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난산 끝에 낳은 아이, 뒤늦게 드러난 진실

난산 끝에 낳은 아이, 뒤늦게 드러난 진실

By:  쌀알이Completed
Language: Korean
goodnovel4goodnovel
10Chapters
34views
Read
Add to library

Share:  

Report
Overview
Catalog
SCAN CODE TO READ ON APP

최씨 가문의 진짜 친딸인 최현아가 주진혁을 빼앗아 가던 그날, 나는 회임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8개월 뒤, 주진혁은 최현아를 부인으로 맞이하기 위해 성대한 혼례를 준비했고, 그 행렬은 십 리에 걸쳐 이어질 만큼 화려해 온 도성을 떠들썩하게 했다. 반면 나는 마음의 병이 깊어져 난산 끝에 과다출혈을 겪었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끝에 겨우 연우를 낳았다. 얼마 후, 저잣거리에 소문이 퍼졌다. 세자 주진혁이 부인과 함께 한밤중에 서산에서 말을 타다 실수로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최현아는 크게 다쳐 혼수상태에 빠졌고, 주진혁 또한 큰 부상을 입어 다시는 자식을 볼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가 연우를 빼앗아 갈까 두려워, 가슴을 졸이며 5년 동안 숨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진혁의 어머니인 김옥란의 환갑 연회가 열렸고, 나는 자수 공방에서 불려 와 주국공부에 들어가 일을 돕게 되었다. 그런데 하인방에 있던 연우가 실수로 밖으로 뛰어나왔다가 김옥란과 부딪쳤다. 현장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연우의 얼굴이 어린 시절의 주진혁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주진혁이 사람들을 헤치고 달려와, 잔뜩 쉬어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너는 어느 집 아이냐?" 겁에 질린 연우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를 못 찾겠습니다." "어머니의 이름은 최설아입니다."

View More

Chapter 1

제1화

똑똑똑.

관리인이 손가락으로 내 자수틀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최설아, 주국공부(楚國公府) 환갑 연회에 일손이 부족하다더구나. 네가 가서 하룻밤만 일손을 거들어라. 일당은 세 배로 쳐주마."

나는 망설여졌다.

김옥란의 환갑 연회라니, 그런 자리라면 옛 지인들을 분명히 마주칠 터였다. 게다가 밤에 연우를 혼자 집에 두자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관리인님, 제가 밤에는 아이를 돌봐야 해서…"

관리인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네 부모에게 맡기든, 이웃에게 맡기든, 정 안 되면 국공부 하인방에 데려와 잠시 쉬게 하든 하거라."

"이 정도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겠느냐?"

옆쪽 자수틀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도 말 많기로 소문난 장채은이었다.

"어머, 일당이 세 배라는데 나 같으면 진작에 달려갔겠다!"

"관리인님, 지금 최설아를 봐주시는 겁니까? 홀로 아비도 모르는 애까지 데리고 사니, 돈 들어갈 데가 오죽 많겠어요."

장채은의 말이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연우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어, 따뜻한 솜옷 한 벌을 새로 지어주고 싶던 참이었다.

어차피 연회장 바깥쪽에서 일손을 돕는 것뿐이니, 안채로 들어갈 일은 없을 터였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일을 맡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관리인님. 가겠습니다."

"그래. 어서 옷을 갈아입거라. 유시(酉时)까지 주국공부 뒷문으로 모여야 하니 늦지 말아야 한다!"

옷을 갈아입으러 별채로 향하는 길에 장채은의 자수틀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녀는 일부러 내가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고상한 척은 혼자 다 하네. 중매도 혼례도 없이 아이부터 가져놓고는 여기서 잘난 척하기는. 아이 아비가 누군지도 똑똑히 말하지 못 하는 걸 보면, 어디서 굴러온 사생아인지 누가 알겠어."

풉.

맞은편에 있던 자수공이 입을 가리며 웃었고, 옆에 있던 어린 제자도 고개를 숙인 채 킥킥거렸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진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뒤돌아 쏘아붙였다.

"장채은, 너도 자식 키우는 어미인데 입 좀 깨끗이 놀리거라."

