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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Penulis: 윤지
「남준 오빠, 그동안 잘 못 지냈죠? 그 여자 안 사랑하는 거 알아요. 우리 오늘 밤 만나요. 오빠 너무 보고 싶어요.」

휴대폰 화면이 어두워질 때까지 박민정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택시 타고 유남준의 회사로 가는 길에서 박민정은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봤다. 비는 그칠 새도 없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유남준은 그녀가 회사로 찾아오는 걸 별로 반기지 않는다. 올 때마다 박민정은 뒷문에 있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니까.

유남준의 전담 비서 서다희도 그녀를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오셨어요, 민정 씨.”

유남준의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사모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항상 떳떳하지 못한 존재니까.

박민정이 휴대폰 주러 회사까지 찾아오자 유남준은 미간이 확 구겨졌다.

그녀는 늘 이런 식이다. 점심 도시락, 서류, 옷, 우산까지 유남준이 놓친 걸 전부 회사로 보내온다.

“말했잖아, 일부러 내 물건 주러 회사 안 와도 된다고.”

박민정은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미안해요, 깜빡했어요.”

언제 기억력이 이렇게 나빠졌지?

아마도 이지원이 보낸 문자를 보고 덜컥 겁이 나서 그랬나 보다.

유남준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떠나기 전 박민정은 고개 돌려 유남준을 바라보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남준 씨, 아직도 이지원 씨 좋아해요?”

유남준은 요즘 들어 박민정이 참 이상했다.

자꾸 뭘 까먹지 않나, 이상한 질문만 해대질 않나, 그의 아내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유남준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게 심심하면 뭐라도 할 일 좀 찾아.”

박민정은 결국 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녀도 전에 일자리를 구해봤지만 유씨 일가 어르신들이 그녀가 얼굴을 내비치면 가문의 체면만 깎는다고 단호하게 차단해 버렸다.

유남준의 어머니 고영란은 그녀에게 거리낌 없이 쏘아붙였다.

“너 정녕 온 세상에 알릴 생각이니? 우리 남준이가 청력에 문제 있는 장애인 아내를 찾았다고?”

장애인 아내라...

집에 돌아온 후 박민정은 최대한 바삐 돌아쳤다.

먼지 하나 안 날릴 정도로 집 청소를 깨끗이 해놨지만 여전히 쉬지 않고 구석구석 닦았다.

이렇게 해야만 마지막 남은 일말의 가치라도 느낄 수 있으니까.

오늘 오후엔 유남준의 문자가 없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화났거나 매우 바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밤이 깊어졌지만 박민정은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 머리맡에 놔두었던 휴대폰이 갑자기 요란스럽게 울려댔다.

그녀는 휴대폰 화면을 쳐다봤는데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자 달콤하면서도 늘 그녀를 불안감에 떨게 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바로 이지원이다.

“민정 씨? 남준 오빠 취했어요. 지금 데리러 올 수 있나요?”

...

수호 클럽.

유남준은 메인 석에 앉아 넋 놓고 술을 퍼마셨다.

그의 옆엔 이지원이 앉아 있었고 한 무리 재벌가 도련님들이 그녀에게 노래 한 곡 불러 달라며 유난을 떨었다.

“지원 씨 이번에 우리 유 대표님이랑 잘해보려고 돌아온 거잖아요.”

“노래 한 소절로 우리 유 대표님한테 고백해 봐요.”

이지원은 예쁘고 개방적인 데다 유남준의 첫사랑이니 재벌가 도련님들은 모두 그녀와 유남준을 맺어주려고 한다.

이지원도 우물쭈물하지 않고 흔쾌히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을 불렀다.

“아직도... 너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너의 손길을 느껴...”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다들 조용히 노래를 감상했다.

박민정이 룸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이지원이 막 한 곡을 다 불렀고 룸 안의 사람들은 유남준을 부추기기 바빴다. 그중에서도 절친 김인우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남준아, 너 지원이 3년이나 기다렸잖아. 인제 드디어 돌아왔는데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여자인 지원이가 먼저 고백까지 했잖아.”

박민정은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주먹을 꽉 쥐었다.

