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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경옥
화장대 앞에 마주앉은 계연수는 머뭇거리는 용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동거울 속에 비친 수척한 자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장신구를 천천히 풀었다.

“용춘아, 아무 말도 하지 마렴. 나는 내가 뭘 하는지 잘 알고 있어.”

그녀는 사씨 가문의 며느리이자 사옥현의 부인이었다. 사옥현은 가문에서 가장 출세한 장손이었다. 수많은 눈들이 그녀를 감시하며 그녀의 실수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화목을 위해, 집안의 평화를 위해 실수할까 늘 마음을 졸이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못했고, 늘 양보하며 사옥현과의 평화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에게 민폐를 끼칠까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이렇게 뻔히 보이는 무겁고 고단한 삶이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만약 평생을 이렇게 침울하고 무기력한 굴레에 갇혀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계연수는 사옥현이 오늘 밤 이곳에 머물지 않을 것을 알았다. 비슷한 일은 예전에도 적지 않았고 그는 화가 나면 여계와 같은 예법서를 그녀의 방으로 보냈다.

그럴 때면 그녀는 혼자 쓰라린 마음을 삼키며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그녀가 잘해도 그의 마음속에서는 결코 좋게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느릿느릿 세수를 하고 밖에 있던 시녀를 부르자, 그가 오늘 밤도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쯤이면 그와 단둘이서 화리 얘기를 꺼낼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그녀는 턱을 괴고 창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센 바람 소리가 창문을 두드렸다. 마치 계씨 가문에 변고가 생겼을 때처럼, 불안에 떨던 그때와 비슷했다.

계연수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그날 밤 사옥현은 끝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그를 마주치니 얼굴은 냉랭하고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싸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차가운 시선은 늘 그렇듯 무정했고 마치 계연수에게 어서 타협하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계연수는 본체만체하며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일을 했다.

예전부터 그녀와 사옥현 사이에는 선명한 경계가 있어 그녀는 단 한걸음도 그 경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

옷을 차려입고 나서려던 사옥현은 예전이라면 절대 꾸물거리지 않았지만, 유독 오늘따라 계연수가 신경이 쓰였다.

계연수도 소박한 차림에 머리에는 옥비녀 하나만 꽂았다. 등불 아래 그녀의 부드러운 속눈썹이 눈가에 그늘을 드리웠다.

그녀의 백옥 같은 피부와 빨간 입술, 그리고 색기가 넘치는 눈매는 그녀의 조용한 성격과는 전혀 조화롭지 않았다.

사옥현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아 눈을 내리깔고 용춘에게 어떤 비녀를 고를지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유난히 조용했고 마치 그를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관심 어린 말을 건네며 안부 인사를 나누던 습관과는 전혀 달랐다.

사옥현은 잠시 가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갑자기 진심으로 그녀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젯밤 이명유를 처소로 데려다준 후, 돌아왔다. 방 안쪽에서 그녀의 기침 소리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는 자신이 계연수에게 빚을 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제 삼촌은 그를 만나 이 일을 언급하며 그의 행동이 옳지 않았다고 꾸짖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명유는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하고 외로운 아이였고 그는 언제까지나 그녀를 잘 돌봐주겠노라 약속했다. 자신의 부인이라면 자신과 함께 이명유를 돌봐주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삼촌은 그가 두고 간 계연수는 얼마나 두려웠을지 아냐고 꾸짖었다.

사내로서 부인을 버려두고 다른 여인을 구하는 것은 이미 상식에 어긋난 일이었다.

한참 후에야 그는 눈 오는 밤에 여인을 홀로 버려두고 간 것은 그의 실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마차가 금방 도착해서 계연수를 데려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다시 가지 않았다.

어젯밤 일은 그녀가 먼저 잘못을 인정한다면 참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계연수는 이명유의 형수이고 나이도 이명유보다 많으니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형수가 양보하는 것이 마땅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이명유를 위해 좋은 혼처를 알아보았고 봄이 되면 혼담을 논의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부인이고 평생 함께할 텐데 왜 이리도 편협하게 구는 것일까? 아버지는 그에게 절대 첩을 들이지 말라고 하였지만 처음부터 그는 첩을 들일 마음이 없었다.

그는 잠시 그녀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가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자, 실망감에 사로잡혀 성큼성큼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밖에서 대기하던 시종이 그에게 망토를 둘러주었다. 계연수도 뒤따라 나와 망토를 걸치고는 문안드리러 시어머니의 처소로 향했다.

사옥현은 냉담한 눈길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비록 예전에는 계연수가 이런 사소한 일을 해주는 것을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갑자기 하던 일을 하지 않으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표정은 여전히 평소와 같이 차가웠다.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밖으로 향하며 늘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는 싸늘한 뒷모습만 보여주었다.

계연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그를 불렀다.

“나으리.”

사옥현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한 번도 이렇게 그를 부른 적이 없었다. 항상 서방님이라 다정하게 불러주었다. 나으리라는 싸늘한 호칭보다 서방님이라 부르면 두 사람의 사이도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왜 갑자기 호칭을 바꾼 거지?

사옥현은 걸음을 멈추고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햇살이 세게 비추어 얼굴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연청색 망토 위로 드러난 빼어난 기질과 용모를 감출 수는 없었다.

사실 처음 계연수를 보았을 때도 그녀의 미모를 감탄했다. 어딘가 어리숙한 구석이 있었지만 검은 머리는 비단결처럼 찰랑이고 눈은 별처럼 맑게 빛났다. 마치 옥으로 빚은 나무처럼 싱그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품성은 용모처럼 순수하고 우아하지 못했고 편협하고 질투가 많아 항상 이명유를 적대했다.

그는 그녀를 부인으로 인정했지만 그녀의 마음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지금은 더욱 실망스러웠다.

3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계연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저녁에 일찍 돌아오실 수 있으신지요?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이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사옥현은 담담히 눈살을 찌푸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떠난 후, 계연수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사옥현은 그녀의 말을 결코 마음에 새긴 적이 없으니, 돌아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화리서를 직접 써서 그에게 주어도 괜찮을 것이다.

며칠 사이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복도를 걸으니 찬바람이 그녀의 옷깃을 흔들며 목덜미로 한기가 스며들었다.

계연수는 입김을 내뿜었다. 설이 다가오는 이때 그에게 화리 얘기를 꺼내는 것은 사실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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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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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남
무지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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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11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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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11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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