장채은이 벌떡 일어나 팔짱을 끼더니 쏘아붙이듯 대꾸했다.

"내 입이 더럽다는 것이냐?"

"그럼 넌 깨끗하다는 것이냐? 여우처럼 남자를 홀리는 년이 아이 아비가 누군지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서, 순결한 여인인 척하기는!"

"내가 너라면 차라리 제 몸단장이나 잘해두겠다. 어차피 이미 정절을 잃은 몸, 연회에서 혹여 눈먼 사내라도 만나 그 사생아를 마다 않고 순순히 새아비 노릇 해주겠다 하면 그저 감지덕지해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화가 치밀어 온몸이 떨리고 눈앞이 흐려졌다.

다시 따지려 했지만, 관리인이 다가와 말렸다.

"장채은, 그만하거라."

"최설아, 너도 어서 아이 데리러 서당에 가거라. 쓸데없는 일로 시간 끌지 말고."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눈가에 차오른 뜨거운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자리를 벗어나는 동안에도 장채은은 다른 사람들과 내 사적인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었고, 나를 흘겨보는 눈빛에는 온통 경멸이 가득했다.

나는 몸을 돌려 눈가를 거칠게 문질렀다.

'최설아, 울면 안 돼. 연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견뎌낼 수 있어.'

연우를 데려온 뒤, 집에 혼자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려 결국 주국공부에서 일손을 돕는 사람들이 잠시 쉬도록 마련해 둔 하인방으로 데려갔다.

나는 연우에게 그림책과 만두, 따뜻한 물을 챙겨주었다.

"연우야, 나는 바로 밖에서 일하고 있을 테니, 너는 여기서 놀고 절대로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알았느냐?"

늘 의젓한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는 언제 오십니까?"

"금방 올 것이다."

나는 연우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다정하게 달랬다.

"이 그림책 다 볼 때쯤이면 올 것이다."

"명심하거라, 절대로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 알겠느냐?"

연우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조하겠습니다!"

나도 연우의 새끼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한 뒤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연회장 쪽으로 향했다.

장채은과 다른 자수공들도 와 있었는데, 그들은 안채 연회장 문가에 모여 끊임없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에휴, 주씨 가문 세자도 참 안됐지. 그토록 훌륭한 외모에 집안까지 좋은데, 어쩌다…"

"내가 듣기로는, 그 최씨 가문의 큰아가씨가 뒤늦게 본가로 돌아온 터라 예의범절도 제대로 모르고, 말을 타고 질주하며 짜릿한 걸 즐기길 좋아했다더군. 자기 목숨을 걸고 놀다가 세자까지 끌어들이더니, 결국 세자를 그렇게 만들어서… 이제는 자식도 낳을 수 없게 됐다더구나!"

"주씨 가문도 정말 재수가 없지. 저런 화를 몰고 오는 여자를 며느리로 들이더니 대가 끊기게 생겼잖아."

…

한창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뒤에서 분노를 억누른 최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더러 재수 없는 여인이라는 것이냐?"

최현아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장채은 무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그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최현아가 눈길을 휙 돌리더니, 문득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의아한 듯 눈을 크게 뜨더니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설아 언니?"

