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해 보이는 김청미와는 달리 김서하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심지어 흐뭇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는 것이다.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김현민이 있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김현민의 고모가 아니었더라면 그녀한테 이성적인 호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퍽!이때, 문이 열리면서 임현우, 허민재와 곽영현이 어두운 표정으로 끌려들어 오는 것이다.문밖에도 여러 모습이 보였는데 딱봐도 밀양 국제공항 사건과 연관된 증인으로 보였다.사건조사 중에 각 기관에서는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었다.“다들 도착하셨는데 시작하시죠.”김서하가 백우석을 쳐다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너부터 시작해.”내로라하는 사람들 무리에서 백우석은 보잘것없어 보였다.김서하의 명령에도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던 그는 주위에 경찰증을 보여주면서 한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러면 시작해 보겠습니다.”백우석은 김예훈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물었다.“김예훈 씨, 그날 왜 밀양 국제공항에 갔는지 간단히 설명하실 수 있을까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사람 찾으러 갔어요. 소한미라고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사람일 거예요. 인도에서 얼굴 성형에 몸매 성형까지 받고 소나린이라고 이름을 바꿨죠.”“왜 찾으신 거예요? 무슨 모순이라도 있었을까요?”백우석은 무슨 증거라도 찾아내려고 김예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김예훈이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희망호 사건 때문이었어요. 소나린 씨가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추문성 씨와 추하린 씨를 희망호까지 끌어들인 게 의심돼서요. 그런데 허민재 씨의 협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저한테 도움을 요청하더라고요. 간단히 말해서 소나린 씨가 바로 저를 이 사건에 휘말리게 한 시발점이라고 해야 할까요?”백우석은 순간 눈빛이 예리해졌다.“그러면 소나린 씨가 김예훈 씨를 이 사건에 휘말리게 해서 나쁜 마음을 품고 죽이려고 했던 거 아닌가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굳이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소나린 씨를 통해 최후 배후자가 누군지 알아내려면 당연히 살려둬야죠.”“그러면 배후자가
김예훈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임현우, 곽영현과 허민재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저는 곽영현 씨와 허민재 씨가 손잡고 밀양 국제공항 테러 사건을 조직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최종 배후자가 아니라 조력자이고요. 임현우 씨는 직접 움직이진 않았지만 그 배후자가 누군지는 알고 있을 거예요. 리카 제국에서 전역한 병사들이 희망호 칩까지 가지고있는 걸 보면 임현우 씨의 뒤통수를 치려던 것이 틀림없어요. 그런데도 발끈하지 않고 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면 배후자가 누군지 알고있는 것이 확실해요. 그 사람의 신분이 어마어마해서 두려운 마음에 아무 말도 못 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 해야 하는 건 임현우 씨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거예요. 오히려 저는 피해자로서 지금 이곳을 떠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거 아니겠습니까?”사람들은 멍하니 서로 쳐다볼 뿐이다. 아무도 김예훈이 예상과 달리 백우석이 질문 속에 파묻은 함정을 벗어나 바로 임현우가 진범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낼 줄 몰랐다.김청미는 표정이 창백해지고 말았다.김예훈이 아무 생각 없어 보여도 모든 것을 알고 있을지 몰랐다.우연인지, 아니면 그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지는 몰랐지만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김예훈, 임현우 씨는 이미 조사해 봤어. 진실만을 말하는 약까지 먹였는데 이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어. 배후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억울한 분이라고.”김병욱이 참지 못하고 말하자 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억울하다는 거 나도 알아. 직접 이 사건을 꾸미지 않았으니 진실만을 말하는 약을 먹여도 소용없는 거지. 그런데 배후자를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는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옥주님, 용연옥에서 범인이 진실을 말하게 하는 데는 선수라면서요. 그러면 임 도련님의 입도 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 사건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거든요. 이에 반대하실 분은 없죠?”김서하는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장덕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찬성입니다.”용인주도 옆에서 거들었다.“모든 건
