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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Penulis: 이야기보따리
소예지는 가슴이 쿡 쑤시는 듯했다. 이미 마음을 비웠다고는 하지만 화는 여전히 났다.

이번에는 그들이 고하슬을 데리고 출국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고 심유빈이 고하슬에게 접근하여 세뇌할 기회도 주지 않을 것이다.

저녁, 고이한이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딸이 고이한에게 매달릴 때 소예지는 그다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소예지는 8시 30분에 샤워하러 들어갔다. 샤워하고 나와보니 고하슬이 고이한의 방에 있었다.

소예지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찰나 고하슬의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빈 이모, 벌써 출국했어요?”

“응. 오늘 막 도착했어. 하슬이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곧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아빠가 며칠 후에 나 데리고 이모 만나러 외국에 간다고 했어요.”

“그래. 그럼 이모가 미리 선물도 사놓고 예쁜 크리스마스 원피스도 사놓고 기다릴게.”

“공주 원피스랑 예쁜 왕관도 많이 갖고 싶어요.”

“알았어. 이모가 미리 다 준비해 놓을게. 그리고 하슬이가 제일 좋아하는 크림 케이크도 주문해놨어.”

심유빈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예지는 문 뒤에서 고하슬과 심유빈이 통화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먼저 끊을게.”

고이한이 말했다.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

“하슬아, 안녕. 사랑해.”

심유빈이 D국 언어로 말했다.

“나도 사랑해요.”

고하슬도 앳된 목소리로 D국 언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소예지는 가슴이 쿡쿡 쑤셔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갈 땐 웃는 얼굴로 바꿨다.

“하슬아.”

“엄마, 나 아빠랑 외국에 놀러 갈 건데 엄마도 같이 갈래요?”

고하슬이 올려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아이는 자신에게 잘해주고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과 함께 놀기를 바랐다.

“하슬아, 엄마가 아빠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는데 먼저 놀이방에 가서 놀고 있을래?”

소예지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자 고하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았어요.”

그러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에서 양희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슬아, 과일 깎아 놨는데 와서 먹어.”

소예지는 방 문을 닫고 샹들리에 아래에서 넥타이를 풀며 소파에 앉아 있는 고이한을 쳐다보았다. 세 번째 단추까지 풀어헤친 셔츠에 고하슬이 밥 먹기 전에 묻힌 딸기잼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얘기 좀 해.”

소예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이한도 그녀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린 듯 빤히 쳐다보았다.

“이번에 하슬이를 데리고 해외에 가지 마. 어머님이랑 할머니랑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으면 혼자 가. 하슬이는 내가 여기서 데리고 있을 거야.”

소예지가 말했다.

“할머니랑 어머니가 하슬이를 못 본 지 꽤 오래됐어. 왔다 갔다 길어봤자 열흘이야.”

고이한이 덤덤하게 반박했다.

소예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쳐다보자 고이한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

“너도 같이 가도 돼.”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따져 물었다.

“그래도 되긴 하지만 일단 심유빈 씨가 내 딸한테서 멀리 떨어지게 할 수 있어?”

고이한이 이미 느슨해진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이 행동만 봐도 그가 짜증이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빈이는 하슬이한테 나쁜 마음이 없어. 이렇게까지 경계하지 않아도 돼.”

고이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소예지는 화를 참느라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알았어. 그럼 나도 같이 갈게. 이한 씨랑 유빈 씨가 무슨 관계든 상관없으니까 유빈 씨가 내 딸한테 접근하지 못하게 해.”

시어머니와 고이한의 할머니는 오랫동안 외국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고이한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게 8월이었다. 하여 어른들을 보러 가는 건 막을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함께 가기로 했다.

소예지는 분노를 억누른 채 방으로 돌아왔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해외 번호인 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휴대폰 너머에서 매력적인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지야, 생각해봤어? 계획에 참여할 거야?”

소예지는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채고 미안한 말투로 말했다.

“미안해, 준석 선배.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어.”

“네 결혼에 대해 알아봤는데 네 남편 지금 바람을 피우고 있어. 너랑 네 딸의 사이도 그다지 가깝지 않더라? 사실 가정을 포기하고 과학 연구에 전념해도 되잖아. 너의 천부적인 재능이라면 무조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텐데.”

소예지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선배의 마음은 고맙지만 나만의 계획이 있어.”

“남편의 마음을 되돌리고 싶어?”

전화기 너머에서 가벼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니. 그냥 내 딸을 보살피고 싶을 뿐이야.”

