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지나간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 Chapter 1 - Chapter 10

19 Chapters

제1화

채연의 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서지우의 귓가에 벼락처럼 울린 듯했다.서지우의 눈빛에 낯선 매서움이 번졌다. 그는 눈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인을 노려보았다."채연! 세자빈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니, 네 어미가 매일 비싼 탕약을 먹고 있다는 것은 잊은 것이냐?"그가 손짓하며 몸을 비키자, 몇몇 하인들이 채연의 어머니를 들어 뒤에 세웠다. 어머니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고, 눈가의 주름 사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한바탕 울었던 것이 분명했다.채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서지우를 바라보다가 황급히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떨리는 손끝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낮은 소리로 흐느꼈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윤안화를 순조롭게 들이기 위해 서지우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듯했다."나를 떠나면 무엇으로 네 어미의 목숨을 이어 갈 셈이냐?"채연은 울먹이며 고개를 들었다."제가 찻잎을 따면 됩니다...""네가 버는 푼돈으로는 낡은 그릇 하나 사기도 부족하다!"서지우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그만하거라. 어린애처럼 떼쓰지 말거라. 안화는 그저 평처일 뿐이다. 네 세자빈 자리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윤안화는 사슴처럼 맑은 눈망울에 눈물을 머금은 채 말했다."채연 언니, 저는 그저 지우 오라버니를 연모할 뿐입니다. 다른 뜻은 절대 없습니다..."서지우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윤안화를 데리고 신방을 고르러 갔다. 채연의 어머니는 작은 마당으로 옮겨져 몸조리하게 되었고, 채연 혼자만 쓸쓸히 저택 문 앞에 남았다.서지우가 마음먹은 일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채연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직접 겪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삼 년 전, 서지우가 다원을 지나던 순간이었다. 아침 햇살 아래 찻잎을 따던 채연의 모습에 홀린 듯 발걸음을 멈췄다. 맑은 눈동자와 차나무 끝을 스치는 그녀의 가벼운 손끝은 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그는 온화하고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낭자, 이른 아침에 찻잎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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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채연의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녀는 소매 끝을 꽉 움켜쥐었다. 가슴이 산 채로 찢기는 듯한 고통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그녀는 두 주먹을 움켜쥔 채 가슴을 세게 두 번 내리쳤고, 끝내 목구멍 깊은 곳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채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서지우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채연의 어머니는 병세가 위중했고, 지금도 매일 인삼으로 기력을 보해야 겨우 침상에 누운 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여기를 떠난다면 어머니의 막대한 약값을 당장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채연은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윤안화가 서지우의 팔을 붙잡고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지우 오라버니, 저는 이 방이 마음에 듭니다. 꼭 우리 신방으로 쓰고 싶은데 안 됩니까..."서지우는 다정한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된다."채연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이곳은 그녀와 서지우의 신방이고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두 사람이 함께 꾸몄던 것이었다. 창밖 복숭아나무에 걸린 그네조차 그가 직접 만들어 준 것이었다.윤안화는 그네에 앉아 도발적인 눈빛으로 말했다."지우 오라버니, 제가 여기에서 살면 채연 언니는 괜찮겠습니까?"서지우의 시선이 채연에게 향했다.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어려 있었다."채연, 괜찮겠느냐?"채연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입술에 핏기가 사라질 때까지 버틴 뒤에야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물건을 정리했다.하지만 가져갈 물건은 너무 많았다.화장함 안에는 그가 매달 십 일마다 연지 점포에서 보내오게 한 신상 연지들이 있었다.옷장 안에는 의복 점포에 신상 의복이 들어올 때마다 그가 먼저 가져오게 해 그녀에게 고르게 한 옷들이 가득했다.