이때 마침 화장실로 가려던 한 남자가 룸 문을 열어젖혔다.

박민정이 넋 놓고 서 있는 모습에 그 남자도 화들짝 놀랐다.

“민정 씨.”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전부 문 앞으로 시선이 쏠렸다.

순간 룸 안에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박민정은 메인 석에 앉은 유남준을 쳐다봤는데 맑은 눈빛은 전혀 취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지원에게 농락당한 걸 알아챘다.

유남준은 박민정을 보자 눈동자가 살짝 떨렸고 한창 유남준과 이지원을 엮어주려던 김인우를 비롯해 룸 안의 모든 이가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자리는 박민정이 찾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민정 씨, 오해하지 말아요. 인우 씨가 장난 좀 친 거예요. 저랑 남준 오빠는 그냥 친구 사이에요.”

이지원이 정적을 깨고 그녀에게 해명했다.

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짜증 섞인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명할 거 없어.”

그는 곧게 박민정 앞으로 다가왔다.

“여긴 왜 왔어?”

“취한 줄 알고 데리러 왔어요.”

그녀는 솔직하게 대답했고 이에 유남준은 차갑게 쏘아붙였다.

“오늘 내가 한 말은 한마디도 귀에 안 들어갔나 보네.”

그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오직 둘만 들을 수 있게 나지막이 되물었다.

“3년 전에 내가 감쪽같이 속은 걸 이 사람들이 모를까 봐 일부러 찾아와서 되새겨주는 거야?”

박민정은 흠칫 놀랐다.

유남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실없이 존재감 드러내지 마. 너 이러는 거 점점 더 가증스러울 뿐이야!”

말을 마친 유남준은 그녀에게 등 돌리고 자리를 떠났다.

박민정은 그의 커다란 뒷모습을 한참 동안 넋 놓고 바라봤다.

오늘은 어쩌면 유남준이 그녀에게 말을 제일 많이 한 날이고 또한 그녀를 제일 아프게 한 날이기도 하다.

룸 안의 재벌가 도련님들은 버림받은 박민정을 전혀 안쓰러워하지 않았다.

김인우도 거리낌 없이 저쪽에서 불쌍한 표정을 짓는 이지원에게 말했다.

“지원아, 너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뭘 더 해명할 게 있다고... 박민정이 사기 결혼만 강행하지 않았어도 남준이는 너랑 결혼했어. 그럼 너도 굳이 머나먼 해외로 가서 그 고생을 하지 않았을 거고.”

박민정은 귓속이 윙윙거렸지만 그들이 한 말은 또박또박 다 들렸다.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안다.

유남준이 자신과 결혼하든 안 하든, 그는 절대 아무런 집안 배경도 없는 이지원과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점은 이지원도 잘 알고 있기에 단호하게 이별을 택하고 머나먼 해외로 떠나갔다.

그런데 왜 인제 와서 모든 게 박민정의 잘못으로 전락한 걸까?

그녀는 두원 별장으로 돌아갔다.

늘 그렇듯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워지고 그녀가 외출할 때 모습과 돌아왔을 때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유남준은 아직이다.

박민정은 우산을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는데 마치 암흑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문득 영원히 홀로 있는 이 집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바깥 정자에 앉아서 찬바람과 스산한 빗줄기를 맞이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름다운 실루엣이 그녀 앞에 나타났는데 바로 이지원이었다!

그녀는 화려하게 차려입고 하이힐 소리를 내며 박민정 옆에 와서 앉았다.

“밤이 참 춥네요. 한밤중에 남준 오빠 찾아갔다가 한바탕 농락당한 기분이 어때요?”

박민정은 묵묵히 들을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지원은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 제 말만 했다.

