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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作者: 경옥
화장대 앞에 마주앉은 계연수는 머뭇거리는 용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동거울 속에 비친 수척한 자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장신구를 천천히 풀었다.

“용춘아, 아무 말도 하지 마렴. 나는 내가 뭘 하는지 잘 알고 있어.”

그녀는 사씨 가문의 며느리이자 사옥현의 부인이었다. 사옥현은 가문에서 가장 출세한 장손이었다. 수많은 눈들이 그녀를 감시하며 그녀의 실수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화목을 위해, 집안의 평화를 위해 실수할까 늘 마음을 졸이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못했고, 늘 양보하며 사옥현과의 평화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에게 민폐를 끼칠까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이렇게 뻔히 보이는 무겁고 고단한 삶이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만약 평생을 이렇게 침울하고 무기력한 굴레에 갇혀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계연수는 사옥현이 오늘 밤 이곳에 머물지 않을 것을 알았다. 비슷한 일은 예전에도 적지 않았고 그는 화가 나면 여계와 같은 예법서를 그녀의 방으로 보냈다.

그럴 때면 그녀는 혼자 쓰라린 마음을 삼키며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그녀가 잘해도 그의 마음속에서는 결코 좋게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느릿느릿 세수를 하고 밖에 있던 시녀를 부르자, 그가 오늘 밤도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쯤이면 그와 단둘이서 화리 얘기를 꺼낼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그녀는 턱을 괴고 창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센 바람 소리가 창문을 두드렸다. 마치 계씨 가문에 변고가 생겼을 때처럼, 불안에 떨던 그때와 비슷했다.

계연수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그날 밤 사옥현은 끝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그를 마주치니 얼굴은 냉랭하고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싸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차가운 시선은 늘 그렇듯 무정했고 마치 계연수에게 어서 타협하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계연수는 본체만체하며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일을 했다.

예전부터 그녀와 사옥현 사이에는 선명한 경계가 있어 그녀는 단 한걸음도 그 경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

옷을 차려입고 나서려던 사옥현은 예전이라면 절대 꾸물거리지 않았지만, 유독 오늘따라 계연수가 신경이 쓰였다.

계연수도 소박한 차림에 머리에는 옥비녀 하나만 꽂았다. 등불 아래 그녀의 부드러운 속눈썹이 눈가에 그늘을 드리웠다.

그녀의 백옥 같은 피부와 빨간 입술, 그리고 색기가 넘치는 눈매는 그녀의 조용한 성격과는 전혀 조화롭지 않았다.

사옥현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아 눈을 내리깔고 용춘에게 어떤 비녀를 고를지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유난히 조용했고 마치 그를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관심 어린 말을 건네며 안부 인사를 나누던 습관과는 전혀 달랐다.

사옥현은 잠시 가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갑자기 진심으로 그녀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젯밤 이명유를 처소로 데려다준 후, 돌아왔다. 방 안쪽에서 그녀의 기침 소리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는 자신이 계연수에게 빚을 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제 삼촌은 그를 만나 이 일을 언급하며 그의 행동이 옳지 않았다고 꾸짖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명유는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하고 외로운 아이였고 그는 언제까지나 그녀를 잘 돌봐주겠노라 약속했다. 자신의 부인이라면 자신과 함께 이명유를 돌봐주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삼촌은 그가 두고 간 계연수는 얼마나 두려웠을지 아냐고 꾸짖었다.

사내로서 부인을 버려두고 다른 여인을 구하는 것은 이미 상식에 어긋난 일이었다.

한참 후에야 그는 눈 오는 밤에 여인을 홀로 버려두고 간 것은 그의 실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마차가 금방 도착해서 계연수를 데려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다시 가지 않았다.

어젯밤 일은 그녀가 먼저 잘못을 인정한다면 참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계연수는 이명유의 형수이고 나이도 이명유보다 많으니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형수가 양보하는 것이 마땅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이명유를 위해 좋은 혼처를 알아보았고 봄이 되면 혼담을 논의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부인이고 평생 함께할 텐데 왜 이리도 편협하게 구는 것일까? 아버지는 그에게 절대 첩을 들이지 말라고 하였지만 처음부터 그는 첩을 들일 마음이 없었다.

그는 잠시 그녀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가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자, 실망감에 사로잡혀 성큼성큼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밖에서 대기하던 시종이 그에게 망토를 둘러주었다. 계연수도 뒤따라 나와 망토를 걸치고는 문안드리러 시어머니의 처소로 향했다.

