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한서윤은 강성에서 이름난 명문가의 아가씨였다. 거문고와 바둑, 글씨와 그림, 바느질과 예법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말할 때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걸을 때는 치맛자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아, 경성 귀족 아가씨들이 앞다퉈 본받는 모범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혼인한 사내는 전장을 누비며 여인을 아낄 줄 모르는 사내, 강무진이었다. 첫날밤부터 잠자리를 열댓 번이나 했고, 그녀는 침상에서 내려오지도 못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이후 삼 년 동안은 갈수록 심해졌다. 서재와 마구간, 대청과 사당을 가리지 않고 온갖 방식으로 그녀를 괴롭혀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부인, 앞으로 아껴 주겠다." 이런 말은 들은 적도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음탕한 것이냐?" "이렇게 밝히는 걸 보니, 많이 외뤄웠나 보구나." 그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삼키며 묵묵히 견뎠다. 그는 무장이었다. 오랫동안 변방에서 전장을 누볐으니 다정한 표현을 모를 수도 있고, 상스러운 말도 그저 표현 방식이 거친 탓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무진이 변방에서 승리하고 돌아왔다. 갑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사람을 시켜 그녀를 축하연회에 데려오라 했다. 손님들이 가득한 연회장에서 술잔이 오가는 가운데, 그는 상석에 거만한 태도로 앉아 있다가 돌연 그녀를 다리 위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녀를 억지로 욕보였다.
View More강무진은 문밖에 서서 안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한서윤은 그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울음소리를 참고 있었다.그는 피투성이가 된 채 문에 기대어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옷을 흠뻑 적셨지만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서진욱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사람이 떠나면 후회해도 늦다."그때는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믿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그는 문밖에 앉아 밤을 보냈다. 날이 밝을 무렵 문이 열렸다.한서윤은 보따리 하나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떠나겠습니다."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눈은 부어 있었지만 더는 울지 않았다."어디로 가느냐?"강무진이 벌떡 일어났다. 다리가 저려 휘청이더니 어깨와 가슴의 상처가 동시에 벌어져 피가 다시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모릅니다. 장군이 찾지 못할 곳으로 갈 겁니다.""너...""장군."한서윤은 강무진의 말을 끊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또렷하게 말했다."평생 가장 후회하는 일은 장군과 혼인한 것입니다. 장군이 제게 준 것은 모욕과 상처뿐입니다. 그러니 장군의 마음 따위 필요 없습니다. 경성으로 돌아가 대장군으로 살아가십시오.다시는 저를 찾아오지 마십시오. 이제부터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는 겁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든, 늙고 병들어 죽는 그날까지 서로 남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한서윤은 몸을 돌려 작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걸음은 느렸지만 흔들림이 없었고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강무진은 그 자리에 서서 점점 멀어지고 작아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녀를 쫓아가 붙잡고 싶었다.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뒤따라가면 한서윤이 더 괴로워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강무진은 직접 그녀를 끔찍한 고통에 빠뜨렸고 이제서야 구하려 했지만, 한서윤은 그의 도움을 원하지 않았다.그녀는 홀로 고통을 견딜지언정 다시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강무진은 텅 빈 길에 서서 그녀의 모습이
한서윤은 오랫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돌아가십시오.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그녀는 문을 닫았다.강무진은 또 하루를 서 있었다. 사흘째도, 나흘째도, 닷새째도 마찬가지였다.그는 날마다 문밖에 서서 말도 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지도 않은 채 그저 서 있기만 했다.한서윤이 채소를 사러 나가면 강무진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뒤따르며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행인들을 비켜 세웠다.그녀가 돌아보면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잘못한 아이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엿새째 날, 한서윤은 끝내 참지 못했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힌 채 문 앞에 서 있었다."대체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이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강무진은 그녀를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의미 없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네가 나를 용서하지 않으면 살아도 아무 의미가 없다."한서윤은 갑자기 손을 꽉 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또 목숨으로 저를 협박하는 겁니까?"강무진이 단호한 눈빛으로 한 걸음씩 그녀에게 다가갔다."