“그거 알아요? 처음에 나 민정 씨 엄청 부러워했어요. 집안 좋지, 자상하고 딸 아껴주는 아빠가 있어서 평생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지. 근데 이젠 민정 씨가 너무 가엽네요. 남준 오빠 10여 년간 묵묵히 좋아했는데 정작 오빠는 민정 씨한테 곁을 아예 안 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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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를 들여다보니 마침 10시 정각이었다.유남준은 그녀에게 전화해 도착했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멀지 않은 곳의 나무 아래에 박민정이 어두운 톤의 옷을 입고 서 있었다.주르륵 내리는 가랑비 속에 앙상하게 마른 그녀는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았다.금방 유남준과 결혼했을 때, 박민정은 밝고 긍정적이었다. 지금처럼 어두운 표정과 뼈만 남은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그는 우산을 들고 박민정에게 걸어갔다.그녀는 뒤늦게 유남준을 발견했다.3년 동안 유남준은 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멋있고 카리스마 넘치며 전보다 조금 더 성숙해진 모습이었다.3년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또 자신의 일생을 다 써버린 것만 같았다.유남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어서 사과하길 기다렸다.이젠 그만할 때도 됐지!하지만 정작 그녀의 말은 정반대였다.“남준 씨 일하는 데 방해되겠어요. 얼른 들어가요.”유남준은 안색이 확 어두워지고 표정이 얼어붙었다.“너 후회하지 마.”그는 이 한마디만 내던지고 가정법원으로 들어갔다.박민정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씁쓸했다.후회?그런 건 모르겠고 이젠 지쳐버렸다.한 사람이 떠날 결심을 했을 땐 아마 일말의 희망도 얻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인 실망이 너무 커 더는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겠지.이혼 절차가 진행되고 직원이 두 사람에게 정말 이혼하기로 결심했냐고 물었을 때 박민정은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다.“네.”그녀의 확고한 눈빛에 유남준은 가슴이 움찔거렸다.수속을 마치고 한 달이란 숙려기간이 있어 두 사람은 한 달 뒤에 또 이리로 와야 한다.만약 이 한 달 동안 오지 않으면 이혼 신청도 자동으로 폐지된다.가정법원을 나선 후 박민정이 유독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그럼 다음 달에 봐요. 잘 있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곧게 빗속으로 뛰쳐들어가 택시를 잡고 떠나가 버렸다.유남준은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며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이건 아마도 해탈이겠지.더는 그녀와 얽힐 필요도 없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0화

    기사를 열어보니 유앤케이 그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바움 그룹을 성공적으로 인수했다고 발표하는 내용이었다.이 세상에 더는 바움 그룹이 존재하지 않는다...기사에는 유남준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잘생긴 옆모습과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사진 아래에 댓글도 아주 많이 달렸다.「유남준 완전 잘생겼어, 젊은 나이에 그룹 총수라니.」「아쉽게도 유부남이네. 결혼 상대가 박씨 일가의 따님이랬나?」「정략결혼이지 뭐. 3년 전 그 기사 다 잊었어? 결혼식 때 유남준이 아예 신부 손을 뿌리치고 떠났었잖아...」「...」인터넷은 모든 걸 기록하고 있다.박민정은 3년 전 결혼식 날 유남준이 자신을 버리고 분노하며 자리를 떠난 일을 거의 잊고 있었다.그렇게 쭉 아래로 댓글을 읽어내려갔다.이 3년간 그녀는 바움이 조만간 무너진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다....유남준은 최근 흐뭇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바움을 인수하고 끝내 통쾌하게 복수했으니.김인우가 웃으며 말했다.“3년 전에 박씨 일가에서 사기 결혼을 강행하더니 인제 드디어 벌 받네.”그는 문득 화제를 돌려 옆에서 일하는 유남준에게 물었다.“남준아, 귀머거리 요즘 너한테 찾아와서 사정하지 않았어?”서명하던 유남준의 손이 멈칫 흔들렸다.왠지 모르지만 요즘 그의 주변에서 박민정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거의 이혼하는 마당에 왜 아직도 그녀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응, 없어.”그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김인우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박씨 일가에 이렇게 큰일이 발생했는데 박민정이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니?“걔 설마 진짜 해탈한 거 아니야? 누가 그러는데 걔네 엄마가 걔 찾느라고 사방으로 돌아다닌대. 대체 어디 숨었길래.”김인우가 쉴 새 없이 떠들어대자 유남준은 짜증이 확 밀려와 눈썹을 찌푸렸다.“나가!”김인우는 화들짝 놀라더니 그제야 그의 심기를 건드린 걸 알아채고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대표이사 사무실을 나섰다.그가 떠난 후 유남준은 무심코 휴대폰을 들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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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2화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1화