침상 위의 이불과 요조차 매일 그녀의 옷 색에 맞춰 그가 직접 고른 뒤, 시녀들에게 날마다 새것으로 갈게 한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의 채연은 그 모든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가 곁에서 오래도록 살아 주기만을 바랐다.그것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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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오직 빨리 다녀와 어머니를 만나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채연은 걸음이 휘청거렸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단단한 나뭇가지가 얼굴과 몸을 할퀴어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채연은 얼굴의 상처를 대충 훔쳐냈다. 자기 얼굴이 이미 진흙과 피로 뒤범벅이 된 줄도 알지 못했다.그녀가 아는 것은 서둘러 찻잎을 따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이슬이 마르면, 어린 찻순이 모자라 오늘은 헛걸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게다가 아침의 이상했던 하인이 떠오르자 불길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마음은 타들어 가는 듯 괴로웠고, 그저 더 빨리,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고 싶었다.한 시진쯤 더 지나서 해가 떠올랐다. 채연은 옷이 온통 진흙투성이가 된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돌아가는 길을 내달렸다.마침내 세자부에 도착한 채연은 광주리를 내려놓자마자, 어머니가 있는 작은 마당으로 달려가려 했다.하지만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집사가 그녀를 붙잡았다."마마, 안화 낭자께서 오늘 점심에는 녹차떡을 드시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만들어 주신 뒤 노부인께 가십시오."채연은 거칠게 손을 뿌리쳤다."찬모는 없느냐? 저택에 찻잎을 딸 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큰 세자부에 녹차떡을 만들 줄 아는 사람조차 없다는 말이냐?""채연!"서지우가 길거리에서 걸어왔다. 한 손에는 윤안화의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다과를 들고 있었다."내가 녹차떡 하나 먹고 싶다는 것조차 그렇게 핑계를 대며 미루느냐?"윤안화는 먹다 남은 다과를 손에 들고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찹쌀떡 드시겠습니까? 저는 다 먹지 못하겠습니다."그녀는 애교를 부리듯 서지우를 바라보며 투정을 부렸다."다 오라버니 때문입니다! 제가 다 못 먹는다고 했는데, 그냥 두어 번 바라본 것뿐인데도 꼭 사 주셔야 한다고 하셨잖습니까?"서지우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윤안화의 투정을 받아주며 그녀를 데리고 저택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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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채연의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속에는 수천 자루의 칼날이 휘몰아치며 그녀의 심장을 도려내려는 듯했다.목이 틀어막힌 듯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던 그녀는 잠시 몸부림치다가, 갑자기 하늘을 찢을 듯한 처절한 외침을 터뜨렸다."어머니!"그 절규는 점차 날카로움에서 잦아들었고, 끝내 오랫동안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숨이 막혀 온몸이 굳어 버렸다.채연은 갑자기 몸을 떨며 겨우 숨을 돌렸다.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뿐인 혈육을 부르며 끝없이 울부짖었다.서지우가 도착했을 때, 채연은 관을 끌어안은 채 손을 놓지 않았고, 하인들이 관을 닫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채연, 손을 놓아라. 죽은 이는 편히 보내야 한다."채연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차갑게 웃으며 뒤돌아보았다."세자 저하, 이제 어머니께서는 더 이상 세자 저하의 돈을 쓰실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게 화리서(和離書)를 써 주실 수 있겠습니까?"서지우는 가슴이 순간 철렁했다. 그 호칭이 채연의 입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그 말이 어딘가 거슬렸지만, 그는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안화는 그저 평처일 뿐이다. 네 세자빈 자리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화리는 불가능하다."채연은 처연하게 웃었다. 더는 그 문제로 다투고 싶지 않았다."그렇다면 먼저 어머니의 장례부터 후하게 치러 주십시오."서지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윤안화가 그의 품에서 나와 눈물을 글썽였다."채연 언니, 언니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일은 저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하지만 지금 장례를 치르신다면, 제 모레 혼례를 어떡합니까?"