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심서준이 송학원으로 돌아왔을 때, 뜰 안은 고요했다.시녀들은 저마다 맡은 일을 하고 있었고, 안채에도 병간호를 위해 한 사람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원래 이 처소는 이보다 더욱 적막한 곳이었다. 시녀들은 일을 마치면 곧바로 물러났고, 뜰 안에 사람이 남아 있는 일도 드물었다. 하지만 계연수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 뒤로는 예전보다 훨씬 사람 사는 기운이 감돌았다.계연수는 아직 깊이 잠들어 있었다.몽롱한 의식 속에서 몸이 잠시 서늘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익숙한 품에 안겼다. 낯익은 체취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심서준의 검은 눈동자였다.그는 아직 조회에 입고 갔던 공복도 벗지 못한 상태였다. 옷자락에서는 은은하게 먹 냄새와 종이 냄새가 배어 나왔다.계연수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말을 꺼낼 기운도 없었다.하지만 심서준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놓였다.그러자 다시 눈꺼풀이 무거워졌다.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지만, 손끝만은 슬며시 심서준의 소매를 붙들었다. 마치 그가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처럼.심서준은 그런 계연수를 내려다보았다.계연수가 이토록 기운 없이 늘어진 모습은 처음이었다.원래 그녀는 몸이 그리 약한 편이 아니었다. 이번이야말로 그가 처음 보는 제대로 된 병치레였다. 게다가 그 원인마저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심서준은 손끝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내렸다.그리고 침상 곁에 기대앉은 채 계연수가 품 안에서 편히 잠들 수 있도록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계연수는 한참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그러다 약을 먹일 시간이 되어서야 심서준이 그녀를 조심스럽게 깨웠다.진한 탕약 냄새가 퍼지자 계연수는 얌전히 그의 품에 기대 앉았다. 약은 몹시 썼지만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끝까지 삼켜 냈다.심서준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어릴 적 계연수는 겁이 많은 대신 무척 응석받이였다.늘 아버지 품에 안겨 다녔고, 틈만 나면 품속으로
한참이 지나서야 태의가 손을 거두었다.심씨 노부인은 곧바로 방 안 사람들을 모두 물러나게 했다. 곁을 지키던 어멈들까지 내보낸 뒤에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저 아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느냐?”휘장 안에 누워 있던 계연수는 그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손을 꽉 움켜쥐었다.잠시 뒤 태의의 대답이 들려왔다.“노부인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인의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그리고 원래 체질도 좋은 편입니다. 기혈이 조금 부족할 뿐, 자손을 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그제야 심씨 노부인의 얼굴에서 긴장이 조금 풀렸다.그녀는 사람을 시켜 태의를 배웅하게 한 뒤, 침상에 드리운 휘장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러나 계연수에게는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심씨 노부인이 직접 찾아와 확인한 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이제 계연수도 대강은 알 것 같았다.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자주 앓아눕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하지만 사실 제대로 아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 전의 몇 차례는 모두 심서준이 심씨 노부인에게 둘러댄 핑계에 가까웠다.방 어멈은 계연수 곁으로 다가와 노부인의 뜻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조심스레 달랬다.그러나 계연수는 고개를 저었다.정말 마음에 담아둘 생각이었다면 진작부터 그랬을 터였다.약을 마신 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방 어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 뒤 다시 눈을 감고 잠시 잠에 들었다.심서준은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에 돌아왔다.그런데 막 돌아오자마자 심씨 노부인이 있는 의덕거로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심서준은 단번에 얼굴을 굳혔다.전갈을 전하러 온 어멈을 한 번 바라본 뒤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려 곧장 송학원으로 향했다.애초에 오늘 일찍 돌아온 것도 계연수를 보러 오기 위해서였다.그 외의 일은 지금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한편 의덕거에서는 심씨 노부인이 어멈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심서준이 자신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바로 송학원으로 가 버