    김인우는 유남준의 마지막 한마디까지 다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그러면 지금 하랑 씨가 형수님이랑 같이 있다는 거지?”“응.”김인우가 왠지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 같아 유남준은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결혼 전에는 아무 여자나 끼고 놀아도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결혼도 했고 아이까지 있는 마당에 좀 조심해야 하지 않겠어?”김인우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황당하다는 듯이 그에게 답했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버릇 고친지가 언젠데, 예전의 내가 아니야.”“응, 그러면 다행이고.”“그러면 지금 하랑 씨는 병원에 있는 거야?”“응.”유남준은 대답하자마자 전화를 끊었는데 보아하니 오늘에도 독수공방해야 할 것 같았다.김인우는 그길로 빠르게 조하랑 보러 병원으로 달려갔다.그리고 가는 길에 방금 유남준이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설마 하랑 씨가 오해한 건가?’그러다가 눈이 번쩍 뜨이더니 무언가가 생각난 듯 자기 머리를 퍽퍽 내리쳤다.“이 멍청한 놈, 그때 통화하는 걸 분명 옆에서 다 들었던 거야!”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이지원의 영상을 자기한테 보내라고 했다.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다.조하랑이 막 잠들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누구세요?”박민정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간호사인가? 내가 가볼게.”“응.”박민정이 슬리퍼를 신고 문어구에 다가가 문을 열어보니 눈앞에 김인우가 서 있었다.“형수님, 하랑 씨 여기에 있나요?”김인우는 다급하게 물었다.박민정은 그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살짝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네.”“제가 들어가도 될까요?”그러나 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조하랑은 김인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다가와 차갑게 말했다.“아니요. 민정아, 너는 일단 먼저 자. 내가 나가서 말할게.”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를 한번 쏘아보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갔고 김인우도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하랑 씨, 진짜 오해예요.”그러나 조랑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0화

    김인우는 집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조하랑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식은땀이 맺힌 채로 급히 박예찬과 김훈에게 달려가 물었다.하지만 김훈은 일부러 모른 척하며 그가 이번 기회에 정신 좀 차리길 바랐다.“나도 몰라. 하랑이가 방에 없다고? 화장실 간 거 아니야? 화장실은 찾아봤어?” 김훈이 일부러 태연하게 말하자 김인우는 인상을 찌푸렸다.“거기도 없어요.”“그거 참 이상하네.”김훈은 걱정스러운 척하며 말했다.“그럼 멀뚱멀뚱 서서 뭐 하는 거냐? 어서 찾아봐야지. 지금 임신 중이잖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만두지 않겠다.”박예찬도 거들었다.“오늘 아줌마가 좀 안 좋아 보이긴 했어요. 혹시 가출하신 거 아니에요?”그 말에 김인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그는 곧장 조하랑을 찾아 나섰다.한편, 조하랑은 이미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박민정이 곁을 지키고 있었고 둘은 정수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병실로 들어가 조용히 대화를 이어갔다.“하랑아, 너 그냥 이렇게 온 거야? 가족한테는 말 안 했어?”조하랑은 고개를 저었다.“응. 그냥 조용히 나왔어. 지금은 누구 얼굴도 보기 싫어.”“그래도 집에 한 통은 전화해. 안 그러면 걱정하실 텐데.”박민정이 말했다.“괜찮아. 다들 내가 자는 줄 알 거야. 내일 아침에 슬쩍 들어가면 돼.”조하랑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임신 후로 김인우와는 방도 따로 쓰고 있었기에 자신이 방에 없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알겠어.”박민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조심스레 물었다.“그런데, 하랑아. 너 아까 말한 그 여자, 혹시 누군지 짐작은 가?”조하랑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난 김인우 주변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내가 남준 씨한테 한 번 물어볼게. 혹시 오해일 수도 있으니까.”“응, 좋아.”조하랑도 더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건 원치 않았다.박민정은 조하랑 앞에서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유남준도 막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9화