Expand
Next Chapter
Download

Latest chapter

More Chapters

To Readers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No Comments
10 Chapters
제1화
똑똑똑.관리인이 손가락으로 내 자수틀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최설아, 주국공부(楚國公府) 환갑 연회에 일손이 부족하다더구나. 네가 가서 하룻밤만 일손을 거들어라. 일당은 세 배로 쳐주마."나는 망설여졌다.김옥란의 환갑 연회라니, 그런 자리라면 옛 지인들을 분명히 마주칠 터였다. 게다가 밤에 연우를 혼자 집에 두자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관리인님, 제가 밤에는 아이를 돌봐야 해서…"관리인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네 부모에게 맡기든, 이웃에게 맡기든, 정 안 되면 국공부 하인방에 데려와 잠시 쉬게 하든 하거라.""이 정도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겠느냐?"옆쪽 자수틀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평소에도 말 많기로 소문난 장채은이었다."어머, 일당이 세 배라는데 나 같으면 진작에 달려갔겠다!""관리인님, 지금 최설아를 봐주시는 겁니까? 홀로 아비도 모르는 애까지 데리고 사니, 돈 들어갈 데가 오죽 많겠어요."장채은의 말이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연우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어, 따뜻한 솜옷 한 벌을 새로 지어주고 싶던 참이었다.어차피 연회장 바깥쪽에서 일손을 돕는 것뿐이니, 안채로 들어갈 일은 없을 터였다.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일을 맡기로 했다."감사합니다, 관리인님. 가겠습니다.""그래. 어서 옷을 갈아입거라. 유시(酉时)까지 주국공부 뒷문으로 모여야 하니 늦지 말아야 한다!"옷을 갈아입으러 별채로 향하는 길에 장채은의 자수틀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그녀는 일부러 내가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고상한 척은 혼자 다 하네. 중매도 혼례도 없이 아이부터 가져놓고는 여기서 잘난 척하기는. 아이 아비가 누군지도 똑똑히 말하지 못 하는 걸 보면, 어디서 굴러온 사생아인지 누가 알겠어."풉.맞은편에 있던 자수공이 입을 가리며 웃었고, 옆에 있던 어린 제자도 고개를 숙인 채 킥킥거렸다.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진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뒤돌아 쏘아붙였다."장채은
Read more
제2화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수선한 틈을 타 자리를 뜨려 했지만, 결국 최현아에게 들키고 말았다.나는 하는 수 없이 억지로 앞으로 다가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아가씨."최현아는 내게 두 걸음 다가오더니, 내가 입은 거친 옷감으로 만든 하녀 복장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눈빛에 희미한 득의양양함이 스쳤지만, 얼굴에는 가식적인 안타까움을 띠었다."정말 언니시군요.""어쩌다 잡일꾼 신세로 전락한 것입니까? 그것도 바깥마당 잡일이라니. 많이 힘드시지요?"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위해주는 척 다정하게 말하며 내 손을 잡고 안채로 데려가려 했다."갑시다, 제가 안채에 조금 더 편한 일자리를 하나 마련해드리겠습니다.""어쩌면… 아버지랑 어머니를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나를 잡아끌고 두어 걸음 걷던 최현아는 옆에 서 있던 장채은 무리를 떠올리고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었다."너희는 이제 안 나와도 된다.""지금 당장 꺼지거라! 더러운 것들 같으니!"장채은 무리는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을 뻔했고, 용서를 빌 틈조차 없었다. 감히 최현아를 원망하지는 못하고, 그저 하나같이 독기 어린 눈으로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안채로 들어서자마자 최현아는 무언가 생각난 척 입을 가리며 말했다."어머, 설아 언니, 제가 정신이 없었습니다. 안채에 지금 일손이 부족하지 않은데, 마침… 아직 치우지 못한 뒷간이 있습니다. 이를 어쩌죠…?"나는 그녀가 일부러 나를 모욕하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난 세월 동안 홀로 견뎌온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의 굴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나는 군말 없이 대답하고 물양동이와 걸레를 받아 들었다.내가 구석진 곳의 얼룩 하나를 고개 숙여 닦고 있을 때, 연회의 주인공인 김옥란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사람들이 몰려가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김옥란의 서슬 퍼런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어떻게 장수할 수 있겠느냐!""네 눈으로 똑똑히 보거
