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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or: 맑은하루
시간은 언제나 공평했다. 누구를 위해 멈춰 주지도, 누구를 위해 더 빨리 흘러가지도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이 예정대로 찾아왔다.

밖에서는 혼례 행렬이 들뜬 분위기 속에서 세자부로 향하고 있었다.

저택 일을 관리하는 어멈은 아무리 찾아도 부인을 찾지 못하자, 급히 작은 마당으로 향했다.

역시나 부인은 아직도 깊이 잠들어 있었다.

온몸은 열로 달아올랐고, 얼굴은 온통 망가져 있었다.

어멈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자부의 경사에 세자빈이 빠질 수는 없었다.

그녀는 억지로 채연을 일으켜 세자빈의 예복을 입히고, 머리 장식까지 모두 갖춰 씌웠다.

예복 위에 줄지어 수놓은 꿩 문양이 고귀하고 화려했으며, 길게 늘어진 자락은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정교한 예복 적의 위에는 살이 뒤집히고 상처투성이가 된, 차마 보기 힘든 끔찍한 얼굴이었다.

채연은 어멈이 하는 대로 가만히 몸을 맡겼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저항하지도 않았다.

세상은 언제나 새 인연의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만, 버려진 이의 눈물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총애를 잃은 세자빈인 그녀는 결국 때마침 좋은 기회를 얻었을 뿐인 찻잎 따던 여인이었다.

이제 얼굴마저 망가진 그녀는 그저 남의 손에 마음대로 휘둘리는 처지일 뿐이었다.

상처를 치료할 약과 붕대조차 가질 수 없는 비참한 신세였다.

채연은 억지로 끌려가며 대청으로 향했다. 그런데 세자빈의 자리에는 버젓이 돼지머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옆에 있던 시녀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마마, 안화 낭자께서 방금 마마께 절하지 않겠다고 하셨고, 세자 저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채연은 돼지머리를 바라보며 비웃듯 말했다.

"눈 두 개에 입 하나, 생김새도 곱구나. 나보다 훨씬 보기 좋으니, 잘됐구나. 정말 잘됐다..."

시녀는 바닥에 무릎 꿇은 채 몸을 떨며 말했다.

"안화 낭자께서 또... 마마께서 피로 화합 경문을 아흔아홉 번 베껴 두 분께 복을 빌어야만 저택에 들어오겠다고 하셨고, 세자 저하께서도... 허락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채연의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네 말은... 서지우가 허락했다는 것이냐?"

"네."

시녀는 바닥에 엎드린 채 두 손으로 종이와 붓을 받쳐 올렸다. 옆에는 비수와 벼루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마, 경문을 베껴 주십시오!"

채연의 손끝이 결 고운 종이에 닿는 순간, 마치 불길에 덴 듯한 뜨거움을 느꼈다.

그녀는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너무 세게 힘을 준 탓에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몇 명의 하인이 뒤를 지키고, 채연은 홀로 사당에 무릎 꿇었다. 그녀는 아무 표정 없이 손목을 그었고, 흘러내린 피는 물처럼 벼루 안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붓을 들었다. 붉게 젖은 붓끝이 새하얀 종이 위에 닿자, 눈이 시릴 만큼 선명했다.

그녀는 영혼 없는 꼭두각시처럼 같은 글귀만 끊임없이 되풀이해 적었다.

"부부가 화목하기를 바라며, 금슬처럼 서로 어울리고, 사랑하며,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를..."

"오늘 길한 날을 맞이하여... 부부가 화합하고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란다."

화합 경문을 다 베껴 쓰자마자 대청에서 경사를 알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자빈께서 피로 화합 경문을 베껴 두 분의 백년해로와 영원한 화합을 기원하셨습니다!"

징과 북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하객들의 축하 인사, 폭죽 터지는 소리까지 뒤섞여 바닥에 쓰러진 채연의 귀에 흘러들었다.

채연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 몸을 바로 세운 뒤, 화합 경문 옆에 떨리는 손으로 혈서를 써 내려갔다.

"세자 저하께:"

"서지우, 어제는 제가 처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른 거였고, 오늘은 마지막입니다."

"찻잎 따던 여인이든, 부잣집 아씨든, 당신이 사랑한 것은 결국 당신 스스로 옳다고 여긴 연민일 뿐입니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 아흔아홉 번의 화합 경문으로 당신들의 이번 생을 축복하고, 다음 생에는 다시는 당신을 만나지 않기를 빌겠습니다.