“알았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꼭 만날 거야.”

소예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강준석은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를 각별히 챙겨주었고 그녀에게는 친오빠와 같은 존재였다.

이제 소예지는 모든 것을 걸고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로 결심했다. 딸이 심유빈이라는 새엄마와 함께 살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저녁에 소예지는 고하슬에게 함께 해외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고하슬이 크게 기뻐하며 그녀의 목을 끌어안고 전에 해외에서 겪었던 재미있는 일들을 얘기했다. 소예지는 예전에 자세를 낮춰 결혼 생활을 회복하려는 데만 애쓴 나머지 딸에게 소홀했다는 걸 깨달았다. 실패한 결혼 생활은 그녀를 원망만 늘어놓는 여자로 만들어버렸다.

‘나도 하슬이한테 너무 소홀했어.’

“하슬아, 사랑해.”

“나도 사랑해요, 엄마.”

귓가에 딸의 부드럽고 애교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귀여운 입술로 소예지에게 입맞춤했다.

“엄마는 영원히 나의 좋은 엄마예요. 엄마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영원히.”

고하슬이 소예지의 얼굴을 감싸 쥐고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진심을 표현했다.

소예지는 딸을 꽉 껴안고 머리에 입을 맞췄다.

“엄마도 우리 하슬이를 영원히 사랑해.”

월요일, 한 식구가 나란히 공항으로 향했다.

18시간 후 그들은 D국에 도착했다. 고이한의 비서 김경환이 캐리어를 밀었고 소예지는 가방을 들었다. 비행기 안에서 잠만 자던 고하슬은 고이한의 따뜻한 품에서 외투에 꽁꽁 싸인 채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따뜻한 승용차에 올라탔다. 고이한은 아이를 안은 자세를 고쳐 잡고 딸의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보면서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미간에 엉킨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차 세 대가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거리를 가르며 달려갔다. 창밖 풍경을 보던 소예지는 이따가 시어머니와 시누이 고수경을 만날 생각을 하니 보이지 않는 돌덩이가 마음을 짓누르는 듯했다.

8년 전, 20살이었던 고이한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 아버지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소예지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휴학을 신청하고 병원으로 와서 그를 간호했다. 당시 시어머니는 슬픔에 잠겨 간호하겠다는 소예지를 거절하지 못했다.

소예지는 밤낮없이 지극정성으로 간호했고 간호사들이 할 일까지 모두 도맡아 했다. 1년 만에 고이한이 깨어난 후 소예지는 오랫동안 품었던 마음을 그에게 고백하며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고백하는 걸 시어머니가 듣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그녀를 찾아와 2백억 원을 줄 테니 아들의 곁에서 떠나 달라고 했다.

힘들어하던 소예지가 짐을 싸서 학교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그때 고이한이 문 앞에 나타나더니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예지는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했다. 고이한의 표정은 덤덤했지만 눈빛은 맑고 굳건했다.

“우리 결혼하자.”

결혼식 날, 소영욱의 비서는 그녀가 1년 동안 고이한의 곁을 지킨 영상을 고이한에게 전달한 사람이 소영욱이라고 알려줬다. 결혼 후에야 소예지는 고이한이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갚기 위해 결혼했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그녀는 그를 사랑하기만 하면 언젠가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19살의 그녀가 너무 어리석고 순진했다는 것만 증명하고 말았다.

1시간 가까이 달리자 차가 D국의 부유층 지역에 진입했고 마침내 불빛으로 환하게 밝혀진 별장 앞에 멈춰 섰다.

도우미들은 이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예지는 가방을 들고 먼저 차에서 내려 딸을 안고 내리는 고이한을 돌아보았다. 그때 고하슬도 마침내 잠에서 깨어났다.

아이는 작은 손으로 고이한의 넓은 어깨를 붙잡았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두 볼이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채 아빠의 품에서 하품하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빠, 우리 할머니 집에 도착했어요?”

고하슬이 물었다.

그때 2층 계단에서 화려하고 우아한 모습의 누군가가 내려오면서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손녀 왔구나. 할머니 여기 있어.”

진가영이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손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가방을 들고 거실에 서 있는 소예지를 본 순간 불쾌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소예지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어머님.”

“아이고. 우리 하슬이 왔구나. 키도 많이 컸네. 할머니가 안아 보자.”

진가영은 손녀를 안고 기뻐하면서 아이의 통통한 몸을 어루만졌다.

