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2화

Author: 윤지
주위를 둘러보자 그저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또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핸드폰을 꺼내서 내비게이션을 킬 생각이었지만 또 한참 동안 사는 곳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연지석은 쭉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는데 아까 유남준이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민정 혼자 제자리에 서 있는 걸 보고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민정.”

박민정은 유남준이 돌아온 줄 알았다.

그녀는 기대 어린 눈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결국 실망하고 말았다.

연지석은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나 진짜 기억 안 나? 나 뚱이야. 잊은 거야?”

연지석은 그녀를 일깨워줬다.

박민정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어릴 때 은정숙을 따라서 시골에 가 살 때 친해진 절친 뚱이.

그때 연지석은 뚱뚱한 데다가 박민정보다도 키가 작았다. 근데 지금은 190센티미터는 훌쩍 넘는 키에 얼굴도 굉장히 잘생겨졌다.

“생각났어. 너 많이 변했다. 못 알아봤네.”

어릴 때 친구를 우연히 마주치는 건 꽤 기쁜 일이었다.

“가자. 데려다줄게.”

박민정을 데려다주면서 그는 그녀가 작고 볼품없는 모텔에 묵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유씨 집안 같은 부잣집 가문이 박민정과 이혼한다 해도 그녀를 이런 누추한 곳에 데려다 놓는 건 말도 안 됐다.

박민정은 조금 멋쩍게 말했다.

“우스운 꼴만 보였네. 나 여기 묵어. 아주머니한테는 말하지 마! 걱정하실라.”

연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는 계속 여기 있을 수도 없었다.

연지석은 그저 내일 다시 박민정을 만나러 오겠다고 하고 떠났다.

모텔을 떠나는 연지석은 길 구석에 세워진 검은색 캐딜락 한 대를 발견하지 못했다.

박민정에게 있어서 어디에 묵는지는 다 똑같았다.

연지석이 떠났다.

술을 마셔서인지 위가 불편했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머릿속에서 유남준이 한 말이 맴돌았다.

‘화장은 무슨 귀신처럼 해서... 너 같은 사람을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어?!’

그녀는 힘을 주어 얼굴에 남은 화장과 입술의 립스틱을 문질렀다. 창백했던 얼굴은 그녀 때문에 붉게 부어올랐다.

박민정은 자신이 우울증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도 이 병에 관련된 자료를 조사해서 대체적인 건 알고 있었다.

우울증은 뇌에 영향을 주어서 기억력도 떨어지게 만들고 인지장애도 뒤따라오게 된다. 기쁘고 즐거운 일은 생각하지 못하고 우울한 일만 극대화하며...

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박민정은 연지석이 돌아온 줄 알고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방문이 열리자, 유남준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유남준이 힘을 주자 그녀의 얇은 손목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박민정! 정말 너 이런 사람이었어?!”

유남준은 문을 닫아 잠그고는 그녀를 끌고 소파까지 갔다.

“이제 보니 이미 갈아탈 준비를 다 한 거였네. 어쩐지 그렇게 쉽게 손을 놓는다고 했어!”

그는 차갑게 말했다.

그 말은 차가운 비수처럼 박민정의 마음을 할퀴었다.

그가 연지석을 보고 오해한 것이었다.

박민정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이 첫사랑에 기울어 있는 건 괜찮으면서 왜 자기는 아무것도 안 된단 말인가.

박민정은 화가 나 있는 유남준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저희 둘 어차피 피차일반이에요.”

박씨 집안은 사기 결혼을 했다.

유남준은 그녀를 삼 년 동안이나 차갑게 대했고 첫사랑을 잊지 못했다.

누구도 고상하지는 않았다.

유남준은 오늘 술을 마셔서 온몸에 술 냄새가 났다.

그는 박민정의 턱을 붙잡고는 빨개진 눈으로 낮게 물었다.

“그 남자 누구야? 언제부터 알던 사이야?”

박민정은 이런 그를 처음 봐서 갑자기 웃어버렸다.

“질투해요?”

