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주민혁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고 오늘 밤 안으로 다시 캠프로 돌아가야 했다.이곳 상황은 이제 겨우 기본적인 틀만 잡아 둔 정도였다. 율이를 옮길 안전가옥부터 경호 인력, 외부에 어떤 식으로 정보를 차단할지까지, 전부 그가 직접 연락해 하나하나 확정해야 했다.멀리서 지시하는 것보다 직접 현장에서 챙기는 편이 훨씬 확실했다.게다가 엘리아스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숨어 있었다. 부두에 남아 있는 잔당들, 해상 순찰, 육로 검문소까지 어느 한 곳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기에 그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지금까지 짜 놓은 계획 어디에서든 빈틈이 생길 수 있었다.그런 주민혁을 바라보자 최수빈은 점점 가슴이 조여 왔다.그가 지난 며칠을 어떻게 버텨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부두에서 포위망을 뚫고, 다시 기습을 감행하고, 자신을 호송하다 추격을 당하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고, 변장한 채 시내로 돌아온 데다 또 밤새 차를 몰아 여기로 오기까지...제대로 눈을 붙인 적이 거의 없었고 편히 앉아 물 한 모금 마실 여유조차 없을 정도였다. 이제 겨우 숨 좀 돌리나 했더니 또 곧장 돌아가 그 모든 걸 짊어져야 했다.“지금 바로 가려고요?”최수빈이 걱정을 감추지 못한 채 조용히 물었다.“아직 날도 안 밝았잖아요. 한두 시간이라도 좀 쉬었다가, 날 밝아서 가면 안 돼요?”주민혁은 손을 뻗어 바람에 흐트러진 그녀의 앞머리를 살며시 넘겨주었다. 손길이 한없이 다정했다.“안 돼. 내가 자리를 비우면 여러 일이 바로 꼬여. 엘리아스가 어떤 놈인지 너도 알잖아. 내가 빈틈을 보이기만 기다리고 있어. 내가 일 분이라도 늦어질수록 너희가 위험해진다고.”“그래도 민혁 씨 몸이...”최수빈은 목이 메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가 물었다.“아직도 잠 잘 못 자요?”그 말을 꺼내고 나니 오히려 자신부터 코끝이 시큰해졌다.그가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려 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늘 생사가 오가는 일을 다루는 자리에 있다 보니 마음을 놓을 틈이 없었
율이는 아직 너무 어려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없었다. 그런 아이가 놈들의 표적이 되기라도 한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최수빈이 마련해 둔 방법도 얼핏 보기엔 안전해 보였지만 허점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결국 주민혁 그가 직접 나서야 했다. 자기 방식대로, 그 누구도 뚫을 수 없는 가장 단단한 울타리를 아이 주위에 쳐야 했다.한편 전화를 끊은 최수빈은 여전히 거실에 앉아 있었다. 잠은 조금도 오지 않았다.주민혁의 침묵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이미 뭔가 눈치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고 지금은 거짓말로라도 모든 걸 감춰야 했다.최수빈은 소파에 기대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을 바라봤다. 마음 한구석에는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과 걱정이 가득했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밖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현관문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놀란 최수빈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이 늦은 시간에 누가 온 거지?’곧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익숙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관에 주민혁이 서 있는 것이었다.굳게 다문 입술과 팽팽하게 굳은 턱선만 봐도 그가 얼마나 다급하게 달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그는 잠도 자지 않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은 채 곧장 달려온 듯했다.최수빈은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놀란 눈으로 주민혁을 바라봤다. 목소리마저 살짝 떨리고 있었다.“여긴 왜 왔어요? 캠프 쪽에 할 일도 많잖아요. 설마 밤새 달려온 거예요? 그 먼 길을 이 시간에 달려오면 어떡해요. 몸 상하려고 작정했어요?”주민혁은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앞에 섰다.그의 시선이 한순간도 최수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눈에는 피로와 초조함, 그리고 걱정하는 기색이 짙게 배어 있었지만 원망이나 나무라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주민혁이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안 오면 어떡해. 네가 율이를 위험한 곳에 두고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려는 걸 뻔히 알면서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