“아빠가 잘 키웠나 보네. 살도 좀 붙었어.”

고이한이 손을 뻗어 다시 딸을 안아왔다. 진가영은 아들이 그녀의 몸을 걱정해서 그러는 걸 알고 도우미에게 말했다.

“예지가 쓸 방 하나 정리해놓도록 해.”

“알겠습니다, 사모님.”

도우미가 대답했다.

소예지는 마음이 언짢아졌다. 그 말은 소예지가 들으라고 한 말이었는데 그녀가 오기를 바라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제야 방을 정리하라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 배고파요. 뭐 좀 먹을래요. 그런데 고모는 어디 있어요?”

고하슬은 이곳이 익숙했던 터라 낯선 느낌이 전혀 없었다.

“알았어. 할머니가 아주머니한테 맛있는 거 만들어달라고 할게. 네 고모는 친구들이랑 다른 나라로 스키 타러 갔어. 설날에나 볼 수 있을 거야.”

소예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누이도 시어머니처럼 그녀를 탐탁지 않아 하기에 안 보는 것이 나았다.

그때 고이한의 휴대폰이 울렸다. 소예지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는데 고이한은 화면을 힐끗 보고는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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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712화

    자료실 안은 무척 조용했다.줄지어 늘어선 높은 선반에는 각종 실험 자료와 문헌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소예지는 곧장 신경과학 자료가 있는 구역으로 가서 필요한 서류를 찾기 시작했다.손가락으로 파일들을 하나씩 훑어보던 그녀는 그중 하나를 꺼내 몇 장 넘겨보았다. 찾던 자료가 아니었는지 도로 제자리에 꽂은 뒤 계속해서 다음 파일을 살폈다.고이한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가에 기대어 그런 소예지를 바라보았다.흰 가운을 입은 소예지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운 깃 사이로 안에 입은 흰 셔츠가 살짝 드러났고 몇 가닥의 잔머리가 뺨을 따라 흘러내려 있었다.자료를 확인하는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때때로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기는 모습은 꼭 공부에 열중한 학생 같았다.한동안 자료를 찾던 소예지가 마침내 파일 하나를 꺼내 고이한에게 다가갔다.“찾았어.”고이한은 그녀가 건넨 파일을 받아 들면서 다른 한 손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예지의 허리를 감쌌다.소예지는 허리를 감싼 그의 손을 가볍게 밀어냈다.“장난치지 마. 나 아직 일 남았어.”“보는 사람도 없잖아.”고이한은 웃으며 대답했지만 곧 순순히 허리에서 손을 떼고 대신 소예지의 손을 잡았다.자료를 챙겨 사무실로 돌아온 소예지는 다시 하던 일을 이어갔다. 고이한도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손에 잡히는 과학 잡지 한 권을 펼쳐 들었다.한참 일에 몰두하던 소예지는 문득 목이 말라 컵을 집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컵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일을 마치고 마시기로 하고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리려는데 고이한은 그 작은 몸짓을 놓치지 않았다.고이한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로 향했다. 물 한 잔을 따라 소예지 곁에 놓아주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한번 바라본 뒤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소예지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고이한의 보살핌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녁 여덟 시 반이 되어서야 소예지는 마침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711화