유남준은 눈을 부라리더니 비웃었다.

“너 따위한테 그럴 가치가 있어?”

박민정은 목이 메었다.

유남준은 거칠게 그녀를 깔아오면서 그녀의 귀에 대고 계속 물었다.

“저놈, 예전부터 너 건드렸지? 응?”

결혼 삼 년 동안, 유씨 집안의 규칙 때문에 박민정은 직업을 포기하고 이따금 있는 친구들의 만남도 거절해 왔다.

근데 지금 유남준이 그녀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체념해 버렸다.

“당신이 보기에는 그래요?”

그녀가 되물었다.

유남준은 제대로 화가 나서 그대로 박민정의 뺨을 내리쳤다.

박민정은 온몸의 피가 그대로 굳는 기분이었다. 눈앞의 모든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밀어내고 싶었고 반항하고 싶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 그 순간, 유남준은 조금 차분해진 것 같았다.

어느새 새벽이 지나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유남준은 앙상한 박민정을 보고 눈에 띄는 침대 위의 붉은 피를 보면서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퍽!”

박민정은 손을 들어 있는 힘껏 그의 잘생긴 얼굴을 내리쳤다.

이 한 번으로 그녀가 사랑에 품었던 모든 환상을 깨버렸다.

그녀는 귀가 울려서 유남준이 뭐라 말하는지 들리지도 않아서 그의 말을 끊었다.

“꺼져요!”

유남준이 언제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는 온통 어젯밤의 그 장면이었다.

차에 앉아서 그는 서다희에게 전화 쳤다.

“알아봐. 박민정이 알고 지내는 남자가 누가 있는지.”

서다희는 어리둥절했다.

박민정이 결혼하고 나서 매일 유 대표를 제외하고는 다른 남자는 없었다. 박민정에게는 유 대표밖에 없었는데 어디서 남자를 알고 지낸단 말인가?

모텔 안.

유남준이 떠났다.

박민정은 여러 번 샤워를 하고 자신을 씻어냈다.

이혼이 가까워져서야 둘 사이에 부부 같은 점이 생겼다는 건 우습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했다.

아침 9시. 연지석은 아침을 가지고 왔지만, 박민정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제는 너무 일찍 가는 바람에 알려주는 걸 까먹었어. 나한테 마침 빈 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 가 묵어도 돼. 여자애 혼자 모텔에 묵는 건 너무 위험해.”

박민정은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인정을 갚는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빚지고 싶지 않았다.

연지석은 그녀가 거절할 줄 알고 있었다.

“어차피 비어 있는 데야. 네가 가서 묵는다고 월세 안 받을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많아서 한 달밖에 안 있을건데...”

“한 달이면 한 달이지. 사람 사는 흔적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아.”

연지석은 그녀가 왜 한 달밖에 못 있는다고 하는지 몰랐다. 앞으로 계속 머물 시간이 길 것으로 생각했다.

연지석은 운전해서 박민정을 데리고 갔다.

그녀는 간단한 캐리어 하나만 들었다. 다른 짐은 없었다.

차에 앉은 후, 연지석은 박민정과 어릴 때 일로 대화를 나눴고 먼저 요 몇 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외국에서 알바하다가 스무 살에 창업 성공해서 자기 회사가 있고, 지금은 어엿한 돈 좀 있는 사장님이라고 말이다.

박민정은 그의 화려한 이력들을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보았다.

졸업한 뒤 유남준에게 시집가서 지금까지 가정주부이기만 했다.

박민정은 감탄하며 말했다.

“너 대단하다.”

“너도 가능해. 네가 마을에서 떠난 뒤에도 난 너를 쭉 지켜봤어. 네가 티비에 나오는 것도 보고, 청소년 피아노 시합에서 일 등을 하는 것도 보고... 그리고 노래 시합 맞지? 너 알아? 그때 네가 내 아이돌이었어...”

연지석은 박민정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 혼자 외국에서 공부할 때, 처음엔 상황이 좋지 않았고 많은 나쁜 일들을 배우다가 자포자기했었다고.