    조하랑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걱정 마, 민정아. 나 그냥 좀 화가 났을 뿐이야. 아직은 냉정해.”그리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기분이 나빠서 그래. 내가 지금 그 사람 아이까지 품고 있는데 저렇게 행동하면 기분이 어떻게 안 상하겠어.”박민정은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잠시 후, 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민정아, 나 네가 있는 곳으로 가도 될까?”“당연하지. 내가 데리러 갈게.”박민정은 임신한 친구의 감정이 요동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걱정된 마음에 바로 나섰다.하지만 조하랑은 코끝이 붉어진 채 대답했다.“아냐, 이미 차 탔어. 지금 가는 중이야.”그녀는 더 이상 그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김인우가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둘 수가 없었다.박민정은 그녀가 이렇게 단호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던 지라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알겠어. 그럼 내가 문 앞에서 기다릴게.”“응, 고마워.”...한편, 김인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길가에 있는 꽃집을 발견했다.그는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게 하고는 직접 차에서 내려갔다. 잠시 후, 그는 품에 형형색색의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돌아왔다.차에 다시 올라타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가자. 좀 빨리 가 줘.”예전에도 김인우는 여자를 위해 꽃을 보낸 적이 있었지만 그건 대부분 비서가 대충 주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꽃다발은 그가 직접 고르고 색을 맞춰 정성껏 고른 것이었다.운전기사도 그의 얼굴에서 어쩔 수 없이 번지는 미소를 보고는 감탄하듯 말했다.“사모님은 참 복도 많으시네요. 이사님께서 뭐든 다 챙기시니.”김인우는 입꼬리를 높이 올리며 웃었다.“당연하지. 내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사람이잖아. 그 정도는 해야지. 사실 하랑 씨가 임신하지 않았더라도 난 여전히...”하지만 마지막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그는 조하랑을 보기 위해 한 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8화

    조하랑은 요즘 집에서 태교에만 전념하고 있었다.그녀는 요 며칠 김인우가 어쩐 일인지 늦게야 귀가하는 게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어디를 다녀오는 건지 궁금해져 하녀에게 슬쩍 물었지만 하녀는 말끝을 흐릴 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그걸 본 김훈은 손자를 거론하며 말했다.“하랑아, 인우는 네 남편이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 거냐? 궁금하면 직접 전화해서 확인해. 딱 잡아봐야 정신 차리지.”그리고는 단단히 이죽였다.“만약 귀찮다느니, 피하려 든다느니 하면 내게 말해. 그놈 등짝 몇 대는 내가 책임진다.”조하랑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거나 집착하듯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임신한 이후로는 자꾸만 불안해졌다.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그가 밖에서 사고를 당하진 않을까, 예상치 못한 위험에 휘말리진 않을까 하고.아무래도 몸 안에 김인우의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걱정도 따라온 모양이었다.“...알겠어요.”조하랑은 김훈이 자신 편을 들어준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한 듯 더는 망설이지 않고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김인우는 아직 클럽을 떠나지도 않은 상태였다.“하랑 씨, 무슨 일이에요?”전화가 오자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다정하게 받았다.“지금 어디예요?”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김인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녀가 괜한 오해를 할까 싶어 거짓말을 꺼냈다.“아, 지금? 돌아가는 길이죠.”돌아가는 길이라고?그런데 조하랑의 귀에는 전화기 너머로 분명 남녀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누가 들어도 외부 소음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였다.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정말이에요?”“당연하죠. 내가 왜 하랑 씨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김인우는 그녀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필 그때, 뒤편에서 이지원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오빠,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오빠?그 말을 듣자마자 김인우는 재빨리 경호원에게 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7화