Read more
제3화
최현아는 횡설수설하며 한참 동안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다급히 임혜정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임혜정은 곧장 한 걸음 나서며 내 팔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몸을 옆으로 비켜 피했다.어색하게 허공에 손이 멈춰 선 그녀는 이내 평소의 나무라는 듯한 말투로 둘러댔다."어머, 설아야, 너도 참!""그때 네가 너무 급히 떠나는 바람에, 그 은자는 우리가 줄곧 맡아 두고 있었단다. 그저 마땅한 때를 찾지 못해 아직 전하지 못했을 뿐이다. 일이 이렇게 되다니, 다 오해다, 오해야!"최태수도 곁에서 손을 비비며 연신 맞장구쳤다."이 아비도 늘 마음에 두고 있었단다!"하지만 이 변명은 허점투성이라 누가 들어도 거짓임이 뻔했다.주진혁의 안색이 완전히 굳어졌고, 그의 싸늘한 시선이 쇠사슬처럼 최현아를 옭아맸다."삼만 냥이다.""단 한 푼도 빠짐없이 내일 오시가 되기 전까지 은표로 바꿔 설아에게 주거라. 그렇지 않으면, 세자비 자리에서 내려올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최현아는 주진혁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자신을 몰아붙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나를 독기 어린 눈으로 째려보더니,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소홀했습니다.""걱정 마십시오, 내일까지는 꼭 처리하겠습니다."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는 그들의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지금의 나는 그저 연우와 함께 평온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었다."은자는 필요 없습니다. 지금도 제 힘으로 먹고살 수 있습니다.""저쪽에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어서 마저 해야 하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말을 마친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몸을 돌려 구석에 있는 아직 치우지 않은 뒷간으로 향했다.연회장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하던 일을 계속했다. 물통과 걸레를 들고 마지막 한 곳만 치우면 일을 마치고 연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그때 멀리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 최현아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없어질
Read more
제4화
주진혁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포졸들의 우두머리도 더는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서며 엄숙하게 말했다."낭자, 지금 저희는 귀중품 절도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관아로 가서 조사를 받으시지요.""철컥."차디찬 나무 수갑이 내 손목에 채워졌다.나는 주진혁을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오래된 상처가 덧난 것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우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고, 주진혁은 나를 영원히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었다.‘그런데 왜 나에게 거듭해서 상처만 주는 걸까?’포졸들에게 끌려 나갈 때, 최현아는 한 걸음 다가와 오직 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몸을 숙이며 낮게 속삭였다."천하시네요. 감히 저와 상대가 될 것 같습니까?"그렇게 나는 끌려갔다.한편 하인방에서는 장채은 일행이 흙빛이 된 얼굴로 자신들의 짐을 챙기고 있었다."다 최설아 때문이다. 분명 일부러 그런 것이다. 사람들이 오는 걸 봤으면서 우리한테 한마디도 알려주지 않았잖느냐!"어린 제자가 낮은 목소리로 맞장구쳤다."맞습니다! 도둑년으로 잡혀간 건 자업자득이죠! 한 십 년쯤 옥살이하면서 썩어봐야 다신 거들먹거리지 못할 겁니다!"장채은은 아무 이유 없이 일자리를 잃은 탓에 화가 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두운 얼굴로 보따리를 단단히 묶으며 이를 갈았다.떠나려던 순간, 장채은은 곁눈질로 구석에 웅크려 있는 연우를 발견했다.연우는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도 않고, 얌전히 그림책 한 권을 넘겨보고 있었다.장채은의 시선이 연우에게 향했고,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악독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그녀는 보따리를 내려놓고 얼굴에 억지미소를 지은 채 연우에게 다가갔다."연우야, 그림책 보고 있었니? 참 착하구나."연우는 조금 겁을 먹은 듯했지만, 그래도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아주머니, 안녕하세요."장채은은 대답하며 다정한 척 손을 뻗어 연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연우야, 아주머니가