김청미가 휘청거리더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임현우 씨, 왜 사람을 모함하고 그러세요!”“그 입 닥쳐!”김서하가 냉랭하게 말했다.“임현우 씨, 계속 말씀해 보세요.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거 모두 다 말씀하세요.”옆에서 듣고 있던 용인주 역시 담담하게 말했다.“진실만 말하면 죄가 있든 없든 제가 책임지고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리카 제국까지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안전을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임현우 씨를 건드리는 자는 온 가족을 모조리 죽여버릴 것입니다.”이 말에 김병욱 등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용인주가 이 정도로 김예훈을 감쌀 줄 몰랐다.“말할게요!”임현우는 어두운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잡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진두준이 서울 방씨 가문의 딸인 방수아 씨를 마음에 들어 했거든요. 허준서 씨를 이용해서 방수아 씨한테 약을 먹여 원나잇을 하려고 했는데 허준서 씨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김예훈이 있는 곳에서 방수아 씨한테 약을 먹이려고 했어요. 김예훈은 당연히 방수아 씨를 살려줬고, 진두준의 뺨까지 때렸죠. 전에 홍나라 씨가 김예훈의 장모님을 납치한 사실이 들통나면서 계속했다간 김예훈이 꼭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죠. 진두준은 원한은 어떻게든 꼭 갚는 사람이라 희망호 사건을 빌미로 김예훈을 죽여버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깡패들이 막무가내로 밀양 국제공항을 폐허로 만들어 버릴 줄 몰랐던 거죠. 걔가 저한테 폭탄이며 총이며 직접 준비했다고 말했거든요. 그것도 모자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어떤 대단한 분이 김예훈을 죽여버리겠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했어요. 저보고 용전에 들어가면 함부로 말하지 말고 명령에만 복종하라고 했어요. 용전에 들어왔더니 김청미 씨가 저한테 김예훈이 발로 유리창을 깨부수고 도망가는 순간 폭탄이 터지는 동영상을 보여줬어요. 그러면서 김예훈의 자작극인 척 위증해달라고 부탁하길래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위증을 돕기로 한 거고요. 진두준이 면회하러 왔을 때 시키는 대로 하면 배상금으로 10조
김서하를 포함한 사람들의 표정은 순간 일그러지고 말았다.이들은 하나같이 매서운 눈빛으로 김청미를 쳐다보고 있었다.만약 임현우가 한 말이 맞는다면 진두준의 동기가 불순하고 김청미의 심보가 고약한 것이 된다.심지어 이 사건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차기 수장인 김현민과 연관되어 있을수도 있었다.김청미는 결국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제 발 저려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만 봐도 임현우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추하린과 추문성은 이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말았다.추씨 가문이 다른 사람한테 이용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이 사건은 저희 용연옥에서 전적으로 책임질 것이니 용의 부대, 용전, 용문당에서는 감독을 해주십시오.”장덕수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바로 이때, 그의 손짓하나에 몇십 명의 용연옥 정예부대가 달려 들어왔다.용의 부대, 용전, 용문당에서도 각각 감독자를 선정했다.용전과 용문당은 이 일에 나서기 적합하지 않았고, 용의 부대는 이 부분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용연옥에서 처리하는 것이 가장 적합했다.김예훈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임현우를 쳐다보았다.“어차피 임 도련님께서 하신 말씀이 진짜인지 아닌지 곧 밝혀질 건데 이참에 김청미 씨가 당신을 어떻게 이 사건에 끌어들였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사실대로 말씀하시면 저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일은 없던 거로 해드리겠습니다.”용인주 역시 담담하게 말했다.“김 회장님의 억울함만 풀어주신다면 용문당에서도 책임을 묻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 약속드렸던 부분도 유효하고요.”김청미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임현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김청미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리카 제국 임씨 가문에서 저는 특수한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식으로 자리를 물려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후계자일 뿐이고요. 이번에 이곳으로 온 목적은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 제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희망호와 자금마저