방 어멈은 백씨가 왜 찾아왔는지 짐작하고 있었다.지금 이 후작부의 하인들은 물론이고 각 처소의 관사들까지도 대부분 백씨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백씨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곤 이제 계연수가 맡고 있는 주방 정도뿐이었다.이 시점에 백씨가 직접 찾아온 이유도 뻔했다. 어디선가 소문을 들은 모양이었다. 계연수가 회임한 것이 아닌지 떠보러 온 것이리라.그렇다고 큰부인인 백씨를 박대할 수는 없었다. 집안 살림의 상당 부분을 여전히 그녀가 맡고 있었으니 방 어멈은 끝까지 예를 갖추며 응대했다.“부인께서 풍한이 심하셔서 지금은 사람을 뵙기 어려운 상태입니다.”한참을 달래고 설명한 끝에야 겨우 백씨를 돌려보낼 수 있었다.하지만 송학원을 나온 백씨의 얼굴은 오히려 더 굳어졌다.저렇게까지 사람을 막는 것을 보니 정말 회임한 것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마음이 복잡해졌다.문득 예전에 계연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 집안에서 정말 그렇게까지 서로 다투고 빼앗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더구나 아직 동생도 풀려나지 못한 상태였다. 정말 반년이나 일 년을 더 갇혀 있다가 나오면 사람 꼴도 아닐 터였다.지금의 백씨는 함부로 움직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한편, 심씨 노부인은 다시 계연수에게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그동안 몸보신에 좋다는 약재를 얼마나 챙겨 주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계연수는 백씨처럼 곁에서 시중을 들기는커녕 걸핏하면 몸져누웠다.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아이를 잘 가질 체질 같았는데, 어째서 이리 몸이 약한지 알 수 없었다.시집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몇 번째 병치레인가.가만히 따져 보니 벌써 서너 번은 앓아누웠다. 이쯤 되면 거의 병약한 사람이나 다름없지 않은가.물론 최근 들어 심씨 노부인은 계연수를 꽤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성품은 온순했고 일처리도 능숙했으니 말이다. 주방을 맡은 뒤로 별다른 문제도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 덕분에 욕심 많고 사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백씨의 모습만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하
방 어멈의 말을 들은 심서준은 잠시 멈칫했다. 곧바로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자 방 어멈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제가 보기에는 부인께서 회임하신 것 같습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계연수도 놀란 듯 방 어멈을 바라보았다. 속은 계속 뒤집힐 듯 울렁거렸고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정말 아이가 생긴 걸까?생각해 보니 예전에 어머니에게 들었던 회임 이야기와도 증상이 비슷했다.심서준은 계연수의 팔을 감싼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 곧장 사람을 시켜 부의를 불러오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부의가 급히 달려왔다.심서준은 여전히 계연수를 품에 안고 있었지만 마음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하지만 계연수가 정말 아이를 가진 것이라면, 마냥 기쁜 마음만 드는 것도 아니었다.혼인한 지 겨우 두 달.이제야 부부로 지내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는데 벌써 아이가 생긴다면, 그에게는 다소 이른 일처럼 느껴졌다.그는 말없이 부의가 진맥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부의가 손을 거두자 그제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회임한 것이냐?”부의는 얼른 몸을 숙여 답했다.“후작께 아룁니다. 부인의 맥상은 부완맥으로 보입니다. 풍한이 몸을 침범하고 비위를 어지럽혀 나타난 증세인 듯합니다.”그러고는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요즘은 계절이 바뀌는 시기라 찬 기운이 쉽게 스며듭니다. 위기가 거슬러 올라와 메스꺼움과 어지럼증이 생긴 것이니, 회임 때문은 아닙니다.”그 말을 들은 계연수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내쉬었다. 아쉬운 듯한 마음이 스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밀려왔다.심서준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고개만 끄덕인 뒤 부의에게 처방을 내리게 하고 하인들까지 모두 물러나게 했다.사람들이 나가고 나자 그는 문득 전날 밤 일이 떠올랐다.계연수가 그의 몸 위에 앉아 있었고, 옷은 거의 벗겨진 상태였다. 이후 욕탕에도 들어갔으니 몸이 젖은 채 찬 기운을 들인 모양이었다.그 생각이 들자 괜히 자책이 밀려왔다.심서준은 계연수를 안아