"서지우, 화리조차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이제는 사별로 끝내겠습니다."

채연이 붓을 내려놓자, 갑자기 피를 토했다. 아직 마르지 않은 혈서 위에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문틀을 붙잡은 채 한 걸음씩 밖으로 향했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은 대청에서 새 신부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제야 어머니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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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간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   제19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성의 한 세자가 조정에 청하여 비적 토벌에 나섰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성을 함락시키고 적진을 무너뜨릴 때마다 목숨을 내던진 듯 싸웠다고 했다.그가 경성 주변에 수십 년간 뿌리내린 비적 소굴을 소탕하는 데 단 석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친히 그를 충용후(忠勇侯)로 봉했다.그 후 본래라면 경성 사방으로 나아가 계속 비적을 토벌해야 할 충용후는 뜻밖에도 가장 먼저 친위대를 이끌고 요주로 향했다. 요주에서 가장 뿌리 깊은 비적 소굴을 없애고, 그곳에 거점을 세워 백성들이 비적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지켰다.일 년 후, 채연은 찻집을 열었고, 백현진은 그 옆에 의원을 열었다.붉은 천을 걷어 내는 순간, 채연은 멀리서 익숙한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것을 보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서지우가 온 것이었다.'그녀는 백현진과 함께 웃으며 찾아와 준 손님들을 맞이했고, 다시는 바깥을 바라보지 않았다.백현진은 웃으며 채연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같은 개업인데 어찌하여 네 찻집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내 의원은 파리만 날리는 것이냐?"채연은 팔꿈치로 그를 툭 찔렀다."거긴 의원입니다! 의원이 문전성시를 이루길 바라십니까? 그건 오히려 큰일이지요!"백현진은 웃으며 두 걸음 물러났다."네. 주인장께서 참으로 현명하십니다!"채연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받아쳤다."제가 당연히 현명하지요. 당신이 제 얼굴로 실험한 것까지 알고 있으니까요!"그러면서 그녀는 그에게 몇 대 쥐어박으려 했다.백현진은 그 광경을 보자 목을 움츠리고 달아났다."그래도 내가 결국 고쳐 주지 않았느냐? 게다가 내가 익숙하다고 한 적도 없잖니?"서지우는 찻집 안에서 웃고 떠들며 장난치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 문득 자신과 채연이 함께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녀는 늘 세자빈이라는 명분에 짓눌려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아무리 아껴 주어도 그녀는 한 번도 이렇게 거리낌없이 자신을 대하지 못했다.서지우의 눈가가 시큰했다.그가 없을 때야 그녀

  • 지나간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   제18화

    "처음 제가 당신에게 시집간 것은 확실히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언젠가 사라지는 법입니다. 당신이 윤안화를 데려서 돌아오고, 윤안화가 녹차떡을 먹는 일이 우리 어머니의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듯 행동했을 때, 어머니가 저에게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 알면서도 윤안화를 위해 어머니에게 저승 혼례를 억지로 치렀을 때, 제가 목이 터질 만큼 애원했지만, 돌아온 것은 뺨뿐이었을 때,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당신과 당신의 새 여인을 위해 피를 내어 경문을 베껴야 했을 때...""그런데도 제가 품었던 그 허무한 감정이 아직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맞습니다. 당신은 저를 두 번 구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당신에게 빚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제 목숨을 가져가셔도 됩니다. 어차피 세자이시고, 당신의 권세 앞에서 저는 한낱 미물일 뿐입니다.""제게는 확실히 맞설 힘이 없습니다. 제가 가진 것은 언제든 스스로 끊어 버릴 수 있는 이 목숨 하나뿐입니다.""서지우, 우리 사이에는 제 어머니의 목숨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더는 미래도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이미 오래전에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가벼웠고 슬픔도 분노도 없었다. 마치 오늘 아침 찹쌀떡을 먹었다는 말하는 것처럼 담담했다.서지우의 온몸이 떨렸다. 그는 채연이 자신에게 남긴 그 혈서를 떠올렸다."화리조차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이제는 사별로 끝내겠습니다.""이제는 사별로 끝내겠습니다!"'그렇다. 그토록 단호한 사람이 어찌 다시 돌아오겠는가?'정말 마음이 완전히 죽어 버린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제 그의 자리는 없었다. 오직 그만을 위해 뛰던 그 마음을, 그가 제 손으로 부숴 버린 것이다.채연은 말을 마치고 약그릇을 내려놓은 뒤 문밖으로 나갔다. 백현진은 줄곧 문밖에 앉아 있었다.그는 눈앞의 다원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그녀는 그의 곁

