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이도가 돌아가고, 우암과 방울은 오늘 밤을 칠호산에서 보내기로 했다.주말이기도 했고, 저녁을 먹고 나니 이미 시간도 늦었고. 함께 있을 이유나 핑곗거리는 많고도 많았으니까.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하던 방울이 작게 웃었다."김 비서님이요, 되게 유쾌하신 것 같아요."저녁을 먹는 내내 웃을 일이 참 많았다.두 남자는 시도 때도 없이 티격태격했고, 서로를 대하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형제처럼 죽이 잘 맞았다."유쾌하고, 눈물도 많고. 종잡을 수 없는 놈이죠."우암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방울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저녁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알 것 같았다.우암이 왜 그토록 김 비서를 믿고 의지하는지, 김 비서님은 왜 그렇게 서우암이란 남자를 따르는지."오랜만에 즐거웠어요. 사실, 조금 걱정했거든요.""걱정이요?""네. 우암 씨 지인분은 처음 뵙는 거니까..."우암은 물기를 털어낸 그릇을 건조대에 올려놓았다.그러고는 옆에 선 방울을 힐끗 바라봤다."망망 씨, 제 주변 사람들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어떻게 그래요.""아뇨, 그렇게 하세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그만이니까."순간,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조용히 이어졌다. 방울은 고개를 숙인 채 손에 쥔 수세미만 내려다봤다.따뜻한 물에 오래 담가 둔 손끝보다 뺨이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우암은 방울의 침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듯, 손에 들린 그릇을 받아 건조대에 올려놓고는 수도꼭지를 잠갔다."우리, 산길 좀 잠깐 걸을까요?"방울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잠시 후, 두 사람은 나란히 현관을 나섰다.밤공기는 제법 서늘했다. 어둑한 산길에는 풀잎 스치는 소리와 이름 모를 벌레들의 울음만 희미하게 번졌다.방울은 겉옷의 앞섶을 여미며 천천히 걸었고, 우암은 발걸음을 맞추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익숙한 전주가 귓가에 흐르는 순간, 방울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출 뻔했다.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우암이 튼 노래는 분
우암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저 자식은 내 흔적이라고는 단 하나도 남겨 놓고 싶지 않은 건가?아니면 여전히 그 지독한 의심병을 떨쳐내지 못한 건가.─아, 아직 사망신고가 안 된 상태라서요.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고, 가족분들도 미국에 계셔서 재산 관련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준영의 의심과 달리, 형우의 대답은 나름 현실적이었다.─그럼 아직 명의는 그대로겠네?─예. 현재는 법원에서 선임한 재산관리인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흠... 그래?잠시 뜸을 들이던 준영이 마침내 속내를 드러냈다.─어차피 걔네 부모님은 귀국할 생각도 없으시잖아?─그거야.... 아마도....─내가 사야겠어, 그 집.이야기를 들은 형우 역시 적지 않게 놀란 듯 한 박자 늦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 직, 직접 거주하시려고요...?─어차피 비어 있는 집이잖아. 부모님한테 연락해서 매각 의사가 있는지부터 알아봐.─알, 알겠습니다....통화가 끊기고, 이도가 혀를 차며 핸드폰 화면을 노려보았다."저, 저 나쁜 놈... 또 주말에 사람을 불러재끼고 지랄이네."이도는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순간 우암의 머릿속에는 그간의 일들이 하나 둘 스쳐지나갔다.아티스트의 신곡 발매, 쇼케이스, 혹은 해외 출장이 있을 땐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이도와 함께였는데.이 자식은 그동안 그게 싫었구나. 돌려까는 스킬 한번 제대로구나."미안하다. 나도 그랬던 적이 꽤 많은 것 같은데."이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아? 아? 아닙니다! 대표님은 언제든지 부르셔도 됩니다! 대표님이랑 고준영이 어디 같습니까?""됐고... 상황을 빙자한 속마음 고백, 아주 잘 들었고.""아닙니다. 대표님... 정말 아닙니다. 억울합니다!"이도가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우암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근데, 집까지 내어줄 순 없지.""그럼요! 말이 안 되죠. 아직 사망신고도 안 된 상태 아닙니까?""어.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