    이서연의 얼굴이 더욱 뜨거워졌다.“나도 알아. 지원이가 성실하고 착실한 사람인 건. 근데 너무 재미가 없어.”소예지가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오히려 서로 잘 맞는 거지. 넌 밝고 솔직하니까 지원이랑도 잘 어울리고.”이서연도 더는 숨길 생각이 없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사실 가끔 실험실에서 일하는 모습 보고 있으면... 꽤 멋있긴 해.”“내가 보기엔 지원이도 너한테 꽤 신경 쓰고 있어.”소예지의 말에 이서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아니거든!”소예지는 그런 이서연을 보며 웃었다.“난 너희 둘이 성격도 잘 맞는 것 같아.”이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지원이는 완전 일 중독이야. 눈에는 데이터랑 실험밖에 안 보이는데 날 볼 틈이 어디 있겠어.”소예지는 웃으며 고개를 저은 뒤 화면의 데이터를 바라보며 말했다.“평소에 말수가 적기는 해도 일은 정말 착실하게 하잖아. 지원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말로 티 내는 사람은 아닐 거야. 대신 행동을 보면 분명 알 수 있겠지.”그 말을 듣자 이서연은 최근 이지원이 자신에게 간식이나 작은 케이크를 사다 주기 시작했다는 게 떠올랐다. 그동안은 별생각 없이 넘겼던 일이었다.“요즘 지원이가 시도 때도 없이 간식도 사다 주고 내가 좋아하는 밀크티 맛도 기억하긴 해. 근데 그것만으로 날 좋아한다고 할 수 있어?”이서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겼다.“네가 뭘 좋아하는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한테 마음을 쓰고 있다는 뜻이지.”이서연이 눈을 깜빡였다.“그럼 고 대표님도 너한테 그래?”소예지는 잠시 생각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응. 다만 그 사람은 좀 바쁘지.”이서연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나이도 적지 않은 데다 이지원이라면 확실히 괜찮은 남자였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저녁이 되어서도 소예지는 실험실에 남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고이한이 저녁 식사를 챙겨 실험실로 찾아왔다.“하슬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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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일찍 고이한은 약속대로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었고 소예지는 실험실로 향했다.소예지가 실험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지원이 이미 와 있었다.“예지야, 좋은 아침. 어제 보내준 데이터 밤새 한 번 돌려봤어.”이지원이 고개를 들었다. 눈 밑에는 밤을 새운 흔적이 선명하게 드리워져 있었다.소예지는 흰 가운으로 갈아입은 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결과는 어때?”이지원은 자리를 비켜주며 화면에 나타난 파형 그래프를 가리켰다. 목소리에는 억누르기 힘든 흥분이 묻어났다.“여기 봐. 우리가 전에 발견했던 특이점과 완벽하게 일치해. 게다가 새 장비로 세 번이나 재검증했는데 매번 이 파형이 안정적으로 나타났어.”소예지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곧바로 데이터를 하나씩 불러내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가량 확인한 뒤에야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지원아.”“예지야, 우리 추론이 맞았어. 이건 노벨상급 발견이야.”소예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화면에 나타난 익숙한 곡선을 바라보았다. 눈시울이 서서히 뜨거워졌다.“해냈어. 정말 해냈어.”이지원이 흥분한 얼굴로 소예지를 바라보았다.소예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우리가 해낸 거야. 우리 팀 모두의 성과야.”이지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럽게 웃었다.“네 팀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야.”그때 출입카드를 찍는 소리와 함께 이서연이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커피 석 잔이 들려 있었다.“자, 커피 마셔.”이서연이 두 사람에게 커피를 나눠주었다.이지원은 커피를 받아 들며 조금 수줍은 눈빛으로 이서연을 바라보았다.“고마워.”이서연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연한 건데 뭘 고마워해.”이지원을 바라보는 이서연의 눈에는 행복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그러다 이지원과 눈이 마주치자 금세 부끄러워져 슬쩍 얼굴을 돌렸다.한창 다른 생각에 잠겨 있던 소예지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709화