이때, 또 장덕수의 손짓 하나에 용연옥 사람들이 무리 지어 혈액검사 진행하러 나섰다.이렇게 된 이상 이미 김예훈이 억울하다는 것과, 김청미 등이 김예훈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김청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그녀는 일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전개될 줄 몰랐다.다른 말로 김예훈이 용전에 들어선 순간부터 컨트롤할 수 없는 국면에 빠졌다고 볼 수 있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차가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다행히 너무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퍽!문이 열리고, 용연옥 사람들이 걸어들어와 상황을 보고했다.“R 국에 연락해서 임현우 씨의 통장에 40조 원이 들어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돈세탁의 방식으로 입금되긴 했지만 송금한 자가 진두준 씨가 맞았습니다. 그리고 혈액도 검사해 보았는데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었고, 최면을 통해 사람의 행동과 의지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오늘 점심 12시쯤, 진두준 씨가 리카 제국 어둠의 성으로 간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그런데 홍성에 있던 50kg의 황금과 함께 사라진 것을 보면 진두준 씨의 짓인 것이 확실합니다. 홍성에서 이 사실을 알고 지명 수배령을 내렸고, 어떻게든 진두준 씨를 잡아 와 여러분께 해명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황금 삼각지대 쪽에도 확인해 보았는데 진두준이 그 깡패들을 고용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용연옥 전문 인사들은 각종 자료를 가져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다.사실 임현우가 한 말이 모두 다 사실이었기 때문에 사건이 이미 종결된 거나 마찬가지였다.김서하가 냉랭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말했다.“증거도 확실한 상황에서 진두준 씨가 이 일을 꾸민 것이 맞네요. 저는 용전의 전주로서 아랫사람을 잘 관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여러분께 꼭 제대로 된 해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용전에서는 상금 2천억 원을 걸고 국제 수배령을 내려 꼭 진두준 씨를 잡아 오도록 하겠습니다.”용전 정예부대는 안색이 안 좋긴 했지만 그녀의 명령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큰 죄를 지었습니다?’간단하기 그지없는 말에 용의 부대, 용연옥, 용전, 용문당 대표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김예훈마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청미를 힐끔 쳐다볼 정도였다.사실 그녀가 쉽게 잘못을 인정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김씨 가문 사걸 중에세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이렇게 쉽게 잘못을 인정하다니.’“김예훈 씨는 경기도에 있을 때 저희 김씨 가문을 풍비박산 내버리고 진주까지 쫓아냈기 때문에 죽도록 미웠습니다. 그래서 진주에 오고부터 계속 계획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성남에서 부산까지, 모두 저의 계획대로였죠. 김예훈 씨는 결국 제가 함정을 파놓은 진주와 밀양에 올 수밖에 없었어요. 두 번이나 암살 작전에 나선 킬러 역시 저였고요. 그런데 운이 얼마나 좋은지 전부 다 비켜 가더라고요.”김청미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밀양 국제공항 사건이 너무 크게 벌어진 바람에 생각을 바꾸게 되었어요. 그것은 바로 공권력을 남용하여 김예훈 씨를 짓밟아 버리는 것이었어요. 1부터 100까지 전부 다 짜놓은 판에 발만 내디디면 총살감이었어요. 그런데 용문당 당주님께서 직접 진주에 와서 4자 대면까지 진행할 정도로 김예훈 씨를 아낄 줄 몰랐어요. 그리고 임현우 저 자식도 돈 받고 저를 배신할 줄 몰랐고요.”김청미는 씁쓸한 표정이었다.“정말 세상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나 보네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요. 제가 용전을 먹칠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떠안겠습니다.”김예훈은 김청미를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도도하기만 하던 그녀가 갑자기 모든 책임을 떠안겠다고 해서 수상한 느낌이었다.김청미의 신분과 힘으로는 일을 이렇게 크게 벌였을 리가 없었다.간단히 말해서 뒤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김청미가 나서서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뒤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김청미 씨, 당신은 진주·밀양 용전 서열 2위로써 공권력을 남용한 것도 모자라 용문당 김 회장님까지 모함하려고 했어요. 용전을 먹칠한 것도 모자라
“오늘은 제가 마침 소식을 듣고 진주로 왔기 다행이지 하마터면 용문당의 기둥인 김 회장님이 용전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유사한 사건이 얼마나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알수 없어요. 용전은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 거지, 누군가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전도 새로운 모습을 보일 때가 되었다고요.”김청미가 죄를 인정하면서 용인주, 장덕수, 하은우는 하나둘씩 용전에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용문당, 용연옥, 용의 부대의 절대다수의 힘은 국내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 감시하고, 서로 다툼없이 평화롭게 지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질 리가 없었다.하지만 대외적인 업무를 맡은 용전은 최근 몇 년 동안 놀라운 발전을 보였기 때문에 차마 간섭할 방법이 없었다.