방울은 감탄을 쏟아 내는 이도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고, 그 옆에서 우암은 이마를 짚었다."우와... 와..... 혹시 칠호산에 사는 선녀십니까?""푸하, 김 비서님 엄청 재밌으세요!"이도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은 멈출 줄을 몰랐다.게다가 도무지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에 우암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김이도, 눈 안 돌려?""아! 죄송합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도가 허리를 꾸벅 숙이자, 방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편하게 대해주세요.”“아닙니다, 형수님! 제가 감히 어떻게....”방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김 비서님, 엄청 보고 싶었어요.”“예...? 저를요? 정말요?”“네. 우암 씨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거든요. 엄청 믿는 분이라고, 되게 고마운 사람이라고.”그 말에 이도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애써 참았던 감정이 다시 목까지 차오르는 듯했다."아... 대표님...""또 왜.""저, 잠깐만 울어도 되나요...?""들어가서 울어. 날도 추운데.""맞아요, 얼른 들어오세요!""그럼 실례하겠습니다!"우암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방울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손을 얹었다.오랜만에 만난 부하 직원과, 사랑하는 여자가 한자리에 있는 풍경이 낯설면서도 꽤 마음에 들었다.집 안으로 들어선 방울은 두 사람을 식탁으로 안내한 뒤 따뜻한 차부터 내어주었다."그럼 말씀들 편히 나누세요. 저도 할 일이 좀 있어서요.""어디 가십니까, 형수님!""이도야.""그,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방울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작업실로 향했다.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길 바랐으니까.방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도는 조금 전과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섰다.그리고 테이블 위에 휴대전화 하나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얼마 전, 이형우의 휴대전화를 복제해 만든 것이었다."아직까지 특별한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괜찮아. 서두를 필요 없어.""업무용
씩씩거리던 화연은 곧장 카운터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방울에게 당장 연락해야 했다.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 손가락이 뚝 멈췄다.굳이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이제 겨우 서우암이라는 남자를 만나 조금씩 웃음을 되찾고 있는데,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잊어도 모자랄 이름을 굳이 다시 들려주는 게 맞는 걸까.이곳까지 찾아온 걸 보면 아직 방울의 정확한 거처를 알아내지는 못한 듯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말이다.하지만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방울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건, 결국 그만큼 집요하게 뒤를 쫓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하.... 골치 아프네.”답답한 마음에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알려주자니 걱정이고, 그렇다고 모르는 척하자니 그것도 또 걱정이고.결국 휴대전화를 다시 내려놓은 화연은 한동안 카운터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당분간 방울이는 안 만나는 게 좋겠어.'적어도 최도균이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칠호산도, 오피스텔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괜히 자신 때문에 평온한 일상에 금이 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그리고, 이제는 방울이 옆에 든든한 남자가 지키고 서 있으니까.***칠호산 중턱.차 한 대가 공터에 급하게 멈춰 섰고,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우암의 비서 이도였다."대표님...!"우암이 부드럽게 웃으며 손짓했다."왔어?"그 한마디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도가 정신없이 달려들었다.그러고는 우암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으아아악! 대표님!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는 안도했고, 그 뒤로도 틈틈이 통화를 나누면서 마음을 놓으려 애썼다. 그런데도 어딘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이렇게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난 건지, 이도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징그럽게 왜 이래."