    “당신 거.”소예지는 웃으며 달고나를 받아 한입 베어 물었다. 달고나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며 달콤한 맛이 퍼졌다.두어 입 먹은 소예지는 고이한 앞으로 달고나를 내밀었다.“당신도 먹어봐.”고이한은 고개를 숙여 한입 베어 물더니 웃음기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응. 달다.”소예지가 다시 한입 베어 물려는 순간 고이한이 그녀의 귓가로 가까이 다가와 나지막이 속삭였다.“당신이 더 달아.”그 한마디에 소예지의 귓불이 살짝 뜨거워졌다.고이한은 낮게 웃으며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거리를 천천히 둘러본 뒤 고이한은 미리 알아둔 작은 식당으로 소예지를 데려가 함께 점심을 먹었다.고하슬은 두 사람이 사 온 선물을 받자 무척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보인 건 여러 개의 고리가 얽혀 있는 금속 퍼즐이었다.소예지가 곁에 앉아 지켜보는 동안 고하슬은 퍼즐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푸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턱을 괸 채 한참 고민하기도 하고 다시 손으로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했다.그러면서도 소예지에게 도와달라고 조르지는 않았다. 혼자 한참 퍼즐과 씨름하던 고하슬은 마침내 고리 하나를 풀어내자 뿌듯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엄마, 나 이거 천천히 다 풀어볼래요.”역시 고하슬이 가장 좋아하는 건 이렇게 직접 머리를 써서 도전해볼 만한 장난감이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예지는 딸이 정말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혼자 생각하고 제 나름대로 판단할 줄도 알았다.저녁이 되자 고하슬은 금속 퍼즐을 챙겨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혼자 잠드는 습관도 완전히 자리 잡아 소예지가 가끔 밤에 방에 들러 이불을 걷어차지는 않았는지 확인해주는 정도였다.딸이 방으로 들어간 뒤 소예지는 쉬는 대신 서재로 향했다. 컴퓨터를 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 그녀는 송세아의 상태와 관련된 자료를 하나씩 대조하기 시작했다.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송세아의 회복을 돕고 싶었다.그렇게 자료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밤 열한 시가 되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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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소예지는 평소보다 늦게까지 잠들어 있었다.비몽사몽한 와중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여덟 시 반이었다.소예지는 잠이 덜 깬 채 몸을 일으켜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별생각 없이 도어스코프로 밖을 확인하던 그녀는 그곳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놀란 소예지는 곧바로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짙은 회색 코트를 입은 고이한이 서 있었다. 먼 길을 서둘러 온 기색이 역력했지만 소예지를 보자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내가 깨웠어?”“당신... 여긴 어떻게 왔어?”소예지는 놀란 채 고이한의 뒤쪽까지 한번 살펴보았다.“나 혼자 왔어. 하슬이는 집에 있어.”말을 마친 고이한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긴 팔을 뻗어 소예지를 품에 끌어안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보고 싶어서 왔어.”소예지는 그의 품에 기대면서도 나무라듯 말했다.“당신 아직 몸도 완전히 회복 안 됐잖아. 왜 이렇게 함부로 돌아다녀?”고이한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당신 대체 나한테 관심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오늘로 벌써 16일째야. 회복 기간은 진작 지났어.”최근 일에 매달리느라 소예지는 고이한이 회복한 지 며칠이나 됐는지 제대로 세어보지도 못했다.“병원 가서 수술 후 검사도 받았어? 문제는 없었고?”소예지가 걱정스레 물었다.“갔어. 지금까지는 아무 문제 없어.”말을 마친 고이한이 웃음기 어린 눈으로 소예지를 바라보았다.“진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소예지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를 흘겨보았다.소예지가 몸을 돌리려 하자 고이한은 놓아주기는커녕 그대로 입을 맞추려 했다.소예지가 손을 들어 그의 입술을 막았다.“나 아직 세수도 양치도 안 했어...”“난 상관없어.”고이한은 그녀의 손을 잡아 내리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부드럽고도 긴 입맞춤이었다. 그동안 쌓인 고이한의 그리움과 갈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한참 뒤에야 고이한은 소예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707화

    “현욱 선배한테 전화 받았어요. 와줘서 고마워요.”송세아가 소예지를 바라보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짧은 머리는 단정했고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서도 흐트러진 구석 하나 없이 깔끔했다. 몸에서는 군인 특유의 당당하고 씩씩한 기운이 묻어났다.젊은 나이에 조종사가 된 송세아를 소예지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소예지는 송세아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휠체어에 앉아 있어도 송세아의 허리는 여전히 꼿꼿했다. 몸에 밴 군인의 자세였다. 눈빛 역시 맑고 굳건했으며 여전히 희망으로 가득했다.“세아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소예지가 물었다.송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소 박사님.”“그냥 예지라고 불러요. 내가 두 살 많긴 해도 또래나 다름없잖아요.”송세아가 미소 지었다.“그럼 예지 언니라고 부를게요.”소예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송세아의 눈빛 깊은 곳에는 진심 어린 고마움이 어려 있었다.“예지 언니, 현욱 선배가 다시 깨어날 수 있었던 게 언니 덕분이라는 거 알아요. 저한테 언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소예지는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렸던 그때를 떠올렸다. 다행히 하늘은 그녀의 노력을 저버리지 않았다.“세아 씨, 치료 보고서는 이미 확인했어요. 신경 신호 활성도가 회복되고 있으니까 꾸준히 치료만 받으면 다시 일어설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송세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눈가가 살짝 붉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예지 언니, 전 아픈 것도 안 무섭고 힘든 것도 괜찮아요. 근데 다시는 비행을 못 하게 될까 봐 그게 제일 겁나요.”소예지는 그런 송세아가 안쓰러워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럼 일단 다시 일어서는 것부터 생각해요.”소예지의 격려에 송세아는 눈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소예지는 송세아의 담당 의사를 찾아가 앞으로의 치료 방안을 함께 논의했다. 현재 상태와 치료 경과를 꼼꼼히 살펴본 뒤 몇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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