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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이야기보따리
소예지도 함께 왔으니 심유빈을 잘 달래야 할 것이다.

그때 백발이 성성한 한 할머니가 다가왔는데 바로 고이한의 할머니 최현숙이었다.

“예지 왔어?”

“할머니.”

소예지가 최현숙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결혼 후 최현숙은 항상 그녀에게 잘해줬다.

“아이고. 우리 하슬이 이렇게나 컸어? 왕할머니가 이젠 안기도 힘들겠어.”

최현숙은 애정 어린 눈으로 증손녀를 쳐다보았다.

18시간이나 비행했더니 소예지는 피곤이 밀려왔다. 고하슬이 시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놀고 있어 방해하기도 그랬다. 하여 샤워한 후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밤 11시, 고하슬은 여전히 기운이 넘쳤다. 소예지는 정신을 차리고 2층 거실에서 딸과 함께 놀았다. 잠시 후 고이한이 잠옷 차림으로 다가왔다. 자리에 앉자 고하슬이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빠, 나랑 놀아줘요.”

“알았어. 뭐 하고 놀까?”

“블록 쌓기.”

고이한은 인내심을 가지고 딸과 함께 블록 쌓기 놀이를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소예지는 졸음이 마구 쏟아져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비몽사몽 하던 그때 고하슬이 툭툭 치자 소예지는 눈을 살짝 떴다. 고하슬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엄마를 안고 방에 데려가요.”

“깨워도 돼.”

“저번에 유빈 이모를 안고 방에 갔잖아요. 엄마는 왜 안 되는데요?”

고하슬이 질투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 말에 소예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짓을 할 때 하슬이를 피하지도 않았단 말이야? 괘씸한 것들.’

소예지는 자는 척하다가 눈을 떴다.

“하슬아, 엄마랑 같이 방에 가서 잘까?”

그녀는 고이한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 그들의 대화를 소예지가 들었다는 걸 그도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무서워요. 아빠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요.”

고하슬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빠는 일해야 하니까 엄마랑 먼저 자.”

말을 마친 고이한은 곧장 일어나 서재로 들어갔다.

고하슬이 입을 삐죽거리자 소예지는 재빨리 아이를 안았다.

“가자. 엄마가 책 읽어줄게.”

다음 날 아침 소예지는 딸의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작은 사모님, 일어나셨어요? 아침 식사 지금 차려드릴까요?”

도우미가 다가와 묻자 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하슬과 함께 주방으로 가다가 무심코 물었다.

“이한 씨는 일어났어요?”

“도련님은 아침 일찍 나가셨어요.”

그 순간 소예지는 깨달았다. 그녀가 온 이상 심유빈은 이 집에 올 수 없어 나가서 만나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지금쯤 그들은 시내의 고급 카페에서 데이트하거나 어느 호텔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점심에는 최현숙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시어머니 진가영은 그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손녀 앞이라 티를 내지 않았다.

“예지야, 하슬이도 벌써 다섯 살이 됐어. 혼자는 외로운 것 같으니 젊을 때 아이를 더 낳는 게 어떻겠어? 그럼 북적북적하고 좋잖아.”

최현숙은 소예지의 손을 잡고 아이를 더 낳기를 권유했다.

다행히 소예지는 그런 말을 들어도 반감이 생기지 않았다. 최현숙의 입장이라면 고씨 가문에 자손이 많아지는 걸 당연히 바랄 테니까.

고하슬을 봐주는 사람이 있어 소예지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자료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아버지의 유언을 이루고 실험실을 세울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 고이한이 들어왔다.

“하슬아, 밥 먹자. 아.”

진가영은 밥을 떠먹여 주면서 성취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가 있으면 분위기가 자연스레 좋아졌다. 최현숙은 손자와 손주 며느리의 사이가 지나치게 냉랭하다는 걸 예리하게 알아챘다.

생전에 증손주를 한 명 더 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에 마음은 무척이나 초조했다.

저녁 식사 후 최현숙은 며느리와 증손녀를 일부러 내보내고 고이한과 소예지만 불렀다.

“예지야, 젊은 사람들은 나가서 놀기도 해야지. 계속 우리 늙은이들하고만 집에 있으면 어떡해.”

최현숙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소예지가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전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게 좋아요.”

최현숙은 소예지가 거의 출국하지 않아 해외에 친구가 없다는 걸 떠올리고 손자에게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한아, 어떻게 아내를 집에 내버려 두고 혼자 밖에 돌아다닐 수 있어?”

고이한이 빤히 쳐다보자 소예지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가 최현숙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오늘 밤에 우리가 하슬이를 데리고 있을 테니까 넌 예지 데리고 나가서 바람이나 쐬다가 늦게 들어와.”

최현숙이 속셈을 숨기고 말했다.

집에서는 부부 생활을 못 할 테니 호텔에 가서 하라는 의미였다.

할머니의 속셈을 알아차린 소예지가 서둘러 말했다.

“할머니, 밖이 추워요. 그냥 집에서 할머니랑 함께 있을래요.”

“나가면 차도 있고 난방도 돼서 춥지 않아. 그러니까 나가서 재미있게 놀다 와.”

최현숙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소예지가 또 다른 이유를 찾으려 하자 고이한이 덤덤하게 말했다.

“가자.”

“그래. 얼른 가.”

최현숙이 마침내 활짝 웃었다.

소예지도 더는 최현숙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고이한이 문 앞까지 차를 가져오자 소예지는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최현숙은 통유리 앞에 서서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별장 밖으로 나온 후에도 계속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소예지는 몹시 불편했다.

그때 벨 소리가 울렸다. 차량 스크린에 나타난 유빈이라는 두 글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소예지는 힐끗 보고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뜻밖에도 고이한은 전화를 받지 않고 끊어버렸다. 그녀는 앞에 시내 거리가 있는 걸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앞에 아무 데나 세워줘.”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고이한이 덤덤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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