사옥현은 냉담한 눈길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비록 예전에는 계연수가 이런 사소한 일을 해주는 것을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갑자기 하던 일을 하지 않으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표정은 여전히 평소와 같이 차가웠다.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밖으로 향하며 늘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는 싸늘한 뒷모습만 보여주었다.

계연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그를 불렀다.

“나으리.”

사옥현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한 번도 이렇게 그를 부른 적이 없었다. 항상 서방님이라 다정하게 불러주었다. 나으리라는 싸늘한 호칭보다 서방님이라 부르면 두 사람의 사이도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왜 갑자기 호칭을 바꾼 거지?

사옥현은 걸음을 멈추고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햇살이 세게 비추어 얼굴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연청색 망토 위로 드러난 빼어난 기질과 용모를 감출 수는 없었다.

사실 처음 계연수를 보았을 때도 그녀의 미모를 감탄했다. 어딘가 어리숙한 구석이 있었지만 검은 머리는 비단결처럼 찰랑이고 눈은 별처럼 맑게 빛났다. 마치 옥으로 빚은 나무처럼 싱그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품성은 용모처럼 순수하고 우아하지 못했고 편협하고 질투가 많아 항상 이명유를 적대했다.

그는 그녀를 부인으로 인정했지만 그녀의 마음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지금은 더욱 실망스러웠다.

3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계연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저녁에 일찍 돌아오실 수 있으신지요?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이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사옥현은 담담히 눈살을 찌푸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떠난 후, 계연수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사옥현은 그녀의 말을 결코 마음에 새긴 적이 없으니, 돌아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화리서를 직접 써서 그에게 주어도 괜찮을 것이다.

며칠 사이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복도를 걸으니 찬바람이 그녀의 옷깃을 흔들며 목덜미로 한기가 스며들었다.

계연수는 입김을 내뿜었다. 설이 다가오는 이때 그에게 화리 얘기를 꺼내는 것은 사실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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評論 (1)
goodnovel comment avatar
박일남
무지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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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733화

    계연수는 그의 말을 듣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더는 오 관사의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곁에 서 있던 방 어멈을 향해 말했다.“사람 몇 명 데리고 오 관사의 방을 샅샅이 뒤져 보거라. 그동안 얼마나 빼돌렸는지 전부 확인해.”그 말에 오 관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연수를 바라보았다.늘 온화하고 부드럽기만 하던 둘째 부인이 정말 일을 끝까지 밀어붙일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수색 결과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주방 하인들을 관리하는 이등 관사의 방에서 무려 삼천 냥에 가까운 은자가 쏟아져 나왔다.그의 한 달 녹봉이 고작 한 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얼마나 오랫동안 돈을 빼돌리고 아랫사람들을 쥐어짰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계연수는 오 관사를 한 번 바라본 뒤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곧장 심씨 노부인의 처소로 향했다.동시에 사람을 보내 백씨 역시 심씨 노부인 앞으로 오게 했다.이 일은 그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트집 잡을 수 없도록 처리해야 했다.오 관사는 본래 백씨가 직접 발탁해 키운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심씨 노부인 앞에서 백씨의 의견을 먼저 묻는 것은 집안의 화목을 생각해도 충분히 명분이 있는 일이었다.백씨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무릎 꿇고 있는 오 관사를 발견했다.그 순간 얼굴빛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오 관사는 그녀가 주방에 심어 둔 가장 중요한 패였다.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영민했으며, 맡은 일도 빈틈없이 처리했다.한때는 백씨가 주방을 장악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사람이었다.물론 백씨 역시 그가 저지른 일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랫사람들에게 아무 이익도 주지 않으면서 충성을 바라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그래서 적당히 눈감아 주었다. 게다가 오 관사는 욕심은 많았지만 윗사람에게 챙겨 바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주방 관리를 넘긴 뒤에도 그는 알아서 찾아와 충성을 맹세했을 정도였다.계연수는 서두르지 않고 지금까지의 일을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했다