오늘 이 사건을 빌미로 용전을 대대적으로 수색하자는 것도 어쩌면 대한민국 고위층의 뜻일 수도 있었다.김서하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태양혈을 어루만지고 있었다.그녀는 각 대표들의 발언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여러분, 김청미 씨가 잘못한 것도 사실이고, 용전도 책임을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다들 정의로운 척하지 말고 뭘 원하시는지 한번 말씀해 보시죠?”장덕수와 하은우가 힐끔 쳐다보자 용인주가 말했다.“저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별로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김 회장님께 물어보시는 건 어떨까요?”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용인주를 힐끔 쳐다보았다.‘내가 이 기회를 빌어 용전을 손봐주고 싶어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김서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시선을 김예훈에게 돌렸다.“김 회장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가요? 혹은 저희가 어떻게 보상해 드리면 좋을까요?”김예훈이 김서하를 쳐다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부족한 것이 없어서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괜히 정의로운 척하기도 싫고요. 용전이 대외적으로 어떤 업무를 보고 있는지는 몰라도 오늘부로 진주·밀양 용전은 용전 본부에서 계속 관리할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하고, 모든 고위직은 자리에서
“김 회장님께서 진주와 밀양의 중요성을 알고 계신다면 외부인은 관리하기 어려운 곳인 것도 아실 텐데요? 진주·밀양 용전의 독자적 운영과 고위층 퇴임은 약속드릴 수 있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 관리자가 진주·밀양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김 회장님께서 약속하신다면 저 또한 약속을 지켜드리죠. 하지만 김 회장님께서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없었던 일로 합시다. 용문당에서는 저희 용전에 복수하고 싶으신 대로 하셔도 좋습니다.”늘 우아함을 지키고 있던 김서하는 순간 자기편을 들어주는 성격이 드러나고 말았다.보여주는 태도를 봐도 어느정도 선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보였다.김서하의 뜻을 알아차린 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진주와 밀양은 안동 김씨 가문의 구역이었다.용의 부대, 용연옥, 용전과 용문당 간의 단결을 위해 대가를 치르겠다고 해도 모자랄판에 이런 재미있는 요구를 내놓을 줄 몰랐다.진주·밀양 상류인사 중에서 용전을 진압할 만한 사람 중에 상대하기 쉬운 사람은 없었다.대부분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사람이거나 그 가문과 밀접히 연관된 사람이었다.간단히 말해서 김예훈이 김서하의 요구를 들어주면 그 누구를 관리자로 선택하든 진주·밀양 용전은 안동 김씨 가문의 손에 들어갈 것이 뻔했다.김서하는 양보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태도를 강경하게 보여주었다.이에 용인주, 장덕수 등은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잘 따져보면 김예훈이 직접 진주·밀양 용전의 수장을 맡기에는 어려웠다.외부인으로서는 진주·밀양에 발붙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어디 가서 적합한 후보자를 찾지?’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김서하를 향해 피식 웃었다.“사모님께서 제 조건을 들어주신다는데 제가 어떻게 사모님 조건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후보자를 용전에서 직접 뽑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김서하가 담담하게 말했다.“당연히 김 회장님께서 직접 뽑는 거죠.”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청미, 김병욱과 곽영현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이해 못 하겠어?”김예훈은 앞으로 걸어가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김태빈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이해 못 하겠으면 나를 죽여버리든가. 그럴 수나 있겠어?”김예훈의 담담한 표정에 김태빈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다음 순간 더는 참지 못하고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김예훈의 이마를 겨냥했다.“김예훈, 입 다물라고. 내가 말해주는데 여긴 안동 김씨 가문의 구역이야. 여기서는 내가 기라면 기고, 엎드리라면 엎드려야 하는 거라고. 넌 여기서 함부로 날뛸 자격은 없어. 난 킬러가 너를 다치게 했든 안 했든, 용문당이 심문하든 안 하든 상관없어. 한마디만 물을게. 범인을 넘길 거야. 안 넘길 거야. 안 넘기면 용문당 체면이고 뭐고 그냥 죽여버릴 거야. 싸움 잘하는 건 알겠지만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총알을 이길 수 있겠어?”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의 오십 명에 달하는 골든 수비대 정예들이 동시에 김예훈의 전신을 노렸다.이 순간 김태빈이 한마디만 하면 바로 김예훈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전혀 흔들림 없이 피식 웃더니 어깨를 으쓱였다.“내 손에서 사람을 데려가려면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할 텐데. 그깟 총 몇 자루로는 나랑 상대할만할 자격이 없을 거야.”