  • 지나간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   제17화

    "그럼... 나는 어떠하냐?"백현진은 조심스럽게 면사 너머로 생각에 잠긴 여인을 바라보았다.채연은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그가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나는 네 마음속에서 아무 의미 없는 과객이 되고 싶지 않다."백현진은 품속에서 나무 비녀 하나를 꺼냈다. 직접 조각한 것이고, 위에 새겨진 연꽃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했다."채연, 나는 너를 좋아한다.""스승님...""그리 빨리 답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알고 있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다만... 언젠가 그런 마음이 생긴다면, 그때는 나를 먼저 떠올려 주거라."말을 마친 그는 나무 비녀를 그녀의 손에 넣었다."생일 축하한다."채연은 나무 비녀를 손에 쥔 채 한참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지금의 삶은 좋았다. 그녀도 이 삶을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제 누구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녀가 고개를 들자, 멀리서 수많은 사람이 보석과 옥기를 줄줄이 다원 안으로 들이는 모습이 보였다.채연은 황급히 달려가 문 앞을 막고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그녀는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듯한 서지우를 고집스럽게 바라보았다.그는 마치 더는 자기 몸을 지탱하지 못할 듯했다."채연, 생일 축하한다.""채연, 윤안화는 곧 죽게 될 것이다. 그년이 너에게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나도 안다. 그리고 윤안화는 마땅한 벌을 받았다. 지금의 내가 너에게 용서를 구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반드시 노력해서 삼 년 전처럼 너에게 잘해 주겠다.""채연, 네 마음속에 아직 내가 있다는 걸 안다. 그렇지 않다면 너도 굳이..."채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서지우, 더 이상 혼자서 착각하지 마십시오. 계속 저를 몰아붙인다면 저는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제가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걸 아시잖습니까?"서지우의 몸이 휘청였다. 그녀 손에 있는 나무 비녀를 본 그의 눈에는 억눌린 감정이 스쳤다. 다른 사내가 그녀에게

  • 지나간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   제16화

    채연은 다원을 가꾸고 나서 매일 백현진을 따라다니며 진료를 나갔다. 요주에는 이미 두 사람을 아는 이들이 많았지만, 채연의 얼굴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사람들은 모두 그를 공손히 "의원님"이라 부르고, 그녀를 "낭자"라고 불렀다.서지우는 찻집에 앉아 분주히 움직이는 채연을 줄곧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그녀 뒤의 연못을 스쳐 지나갔다. 한창 여름이라 연꽃은 만개했고, 연방은 푸르게 익어 있었다.문득 채연이 예전에 연못에 숨어 연밥을 먹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일이 떠올랐다.그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작은 배 한 척이 있었다.서지우가 배에 올라서자,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물속에 빠졌다.그는 수면에서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지만, 채연은 그를 보지 못한 것처럼 태연히 멀리 있는 배에 올라 연못 안으로 들어갔다.서지우는 초라한 모습으로 겨우 기슭에 올라왔다. 그때 면사를 쓴 채연이 배를 물가에 대고, 연못 주인장에게 동전 몇 닢을 건넨 뒤 기쁜 얼굴로 백현진에게 달려가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그녀의 품에는 연꽃과 연잎, 연밥이 가득 있었다. 맑고 청아한 그녀의 목소리는 의혹하고 흔들리던 서지우의 마음을 꿰뚫었다."드셔 보십시오. 방금 딴 연밥이라 가장 달고 향긋합니다. 이 가장 알찬 것은 스승님께 드리겠습니다."그 장면은 어딘가 익숙했다.그 순간, 그는 확신했다.'저 여인은 분명 나의 채연이었다!'"채연!"그는 달려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며 물었다."어찌... 나를 모르는 척하는 것이냐?"백현진은 단숨에 그를 밀어냈다."이미 사람을 잘못 보셨다고 했거늘 어찌 이리 계속 얽히려 하십니까?"평소의 차가운 모습을 잃은 서지우의 눈에는 경고의 뜻이 가득했다. 그는 백현진을 거칠게 밀어냈다."꺼지거라! 이것은 나와 내 부인 사이의 일이다. 남인 너랑 무슨 상관이냐?"채연은 이대로 계속된다면 자신과 스승에게 폐만 끼칠 뿐이고, 아무런 이득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 지나간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   제15화