  • 주문춘귀   제732화

    계연수는 오 관사를 한 번 훑어본 뒤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사흘 전, 주방의 어린 하녀 하나가 찻쟁반을 깨뜨렸지. 그 일은 어떻게 처리했느냐?”오 관사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고작 그런 사소한 일까지 계연수가 알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렇다면 다른 일들은 또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몸까지 움찔 떨렸다.원래 그런 자잘한 실수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돈만 건네면 적당히 덮어 주었고, 눈치 있게 더 많이 바치는 사람은 자연히 감싸 주었다.그는 다급히 둘러대며 말했다.“소인이 곤장을 치게 했습니다.”계연수의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이 스쳤다.그 웃음에 오 관사의 심장은 더욱 조여 들었다.곧이어 계연수의 싸늘한 목소리가 떨어졌다.“아랫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먼저 나에게 보고해야 한다. 처분은 내가 내리는 것이고.”그녀는 눈길을 내리깔며 말을 이었다.“너는 주방에서 오래 일한 사람인데 그것조차 잊었느냐.”잠시 뜸을 들인 뒤 덧붙였다.“아니면 관사 노릇을 더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냐?”오 관사의 등이 크게 들썩였다. 그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소인... 소인이 잠시 판단을 그르쳤습니다. 부인의 심기를 어지럽힐까 염려하여... 부디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계연수는 냉랭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용서?”그 한마디에 오 관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오늘 묵은쌀과 햅쌀을 바꿔치기한 일은 보고했느냐? 그저께 주방에서 음식을 훔쳐 먹은 일은? 그리고 이틀 전, 불을 담당하던 취영을 배식 담당으로 바꿔 준 일은?”계연수의 시선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그 아이가 얼마를 건넸느냐?”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오 관사 앞에 내던졌다.쨍그랑.깨지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음성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누가 너에게 그런 배짱을 줬지?”오 관사는 온몸이 굳어 버렸다.계연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

  • 주문춘귀   제731화

    심씨 노부인의 말을 들은 계연수는 순간 몸이 굳었다.그녀는 심씨 노부인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농담으로 꺼낸 말은 아닌 듯했다. 저 표정이라면,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계연수는 더 말을 보태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싫다고 말한들 심씨 노부인의 뜻이 바뀔 리 없었다.심씨 노부인의 처소를 나선 뒤, 최씨가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나란히 걸었다.최씨는 어제 본 연극이 재미있지 않았냐며, 다음에도 함께 보러 가자고 권했다.계연수는 속으로 난처한 웃음을 삼켰다.어제 공연 한 번 보러 갔다가 심서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던가. 또 나갔다가는 정말 얼굴빛이 솥바닥처럼 새까맣게 변할지도 몰랐다.게다가 최근 들어 두 사람 사이에 사소한 신경전도 몇 번 있었기에, 굳이 일을 더 만들고 싶지 않았다.“나중에 기회가 되면. 요즘은 주방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렵구나.”최씨는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사실 그녀는 계연수와 몇 번 더 함께 외출하고 싶었다. 심정민에게도 오숙부가 오숙모를 어떻게 대하는지 직접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조정에서 보이는 냉정한 모습만 따라 하지 말고, 부인을 아끼고 챙기는 모습도 좀 배웠으면 했다.어젯밤, 그녀는 처음으로 부군의 품에 안겨 보았다.그 순간, 메말랐던 마음에 다시 온기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후원 생활이 답답하고 시어머니가 까다롭다고 해도, 부군이 제 편을 들어 주고 조금만 더 마음 써 준다면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다만 심정민의 어젯밤 행동은 어디까지나 심서준을 따라 한 것에 불과했다.만약 조금만 더 배운다면...하지만 최씨는 더 이상 권할 수는 없었다.대신 시간이 나면 꼭 자신의 처소에 들르라며 거듭 당부했다. 자신에게는 회임에 도움이 되는 비방도 있다고 덧붙였다.계연수는 회임 이야기만 나오면 괜히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아직은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그저 때가 되면 오겠거니 생각할 뿐, 조급한 마음이 전혀

