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나 너 때문에 속상하니까 사과하고 위로해 줘”명령하는 목소리는 낮고 잠겨 있었다.“내가 뭘 잘못했는데?” 혜니는 눈을 깜빡이며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인우의 눈빛은 더 깊어졌다.“너 태유그룹 사모님 하기 싫다며.”인우는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쳇. 귀는 또 정말 밝네.’‘겨우 그 한마디 때문에 반나절이나 혼자 삐쳐 있었던 거야?’“응. 나 진짜 하기 싫어.”혜니는 인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일부러 말했다.“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되지.”인우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그렇게까지 날 밀어내고
취한 목소리와 연달아 들려오는 입맞춤 소리를 듣는 사이 윤모의 마음은 완전히 뒤엉켰다.‘달님’도, 경서도... 윤모는 두 여자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다....다음 날, 혜니는 태유그룹으로 출근했다.정문에 들어서자마자 회사 분위기가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직원들이 혜니를 바라보는 눈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아부가 묻어 있었다.프런트 직원까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지나치게 달콤한 목소리로 인사했다.“윤 비서님, 좋은 아침입니다.”회사 안에서는 이미 소문이 크게 퍼져 있었다.혜니는 인우가 꽁꽁 숨
윤모는 무심한 표정의 상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말에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상민아, 내가 한 번만 더 말한다.”“하경서는 내 여자야. 건드리지 마.”“안 그러면 친구고 뭐고 없어.”흥이 깨진 상민은 냅킨을 테이블 위에 던지고 느긋하게 일어났다.옷에 잡힌 주름을 한 번 펴고 경서를 바라봤다. 목소리는 차갑게 선을 그었다.“다음부터 너희 둘 관계 정리하기 전에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언짢아진 상민은 그 말을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나갔다. 단단히 화가 난 게 분명했다.“상민 오빠!” 경서가 부르며 따라가
“내 뒤로 타.” 상민은 짧게 말했다.경서는 더 활짝 웃는 얼굴로 자기 바이크 키를 친구 임재에게 던져 주고 망설임 없이 상민의 뒷좌석에 올라탔다.동작은 익숙하고 시원스러웠다.곧 부드러운 두 팔이 뒤에서 상민의 허리를 감았다. 따뜻한 몸이 등에 바짝 밀착됐다.상민의 몸이 잠깐 굳었다.“우리 어디 가?” 경서의 숨결이 상민의 목 옆에 닿았다. 간질간질하면서도 뜨거웠다.상민은 목울대를 한 번 움직이며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목소리는 그나마 평온했다.“일단 밥부터.”“안 그러면 오늘 밤 침대에서 네가 못 버틸까 봐.
결국 그날 밤, 혜니는 진춘심에게 붙잡혀 집에서 자게 됐다.인우가 보내는 같은 호칭이 화면에 끝없이 떴다.[여보.][여보.][여보.][...][그만해. 오늘은 못 가.] 혜니는 결국 참지 못하고 답장을 보냈다.[그럼 내일 보상해, 여보.]혜니가 경고했다.[꺼져. 메시지 또 보내면 차단한다.] [차단은 안 돼. 나 운동하러 간다. 다음 주엔 하룻밤에 열 번도 더 행복하게 해 줄게.]‘변태.’혜니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밤 9시쯤 경서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레이싱 슈트를 입은 남자가 찍혀 있었는데, 선
“내가 언제 돌려 깠는데? 내가 한 말 중에 틀린 게 뭐가 있어?”“내 딸 남자친구가 연봉 2억이라고 한 게 다잖아. 네가 배 아파서 나 붙잡고 욕한 거지. 이상한 건 너야!”“됐어, 엄마. 집에 가자. 나 배고파.” 혜니는 싸움을 끝내고 싶어서 진춘심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방미자는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 침까지 튀기며 계속 떠들었다.그때 흰색 포르쉐 파나메라 한 대가 옆에 멈췄고 젊은 남녀 한 쌍이 차에서 내렸다.방미자는 바로 허리를 세우고 우쭐하게 자랑했다.“봐? 내 딸 남자친구야. 타고 다니는 차 값만 2억이
인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아이는?”“없습니다.”“좋군.”인우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혜니는 그런 인우를 한 번 바라보았다.‘좋긴 뭐가 좋아.’‘그때 남겨 놓은 네 ‘보물’ 때문에 내가 죽을 뻔했어!’“됐어. 회의 있습니다.”인우가 새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소 비서, 따라와.”“네, 대표님.”새연은 기쁜 얼굴로 회의록을 적을 노트를 챙기러 갔다....결국 회의는 세 시간이나 이어졌다.새연의 키보드는 불꽃이라도 튈 듯 쉴 새 없이 두드려졌다.‘우리 새 대표님... 확실히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그대로 굳어 버린 듯했다.사실 혜니는 어젯밤에도 인우의 꿈을 꾸었다....은행나무 아래, 매트, 별빛, 이혼하던 날의 마지막 작별. 혜니가 울부짖었고, 인우는 뜨거운 숨을 귓가에 뿌리며 끝을 정하는 건 자신이라고 했다. “한인우, 이제 그만해.”혜니가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마음까지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인우는 낮게 숨을 내쉬며 혜니를 내려다보았다.뜨거운 기운이 가까이 닿았지만, 인우의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렇게 소리칠 힘은 남아 있
“공주님, 얼른 신발 신자. 늦겠다!” 바쁜 아침, 시간에 쫓기는 윤혜니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싫어! 오늘 어린이집 안 갈래!” 나래는 미꾸라지처럼 몸을 비틀며 말랑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아이고, 우리 착한 아가. 오후에 엄마가 딸기 생크림 케이크 사 줄게. 딸기 맛이야.” 혜니는 온갖 방법을 다 써 목소리를 한껏 부드럽게 낮췄다.달콤한 회유가 통하자 나래는 마지못해 조그만 발을 내밀었다.혜니는 잽싸게 신발을 신기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핸드폰을 꺼내 소새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새연아,
‘내가 취한 건가?’샴페인 한 잔 마셨다고 이럴 리가 없었다.혜니는 접시를 내려놓고 서둘러 인우를 찾았다.인우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하지만 또다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그때 키 큰 남자 하나가 갑자기 혜니의 앞을 가로막았다.“아가씨,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저랑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죄송합니다.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요.”혜니는 남자를 피해 지나가려 했다.그러나 남자는 웃으며, 휘청이는 혜니의 몸을 덥석 붙잡았다.“좀 취하신 것 같은데요. 제가 정원에 모시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