이걸 누구 탓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애초에 먼저 사람을 홀린 건 계연수 쪽이었으니까.그녀는 허리를 끌어안고, 목을 감싸 안으며, 부드러운 몸을 자꾸만 그의 품에 기대 왔다.이런 상황에서 오늘 밤만큼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심서준은 생각했다.그는 계연수의 등을 받치고 있던 손을 거두었다. 그러자 계연수는 떨어질까 불안한 사람처럼 더욱 세게 그를 끌어안았다.심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옷깃을 느슨하게 풀었다.얇은 봄옷 아래 드러난 희고 풍만한 살결에 시선이 머문 순간, 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병풍 위에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겹쳐졌다.가녀린 그림자는 그의 품 위에 앉아 있었고, 간간이 계연수가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그럴 때마다 심서준은 그녀의 허리를 받쳐 주며 조금도 쉬지 못하게 했다.모든 것이 끝났을 무렵, 계연수는 손끝 하나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솔직히 말하면 심서준에게 화를 내며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그녀는 생각할수록 속이 상했다.방금 전 내내 심서준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채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옷차림도 여전히 단정했고 모습도 말끔했다.반면 자신은 옷매무새가 엉망이 된 채 그에게 휘둘렸고,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했다.잠깐이라도 멈추면 심서준이 가볍게 재촉하곤 했다.생각할수록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래서 지금은 심서준의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반대로 심서준은 기분이 한껏 풀린 상태였다. 오히려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그녀를 향한 갈망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고, 화본에서 본 것들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도 궁금했다.앞으로 계연수와 천천히 해 보고 싶은 일도 아직 많았다.마음이 흡족해지자 품 안의 사람이 더욱 사랑스러워 보였다.심서준은 계연수를 안아 든 채 연신 입을 맞추었다.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자 턱 끝에서부터 천천히 아래로 입술을 옮겼다.만약 이 순간 계연수가 눈을 떴다면, 아마 그의 눈에 가득 담긴 다정함을 보았을 것이다.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심서준은 사람을 안아 들
계연수의 손끝에서는 은은한 향이 났다.심서준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은 채 향기를 맡아 보더니, 본래도 정이 어린 듯한 그녀의 눈매를 바라보았다.이내 몸을 가까이 기울이며 그녀가 자신의 허리를 감싼 팔에 더욱 힘을 주게 만들었다.심서준의 허리는 군더더기 없이 단단했다. 팔을 둘러 안고 있으면 딱딱한 감촉이 먼저 전해졌지만, 동시에 든든하고 안정감이 있었다.이상하게도 사람을 안심시키는 품이었다.하지만 심서준이 가까워질수록 계연수는 자연히 고개를 뒤로 젖혀야 했다.그를 끌어안은 채 그런 자세를 유지하려니 솔직히 편하지는 않았다.심서준은 그녀의 목덜미를 받쳐 주며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러고는 낮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준 화본 두 권은 꼭 끝까지 읽거라. 아니면 내가 매일 돌아와서 같이 읽어 주지.”계연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고작 심심풀이용 화본 두 권일 뿐인데, 왜 꼭 끝까지 읽어야 하는 걸까.그녀는 심서준의 얼굴을 살폈다. 여전히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결국 계연수가 물었다.“왜 꼭 다 읽어야 하는데요?”심서준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화본 보는 걸 좋아한다며. 힘들게 구해다 줬더니 이제는 싫어진 것이냐?”계연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다 두 팔을 들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말끝은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졌다.“좋아한다고 해서 꼭 끝까지 다 읽어야 하나요? 제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면 안 됩니까?”그녀의 손은 부드러웠고 목소리는 잔잔했다.말끝마다 길게 남는 여운이 묘하게 사람 마음을 간질였다.따뜻한 불빛 아래 반짝이는 눈동자까지 더해지자 심서준은 저도 모르게 목울대를 한 번 굴렸다.사실 심서준은 대체로 자제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스스로도 여색에 쉽게 흔들리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적어도 첩을 여럿 두고 틈만 나면 기루를 드나드는 주변 동료들보다는 훨씬 나았다.그런데 계연수만은 달랐다.목을 감싸 안는 작은 손길도, 물처럼 부드러운 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