Read more
제5화
내 이름을 듣자마자 주진혁은 고개를 번쩍 들고 김옥란과 시선을 마주쳤다.마음속으로 짐작했던 것이 이제 거의 확실해졌다.김옥란은 불현듯 찾아온 엄청난 기쁨에 휘청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할 뻔했다.‘이 아이는 내 손주다! 주씨 가문의 핏줄이다! 진혁이의 친자식이 분명하다!'연우를 안고 있는 주진혁의 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놀라움과 기쁨, 후회… 온갖 감정이 용암처럼 가슴속에서 들끓고 뒤엉켜 당장이라도 가슴을 뚫고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그러나 품에 안긴 연우는 어른들의 마음속에 이는 풍파를 전혀 알지 못했다.연우는 주진혁의 품에서 바둥거리며 빠져나오더니, 다시 비틀거리며 김옥란에게 달려가 다리를 꼭 붙잡았다. 그리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간절히 애원했다."할머니! 흑흑… 제발 우리 어머니를 좀 구해주십시오!""우리 어머니는 정말 착한 사람입니다! 할머니, 제발 저 사람들에게 어머니를 풀어달라고 해주십시오, 제발요, 할머니!""제게는 어머니밖에 없단 말입니다!"손주가 이토록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자, 김옥란의 가슴은 찢어질 듯 미어졌다.그녀는 당장 연우를 품에 꼭 끌어안고 흐느끼며 말했다."울지 마라. 우리 손주, 내 새끼 울지 마렴…""할머니가 여기 있으니, 누구도 네 어머니를 괴롭히게 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가서 구해주마!"말을 잇던 김옥란은 연우의 손과 무릎이 까진 것을 보고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다들 왜 아직도 멀뚱히 서 있는 것이냐!""도련님이 넘어져 다친 게 안 보이느냐!""당장 의원을 불러오너라! 내 손주를 꼼꼼히 살펴 뼈라도 상하지 않았는지 보게 하란 말이다!"그러고는 주진혁을 향해 날카롭게 다그쳤다."진혁아, 아직도 멀뚱히 서서 뭐 하는 것이냐!""최설아, 어서 가서 최설아를 데려오너라! 누구든 앞을 가로막는 자는 우리 주씨 가문의 원수로 간주할 것이다!"말을 마친 김옥란은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최현아를 매섭게 쏘아보며 경고했다.결국 나는 관아의 별채에서 연우를 만났다.연우가 주진혁의
Read more
제6화
주진혁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쉰 목소리로 물었다."설아야, 그동안… 왜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이냐?"나는 사람을 태워버릴 듯한 그의 뜨거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지난 날의 아픈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를 바라보던 그의 차가워진 눈빛, 최현아의 생기 넘치고 발랄한 모습에 보내던 그의 호감, 연회에서 최현아를 끌어안고 웃던 얼굴, 그리고 임신한 몸으로 집에서 쫓겨났을 때의 막막함…입꼬리를 올려 웃어보려 했으나, 입술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가슴속이 여전히 저릿하게 아려왔다."무슨 말을 하라는 것이냐?""네가 그때 나를 너무 반듯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싫어했을 때, 내 뱃속에 이미 연우가 있었다고?""뒤늦게 찾은 최현아가 활달하고 말을 타며 노는 것을 좋아해, 색다른 세상을 보여준다며 좋아했을 때, 난 홀로 극심한 입덧으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말했어야 한다는 것이냐?"말을 하는 사이,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다."진혁아, 그때 너는 이미 날 끔찍하게 싫어했었다.""넌 내가 고인 물처럼 답답하고 재미없어서 널 붙잡아 두고 있다고 생각했지. 내가 사실을 말하면 네가 나를 더 싫어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아이를 빌미로 널 붙잡는 짐만 되는 여자라고 생각할까 봐. 그리고 뱃속의 연우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비에게 미움을 받을까봐 더 두려웠다…""그래서 네게 알릴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고, 나 혼자 연우를 잘 키워내겠다고 다짐했었다."말을 마쳤을 때, 주진혁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좁은 방 안에는 그의 거칠고 불규칙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동안 참 힘들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일자리를 구하고, 셋방을 전전하며 온갖 고난을 겪다 보니… 때로는 정말 이대로 무너져 내리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었다."나도 모르게 안방 쪽을 바라보았고, 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졌다."하지만 보거