떠나기 전, 송미연은 아이를 안고 있는 최수빈을 돌아보며 조용히 당부했다.“몸 잘 챙기고 율이도 잘 돌봐. 이번 임무에서 우리 목표는 하나야. 무사히 돌아오는 것.”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이윽고 거실에는 그녀와 곤히 잠든 딸만 남았다.최수빈은 율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침실로 데려가 작은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는 이불을 잘 덮어 준 뒤, 아이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다시 거실로 나온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고 한참 동안 화면 위에서 망설이다가 마침내 주민혁의 번호를 눌렀다.신호음이 몇 번 가지 않아 전화가 연결됐다.수화기 너머로 낮고 지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쪽에서는 무전기의 잡음과 바람 소리가 희미하게 섞여들었다. 아직 캠프에서 일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여보세요.”주민혁의 목소리는 피곤한 탓에 낮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녀에게 말을 건넬 때만큼은 은근히 부드러워졌다.“집에는 무사히 도착했어? 별일 없고?”“네, 괜찮아요. 집에 잘 왔고 율이도 잘 있어요.”최수빈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다.“민혁 씨, 나 할 말이 있어요.”“말해.”주민혁의 목소리가 곧바로 진지해졌다.“갑자기 출장이 잡혔어요. 다른 지역에 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는데 짧게 끝나진 않을 것 같아요. 정확히 언제 돌아올지도 아직 모르고요.”최수빈은 최대한 담담하게 한마디씩 이어 갔다.“율이는 엄마한테 맡기기로 했어요. 집 걱정은 하지 말고 민혁 씨는 국경 쪽 일에만 집중해요.”전화기 너머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주민혁은 캠프 지휘 천막 밖에 서 있었는지라 한밤의 찬바람이 옷자락을 세차게 흔들고 손끝까지 차갑게 식혀 갔다.최수빈의 목소리는 너무나 평온하여 조금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그런데 바로 그 지나치게 아무렇지 않은 말투가 주민혁의 마음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불길한 예감이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았다.그녀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출장을 떠날 리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율이는 낮 동안 아빠가 언제 돌아오느냐고 수도 없이 물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금방 올 거야.”그 말을 몇 번이고 들은 끝에야 마음을 놓은 듯,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편안히 잠들었다.육민성과 송미연은 아직 돌아가지 않고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분위기는 무거웠다.해외 파견 소식은 갑작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전혀 예상 밖의 일도 아니었다.국제 정세가 불안한 지금, 중요한 자리에 있는 그들에게는 애초에 물러설 선택지 같은 건 없었다.명령이 떨어지면 짐을 꾸려 또다시 앞을 알 수 없는 현장으로 떠나야 했다.“시간이 촉박해. 일단 사흘 뒤 출발하는 거로 얘기가 나왔어.”육민성이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 목소리를 낮췄다.“장소는 우선 동남아 쪽 조정센터로 잡혔어. 최근 그쪽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사건이 잇따라 터져서 현지 상황을 수습할 인력이 급하게 필요한 모양이야. 두 사람 다 명단에 들어가 있어.”송미연은 손끝으로 무릎을 가볍게 두드리며 율이의 앳된 얼굴을 바라봤다.“그럼 사흘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집안일 전부 정리하고 이후 일까지 다 준비해 둬야 한다는 거네요. 율이는 무조건 안전하고 믿을 만한 사람한테 맡겨야 해.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안 돼.”품 안의 딸을 내려다보자 최수빈은 가슴 한쪽이 꽉 조여 오는 듯했다. 떠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서운함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알아.”최수빈이 조용히 말했다.“율이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어. 그쪽 상황이 어떤지도 확실하지 않고 우리조차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데 아이를 데려가는 건 말도 안 되지. 엄마한테는 이미 연락해 뒀어. 아직 건강하시고 원래도 율이랑 더 자주 지내고 싶어 하셨으니까 당분간 맡기는 게 제일 안전할 것 같아.”육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가장 낫겠네. 어머님 댁이 외곽이라 사람들 눈에도 잘 띄지 않고 평소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으니 안전 면에서도 괜찮을 거고.”그가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물었다.“