채연은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너희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의 장례마저 치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냐?"윤안화는 겁먹은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동안 지우 오라버니께서 돈을 물 쓰듯 써 가며 언니 어머니의 목숨을 이렇게 오래 붙들어 오셨는데... 아직 만족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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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서지우는 채연을 노려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채연! 적당히 하거라. 어찌 이리 분수를 모르느냐?""분수를 모른다고 하셨습니까? 저를 이 지경까지 몰아붙이셨으니, 제가 정말 분수를 모르게 군다 한들 어찌하시겠습니까?"채연은 목이 터지듯 외쳤다.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그렇게 악을 써 본 것이었다.채연은 있는 힘을 다해 윤안화의 손목을 붙잡았다. 윤안화는 도저히 뿌리치지 못했고, 실랑이 끝에 두 사람은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윤안화는 울먹이며 말했다."채연 언니! 제게 평생 한 번뿐인 혼례입니다. 어찌 그런 불길한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채연은 차갑게 웃었다. 이를 악문 채 한마디를 내뱉었다."두 분께서 굳이 불길한 일을 택하시겠다면, 저는 상관없습니다."마치 자신에게 벌을 내리듯 채연은 다시 서지우를 꿰뚫듯 바라보았다."저는 그저 찻잎 따던 여인입니다. 지난 삼 년 동안 세자 저하께서 베푸신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무릎 꿇고 은혜를 구걸해야 한다면, 어머니도 바라지 않으실 것이고 저도 원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은혜받지 않겠습니다!"서지우는 채연의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늘 온순하고 현숙하며 예를 지키던 그녀는 지금 머리가 풀어지고 얼굴에는 피가 얼룩져 있었다. 무너진 표정과 원망 어린 눈빛으로 검은 관 옆에 쓰러진 모습은 마치 관에서 막 기어 나온 원혼 같았다.서지우의 가슴속에 번민이 일었다."채연...""악..."윤안화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손바닥이 옆의 자갈에 부딪히자, 곧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윤안화는 고개를 살짝 돌려 채연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눈 안의 속셈은 감출 수는 없었다."채연 언니, 왜 저를 밀었습니까?"서지우는 그 모습을 보고 급히 몸을 낮춰 윤안화를 부축했다."채연, 네가 몇 번이나 내 선을 넘는 것이냐? 내가 너를 벌하지 못할 것 같으냐?"채연은 해명할 틈조차 없었다. 서지우의 한마디가 그녀를 끝없는 나락으로 밀어 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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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채연은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넌 연꽃을 따는 여인이 아니었구나. 너...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느냐?""가소롭군. 내가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나중에 어찌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오직 너와, 저승 혼인을 치르게 된 네 어미야말로 비천한 년이다!""참새가 감히 봉황이 되려 하다니.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반드시 네 어미를 편히 보내 주마."윤안화는 일부러 마지막 몇 글자를 힘주어 내뱉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채연의 가슴을 짓누르고 산산이 부서뜨렸다.윤안화의 눈에는 이미 승리를 확신한 빛이 어렸다. 그녀는 비웃음을 띤 채 일부러 바닥으로 몸을 내던졌다.역시 서지우는 그녀를 받아냈다.서지우는 채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실망만이 가득했다."네 어머니의 장례식을 내일 치르고 싶어 하지 않느냐? 나와 안화도 내일 혼례를 올려야 한다. 저승 혼인이야말로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거늘, 안화는 네 뜻을 이루어 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런데 너는 도리어 은혜를 원수로 갚는구나!""모두에게 좋은 방법이라고요? 제가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고요?"채연은 온몸의 피가 식어 버린 듯했다. 터질 듯 아픈 눈가에서 끝내 피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그리도 좋은 방법이라면, 당신이 직접 받아 보시지요. 원하십니까?""우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셨다고요! 평생 다른 이에게 시집갈 생각도 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아버지의 위패를 지키며 살아오신 분입니다!""지금 당신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제발 눈을 좀 뜨고 보십시오!"서지우는 순간 멈칫했다... 채연의 처절한 울음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품 안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울고 있는 윤안화를 보는 순간 끝내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서지우는 차가운 얼굴로 지시를 내리며 윤안화를 달랬다."