Read more
제7화
나는 완전히 굳어버렸다. 연우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연우는 놀란 내 표정을 알아챈 듯, 입술을 꼭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빛이 바랜 자신의 신발 끝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릴 때 어머니께서는 아버지 이름만 들어도 몰래 숨어서 우셨지요.""저는 그게 뭔지 몰라서 옆자리에 앉은 돌이에게 물어봤습니다. 돌이네 아버지도 돌이 어머니를 버렸다고 하더군요. 돌이가 그러는데, 돌이 어머니도 아버지가 남기고 간 물건을 보면 가끔 슬퍼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했습니다."연우는 고개를 들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그 맑은 눈동자에는 마음이 저릿할 만큼 일찍 철든 기색이 어려 있었다."그래서 그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세자라고 부르는 그 사람이… 아마도 제 아버지일 거라고요."연우를 바라보자 눈시울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졌다.나는 연우의 여린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미안하다, 연우야.""이 어미가 잘못했다. 네게 아버지가 없다고 속이면 안 됐는데.""온전한 가정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나는 연우를 조금 세게 끌어안고 있었지만, 연우는 몸부림치지 않고, 평소 내가 자신을 달래주던 것처럼 작은 손으로 서툴게 내 등을 토닥였다."어머니, 괜찮습니다."연우는 작은 손으로 내 등을 몇 번이고 토닥이며 되뇌었다."저는 어머니만 있으면 됩니다. 어머니가 행복하면 저도 행복합니다."나는 얼굴에 흐른 차가운 눈물 자국을 대충 닦아 내고, 연우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연우야, 나는 괜찮다.""오늘… 아버지가 서당에 데려다줬으면 좋겠니?"그 말을 들은 연우는 고개를 들어 진지한 눈빛으로 잠시 주진혁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저는 그래도 어머니께서 데려다주셨으면 좋겠습니다.""아버지, 아버지는 우리 어머니께 잘해주지 않으셨잖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그 한마디에 주진혁은 완전히 무너졌다.연우는 주진혁 쪽으로 아주 작게 한 걸음 다
Read more
제8화
"얼마 남지 않았으니, 연우가 방 스승님 밑에서 글을 배우는 것만 마치게 해주거라. 정식 서당에 들어갈 때쯤… 그때 떠나도 늦지 않다."주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좋다. 네 뜻대로 하마.""내가 믿을 만한 호위무사들을 붙여 몰래 따라가게 할 테니, 아무 걱정 말거라."이후 나는 연우를 데리고 주진혁이 마련해 준 한적한 별채로 옮겨갔다.주진혁은 확실히 내 마음을 헤아린 듯했다.마당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자가 지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고, 세간살이는 소박하면서도 깔끔했다.연우는 새집이 조금 신기하면서도 낯설어 어쩔 줄 몰라 했다.나는 연우를 품에 안고 이제부터 새로운 날들이 시작될 것이며, 어미가 늘 곁에 있어줄 거라고 다정한 목소리로 타일렀다.연우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의지하듯 내 품에 파고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니만 있으면 저는 무섭지 않습니다."그렇게 날들은 겉보기에는 평온하게 흘러갔다.나는 평소처럼 자수 공방으로 출근했지만, 공방 안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예전엔 나를 함부로 부려먹던 관리인이 나를 보자마자 아첨하듯 웃으며,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심지어 먼저 나서서 더 수월한 일로 바꿔주겠다고까지 했다.장채은과 함께 내 흉을 보며 비웃던 자수공들도 이제는 마주칠 때마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는데, 그 얼굴에는 누가 봐도 나에게 잘 보이려는 기색과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대를 이을 수 없는 몸이 된 국공부 세자에게, 파혼당한 최씨 가문의 가짜 딸이 몰래 낳아 기른 다섯 살배기 아들이 있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했다. 최설아가 바로 주씨 가문의 유일한 핏줄을 낳아준 친어머니라는 사실도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그날 점심 쉬던 중, 찻집에서 나오는데 최태수와 임혜정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두 사람의 얼굴에는 그날 연회에서 보였던 냉담함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지나칠 정도로 살가운 기색이 자리하고 있었다.최태수가 손을 비비며 아첨하듯 웃