“자격?”김태빈은 피식 웃고 말았다.“안동 김씨 가문에서는 용전이든, 용연옥이든, 용의 부대든, 용문당이든 다 상관없어. 5대 문호, 10대 명문가 규칙에 따르면 우리 안동 김씨 가문이 바로 진주·밀양에서 왕이야. 네가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든, 용의 부대의 보호 대상이든 전혀 상관없어. 단언컨대 진주·밀양에서는 넌 그저 나한테 협조할 수밖에 없어. 방해할 생각하지 마. 아니면 너를 죽여버리고 여기를 평지로 만들어버릴 거니까. 내가 사모님을 죽이지 못할 것 같아?”김예훈의 말에 자극받았는지 김태빈은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살기가 가득했다.“여기를 평지로 만들어버리겠다고?”김예훈은 무슨 우스갯소리를 들은 것처럼 골든 수비대를 쳐다보았다.“너희들은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을 텐데
입구에는 오직 김예훈만이 제자리에 서서 김태빈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김태빈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내 앞길을 막지 말고 꺼져.”김태빈의 거만한 말투에도 김예훈은 화를 내지 않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날 못 알아보겠어? 태산 뒷산 금지구역에서 몰래 양상철 어르신이 아마미네 토시로를 죽이려는 걸 막은 사람이 너지? 일본인의 앞잡이가 되어 내가 아마미네 토시로를 죽이는 걸 방해해놓고 나를 모른 척하는 거 재밌어?”김예훈의 웃을 듯 말 듯 한 말투에 김태빈은 분노하고 말았다.“입 다물어.”저번에 김현민을 위해 나선 것은 은혜를 갚기 위함이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그런데 애써 숨겨온 신분이 김예훈 앞에서 바로 투명하게 밝혀질 줄 몰랐다.비록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김태빈은 경계심을 품기 시작했다.‘역시 김현민과 김서하 모두를 골머리 앓게 만든 사람이네.’“당연히 알지. 여자 등이나 처먹는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인 김예훈이잖아. 내가 말해주는데. 네가 용문당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너를 어쩌지 못할 거라 생각하나 본데. 여긴 진주·밀양이야. 우리 안동 김씨 가문의 구역이라고.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라고 해서 함부로 해도 되는 줄 알았으면 오산인 거야. 여긴 안동 김씨 가문의 말이 곧 법이거든.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내가 진주·밀양에서 한 달에 얼마나 많은 부잣집 도련님들을 죽이는지 알아? 내가 원한다면 너 하나쯤 죽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야.”김태빈은 김예훈을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말했다.“너를 건드리지 않는 건 사모님의 체면을 봐서야. 아무리 그래도 여긴 사모님 별장이잖아.”“쯧. 사모님 별장이라는 거 알고는 있었어? 안동 김씨 가문의 안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냐고.”김예훈은 가소로운 표정으로 그를 비웃고 있었다.“그러면 네가 지금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옳고 그름도 구분하지 못하고 어른을 모욕하는 거만한 짓? 골든 수비대
안동 김씨 가문에서 골든 수비대의 지위는 집행 기관과 유사하기도 했고, 폭력성을 띤 조직이기도 했다.그들은 안동 김씨 가문의 중요 인물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내부 안전을 수사하고 잠재적 위험 요소를 해결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깨끗한 일이든, 더러운 일이든 모두 골든 수비대에서 책임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그리고 장기간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골든 수비대 인원들은 매년 반년 동안 해외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이들은 정말 칼에 묻은 피까지 핥는 사람들이라 각자의 실력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고, 평범한 경호원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었다.곧이어 흰 정장을 입고 머리를 뒤로 넘긴 남자가 앞장서서 50여 명의 장정을 이끌고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은 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원래는 김현민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동 김씨 가문의 절세 총잡이인 김태빈이 찾아올 줄 몰랐다.김예훈은 양상철이 했던 말이 떠올라 자연스레 시선이 그의 손으로 향했다.새하얀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을 보고 있자니 뭔가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박연서의 전담 보디가드인 김윤후가 앞으로 나서서 차가운 시선으로 김태빈을 바라보았다.“셋째 도련님 맞으시죠? 어떻게 겁도 없이 이 시간에 쳐들어올 수 있는 거죠?”김태빈은 검은 우산을 펼치며 김윤후를 흥미롭게 쳐다보았다.“언제부터 하인 따위가 내 앞에서 함부로 떠들 수 있었던 거지?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면 내가 골든 수비대 책임자로서 안동 김씨 가문 고위층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도 알 텐데? 방금 거미파 킬러가 사모님을 암살하려 했다는 신고받고 왔어. 이건 우리 안동 김씨 가문 고위층의 안전과 체면에 중요한 일이라 범인을 데려가야겠어. 심문이 끝나면 처리해야 되는대로 처리할 거야. 때리든 죽이든 사모님께 명확한 답변을 드릴 거라고. 김윤후, 네가 아무리 사모님 전담 보디가드라고 해도 여기서 말할 자격은 없어. 난 특권을 받은 사람이야.