의식을 계속하라."저승 혼례를 준비하던 도사와 집례는 곧바로 다시 움직였다. 마당의 문을 걷어차 열고, 억지로 채연 어머니의 관을 닫았다.채연은 어머니의 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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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시간은 언제나 공평했다. 누구를 위해 멈춰 주지도, 누구를 위해 더 빨리 흘러가지도 않았다.사흘째 되는 날이 예정대로 찾아왔다.밖에서는 혼례 행렬이 들뜬 분위기 속에서 세자부로 향하고 있었다.저택 일을 관리하는 어멈은 아무리 찾아도 부인을 찾지 못하자, 급히 작은 마당으로 향했다.역시나 부인은 아직도 깊이 잠들어 있었다.온몸은 열로 달아올랐고, 얼굴은 온통 망가져 있었다.어멈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자부의 경사에 세자빈이 빠질 수는 없었다.그녀는 억지로 채연을 일으켜 세자빈의 예복을 입히고, 머리 장식까지 모두 갖춰 씌웠다.예복 위에 줄지어 수놓은 꿩 문양이 고귀하고 화려했으며, 길게 늘어진 자락은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하지만 그렇게 정교한 예복 적의 위에는 살이 뒤집히고 상처투성이가 된, 차마 보기 힘든 끔찍한 얼굴이었다.채연은 어멈이 하는 대로 가만히 몸을 맡겼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저항하지도 않았다.세상은 언제나 새 인연의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만, 버려진 이의 눈물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총애를 잃은 세자빈인 그녀는 결국 때마침 좋은 기회를 얻었을 뿐인 찻잎 따던 여인이었다.이제 얼굴마저 망가진 그녀는 그저 남의 손에 마음대로 휘둘리는 처지일 뿐이었다.상처를 치료할 약과 붕대조차 가질 수 없는 비참한 신세였다.채연은 억지로 끌려가며 대청으로 향했다. 그런데 세자빈의 자리에는 버젓이 돼지머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옆에 있던 시녀가 머뭇거리며 말했다."마마, 안화 낭자께서 방금 마마께 절하지 않겠다고 하셨고, 세자 저하께서... 허락하셨습니다..."채연은 돼지머리를 바라보며 비웃듯 말했다."눈 두 개에 입 하나, 생김새도 곱구나. 나보다 훨씬 보기 좋으니, 잘됐구나. 정말 잘됐다..."시녀는 바닥에 무릎 꿇은 채 몸을 떨며 말했다."안화 낭자께서 또... 마마께서 피로 화합 경문을 아흔아홉 번 베껴 두 분께 복을 빌어야만 저택에 들어오겠다고 하셨고, 세자 저하께서도... 허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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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대청 안에서 서지우는 윤안화의 손을 잡고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고, 눈빛은 조금 어두워졌다."세자빈은 어디 있느냐?"어멈이 서둘러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사당에서 화합 경문을 베껴 쓰고 계십니다."서지우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때 면사포 너머로 윤안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 오라버니, 채연 언니가 화난 건 아니겠지요? 저는 그저 언니의 인정을 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언니는 세자빈이시고, 앞으로 저는 언니 아래에서 지내야 하니까요...""안화, 너는 평처인 걸 잊지 마라. 채연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서지우는 혼례복의 먼지를 털어 내고 윤안화를 안아 들었다."계단이 있으니 조심하거라."윤안화는 두 팔로 서지우의 목을 감은 채, 그의 귓가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서지우는 팔에 살짝 힘을 주었다."이렇게 기쁜 날에 어찌 한숨을 쉬느냐?"윤안화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훗날 제가 예전 일을 모두 기억해 낸다면... 그래도 오라버니께서는 지금처럼 잘 대해 주시겠습니까?""물론이다.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나는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윤안화는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수줍게 말했다."오라버니는 정말 사람을 잘 달래십니다!"그 말에 서지우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채연은 지나가는 하인들의 눈을 피해 서둘러 측문으로 향했다. 사당 쪽 모퉁이를 막 지나던 순간, 누군가 뒤에서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뒷문 쪽 골목으로 끌고 갔다.채연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그곳에는 이미 늙은 거지 몇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이 광경을 본 순간, 누가 꾸민 일인지 알 수밖에 없었다.오월의 날씨였지만 한겨울처럼 차가웠다. 스쳐 가는 바람마저 칼날처럼 그녀의 온몸을 난도질하는 듯했다.채연은 바닥에 쓰러진 채 필사적으로 뒤로 기어갔다. 귓가에는 대청에서 들려오는 혼례 진행 소리가 울려 퍼졌다."천지께 첫 절을 올립니다!"