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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주광
은주가 벌떡 일어나 소매를 걷으려 하자, 예진이 다급히 그녀를 뒤로 끌어당겼다.

“봤지? 저 여자, 진짜 구제 불능이야. 법 아는 애가 일부러 폭력을 행사한 거잖아. 한 번만 더 이러면, 진짜 고소할 거야!”

예영호는 급히 손을 들어 상황을 중재하려 했다.

“자, 자... 진정하세요. 이야기는 차분히 하시죠.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진이가 나서면 방법이 있겠지.’

‘근데... 나 진짜 저 인간한테 한 대 더 날리고 싶어.’

은주는 이를 악물고 있었지만, 예진이 조용히 은주의 팔을 꽉 잡은 덕에 간신히 마음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예진은 다시 김기남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김기남 씨, 아직 끝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후 사정은 어느 정도 파악했고, 물론 제 친구의 행동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발단이 김기남 씨에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죠.”

예진의 말이 흐름을 바꾸자, 김기남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자르려 했다.

“그건 또 무슨...”

하지만 예진은 김기남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김기남 씨께서 요청한 50만 원, 그건 저희가 지불할 수 있습니다. 폭력에 대한 책임이니까요.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저희 측은 김기남 씨를 ‘강제추행죄’로 고소할 예정입니다.”

은주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제야 그녀는 예진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했고, 억눌렀던 감정을 겨우 내려놓았다.

‘역시... 내 친구는 달라.’

은주는 조용히 고개를 들고, 자리를 지키며 미묘하게 미소 지었다.

예진은 이어서 말을 이었다.

“저희 직원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건 명백하고, 당시 CCTV 영상과 목격자 진술도 확보돼 있습니다. 폭력은 폭력대로, 성추행은 성추행대로 각자 책임지는 게 맞겠죠?”

김기남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 그딴 증거가 어디 있다고...”

“저희 바엔 CCTV가 5대 이상 있고, 그날 일한 직원들도 모두 진술할 수 있습니다. 김기남 씨, 이건 싸움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김기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술을 실룩거리며 앉아 있다가, 결국 허세 섞인 말 한마디를 뱉었다.

“쳇... 재수 좋은 줄 알아.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아서 봐주는 거야. 다음엔 안 봐준다.”

‘봐준다고? 웃기지 마.’

예진은 속으로 차가운 미소를 삼켰지만, 겉으론 그저 고개만 살짝 숙였다.

김기남은 마지막 허세를 남기며 몸을 일으켰다.

“됐고, 난 간다.”

그 순간, 은주가 벌떡 일어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기세에 눌린 김기남은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은주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이, 쓰레기! 앞으로 다시는 우리 술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그리고 오늘은 이대로 넘어가겠다고? 허, 최소한 사과 해야지! 감히 이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해?!”

‘진짜... 사과 한마디로 끝내는 거면 다행인 줄 알아라.’

김기남은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 잠시 머뭇거렸다.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발끝은 이미 출구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예영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중재했다.

“사과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닙니다. 김기남 씨, 잘못했으면 인정하는 게 어른이죠. 사람이면 사람답게 마무리합시다.”

결국 김기남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출입문 옆에 앉아 있던 은주의 바 직원에게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고...”

진심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피해 여직원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마무리되니 다행이지.’

김기남은 더 머뭇거리지 않고 쏜살같이 파출소를 빠져나갔다.

은주는 여직원과 함께 문가에 잠시 앉아 진정했고, 예진은 예영호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가 서류에 사인했다.

“여기에 사인하시면 오늘 건은 마무리됩니다. 다만, 친구분에게도 꼭 전해주세요. 요즘은 법으로 말하는 시대니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라고요.”

예진은 고개를 숙였다.

“경찰관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은주는 파출소에서 흥분했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상태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무 말 없이 욕실로 직행했고, 예진은 그사이 부엌에 들어가 야식을 준비했다.

잠시 후, 은주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채 나왔고, 식탁 위 따끈한 단팥 찹쌀죽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예진아... 진짜 너 없었으면 나 오늘 돌아버렸을지도 몰라.”

‘밖에선 저렇게 기세등등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누구보다 약해지는 내 친구...’

‘이래서 내가 은주를 그냥 두질 못하겠다니까.’

예진은 웃으며 수저를 건넸다.

“다음엔... 아무리 화나도 손부터 나가면 안 돼. 진짜 나쁜 놈한테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은주는 한입 가득 죽을 넣고는, 볼을 불룩하게 부풀리며 오물거렸다.

“진짜 다치면... 우리 오빠 불러서 복수할 거야.”

그 말에 예진이 피식 웃자, 은주는 슬며시 눈빛을 반짝였다.

“근데 너 오늘... 만났지? 우리 오빠 말이야, 어땠어?”

예진은 수저를 놓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늘 만났고, 네 오빠 말로는 우선 협의이혼으로 시작하래. 나도 생각이 다 정리됐어. 더는 질질 끌고 싶지 않아. 내일, 부윤제랑 직접 만나서 얘기할 거야.”

은주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꼭 잡았다.

“그래, 잘했어. 내 친구 예진이는 절대 누구한테 질 사람이 아니야.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옆에 있을게.”

다음 날 아침, 예진은 일찍 눈을 떴다.

창밖은 맑았지만, 마음은 어딘가 묵직했다.

그녀는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지금 아니면 더는 피할 수 없어. 결정했잖아, 이번엔 끝내겠다고.’

그리고 마침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

한편, 윤제는 회사 사무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날부터 이어진 찜찜한 기분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때, 허태성이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앉더니 말했다.

“형수님, 이번엔 진짜 끝낼 생각인가 본데요? 어제 그 분위기, 장난 아니던데요.”

윤제는 말없이 눈살을 찌푸리다가, 억지로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고예진이 그럴 배짱이나 있겠냐?”

‘나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두고 보라지.’

“고씨 가문도 요즘 망해가고 있고, 네 형수도 나랑 결혼하고 한 번도 일한 적 없어. 솔직히 말해서, 그냥 내가 먹여 살리는 새장 속의 새나 마찬가지였잖아. 이혼? 내 돈 없이 밥 사 먹을 돈도 없어.”

허태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형수님은 돈이 없어도 형은 있잖아요. 형이 번 건 다 혼인 기간 중 재산이니까, 공동 재산 아니에요? 형수가 재산 분할이라도 요구하면요?”

윤제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밤새워 벌어들인 돈이야. 네 형수가 제일 잘 알지. 진짜 이혼하겠다고 나서면, 자기 손에 쥘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거.”

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뭐, 맞는 말이긴 해요. 사람들도 다 알아요. 형수님 18살 때부터 형한테 푹 빠져서, 지금껏 형밖에 모르고 살았잖아요. 솔직히 형 말고 딴 사람한테 가는 건 상상이 안 돼요.”

그 말에 윤제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입꼬리에 다시 한번 여유로운 웃음이 걸렸다.

그때, 윤제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예진’이었다.

윤제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고 전화기를 들었다.

태성은 옆에서 팔짱을 끼고 킥킥 웃었다.

“거 봐요. 형수님, 결국 못 버티고 먼저 전화했잖아요. 형도 적당히 화 풀어요. 잘 달래면 끝나는 거죠, 뭐...”

윤제는 전화를 받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이제 다 끝났냐?”

하지만 들려온 예진의 목소리는 차디찼다.

[부윤제 씨, 난 그냥 시간을 정하려고 전화한 거예요. 이혼협의서 건네주려고요.]

그 한마디에, 윤제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입꼬리의 웃음이 가시며, 방 안의 공기가 서늘하게 식었다.

‘이 여자, 이번엔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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