빅토리아 항구 사무실 안.김현민은 이제 막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전화를 받는 순간 표정이 변하더니 결국 일그러지고 말았다.“왜? 이번 계획도 실패한 거야?”옆에 있던 김서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김현민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계획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거미파 킬러가 박연서한테 잡혔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킬러가 현재 혼수상태에 빠져서 아직 뭘 알아낸 건 없나 봐요. 박연서가 이미 수장님께 전화해서 심층 심문할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했대요. 시간만 충분하다면 무조건 저희를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비록 증거는 없지만 이 또한 골치 아픈 일이 아니겠어요?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제가 수장 자리에 앉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요.”김현민은 일이 이렇게 복잡해질 줄 몰랐는지 이마를 문질렀다.김예훈 암살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박연서 암살마저 실패했기 때문이다.이 순간 그는 자기 실력과 능력이 의심될 정도였다.김서하도 이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가 잠시 후에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현민아, 어떻게든 그 킬러를 무조건 죽여야 해. 죽이진 못하더라도 우리가 잡아 와야 해. 아니면 정말 엄청난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어.”“저도 알고 있어요.”김현민은 한숨을 내쉬면서 뒷짐을 쥐고 걸어가 금고를 열어 암호화된 핸드폰을 꺼냈다.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지문인식과 홍채인식을 마치자 신속히 통화가 연결되었다.이때 전화기 너머에서 다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김현민이 냉랭하게 말했다.“방금 들은 소식인데 거미파 킬러가 안동 김씨 가문 안주인 암살에 실패했대. 거미파가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킬러를 데려와야 해. 난 다른 사람이 이것을 내 약점으로 나를 모함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상대방은 잠시 침묵하다 담담하게 말했다.“김현민, 잘 기억해. 이번이 네가 마지막으로 안동 김씨 가문 차기 수장의 신분으로 나한테 명령한다는 거. 나도 최선을 다하겠
“김현민이요.”박연서는 이번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전체 안동 김씨 가문에서 저한테 손댈만한 기회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그리고 제가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현민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저를 죽이지 못해 안달나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제가 곧 호적상으로 엄마가 될 텐데 말이에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러니까 제가 저번부터 김현민은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박연서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단정 지을 수만은 없어요. 제가 십 년 전 사건을 다시 들추기로 한 이상 많은 이들의 이익을 건드릴 수밖에 없어요. 김현민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제가 죽기를 바랄 거예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저를 죽이고 싶어도 제가 무서워서 차마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저는 어차피 아직은 안동 김씨 가문 수장의 아내이자 서열 2위니까요. 이 많은 사람 중에 저한테 손댈만한 사람은 얼마 없어요. 그리고 김현민은 그중에서 단언컨대 제일 겁 없는 사람이고요.”김예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이번 사건을 통해 십 년 전 사건을 주도한 사람이 김현민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거예요?”박연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했다.“김현민은 그때 당시 겨우 열네 살에 불과했어요. 그 어린아이가 이런 사건을 도모할 수는 없잖아요. 김현민과 얽히긴 했겠지만 뒤에서 누군가가 부추긴 것이 틀림없어요. 예를 들어 큰아주버님인 김태훈 씨나 막내 아가씨 김서하 씨말이에요. 형제들이 연합해서 꾸민 일이라고 해도 불가능할 건 없죠.”김예훈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문질렀다.“비록 저한테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사모님한테는 사방이 적이네요.”박연서가 또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십 년 전 사건에 참여한 사람은 이번에 저를 다시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함부로 움직여봤자 눈에 띌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정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단 한 명. 바로 김현민이겠죠.”박연서는 감탄하기