박민정이 선천적 난청이 있다는 기사가 뜨기 전까지 말이다.

선천적 난청이 있는 사람에게 음악의 길은 거의 막혀있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뛣쀆꿾
지석아 너가 희망이다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2110화

    박민호는 몸을 낮춰 슬픔에 잠긴 최민아 곁에 앉아 조용히 위로했다.“너무 슬퍼하지 마요. 분명 두 분 별일 없으실 거예요. 우선 계속 찾아봐요. 이렇게 계속 울고 있으면 힘이 다 빠져서 나중에 제대로 찾지도 못하면 어떡해요.”그의 따뜻한 목소리에 최민아는 조금씩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민호 씨 말이 맞아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박민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요. 우리 다시 힘내서 찾아봐요.”하지만 두 사람은 몇 걸음 가지도 못한 채, 박민호는 몸을 휘청거렸다.그가 앞으로 쓰러지려는 순간, 최민아가 깜짝 놀라 다급히 그를 붙잡았다.“민호 씨!”걱정스러운 그녀의 외침에, 박민호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겨우 중얼거렸다.“왜 그래요?”“방금 쓰러질 뻔했어요!”최민아의 눈빛엔 놀람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박민호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고개를 흔들었다.“그래요? 아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봐요. 괜찮아요. 지금은 두 분부터 빨리 찾아야죠.”그러나 그의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보자, 최민아는 더 이상 그와 함께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하다고 직감했다.“우리 일단 집에 돌아가요. 민호 씨, 요즘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요.”사실 박민호는 며칠째 밤에는 일을 하고 낮에는 그녀 부모님을 돌보느라 단 한 순간도 온전히 쉰 적이 없었다.“아니에요. 아직 괜찮아요. 버틸 수 있어요.”그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이미 그의 몸은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최민아는 그의 말을 더는 듣지 않았다.“안 돼요. 지금은 무조건 집에 가서 쉬어야 해요.”결국 그녀는 단호하게 박민호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지금은 푹 쉬세요. 부모님 일은 내가 경찰에 가서 신고할게요. 민호 씨는 쉬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알겠죠?”박민호도 더는 고집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그 말에 최민아는 안도하며 집을 나섰고 박민호는 그녀가 떠나자마자 소파 위에 쓰러진 채 곧 깊은 잠에 빠졌다.얼마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2109화

    최민아는 저도 모르게 눈가가 뜨거워졌다.고마움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이 먹먹해졌다.지금 그녀의 손에는 거의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일단 그 돈을 받기로 하고 월급을 받으면 꼭 갚을 생각이었다.그녀는 돈뭉치를 조심스레 챙겨 부엌으로 가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그런데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쯤 부모님도 벌써 일어나 계셨을 텐데, 오늘따라 방문이 굳게 닫힌 채 조용했다.아직 주무시는 건가 싶어 그녀는 깨우지 않고 조용히 아침을 다 차린 뒤, 조심스레 방 앞으로 가 가볍게 노크했다.“엄마, 아빠... 아침 드세요.”몇 번을 불렀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순간 최민아는 불길한 예감이 들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급히 방문을 밀어 열었다.방 안은 놀랍도록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정작 그 안에 부모님은 보이지 않았다.“아빠! 엄마!”다급한 목소리로 부르며 집 안 구석구석을 뒤졌다. 욕실, 주방, 베란다까지 모두 확인했지만 어디에도 부모님의 모습은 없었다.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다시 부모님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침대 머리맡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종이 한 장이었다.[민아야, 아빠랑 엄마는 더 이상 너를 힘들게 할 수 없어서 조용한 곳으로 떠나기로 했단다. 우리를 찾지 말고, 너무 슬퍼하지도 말아라. 앞으로의 인생을 잘 살아. 민호랑도 잘 지내고 싸우지 말고 빨리 결혼도 하렴. 사랑한다, 내 딸아.]종이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고 눈물이 종이를 타고 조용히 떨어졌다.“아빠, 엄마... 대체 무슨 소리예요? 지금 어디로 가신 거냐고요!”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한 채, 그녀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아버지의 번호를 눌렀다.하지만 예상대로 휴대폰은 꺼져 있었고 아무도 받지 않았다.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어떡해, 어떡하지...”최민아는 울먹이며 친척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지만 어느 누구도 부모님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급히 옷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2108화

