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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망우초
서예진은 물건들을 챙겨서 떠났다.

윤정호는 그녀를 쫓아가지 않았고, 서예진도 애초에 그가 따라올 거라고 기대한 적이 없었다.

최민영이 곁에 있는데 윤정호가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

서예진이 물건을 다 팔고 나니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라 굉장히 북적북적했다.

서예진은 처량하게 홀로 집에 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늘 가고 싶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바로 향했다.

그 바는 꽤 분위기가 좋았다. 예전에 서예진은 윤정호에게 같이 그 바에 가보자고 했었는데 윤정호는 그런 바는 이상한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라면서 싫다고 했었다.

바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다른 곳처럼 시끌벅적하지 않고, 잔잔한 음악 소리 때문에 은근히 분위기 있었다.

서예진은 구석 쪽 자리에 앉았는데 그녀가 앉자마자 사회자가 무대 위로 올라가 조용히 하라는 듯이 마이크를 툭툭 쳤다.

“오늘은 특별한 날인 만큼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열렬한 박수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서예진에게는 매우 낯익은 얼굴이었다.

최민영은 온화한 미소를 띤 채 무대 아래를 쭉 둘러보다가 서예진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민영입니다. 1년 전, 저는 이곳에서 노래를 하던 가수였고 바로 여기서 제 운명의 상대를 만났어요.”

그녀의 시선이 윤정호에게로 향했고, 조명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이동했다.

두 사람은 마치 운명으로 맺어진 연인처럼 애정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환호했고 사회자는 윤정호에게 무대 위로 올라오라고 했다.

그리고 윤민재는 박수를 치면서 윤정호를 떠밀었다.

늘 무표정하던 윤정호는 보기 드물게 얼굴이 빨개지며 수줍어했다.

서예진은 구석 자리에 앉아 팔짱을 두른 채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봤다.

그녀는 윤정호와 혼인신고까지 한 그의 아내이지만, 지금은 마치 그의 행복을 지켜보는 행인 같았다.

“정호 씨, 그때 도와줘서 고마워. 내 마음은 단 한 번도 변한 적 없어.”

최민영은 당장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눈물을 글썽였다.

윤정호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키스해!”

“키스해!”

사람들의 반응을 본 최민영은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서예진을 바라봤다.

오늘 서예진의 남편과 아이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른 여자의 애정을 거절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았다.

‘재미없네.’

서예진은 시선을 내려뜨린 뒤 단숨에 잔을 비웠다.

사람들이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고 있을 때 서예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대 위 윤정호는 자신의 기억 속 모습 그대로인 최민영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오전에 질린다는 표정을 짓던 서예진을 떠올렸다.

윤정호는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우연히 낯익은 얼굴을 보게 되었다.

‘서예진? 서예진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내가 이런 곳은 오지 말라고 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상한 남자가 서예진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보였다.

윤정호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곧장 무대에서 내려와 밖으로 쫓아갔다.

한편, 복수의 쾌감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즐거움에 취해 있던 최민영은 이번만큼은 윤정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윤정호는 뭐가 고민인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재촉하려던 찰나, 윤정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대를 내려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설마 서예진을 쫓아간 거야? 왜? 우리 분위기 좋았잖아!’

최민영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뒤쫓아 나갔고, 손님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술렁거렸다.

밖으로 나간 서예진은 쌀쌀한 밤바람 때문에 코트를 여몄다. 아까 마신 술 때문인지 속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술을 자주 마셔보지 않아서 머리도 어질어질했다. 결국 서예진은 몇 걸음 못 가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려 했는데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왔어?”

서예진은 경계하며 거리를 벌렸다.

남자가 모자를 쓰고 있는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짜고짜 서예진의 팔을 잡았고 서예진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남자는 힘이 엄청났다.

“서예진!”

윤정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서예진은 이혼이니 뭐니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다급히 외쳤다.

“정호 씨! 빨리 나 좀 구해줘!”

남자는 깜짝 놀라 손을 거두려고 했는데 윤정호를 뒤쫓아 온 최민영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풀썩 넘어졌다.

최민영은 발목을 움켜쥔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정호 씨, 나 발목이...”

“아빠! 민영 이모가 발목을 다쳤대요! 빨리 민영 이모를 병원에 데려다줘요!”

윤민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순간 자신감이 생겨 서예진의 손을 거칠게 움켜쥐고 윤정호를 도발하듯 바라봤다.

누구든 제정신이라면 먼저 누구를 구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서예진은 윤정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윤정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끝내 몸을 돌려 최민영에게 걸어가 그녀를 안아 들고 고개를 돌려 서예진을 향해 외쳤다.

“걱정하지 마. 내가 경찰에 신고할게!”

윤민재는 씩씩대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아빠, 마녀를 왜 신경 써요? 그냥 내버려둬요!”

세 사람은 그렇게 떠나버렸고 서예진은 이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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