백히 잘못된 일입니다. 어떤 상황이었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죠.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사과드릴게요.”

김기남은 바로 눈에 띄게 고개를 젖히며, 입꼬리를 당겼다.

“그래야지. 맞아, 폭력은 절대 안 되지. 지금 이게 ‘고의 상해’인 거 알아? 내가 병원 가서 진단서 끊으면, 이건 바로 형사 사건이야.”

“근데 내가 좀 착해서... 그냥 한 번 봐주려는 거야. 그런데 당신 친구는 그걸 거절하잖아? 적당히 할 줄 알아야지, 안 그래?”

‘착해서? 이 인간,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아직도 몰라.’

예진은 마음속으로 웃음이 났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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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5. 12. 04. AM.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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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보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세준은, 어머니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이 일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서 임보미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도움을 청하듯 임국봉을 바라보았다.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임국봉이 다시 임보미를 달랬다.“그만해, 보미야. 내가 옆에 있는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내가 장담하지만 세준이한테는 절대 아무 일도 없을 거야.”그 말을 듣는 순간, 임보미는 마침내 폭발해 버렸다.“그런 무책임한 말 집어치워! 오빠 조카면 어떻다는 거야? 결국 친아들도 아닌데 마음이 아플 리가 없지! 내가 모를 줄 알아? 세준이가 이 일로 오빠한테 돈을 안 찔러줬을 리 없지.” “그 돈을 이용해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겠다는 거잖아! 자기 앞길을 위해서 내 아들을 총알받이로 쓰겠다고? 꿈도 꾸지 마!”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임국봉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양심이 있어? 내 친아들은 아니지만, 세준이가 자라는 모습을 내가 쭉 지켜봤어. 친아들하고 뭐가 다르겠어?” “세준이가 사고 칠 때마다 뒤에서 수습한 게 누군데,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니...”그 말을 끝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임국봉은 바로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오빠가 정말로 화가 난 모습을 보자, 임보미도 화가 조금 누그러졌지만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그 모습을 본 세준이 앞으로 나서면서 임보미 앞에 무릎을 꿇었다.“엄마, 외삼촌이 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 엄마도 다 봤잖아. 이 일은 내가 선택한 거지, 외삼촌이 시킨 게 아니야.” “엄마가 걱정하는 거 알아. 하지만 지금 우리 집은 이미 다른 방법이 없어. 정말 가족 전부 다 길바닥에 나앉아야 되겠어?”자식의 이런 모습을 보자, 분통이 터진 임보미가 세준을 노려보며 소리쳤다.“난 차라리 길바닥에 나앉는 게 낫지, 나중에 네가 비참한 꼴을 당하는 건 못 봐!”그러자 세준이 손을 들면서 맹세하듯 말했다.“엄마,

  •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697화

    세준이 그동안 이 일을 끝까지 숨긴 채 입을 다물고 있었기에, 임보미도 내막을 캐묻지 못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걸 세준도 알고 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듯 외삼촌을 바라보았다.여유롭게 소파에 앉으면서 임국봉이 말했다.“보미야, 일단 너무 흥분하지 말고 앉아서 차분하게 이야기해 보자.”임보미가 아무리 아들을 감싸고 애지중지 키웠다고 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 정도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신씨 가문은 수십 년간 정직하게 사업을 해 온 가문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과는 단 한 번도 연을 맺은 적이 없었다.이런 상황에서 임보미가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는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임보미는 당장이라도 오빠의 따귀를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무슨 얘기를 더 해요? 난 오빠가 정말로 세준이를 아끼는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애가 이렇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데도 말리는 건 고사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보호막이 되다니, 미친 거 아니에요?” “우리 집에는 세준이 하나뿐이에요. 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정말 오빠 앞에서 죽어버릴 거예요!”임보미의 초조함과 격앙된 모습과 달리, 임국봉은 한결 침착해 보였다.“너도 말했듯이 내가 뒤를 받쳐 주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해? 지금 내가 H시에 있고 세상을 다 쥘 정도의 힘은 없다 해도, 그래도 얼굴은 좀 알려져 있어.” “세준이도 조심스럽게 일 처리를 했고, 지금까지 문제 한 번 없었잖아? 게다가 우리 일의 규모도 크지 않은데 무슨 큰일이 나겠어?”임보미는 그 말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난 임국봉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다독였다.“그래, 네가 세준이 걱정하는 거 나도 알아. 나도 조카라고는 세준이 하나뿐인데 어떻게 잘못되게 놔 두겠어” “지금 신씨 가문이 파산까지 선언한 마당에, 너희 가족이 전부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는 거야? 세준이 일이 위험해 보이긴 해도 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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