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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루루
다음 날, 강하임은 아주 일찍 일어났다.

양수원은 10시가 되어서야 깼다.

이어 안방에서 나와 아내가 식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쓰는 모습을 보고,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노트에는 빼곡하게 글자가 적혀 있었다.

양수원은 한 줄씩 훑어보다가 그것이 오늘 강하임이 할 일들의 목록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첫 번째, 본가에 한 번 간 후, 친구들을 만나기.]

[두 번째, 호숫가에 가서 비둘기 먹이 주기.]

[세 번째, 술집에 가서 한 번 취해 보기.]

[...]

“이런 건 왜 적고 있어?”

강하임은 펜을 쥔 손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버킷 리스트.”

그 말을 듣자 양수원은 무언가 떠올린 듯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너 17살 때도 버킷 리스트를 썼었잖아.”

말은 중간에서 끊겼고, 그 표정에는 뒤늦은 후회가 번졌다.

강하임은 알았다.

양수원은 자신이 옛일을 꺼내 그녀를 아프게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강하임은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말을 이어받았다.

“맞아. 그때는 18살이 되기 전에 하고 싶은 백 가지를 썼지. 번지점프도 하고, 스키도 타고, 래프팅이랑 서핑도 해 보고...”

“하나같이 무모한 것들이었어. 그런데 너는 나보다 더했지. 전부 기록해 주고, 나랑 같이 다 해 봤잖아.”

그리운 말투를 듣자 양수원의 머릿속에도 오래된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는 웃었다.

“내가 그만큼 너를 좋아했으니까. 네가 뭘 하든 따라가고 싶었어. 그땐 네가 옆에 있으면 아무것도 겁나는 게 없었거든. 눈 감고 몇백 미터 위에서 뛰어내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하임은 들뜬 표정으로 말하는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양수원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와 그녀에게 닿았을 때, 강하임은 문득 엉뚱한 말을 했다.

“이렇게 즐겁게 웃는 너... 정말 오랜만에 봐.”

양수원의 웃음이 그대로 굳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는 곧 화제를 돌렸다.

“이번 리스트들도 내가 같이 해 줄까?”

강하임은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고집이 있었다.

“내 소원이야. 너랑은 상관없어. 너 바쁘잖아. 괜찮아.”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양수원은 아내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몇 마디 더 설득하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자 방금 사라졌던 웃음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일이야’라는 말만 남기고 강하임의 표정도 보지 않은 채 방을 나갔다.

양수원의 뒷모습을 보며 강하임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예전에도 강하임은 혼자 도전하고 싶다며 그의 제안을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양수원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애원도 하고 떼도 쓰며 끝까지 따라붙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는 더 설득하지도 않았다. ‘걱정돼서 그래’ 같은 말조차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라고 했다.

강하임은 예전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함께 늙어 가리라 믿었던 미래에 닿기도 전에, 두 사람의 사랑은 길 한복판에서 무너져 내렸다.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남은 것은 끝없는 피로뿐이었다

강하임은 혼자 조용히 목록을 끝까지 썼다.

마지막으로 비워 두었던 제목 칸에, 또박또박 네 글자를 적었다.

‘유서 목록’이었다.

펜을 내려놓자 옆에 있던 핸드폰 화면이 켜졌다.

예나혜였다.

이번에는 양수원의 조수석에 앉아 찍은 사진이 도착해 있었다.

처음 그런 메시지를 봤을 때, 강하임은 심장이 찢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이제는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옆에 있던 노트북을 켜고 메시지를 옮겨 담았다.

프린터로 출력한 뒤, 방금 쓴 버킷 리스트와 함께 서랍 안에 넣었다.

그런 도발의 기록은 이미 서랍 속에 꽤 많이 쌓여 있었다.

최근 며칠 동안 강하임이 하나씩 모아 둔 것들이었다.

강하임에게 죽음은 해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양수원과 예나혜를 축복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양수원이 강하임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면, 적어도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 마음을 숨긴 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됐다.

예나혜 역시 몇 번이고 강하임을 찌르듯 건드려서는 안 됐다.

그녀가 한 일들은 일기장 속에 적힌 ‘좋은 여자’와는 너무나 달랐다.

오히려 그편이 나았다.

양수원이 예나혜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되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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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을 신청했습니다   제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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