    바로 그때였다.차가운 눈빛 하나가 이지원을 향해 날카롭게 꽂혔다.이지원도 그 시선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짙은 먹빛처럼 어두운 김인우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오늘 김인우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바이어 몇 명을 데리고 식사를 하러 온 참이었다. 그런데 그가 본 것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이지원의 처참한 몰골이었다.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냉담했다.하지만 이지원은 그 눈빛마저도 한 줄기 희망처럼 여긴 듯 허겁지겁 바닥에서 일어나 울먹이며 소리쳤다.“인우 오빠! 오빠!”그녀는 그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김인우의 곁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즉시 그녀를 막아섰다.이지원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오빠, 제발... 날 좀 살려줘요. 나 좀 살려줘...”김인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이때 곁에 있던 바이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이사님, 혹시 아는 분입니까?”김인우는 천천히 시선을 거두며 냉정히 답했다.“제가 어떻게 저런 여자를 알겠습니까.”“그렇죠, 그렇죠.”바이어는 머쓱한 듯 웃으며 연신 사과했다.“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네요. 딱 봐도 저런 여자는 별로 좋은 사람 같지가 않더군요. 아마 이사님께 잘 보이려고 들러붙은 거겠죠.”진주시에서 김인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바이어는 이지원에게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며 옆의 경호원에게 명령했다.“저 미친 여자 좀 치워. 여기서 체면 깎지 말고.”“네, 알겠습니다.”경호원들은 말도 없이 이지원을 들쳐 업듯 끌어내어 도로가 쪽으로 내던졌다.끌려가면서도 이지원은 계속해서 외쳤다.“오빠, 왜 그래... 왜 나를 모른 척해?”“놔, 이 사람들아! 인우 오빠는 내 친구야! 그 사람이 이 일 알면 절대 너희들 가만 안 둘 거야!”그녀는 말끝마다 이를 악물며 말했다.지금의 이지원은 확실히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그녀는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과거의 자신이 잘나가던 시절의 기억 뿐이었고 김인우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6화

    “민정 씨,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제발 나 좀 도와줘요.”이지원은 박민정의 손을 덥석 붙잡고 애원했는데 눈빛엔 간절함이 가득했다.“이제는 정말 부탁할 사람이 민정 씨밖에 없어요. 내가 한창 잘 나갈 때 일도 너무 많이 벌였고 지금은 완전히 매장돼서 진 빚이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만큼이에요.”박민정은 조용히, 그러나 아주 냉정하게 그녀를 바라봤다.“왜 내가 당신을 위해 돈을 갚아줄 거라 생각하죠?”이지원은 순간 멍해졌다.요즘 들어 그녀는 자꾸 옛날 꿈을 꾼다. 박민정과 친구로 지내며 가까웠던 그 시절, 박민정은 늘 그녀를 감싸고 누가 괴롭히려 하면 앞장서서 막아줬고 어떤 일이든 조건 없이 도와줬다.그뿐만이 아니었다. 박민정의 아버지 역시 그녀를 친딸처럼 잘해줬고 학비도 지원해주며 박민정과 같은 학교를 다니게 해줬다.가끔 꿈에서 깨면 지금의 현실이 너무 낯설어 스스로가 믿기지 않을 때도 있었다.“민정아, 나 정말 후회하고 있어. 너한테 그런 짓을 한 내가 미쳤었어, 정말이야...”이지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박민정은 아무런 감정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손을 그녀의 손에서 빼냈다.“이지원,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이지원이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자 박민정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네가 지금처럼 망가지지 않았다면 넌 후회했을까?”이지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생각해봐. 네가 아직도 잘나가는 톱스타였다면, 남준 씨랑 인우 씨가 아직도 진실을 모른 채 널 감싸고 있었다면 넌 지금처럼 후회하며 내 앞에 이렇게 무릎을 꿇었을까?”박민정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이지원은 아마 자신을 더 깊이 짓밟고 더 높은 곳에서 비웃었을 것이다.이지원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였다.박민정의 눈은 깊고도 고요했는데 마치 파동조차 없는 죽은 물처럼 어떤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예전엔 널 정말 내 가장 소중한 친구라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사람을 잘못 봤더라. 이젠 너에게 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5화