    채연은 날마다 백현진을 따라다니며 이곳저곳에서 진료를 도왔다. 벌어들이는 돈은 때로 자신의 끼니를 해결하기에도 부족했다."아휴... 이제야 스승님이 어째서 저를 구해 주셨는지 알겠습니다.""어째서?""스승님 마음씨가 부처님 같으시니까요!"요 며칠 두 사람은 발에 불이 나도록 바빴지만, 백현진에게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었다.노인과 약자, 병든 이, 신체장애인들에게는 진료비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때로는 약재값까지 보태야 했다.백현진은 웃으며 말했다.백현진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래. 내일은 의원을 구한다는 방문을 떼어놔서 현령의 화류병을 고쳐 주고 큰돈을 벌어 오마. 그때가 되면 취향루(醉香樓)를 통째로 빌려 너를 데려가마!"채연은 탄복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진은 웃으며 그녀의 면사를 살짝 걷어 올리고, 채연을 바라보며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그의 얼굴이 다시 달아오르자, 곧장 시선을 돌렸다.'어찌 이리 순진하고 쉽게 만족하는지... 누군가에게 홀리기 참 쉬운 성정이구나.'그녀가 지난날 겪었던 일과 앞으로 마주할 일을 떠올리면, 가슴 위에 커다란 돌덩이가 얹힌 듯 무겁고 괴로웠다.그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마음 한편은 기쁘게 들뜨면서도, 다른 한편은 불안하기만 했다.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한 다원을 지나게 되었다. 그 다원이 매물로 나온 것을 본 채연은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서둘러 정리해 객주로 향했다.백현진은 의아한 듯 물었다."그 다원은 보기에는 좋은 땅 같지 않은데?"채연은 돈을 치르고 절차를 모두 마친 뒤에야 조용히 대답했다."요주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서늘합니다. 여기엔 홍토라서 홍차, 녹차, 보이차를 기르기에는 적합하지만, 백차에는 맞지 않습니다. 다원 주인이 백차를 심었으니 애초에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백현진은 눈을 반짝이는 채연을 바라보았다. 요 며칠 며칠 사이 마음속 설렘은 점점 커졌지만, 그의 마음은 오히려 점점 무거워졌다.마치 무언가가 곧 터져 나올 듯했다.다음 날부터

  • 지나간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   제14화

    서지우는 길을 가는 내내 채연이 좋아했을 만한 것, 혹은 좋아할 것 같은 것을 다 사들였다. 열댓 명이 넘는 하인들의 두 손은 물건으로 가득 찼고, 그들은 비틀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그때 서지우는 길가에서 온몸이 곪아 문드러진 거지가 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주변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고 있었다."아이고... 정말 안됐구나. 차라리 죽는 게 이렇게 사는 것보다 낫겠다.""그래도 살아 있으면 아직 기회가 있지. 전에 성문 앞에서 어떤 사내를 본 적이 있는데, 얼굴이 온통 문드러진 게 이 사람보다 더 심했다. 게다가 이 거지는 이렇게 늙기라도 했지만, 그 사내는 아직 젊었으니... 그야말로 사는 게 죽는 것만 못했을 거다."어멈도 차마 한숨을 삼키지 못했다."마마께서도 그때는 아마 살아 있는 게 고통스러우셨을 겁니다."서지우의 심장이 철렁 가라앉았다."마마?""네. 세자 저하께서 혼례를 올리시던 날, 제가 마마를 씻기고 단장해 드리러 갔을 때 마마께서도... 아휴..."어멈은 그날의 채연을 떠올리자, 목이 메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서지우는 곧 죽을 듯한 늙은 거지의 손에 들린 진주 하나를 보고, 익숙하다고 느꼈다.그는 몸을 낮춰 앉아 차갑게 물었다."그 진주는 어디서 난 것이냐?"늙은 거지는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그날 골목에서 여러 거지와 다투어 빼앗은 것이었고, 아직 돈으로 바꾸지도 못했다.'그 진주는 당시 혼례 때 폐하께서 하사하신 것이었다. 그것을 함부로 거지에게 내줄 리 없었다. 그건 폐하의 뜻을 업신여기는 일이다!'수많은 장면이 서지우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고 그는 벌떡 일어섰다.'장신구!''채연의 예복은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현장에는 장신구의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금비녀가 설령 녹아내렸다 해도 흔적은 남아 있어야 했다.'서지우의 가슴속에 희미한 희망이 피어올랐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붙잡듯 다급히 명했다."전당포와 재봉소,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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