협박이 아니라 사실이다. 내 평생 가장 큰 잘못은 널 밀어낸 것이다. 후회한다. 죽을 만큼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후회가 무슨 소용이겠나? 네가 기회를 주지 않으면 잘못을 만회할 수도 없으니...""어떻게 만회하려는 겁니까?"한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강무진은 허리에서 비수를 뽑아 그녀 앞에 내밀며 말했다."나를 찌르거라. 몇 번이고 찔러도 좋다. 네가 겪은 고통의 열 배, 네가 입은 상처의 백 배를 내가 감당하겠다. 네가 분이 풀리고 나에게 한 번만 기회를 준다면...""미쳤습니까!"한서윤이 한 걸음 물러났다."그래, 미쳤다."강무진은 한서윤의 손을 붙잡아 비수를 쥐여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움켜쥔 채 칼끝을 자신의 가슴에 겨누었다."네가 그 거지들에게 욕보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느냐.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가슴이 계속 아팠고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한서윤, 나를 찌르거라. 그러면 내 마음
문이 열렸다. 한서윤은 빨아서 색이 바랜 옷을 걸치고 나무 비녀로 머리를 올린 채 수수한 모습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강무진을 본 순간에도 그녀의 표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놀라지도, 화내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차분할 뿐이었다.한서윤은 강무진을 낯선 사람처럼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일로 왔습니까?"강무진은 그녀를 바라보며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그가 몹시 잠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너를 데리러 왔다."한서윤은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을 터뜨렸지만 금세 사라졌다. “돌아가라고요? 어디로 돌아가라는 말입니까?”그녀가 되묻자 강무진이 다급하게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장군부로. 집으로. 내가 잘못했다. 이제 모두 알았다. 그 일은 내가 한 게..."한서윤이 그의 말을 끊었다."장군이 하지 않았다는 것도, 모두 윤채령이 한 짓이라는 것도 압니다.강무진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알고 있었느냐?"한서윤은 문틀에 기대어 차분하게 말했다."누군가 와서 알려 주었습니다. 윤채령이 지하 감옥에 갇혔고 장군이 저를 찾고 있다는 것도 모두 들었습니다.""그렇다면..."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그래서 무엇이 달라집니까? 그 일은 장군과 무관할지 몰라도, 장군께서 저지른 일만으로도 이미 충분합니다. 장군은 많은 사람 앞에서 저를 모욕하고, 제 몸을 그리게 해 노점에 내다 팔았으며, 저를 거지들에게 내던졌습니다! 윤채령이 아니라 장군이 한 일입니다. 모두 장군이 직접 한 일입니다."강무진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입술만 떨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한서윤은 남의 일을 말하듯 말을 이었다."구층탑을 오를 때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했습니다. 첫째 층에서 채찍을 맞을 때는 제가 부족해서 장군이 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둘째 층에서 손가락을 조이는 형벌을 받을 때는 제가 충분히 잘하지 못해서 장군이 저를 좋게 보지 않는 것인지 생각했습니다.셋째 층에서
강무진은 큰 충격에 온몸을 떨었다.그날 밤 한서윤이 무릎을 꿇고 바짓자락을 붙잡으며 빌던 모습이 떠올랐다."제발 이러지 마십시오."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내 여인이니 감히 손대지 못할 거다."그는 그녀의 손가락을 억지로 떼어 냈다.그리고 떠났다.그는 힘없는 한서윤을 거지들에게 내던졌고 자기 손으로 그녀를 지옥에 밀어 넣었다.강무진은 홱 돌아서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벽돌이 부서지고 손가락 마디가 찢어져 피투성이가 됐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누구 없느냐!"강무진은 갈라진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윤채령을 지하 감옥에 가둬라! 경성의 거지는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잡아들여 그 감옥에 가둬라! 윤채령을 범하게 하고, 죽는 것보다 못하게 만들어라!"호위들이 달려 들어와 윤채령을 끌고 나갔다.윤채령은 끌려가는 내내 웃으며 눈물을 마구 흘렸다."강무진, 너는 한서윤을 찾지 못할 거다. 그녀는 이제 너를 원하지 않아. 죽어도 다시는 너를 만나지 않을 거다. 후회해! 평생 후회하라고!"웃음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작아지더니 끝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강무진은 텅 빈 방에 서서 온몸을 떨었다.그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바로 이 손으로 그녀의 손가락을 억지로 떼어 냈다.그는 천천히 몸을 낮춰 바닥에 웅크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고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강무진은 경성에 사흘 동안 머물며 윤채령의 처리를 끝낸 뒤 다시 남쪽으로 떠났다.그는 꼬박 한 달을 뒤쫓은 끝에 한서윤이 고소성 밖의 작은 마을에 자리 잡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한서윤은 작은 집을 빌려 마당에 꽃과 풀을 심고 평소에는 수를 놓아 푼돈을 벌었다. 궁핍하지만 조용한 삶이었다.강무진이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해 질 무렵이었다.석양이 하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밥 짓는 연기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공기에는 음식 냄새가 감돌았다.강무진은 한서윤의 작은 집 밖에 서서 울타리 너머로 처마 아래 앉아 수놓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몹시 야위어 있었다. 광대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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