쨍그랑.김예훈이 찻잔을 던지는 순간, 여자 부하는 본능적으로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이어 본능적인 행동 때문에 신분이 드러났음을 깨달은 그녀는 표정이 차가워지고 말았다.이 순간, 그녀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은침 무더기를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던졌다.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냅킨으로 그 모든 은침을 받아냈다.그 틈을 타 여자 부하는 몸을 낮추더니 어느샌가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그녀는 굴러서 박연서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녀의 목에 칼을 대려고 했다.피융. 피융. 피융.하지만 칼을 드는 순간 겉보기에는 힘이 전혀 없어 보이는 박연서가 어느새 손에 총을 쥐고 있었다.박연서가 무심한 듯 총을 쏜 것 같아도 여섯 발 모두 그녀의 몸에 박혔다.여자 부하는 잠시 몸부림치다 열국 일그러진 표정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겉보기에는 힘없어 보이는 박연서가 도대체 어디서 총을 꺼냈는지 말이다.“조사해봐. 가족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한 무리의 안동 김씨 가문의 보디가드들이 달려들어 오는 가운데, 박연서는 휴지로 손가락을 닦으며 아무렇지 않게 명령했다.“오늘 접촉했던 사람 모두. 개 한 마리라도 절대 놓치지 말고 철저히 조사해. 과연 누구를 접촉했는지, 또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알아야겠어. 안동 김씨 가문의 별장에 반년이나 잠복한 걸 보면 반년 전부터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했던 모양이야.”박연서의 명령에 따라 한 무리의 보디가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진주·밀양에 곧 피바람이 불지 않을까 싶다.곧이어 시체는 치워졌고, 식탁도 말끔히 정리되었으며 공기 중에는 은은한 향기마저 감돌았다.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누가 방금 이곳에 암살 사건이 벌어졌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김예훈은 박연서에게 한 수를 둔 것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에 그녀를 흥미롭게 쳐다보았다.적어도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보이차를 마시고 있던 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중요한 순간에
김예훈이 그 모습을 보더니 또 피식 웃었다.“이번 일을 겪은 것도 사모님께는 좋은 일인가 봐요. 조심스러워졌네요.”박연서가 말했다.“한 번 실패를 겪고 나면 경험이 생기는 거죠. 지금도 예전처럼 살았다면 어떻게 죽게 될지도 몰랐을 거예요. 제가 십 년 전 사건을 밝히려고 했을 때부터 저를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을 거예요.”이 말에 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는 십 년 전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심지어 진주·밀양 두 도시 전체가 얽히고설켜 있을지도 몰랐다.창밖 날씨가 어두운 것이 마치 곧 폭풍우가 몰아칠 것만 같았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용모가 아름답고 몸매도 날씬한 한 여자 부하가 카트를 밀며 들어왔다.그녀는 박연서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하면서 말했다.“사모님, 조식이 준비되었어요.”“얼른 올려.”박연서의 손짓 하나에 주식이며 디저트며 과일까지 화려하게 차려졌다.이 밖에도 식탁 위에는 인삼차와 보이차도 놓여있었다.보이차는 호불호가 없는 김예훈을 위해 준비한 것이고, 인삼차는 박연서의 평소 취향에 맞게 준비된 것이다.여자 부하가 모든 음식을 올려서야 박연서는 그녀에게 나가보라고 했다.이어 박연서는 차를 후후 불면서 웃으며 말했다.“김 도련님께서 아침을 드시지 않은 것 같아 성의껏 준비해봤어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저희 셰프님은 못하는 게 없거든요.”박연서가 인삼차를 마시려던 때, 김예훈은 갑자기 숨죽이더니 표정이 확 굳어졌다.“사모님, 잠깐만요!”김예훈은 예의 차릴 겨를도 없이 박연서 손에 있던 찻잔을 낚아채 냄새를 맡더니 뒤돌아 떠나가는 여자 부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인삼이 좋은 물건이긴 하죠. 고려인삼이든 서양 인삼이든 기를 보충하고 혈액순환을 돕는 귀한 약재이긴 한데 이 세상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귀면삼이라는 것도 있어요. 깊은 산속에 있는 무덤에서 시체의 음기를 흡수하면서 자라는 삼인데 모양새나 냄새는 일반 인삼과 거의 똑같다고 볼 수 있어요. 그