    “방금 남준 씨도 들었죠? 제 생각은 충분히 전달됐어요.”박민정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유남준과 시선을 마주쳤다.그녀의 눈에는 조금의 죄책감도 없었다. 애초부터 그녀는 에리에게 어떤 기대나 여지도 준 적 없었기에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다.유남준의 깊고 짙은 눈빛 속에 잠시 복잡한 감정이 스쳐 갔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알겠어. 내 아내가 워낙 매력적이니 누가 좋아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갑작스러운 칭찬에 박민정의 볼이 발그레해졌다.두 사람은 그렇게 인파 속을 나란히 걸었다.“눈이다!”주변에서 누군가 크게 외쳤다.박민정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흩날리는 커다란 눈송이를 보는 그녀의 두 눈이 반짝였다.“정말 예쁘다...”유남준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는 이 순간, 시간이 멈춰버리길 간절히 바랐다.한겨울, 도시는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누군가에게는 더없이 낭만적인 풍경이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귀찮고 성가신 현실일 뿐이었다.박민호는 저녁이 되면 바깥 나가기가 싫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일 밤 밖으로 나섰다.며칠째 계속 밤늦게 나가는 그를 두고 최상철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민호는 요즘 왜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는 거냐?”최민아는 서둘러 그럴듯한 핑계를 둘러댔다.“전에 말씀드렸잖아요. 민호 씨가 해외 회사랑 일한다고요. 외국은 설날도 없고 시차도 다르잖아요.”“하지만 매일 이러면 너무 힘들지 않겠냐?”남편의 말에 안순자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민호한테 몸조심하라고 해라. 밤낮이 바뀌면 몸이 상하기 쉽다.”최상철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건강이 우선이지. 돈은 다 부차적인 거야.”두 사람은 최근 병을 앓고 나서야 건강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자신들이 딸 곁을 오래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그들은 딸과 함께할 미래의 사위가 그녀 곁을 든든히 지켜주길 바랐다.그 마음을 아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2107화

    “네가 이해해 준다면 그걸로 됐다.”하정철이 나지막이 말했다.에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자기 방으로 향했다.조미연이 급히 따라가 뭔가 더 설명하려 했지만 남편이 그녀를 막아섰다.“이제 좀 혼자 생각할 시간을 줘. 우리가 부모라고 해서 평생 그 애 인생을 대신 결정해 줄 순 없어.”조미연은 실망이 서린 눈빛으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에리도 어디 나무랄 데 없는데 왜 좋은 여자 만나 가정을 꾸리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처음부터 연예계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하정철은 배우라는 직업을 썩 탐탁지 않게 여겼다.“차라리 나처럼 의사를 하고 같은 직종의 여자를 만났다면 훨씬 나았을 텐데.”그들은 요즘 젊은이들의 마음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에리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방 안에 홀로 남은 에리는 휴대폰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창밖 어둠이 짙게 내려앉을 무렵, 마침내 그는 용기내어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박민정과 유남준은 도심의 거리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몇 번 와본 적은 있는 곳이었지만 이렇게 여유롭게 둘러본 건 처음이었고 오늘은 모처럼 시간이 나 박민정이 먼저 산책을 제안했던 터였다.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옆에서 화면을 힐끗 본 유남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전화받아봐. 무슨 일인지 궁금하네.”그는 오히려 박민정보다 더 신경 쓰는 눈치였다.박민정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어차피 그녀도 이 기회에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었다.“민정아...”에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전해졌다.“오늘 정말 미안했어.”“괜찮아, 이미 지난 일이니까.”박민정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마침 나도 할 말이 있어서 잘됐어.”에리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가 오늘 자신의 고백에 대한 답을 하려 한다는 걸 직감했다.“응... 얘기해.”“네가 정말로 날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2106화

