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한 지 10년째 되어가던 어느 날, 한때 절친이었던 성수지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그녀의 딸과 내 아들이 각자 그녀와 내 남편 품에 안겨 단란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오붓한 사진과 함께 달린 문구 한 줄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런 게 바로 아들, 딸 다 가진 행복 아니겠어요?] 나는 그 아래에 댓글을 남겼다. [잘 어울리네.] 곧이어 피드가 삭제됐고 그다음 날... 남편이 다짜고짜 집에 돌아와 내게 질문을 쏘아붙였다. “수지가 간만에 컨디션이 좋아졌는데 꼭 그렇게 자극해야겠어?” 아들도 나를 밀치면서 원망을 늘려놓았다. “다 엄마 때문이에요. 엄마가 서아까지 울렸잖아요.” 나는 이혼합의서를 그들 얼굴에 내던졌다. “그래, 다 내 탓이니까 이만 빠져줄게. 넷이 오붓하게 잘살아 봐!”
View More익명으로 올린 글에 의외로 예전 고등학교 친구들이 적잖게 찾아와서 댓글을 남겼다.성수지가 한때 저질렀던 만행도 곧바로 폭로됐다.그뿐만 아니라 이건우와 나의 부모님까지 타격을 받았다.그 뒤로 며칠 동안 쏟아지는 전화에 내 휴대폰이 터질 지경이었다.나는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이 일의 장본인 배선재를 바라보며 속절없이 웃었다.“야 이 자식아, 누가 너더러 끼어들래?”배선재는 배시시 웃으며 이제 막 구운 소고기 한 점을 내 앞 접시에 내려놓았다.“화내지 마. 누나는 본인이 받은 상처로 남들에게 죄책감을 쌓아주는 사람이 아니잖아. 하지만 왜 억울함을 당한 사람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해? 누나가 시달린 고통을 모르면 그들도 아주 잠깐 죄책감을 느낄 뿐 절대 누나 마음에 보상이 되어줄 순 없어.”“또한 누나도 이 상처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을 테고. 그래서 나도 똑같이 해준 거야. 그 인간들도 똑같이 겪어보고 종일 괴로움에 시달려야 해. 앞으로 살아가면서 기분 나쁠 때 그 사람들이 더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될 거야.”나는 그를 멍하니 쳐다봤다.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그의 말대로 나는 단지 너무 지쳐있어서 타협하기로 선택했을 뿐 제대로 내려놓진 못했다.극심한 마음의 병으로 일찌감치 삶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성수지를 감방에 처넣은 건 단지 내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다만 이로써 내가 수년간 받아온 그 상처를 절대 보상할 순 없었다.손목시계를 어루만지며 내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고마워.”“뭘 새삼스럽게. 그 인간들이 계속 누나를 괴롭히는 게 거슬려서 조처를 했을 뿐이야.”배선재는 지금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나는 그걸 느낄 수가 있었다.식사를 마친 후에야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사실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우울증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어. 그때 내가 해외에 있어서 가족들이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숨겼었거든.”“나중에 돌아와 보니 동생은 어느
선물이라는 말에 성수지가 경계로 가득 찬 눈빛으로 돌변했다.아마 제 분수를 잘 아나 보다. 미워해도 모자랄 판인데 내가 웬 선물을 준비할 리가 있을까?다만 그녀가 미처 거절하기도 전에 민머리 남자가 구경꾼들 사이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그 사람을 본 성수지는 아연실색해져서 뒷걸음질 치며 저도 몰래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은호야!”정은호는 입에 문 담배를 내던지고 건방진 시선으로 성수지를 훑어봤다.“우리 전 여친 오랜만이네. 아주 잘 지내나 봐? 애초에 강씨 일가 재산을 손에 넣고 바로 나랑 결혼하겠다고 한 약속 아직 유효하지?”순간 엄마, 아빠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성수지를 쳐다봤다.충격에 휩싸인 두 사람의 눈빛에 성수지가 고개를 내저으며 얼른 해명했다.“아니에요, 그런 거. 얘가 한 말 믿으면 안 돼요. 얘가 바로... 그해 그 건달들 중 한 명이에요!”그녀는 돌연 분노에 찬 눈길로 나를 째려봤다.“너니? 네가 이 강간범 찾아냈어?”“왜? 대체 내가 얼마나 더 비참해져야 만족할 건데? 왜 이렇게 날 궁지로 몰아붙이는 거야 강하은!”그녀가 또다시 대성통곡했다.이건우는 그런 그녀를 부축하며 실망 어린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너 진짜 못됐다, 강하은.”강현도도 쏘아붙였다.“짐승만도 못한 년! 넌 짐승만도 못한 년이야!”다만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성수지를 쳐다봤다.“아직도 날 능멸하려고 드네?”옆에 있던 정은호가 한마디 거들었다.“능멸인지 아닌지는 경찰서 가면 다 밝혀지겠지.”멀리서 경찰 사이렌이 울렸다.성수지는 몸을 움찔거렸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이건우 일행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결국 경찰이 와서 성수지와 정은호를 경찰서로 데려갔고 엄마, 아빠, 그리고 이건우까지 당연히 그들을 따라갔다.차에 오르기 전, 이건우가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그 눈빛엔 실망과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나는 그런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곧 있으면 그는 똑같은 눈빛으로 성수지를 바라볼 테니까.길옆에 서서 택시를 잡으려 할 때 배