우암은 질색하는 듯 말하면서도 이도를 밀어내지 않았고, 이도는 울먹거리며 참아왔던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작은 카페, '커피 온유'.이곳은 3개월 전, 화연이 야심 차게 문을 연 디저트 카페다.화연의 아버지는 식품업계에서 제법 입지를 다진 중견 식품회사를 운영 중이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고, 대학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회사에 입사했지만, 정작 화연에게 그곳의 일은 영 맞지 않았다.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퇴사를 꿈꾸던 화연은 결국 어머니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카페를 차렸다.테이블은 고작 여덟 개.규모만 놓고 보면 동네의 평범한 카페에 불과했지만, 디저트 하나만큼은 제법 입소문을 탔다. 특히 바삭하게 구워 낸 크로플과 직접 만든 크림을 곁들인 디저트가 인기였다.덕분에 매장은 작아도 주문은 끊이지 않았다.매장 손님은 물론이고 배달 주문까지 밀려들어, 한가한 오후를 기대하는 건 일찌감치 포기한 지 오래였다.화연은 오븐에서 갓 구운 크로플을 꺼내며 앞치마에 묻은 밀가루를 털었다.“아, 이것도 얼른 포장해야 하는데... 진주야, 음료 다 됐니?”"네, 사장님!"그때였다.딸랑.카페 출입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다.“어서 오세....”습관처럼 인사를 건네던 화연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입구에 서 있는 남자를 확인한 순간, 얼굴에서 웃음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최도균, 저 개자식이 여길 왜?"장사 끝났습니다."싸늘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손에 들고 있던 집게를 내려놓는 동작마저 평소보다 거칠었다. 그런 화연의 모습에 아르바이트생 진주마저 당황해 행동을 멈췄다."네....?"하지만 화연은 진주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눈동자는 오직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감히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을 하다니, 죽여버려도 시원찮을 새끼가.도균은 화연의 노골적인 적대감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희미한 미소까지 걸었다.“손님한테 너무하는 거 아닌가?”“아는 척하지 마세요. 그쪽이랑 말 섞을 생각 없으니까.”화연은 카운터에서 나와 출구 쪽으로 걸어가서는 문까지 활짝 열어
아영이 스스로를 다독이며 어제의 흔적을 닦고, 또 닦아내는 동안, 벽 하나를 사이에 둔 701호에서는 전혀 다른 아침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우암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정갈한 식사를 차려내고 있던 것. 요거트 샐러드와 따뜻한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부드러운 단호박 수프까지. 시각적으로나 영양적으로나 완벽한 식단이었다.여전히 잠이 덜 깬 방울은 이내 고소한 냄새에 눈을 반짝였다."진짜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방울이 숟가락을 들고 신나게 아침을 먹기 시작하자, 우암은 그 옆에 자연스럽게 앉아 태블릿 화면을 켰다."민아영은 새벽에 들어왔나 보네요.""네, 그래서 오늘은 아침 운동도 쉼표인가 봐요.""표정이 좋아 보이십니다?"방울이 수프를 꿀꺽 삼키며 짐짓 억울하다는 듯 볼을 부풀렸다."아닌데요? 아쉬워 죽겠어요... 더 가까워져야 되는데!"우암은 방울의 입술 끝에 묻은 수프를 손끝으로 닦아주며 나지막이 미소 지었다."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뭔데요?""이도가 이형우 핸드폰을 복제한 모양입니다." 방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핸드폰 복제라니? 그 까다로운 인간의 스마트폰 정보를 통째로 복사해 낸다고?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었다고?"진짜예요? 김 비서님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요?""많이 가까워진 모양이에요. 그것도 돼지 껍데기 집에서 했다던데요?""진짜 대단하시다."방울은 감탄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술잔을 기울이면서 속으로는 상대의 휴대전화 정보를 확보할 궁리를 하고 있었을 김이도.우암에게 전해 들은 김이도라는 사람은, 아직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어버렸다."그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볼 수 있는 건데요?""주고받는 통화 기록, 문자, 메신저는 물론이고 운이 좋으면 삭제된 파일까지요."그 짜릿한 소식에 방울은 저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물론 휴대전화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증거가 되는 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