  • 주문춘귀   제730화

    심정민은 최씨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막상 반박하려 해도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사실 조금 전 보았던 장면은 심정민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도찰원에서의 오숙부는 누구나 인정하는 철면염라였고, 인정이라곤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건을 꿰뚫어 보는 눈을 지녔고, 아무리 교묘한 수를 써도 그 앞에서는 숨길 수 없었다.심정민은 줄곧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는 사람, 모두에게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는 사람.그런데 그는 오숙부가 직접 여인을 안아 드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조정에서 풍운을 뒤흔드는 사람이 바로 오숙부였다.후택의 일은 기껏해야 여인들 사이의 자질구레한 집안사일 뿐인데, 그런 일에까지 마음을 쓰다니.심정민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최씨를 번쩍 안아 들고는 저택으로 걸어갔다.최씨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심정민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그녀는 얼떨결에 그의 목을 끌어안았고, 가슴은 사정없이 쿵쾅거렸다.*한편, 계연수는 심서준에게 안긴 채 침상으로 옮겨졌다.망토 아래 감춰진 몸은 이미 흐트러져 있었고, 희고 고운 피부는 등불 아래 은은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당시 여인들은 대부분 가슴을 단단히 동여매었다.풍만한 체형일수록 더 심했고,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하지만 계연수는 답답한 것이 싫어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 허리는 가늘었지만 풍성해야 할 곳은 충분히 풍성했다.심서준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곳에 머물렀다.소년 시절에도 그는 무심한 척하면서 자꾸만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그때는 처음 사랑을 알게 되던 시절이었다.빠져들면서도 스스로를 못마땅해했고, 마음을 억누르려 했다.지금에 와서야 깨달았다. 그때 조금만 자존심을 내려놓고 방법을 썼더라면, 계연수는 진작 자신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그러면 사옥현이 끼어들 틈도 없었을 것이다.심서준은 계연수를 품에 안은

  • 주문춘귀   제729화

    예전의 그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생각했다. 계연수는 마땅히 자신을 사모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녀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자신뿐이어야 한다고.설령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신보다 더 나은 사내는 만나지 못할 테니까.하지만 훗날에야 그는 깨달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내가 있었고, 계연수에게는 자신 말고 다른 이를 선택할 권리도 있었다.그는 우습게도 그녀 앞에서 냉담한 척했고, 무심한 척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그때의 그는 그녀를 원망했다.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면서 왜 자꾸만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걸까? 그렇게 자신을 두려워하면서도 왜 자꾸 가까이하려는 걸까?계연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로 하여금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열등감마저 품게 만들었다.그녀가 물에 빠진 뒤로 그는 수도 없이 그런 감정에 빠져들었다. 마치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사람처럼.그리고 누구보다 선명하게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이 먼저 고개를 숙이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늘 계연수 앞에서만큼은 자존심을 놓지 않던 자신도, 언젠가는 더 이상 오만할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어쩌면 그날이 오면 계연수의 눈에도 자신은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이 될지 몰랐다.그녀를 사랑하는 평범한 사내이자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한때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사람 역시 이미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 버렸으니까.심서준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여 계연수의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그리고 가장 다정한 힘으로 그녀를 품 안에 단단히 끌어안았다. 마치 자신의 뜨거운 체온으로 그녀를 녹여 내기라도 하려는 듯.계연수 역시 그런 심서준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그에게서 이런 부드러움을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를 받아들였다.이토록 부드럽고 다정한 온기는 사실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그녀는 지금껏 누군가에게 애틋하게 보듬어지

  • 주문춘귀   제728화

    심서준이 그런 태도를 보이자 계연수 역시 한결 마음이 누그러졌다.그녀는 살며시 심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다음에 또 저한테 무섭게 구시면 어떻게 할 겁니까?”심서준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되물었다.“네가 말해 보거라.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하지만 계연수는 막상 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그녀가 심서준을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심가는 그의 것이었고,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 역시 그의 것이었다.게다가 심서준의 마음은 늘 헤아리기 어렵지 않았던가.무엇이 그를 고개 숙이게 만들 수 있겠는가.그래서 그녀는 늘 이렇게 한발 물러서고 부드럽게 달래는 방법으로 그의 태도를 누그러뜨릴 뿐이었다.애초에 심서준에게 무언가를 해 보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그녀는 그저 심서준과 잘 지내며 평생을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계연수는 조용히 말했다.“생각해 보고 나중에 말씀드릴게요.”심서준은 눈을 내리깔았다.그는 계연수가 이런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심서준은 그녀를 어깨에서 떼어 내어 자신과 마주 보게 했다.어스름한 마차 안에서 심서준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아름다운 얼굴이었다.혼인한 뒤로 계연수는 언제나 무심한 듯 담담했다. 늘 평온했고, 세상사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그 얼굴 위에 아주 옅은 근심이 내려앉아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소리 없이 내리는 비 같았다. 빗줄기는 너무 가늘어 몸을 적시지 못하지만 분명 비는 내리고 있었다. 아련하고 흐릿한 산안개가 사람을 감싸듯, 희미한 슬픔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심서준은 계연수가 이런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가느다란 눈썹 아래 드리운 슬픔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손끝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고 아래로 향한 눈길을 바라보았다.짙고 검은 눈동자와 살짝 올라간 눈꼬리. 눈 아래로 부서진 빛이 어른거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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