3개월 전, 성수지를 겁탈했던 건달 중 한 명이 형기를 마치고 풀려났다.나는 그가 출소한 첫날에 바로 만나러 갔다.성수지가 작은 길목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던 말을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정말 그런 사람이 존재했다면 어쩌면 그 사람이 바로 내 결백을 증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일지도 모른다.성수지의 관계망을 조사해보았지만 줄곧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그러니까 그녀의 친구라고 하는 사람은 분명 이들 건달 중 한 명일 것이다.그러던 결과, 나는 그 친구의 진짜 정체를 알아냈을뿐더러 모든 진상까지 알게 되었다.내일 나는 이 모든 진실을 안고 성수지에게 치명타를 날릴 것이다.또한 이건우에게 가장 뜻깊은 이혼식을 차려줄 것이다.모든 계획을 마친 후 나는 또다시 스르륵 잠들었다.꿈결에 누군가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만 같았다.“정말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항우울제는 왜 먹는 거야?”...다음날 퇴원 수속을 마친 후 배선재가 기어코 가정법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나도 몸 상태가 덜 회복된 지라 더는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법원에 도착하고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한 시간 뒤, 나와 이건우는 이혼합의서에 서명을 마치고 나왔다. 한 달이라는 이혼 숙려기간이 지나면 우리는 정식으로 이혼하게 될 것이다.이제 막 가정법원에서 나왔을 때 아빠가 다짜고짜 다가오더니 가차 없이 내 뺨을 후려쳤다.나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얼굴이 얼얼하게 아팠다.아빠는 혐오에 찬 눈길로 나를 노려봤다.“이 못된 년, 상의도 없이 감히 혼자 이혼을 결정해?”나는 담담하게 혀를 볼에 대고 안에서 터져 흐르는 피를 쓸어내렸다.“나 고아잖아요. 이혼을 상의할 사람이 있긴 했나요?”아빠의 눈가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무덤덤하게 내뱉은 내 말에 그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불과 저번에 볼 때까지만 해도 나는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제발 한 번만 믿어달라고, 사랑해달라고 비굴하게 애원했으니까.옆에 있던 엄마도 충격에 휩싸였다.“고아라
하찮은 여자들의 하찮은 꼼수를 간파하는 능력은 정말이지 배선재가 이건우보다 훨씬 뛰어났다.나는 그가 다시 깎아준 사과를 건네받으며 야유 조로 말했다.“아마도 우울증이 도졌나 봐.”잠시 머뭇거린 후 내가 거듭 강조했다.“그것도 중증으로다가.”순간 배선재가 피식 웃었다.“에이, 이게 뭐가 중증 우울증이야? 그냥 조현병이지. 저 정도면 정신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증상에 맞게 치료해야 빨리 낫지, 안 그래?”나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이건우는 못 믿겠다는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내가 이토록 매정할 줄은 몰랐었나 보다. 딴사람과 함께 병든 성수지를 놀릴 거라곤 꿈에도 예상치 못했었나 보다.다만 그를 가장 괴롭힌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그를 대할 땐 나무토막처럼 감정 없이 딱딱하게 굴더니 딴 남자 앞에선 너무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내가 적응하기 어려운 듯싶었다.질투의 불씨가 활활 타올라 끝내 터져버리고 말았다.“그만해, 강하은! 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야? 이러니까 어머님, 아버님도 실망하시고 우리 아들 유준이도 널 싫어하는 거잖아. 넌 정말 양심도 없는 사악한 여자야! 그래, 네 말이 맞아. 나 후회돼. 진작 이혼할 걸 그랬어.”“진작 널 차버릴 걸 그랬어. 초라하게 길바닥에 나앉는 그 꼴을 모두에게 보여줄 걸 그랬다고!”그의 품에 안긴 성수지는 입꼬리를 씩 올렸지만 금세 또 고상한 척을 떨었다.“오빠, 그만 해요... 나 때문에 충동적으로 굴진 말라고요!”“괜찮아, 수지야. 내가 이혼하는 게 다 너 때문만은 아니야. 하은이가 정말 너무 실망스러워서 그래.”나는 유유하게 사과를 먹을 뿐 아무런 피드백도 없었다.이건우는 그런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체 왜 내가 아무런 반응도 없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됐겠지.작년 내 생일 때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가 나의 초대를 거절했다고 기분이 무너져내리고 대성통곡을 했으니 말이다.그날 나는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 이건우도 더는 말릴 수 없어 또다시 내게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이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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