Read more
제9화
김옥란의 측근 시녀가 직접 내 거처 마당으로 찾아왔다.그녀는 공손하게 말을 전하며, 김옥란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고 했다.나는 근처 찻집에서 김옥란을 만났다.연회 때의 위엄 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눈빛과 표정에는 조심스레 다가오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설아야, 내가 오늘 온 것은 진혁이를 대신해서, 또 내 자신을 위해서 몇 마디 전하려 한다. 예전 일은 내게도 잘못이 있으니, 이제 와서 자애로운 어른 흉내를 내는 것도 염치없는 짓이라는 걸 안다. 허나 내 마음이 참…"나는 창밖의 거리를 바라보았다.그녀가 이렇게 몸을 낮추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마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저와 진혁이는 이미 약조를 하였습니다. 열흘마다 오는 휴일에는 연우를 국공부로 데려가 며칠 묵게 하기로요.""저는 그렇게 억지를 부리는 어미가 아닙니다. 아이가 아비와 할머니의 가족 간 정을 누리게 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을 겁니다. 아이가 누려야 할 가족의 정은 조금도 빼앗지 않겠습니다."김옥란은 내 말을 분명히 알아들은 듯했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안도감과 아쉬움이 뒤섞인 목소리였다."내 그때 과연 너를 잘못 보지 않았구나.""넌 예나 지금이나… 참 사리에 밝고 분별이 있구나."김옥란은 말을 멈추더니, 목소리를 한층 더 낮추며 조심스레 떠보았다."설아야, 보다시피 이제 연우도 되찾았으니 온 가족이 다시 모였잖니. 진혁이 저 녀석도… 내가 지켜보니, 마음속으로는 한 번도 너를 놓은 적이 없는 게 분명하더구나. 게다가 너희 사이에는 연우라는, 끊을 수 없는 핏줄까지 이어져 있잖니.""혹시… 다시 한번 서로에게 기회를 줄 수는 없겠느냐?"'다시 한 번 기회를 주라고?’나는 투박한 찻잔을 들어 올려, 그 안에서 떠다니는 찻잎을 바라보았다.5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바탕 뒤집힌 삶 속에서 서로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와 변화가 깊이 새겨졌다.하지만 어떤 사람과 어떤 길은, 한번 갈림길에서 어긋나면 다시는 나란히 걸을 수 없는 법이다.내가 막 입을
Read more
제10화
그 후, 연우는 주씨 가문의 주선으로 도성에서 유명한 서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연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적응했다. 영리하고 사리도 밝은 연우는 새로운 환경에서 점차 표정이 편안해졌다.연우가 규칙적인 서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에게도 제법 여유가 생겼다.나는 자수 공방 일을 그만두고 다시 붓과 조각칼을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분야인 장신구 제작으로 돌아갔다.구슬과 옥으로 만든 비녀와 팔찌, 영롱한 옥패들.틈틈이 고서를 뒤적이며 기술을 연구하고, 직접 하나씩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나는 어느덧 도성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는 장신구 장인이 되었고, 사람들은 나를 ‘최 사부’라 부르기 시작했다.그리고 이 2년 사이에 나는 온화하고 반듯한 성품을 지닌 의원, 노태현을 만났다.그는 주진혁처럼 명문가나 권력을 지니지도 않았고, 아찔하고 충격적인 과거도 없었다. 그는 차분하고 신중했으며, 어진 마음과 올곧은 기품을 지닌 사람이었다.우리는 혼례를 올렸다.아주 간소하게 치렀고, 정말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했다.혼인하던 날, 연우는 나와 노태현의 손을 맞잡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어머니, 오늘 정말 고우십니다.""아버지도 오늘 무척 멋지시고요."나는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 마음속에는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평온함과 충만함이 가득했다.주진혁은 혼례식에 나타나지 않았다.대신 사람을 보내 축하 선물을 전해왔다. 보석이나 은자가 아니라, 강녕의 직물 생산을 관장하는 관청으로 보내는 추천서 한 통과 짤막한 쪽지였다."설아 네 재능이라면, 마땅히 황실에 물건을 납품하는 상인이 되어야지.""강녕 관청의 조 대감은 나와 구면이니, 너를 잘 보살펴줄 것이다."나는 정중히 거절했다.우리는 여전히 연우의 일로 서신을 주고받았고, 그는 정기적으로 연우를 주국공부로 데려가 시간을 보냈다. 연우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에는 우리 둘이 함께 자리를 지키며 아이에게
Read more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