비록 외부에서는 박연서가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지만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분석을 들어봤을 때 다시 젊었을 때의 냉철함과 결단력을 되찾은 것 같았다. 말을 마친 박연서는 뒤돌아 김예훈을 바라보면서 뭔가 의견을 얻고 싶어 했다.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사모님, 설마 자료들을 백업 안 했다고 하실 건 아니죠?”“당연히 백업했죠.”박연서는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절대 복사하면 안 되는 기밀문서도 포함해서 전부 다 복사하라고 했거든요.”박연서는 어쩔 수 없이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그런데 일이 좀 복잡해졌어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계속 조사할 수는 있지만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 아무런 증거를 내놓지 못할까 봐 걱정이에요. 복사본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거든요.”김예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너무 의기소침해진 거 아니에요? 증거가 사라진 건 맞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 처리할 때 증거만 보는 거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님이라든지. 수장님이라고 해서 그동안 친자식이 왜 그렇게 일찍 죽었는지 알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어르신한테도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까요? 이 모든 것이 진짜라고 해도 범인을 보호하려고 한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예요.”박연서는 멈칫하더니 곧 반응했다.‘내가 너무 확실한 증거만 집착했나? 가끔은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잖아.’이 점을 깨달은 박연서는 부하들에게 서재를 정리하라면서 김예훈에게 아침을 대접하고 싶어 했다.식탁 앞에 앉은 박연서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보면서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제 아들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과연 현민이처럼 변했을지. 아니면 김 도련님처럼 변했을지 말이예요.”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김현민처럼 변했겠죠. 사실 잔인하고, 뻔뻔하고, 짐승보다도 못한 것을 빼면 딱히 다른 단점은 보이지 않잖아요.”박연서는 김예훈이 김현민에 대한 평가를 듣고 잠
김현민은 눈빛이 반짝이더니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호적상으로 엄마인 사람을 어떻게 하려면 더욱더 신중해야 할 거예요. 워낙 의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게다가 넷째 삼촌도 특별히 아끼시고, 옆에 탑 장병급 실력자도 있는데 말이에요. 박연서를 한 번에 죽이지 못하면 저희가 난처해질 수밖에 없어요.”“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야.”김서하는 피식 웃더니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이거 대한민국 랭킹 1위 킬러조직 거미파 연락처인데 마침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할 거 있거든.”...다음 날 아침. 시즌 호텔 스위트룸에서 깨어난 김예훈은 핸드폰에 몇 통의 문자가 도착해있는 것을 발견했다.하나는 양유선이 아마미네 토시로에 관해 보고한 내용이었다.무사히 도주한 아마미네 토시로를 제외하고는 모든 일본인이 남양파의 손에 넘어갔으니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가 없었다.또 다른 메시지는 총잡이에 관한 정보였는데 추하린은 지금 그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서 오래전부터 사라진 막내 도련님인 김태빈으로 추정하고 있었다.김태빈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셋째의 아들이었고, 수년간 중동전쟁에서 활동하면서 거의 돌아오지 않던 그가 최근에 돌아왔다는 소문도 있었다.마지막으로는 공진해가 보내온 메시지인데 김예훈 요구대로 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을 조사해봤지만 아무리 전문적인 공진해라고 해도 혜선 스님이 오륜 승려가 입양한 버려진 아이인 것 빼고는 아무런 정보도 따내지 못했다.그녀의 과거는 말하자면 완전한 백지였다.그래서 오히려 더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었다.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예훈은 또다시 이들에게 무언가 시키고는 일어나 씻었다.막 아침 식사를 하려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발신자는 다름 아닌 박연서였고, 문제가 생겼는데 잠깐 와줬으면 했다.김예훈은 멈칫하다 말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옷을 갈아입고 택시 타고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별장으로 향했다.하지만 교통체증으로 거의 두 시간 만에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