    유남준은 사실 에리에게 그는 박민정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자신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인물이라 확실하게 경고하고 싶었다에리의 마음은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민정아, 다음에 또 보자. 오늘 식사는 내가 낼게.”그러자 유남준이 지지 않고 말했다.“괜찮아요. 이미 들어올 때 계산했어요.”유남준은 라이벌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에리는 민망한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서둘러 부모님과 함께 자리를 떴다.그들이 떠나자마자 박민정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들에 정신이 혼란스러웠다.“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박민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유남준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제 내가 했던 말을 믿겠어?”박민정은 한숨을 내쉬며 여전히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에리가 그냥 아무 말이나 한 건 아닐까요?”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기 절정의 남자 스타가 자신처럼 나이도 많고 평범한 여자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지금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기를 속이는 거지.”유남준이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아니면 누군가에게 짝사랑 받는 기분을 즐기는 건가?”박민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헛소리하지 마요.”그녀는 단지 자신감이 부족했을 뿐이었다.“내가 생각보다 매력이 있나 싶었던 거죠.”유남준은 그런 그녀를 보며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더했다.“돈이란 게 원래 강력한 힘을 가지니까.”박민정은 그의 말뜻을 이내 알아차렸다.그는 에리가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돈을 보고 접근한 거라고 돌려 말한 것이었다.박민정은 곧장 반박했다.“나랑 레이가 처음 만났을 땐 우리 둘 다 가난했어요. 그때도 나한테 참 잘했는데, 설마 그때도 돈 때문이라고 생각해요?”유남준은 말문이 막혀 짜증이 난 듯 물잔을 들어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계속 상대의 호의를 받아줄 거야?”아까 에리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2105화

    “엄마, 그만하세요.”에리가 박민정을 감싸며 말했다.“제 문제예요, 민정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에리는 어려서부터 말 잘 듣고 착했지만 연애와 결혼 문제만큼은 고집이 셌다.조미연은 아들이 다른 여자를 두둔하는 걸 보자 질투심이 더 치솟아 화살을 박민정에게 돌렸다.“이름이 박민정이라고 했죠?”조미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아가씨 남편은 아가씨가 우리 에리랑 이렇게 엮인 거 알아요?”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결혼도 했고 애도 있다면서요? 우리 에리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젊은 남자 다루는 법은 잘 알겠네요? 이 일 남편한테 알려지면 어쩔 건데요?”평소 같으면 박민정도 가만있지 않았겠지만 상대는 에리의 엄마였다.“아주머니, 저랑 에리 그런 사이 아니에요. 흥분했다고 저한테 너무 막말하시는 것 같네요. 그리고 에리도 이제 20대인데 그 정도 판단도 못 하겠어요?’박민정이 또렷하게 받아쳤다.에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박민정과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깨달았다.“엄마, 가요.”그는 어머니의 팔을 끌었다.조미연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박민정에게 말 몇 마디 들었다고 자신이 어린 후배에게 훈계받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박민정을 차갑게 흘겨보았다.“말은 따박따박 잘하네요. 나는 아가씨 같은 여자 많이 봤어요. 집은 버릴 수 없고, 그런데 우리 에리도 탐나고. 남편이 우리 에리만 못하니까 이러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제가 왜 댁 아드님보다 못한 거죠?”차가운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크지 않은 음성이었지만 묵직한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모두 고개를 돌리자, 깔끔한 코트를 입은 유남준이 걸어 들어왔다.그는 막 고객과 통화를 끝내고 돌아오다가 마침 이 장면을 본 것이었다.“누구시죠?”조미연은 눈앞의 남자를 보며 물었다. 단정한 이목구비와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범상치 않았다.유남준은 곧장 박민정 옆에 서서 그녀를 품에 감쌌다.“저는 이 사람 남편입니다.”그는 신분을 밝힌 뒤 조미연을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