송미연도 자세를 바로잡았다.“말해 봐요.”“요즘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육민성은 한층 무거워진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을 이어갔다.“여러 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어서 정보 쪽도, 외교 쪽도 전부 여력이 빠듯한 상황이야. 윗선에서 방금 내부 회의를 마쳤고, 인력 운용 방안도 정해졌어.”그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최수빈과 송미연을 차례로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결론을 꺼냈다.“우리, 해외 파견 나가게 될 것 같아.”거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따뜻한 조명은 여전히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고 최수빈의 품에 엎드린 율이는 어른들 사이에 갑자기 내려앉은 무거운 분위기도 모른 채 엄마의 옷자락만 만지작거렸다.먼저 입을 연 건 송미연이었다.“기간은요? 어디로 가는데요?”“아직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고 기간도 짧진 않을 거야.”육민성이 대답했다.“인접국 대사관으로 갈 수도 있고 더 먼 지역의 현지 조정센터로 갈 수도 있어. 보직 자체가 민감한 데다 업무 강도도 세고 평소보다 위험 부담도 훨씬 커.”율이를 안고 있던 최수빈의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그녀는 불과 얼마 전까지 국경에서 생사를 오가는 상황을 겪었다.이제 막 집으로 돌아왔고 이제 막 딸을 품에 안았고 이제야 잠깐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다음 임무가 눈앞에 닥친 것이다.해외 파견.정세 불안 지역.고조된 긴장.그 말 하나하나가 곧 이별과 긴 시간의 헤어짐, 그리고 앞을 알 수 없는 위험을 뜻했다.송미연이 잠시 침묵하다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오빠, 지금 우리한테 통보하러 온 거예요? 아니면 상의하러 온 거예요?”육민성이 그녀를 바라보며 솔직하게 답했다.“통보에 가깝고 상의할 여지는 조금 남아 있다고 보면 돼. 결정은 거의 끝났고 아직 공식 문서만 안 내려온 상태야. 미리 알려 주는 건 마음의 준비도 하고 집안일도 정리해 두라는 뜻이고.”그가 이번에는 최수빈을 바라봤다.“넌 국경에서 막 습격까지 당했고 신분도 민감하잖아. 윗선에서 널 파견 명단에 넣
이제 엘리아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끝까지 미친 듯이 반격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것.어느 쪽이든 방심할 수는 없었다.그래도 최수빈이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사실만큼은, 지금 이 순간 주민혁이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일이었다.최수빈이 별다른 문제 없이 시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어느덧 저녁 무렵이었다.차가 건물 앞에 멈추고 경호 인력이 주변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 뒤에야 그녀는 차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갔다.현관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집 안의 공기가 훅 끼쳐왔다.그제야 아찔한 순간들을 겪으며 국경에서부터 줄곧 이어졌던 긴장감이 조금씩 가라앉는 듯했다.거실에는 따뜻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소파에는 낯익은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연회색 셔츠를 입은 육민성은 부드러운 인상 속에서도 날카로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조용히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그 옆에는 송미연이 기대앉아 손끝으로 펜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편안해 보이는 태도와 달리 눈빛만큼은 맑고 예리했다. 둘 다 일부러 최수빈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이에 최수빈은 신발을 갈아 신고 들어오며 한숨을 돌렸다.“두 사람이 왜 여기 있어요?”“그쪽에서 일이 꽤 크게 터졌다길래 걱정돼서 왔지.”송미연이 먼저 입을 열며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다친 데는 없어 보이네. 그나마 다행이다.”육민성도 서류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오는 길은 괜찮았어? 민혁 씨 쪽 상황은?”“큰일 날 뻔하긴 했는데 어쨌든 무사히 빠져나왔어요.”최수빈은 소파에 앉아 가사도우미가 건넨 미지근한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며칠 동안 쌓인 피로를 조금 가라앉힌 뒤 말을 이었다.“미행당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뛰어내렸고 나중엔 변장해서 겨우 빠져나왔어요. 민혁 씨가 이미 지원 요청을 해 둬서 국경 쪽은 당분간 버틸 수 있을 거예요.”그러자 육민성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엘리아스 씨 쪽 사람들이야?”“그 사람 말고는 이렇게 다급하게 움직일 사람이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