    윤소현의 일이 터지자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중에는 한동안 집에 틀어박혀 지내던 이지원도 있었다.요즘 이지원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빚쟁이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와중에 박민정과 유남준이 자신을 찾아올까 봐 늘 초조한 심정으로 지내고 있었다.하지만 이지원은 몰랐다.그 불안감 자체가 박민정이 의도한 것이란 걸.박민정은 윤소현의 문제를 매듭짓자마자 곧장 정민기에게 물었다.“요즘 이지원은 어떻게 지내요?”정민기는 그녀가 어느 허름한 월셋집에 숨어 살며 배달이나 택배를 받을 때만 문을 열고 그 외엔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그 말을 들은 박민정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아직도 제정신으로 살고는 있나 보네요.”이지원은 자신뿐만 아니라 조하랑까지 위기에 몰아넣을 뻔했다. 그런 그녀를 그냥 둘 수 없었다.“이젠 그 평온한 삶에도 금이 좀 가야겠죠.”박민정은 조용히 말했다.정민기는 그 말뜻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지시를 내렸다....그날도 이지원은 언제나처럼 문 앞에 도착한 택배를 가지러 나섰다. 하지만 그 순간, 서너 명의 남자들이 그녀를 둘러쌌다.그중 선두에 선 남자가 비웃듯 말했다.“우리 대스타님, 어디 가시나?”이지원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아무 데도 안 가요. 정말이에요.”“그래서 돈은 언제 갚을 건데? 당신 같은 사람 믿고 우리 사장님이 그 딜 들어갔다가 결국 손해만 봤잖아. 안 그래?”남자는 거칠게 그녀의 팔을 움켜잡았다.“제발요. 진짜 돈이 없어요... 제발 한번만 봐주세요…”이지원은 애걸했다.“돈이 없으면 일이라도 해야지, 그렇게 방구석에 처박혀서 빚만 미루고 있으면 되겠어?”사방을 둘러싼 이들은 이지원을 완전히 포위했다.이지원은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지만 몸을 뺄 수가 없었다. 결국 일해서 갚겠다는 조건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이미 업계에서 퇴출당한 몸, 일자리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결국, 이지원은 다시 ‘제우스 클럽’으로 돌아왔다.예전에 그녀는 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4화

    이미 손연서의 번호는 더는 연결되지 않았다.오준수가 다급하게 물었다.“어때요? 뭐래요?”차현영의 눈빛에는 짙은 분노가 어려 있었다.“손연서 저년은 아예 우리랑 인연을 끊고 살 작정이야.”그 말을 들은 옆자리의 오성훈이 발끈했다.“아빠, 할머니! 나 집에 갈래요! 나 비행기 갖고 놀고 싶단 말이에요! 도대체 언제 집에 가요?”오준수는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조용히 해! 지금 집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라?”하지만 오성훈은 그런 사정쯤엔 관심이 없었다.“나 금희 아줌마가 만든 대추떡 먹고 싶어요! 아줌마 불러와요! 당장!”허금희는 오씨 가문이 파산한 이후, 오준수가 내쫓아버린 가사도우미였다.차현영은 손자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렸다.“그래그래, 우리 착한 성훈이. 조금만 있으면 아줌마 다시 부를게. 그때 대추떡 많이 해달라 하자, 응?”“싫어요! 지금 당장 먹고 싶단 말이에요! 지금!”오성훈은 철없이 키워진 탓에 떼를 쓰기 시작했다.“먹을 거, 먹을 거! 입만 열면 먹을 거냐? 계속 이러면 진짜 혼난다?”오준수는 참다못해 고함을 질렀다.태어나서 처음 아버지에게 소리를 들은 오성훈은 놀란 눈으로 울음을 멈췄지만 그 잠깐의 정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내 방 안은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찼고, 그 어떤 달램도 통하지 않았다.그렇게 오씨 가문 식구들 모두는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채권자들은 이들의 사정을 봐줄 만큼 착하지 않았다.그 다음 날 아침, 오씨 가문의 저택이 압류되었다.오준수는 하룻밤 새 작은 사업가에서 무일푼의 노숙자가 되었고 차현영은 분노와 스트레스로 결국 병이 나 병원에 입원했다.그리고 오성훈은 계속 울기만 하며 ‘집에 갈래’를 외쳤다.“연서 엄마 불러줘요. 연서 엄마 보고 싶어요!”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손연서가 곁에 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좋은 대접을 받았는지를. 하지만 모든 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손연서는 부하에게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그들이 과거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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