애꾸눈 거지가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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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대청에서 하객들과 술을 마시던 서지우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혼례가 진행되는 내내 채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단향목 의자 위에 놓였던 돼지머리는 이미 치워졌지만, 그 자리에는 검붉은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서지우는 무거운 눈빛으로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시녀들이 이미 깨끗이 닦아 냈음에도, 그 의자는 여전히 눈에 거슬렸다."마마는 어디 계시느냐?""세자 저하, 마마께서는 경문을 다 베끼신 뒤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아마 방에 들어가 쉬고 계신 듯합니다."서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속 불안을 억누른 채 다시 하객들을 접대했다.술을 몇 잔 마시자, 누군가 웃으며 농담했다."세자 저하, 새로 혼례까지 올리셨는데 세자빈께서는 어찌 얼굴을 보이지 않으십니까? 설마... 방 안에서 울고 계신 건 아닙니까?"서지우가 처음 채연을 세자빈으로 맞이했을 때, 온 경성이 그의 지극한 정에 탄복했다. 하지만 불과 삼 년 만에 평처를 들이게 되자, 평소 그와 사이가 좋지 않던 몇몇 한량들은 겉으로든, 속으로든 그를 비웃고 있었다."그러게요. 세자빈께서도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이렇게 좋은 날에 얼굴조차 비추지 않으시다니요.""세자 저하, 여인을 너무 아끼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게 됩니다! 내일 제가 미인을 잔뜩 보내 드려서 그 버릇없는 성정을 제대로 고쳐 주겠습니다!"말을 마치자, 몇 사람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서지우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채연은 세자빈의 신분으로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하객들을 접대하지 않았으니, 분명히 그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은 것이었다."가서 세자빈을 데려오너라!"시녀는 급히 별채로 채연을 찾으러 갔다. 화려하게 꾸며진 신방 옆, 쓸쓸한 별채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서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방금 경문을 다 베꼈는데, 대청에도 없고 별채에도 없다면 대체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인가?''오늘은 자신과 안화의 혼례식이니 아마 너무 슬퍼서 바람을 쐬러 나간 것이겠지.''그런 게 낫다. 저택 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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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서지우는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혹시 채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그는 흔적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하지만 그 흔적이 뒷문 앞까지 이르자, 감쪽같이 사라졌었다.서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너무 예민해진 것 같았다.'채연은 세자빈이었다. 성정도 온순하고, 평소 원한을 살 만한 일도 하지 않았는데 누가 감히 세자부 안에서 채연에게 손을 댈 수 있겠는가?''그저 슬퍼서 어머님께서 계시던 마당으로 돌아간 것일 것이다.'안방으로 돌아오니 윤안화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꿈속에서 불안한 듯하며 중얼거렸다."저를 원망하지 마십시오..."서지우는 잔뜩 일그러진 그녀의 미간을 바라보다 안쓰러워서 그녀를 품 안으로 꼭 끌어안았다. 하지만 끝내 밤새 잠들지 못했다.다음 날, 서지우는 눈 밑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채 윤안화와 함께 사당으로 가 경문을 태우며 복을 빌었다.한 장 한 장의 화합 경문에는 선명했던 핏자국이 이미 검붉게 굳어 있었고, 그 위에는 신혼부부를 축복하는 글귀가 가득 적혀 있었다."부부가 화목하기를 바라며, 금슬처럼 서로 어울리고, 사랑하며,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를...""오늘 길한 날을 맞이하여... 부부가 화합하고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란다."서지우는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졌다. 어째서인지 축복의 말에서 오히려 슬픔을 느꼈다."지우 오라버니..."그의 낭독을 듣던 윤안화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아흔아홉 장의 화합 경문을 모두 태운 뒤, 서지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향안 아래에 놓인 흰 종이가 눈에 띄었다.그가 그것을 집어 들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검붉은 여섯 글자였다."세자 저하께:"채연이 그에게 남긴 혈서였다.아니, 유서였다.그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적힌 글은 많지 않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가 그의 가슴을 찢는 듯했다."서지우, 화리조차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이제는 사별로 끝내겠습니다."새하얀 종이 위에는 튀어 오른 핏자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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