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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작가: 가하

제1화

변호사 사무소에서 나오자 정유진은 다리가 풀린 채 주저앉을 뻔했다.

“아가씨 죄송합니다. 약혼남 사건은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 강 씨 가문과 연관이 돼 있는 한 서울 그 어디에도 이 사건을 맡으려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미리 치른 선금까지 그대로 돌려주겠다며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두려워하는 모습은 유진을 깊은 심연으로 빠트렸다.

유진과 약혼남 한빈은 대학교 시절부터 만나온 사이였다. 한빈의 사업을 옆에서 지지해주며 드디어 회사를 어느 정도 규모로 키워냈고 둘의 결혼도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 시점에 누군가가 회사의 자금 운용에 문제가 있다고 고발했고 한빈은 검찰에 소환된 채 회사 역시 록다운 상태가 되었다.

그들의 눈앞에 아른거리던 행복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배후 세력은 강 씨 가문이었다.

서울에서 제일가는 재벌에 기침 한 번이면 서울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 바로 이 강 씨 가문이었다.

유진은 차를 끌고 한빈을 만나러 구치소로 향했다. 며칠을 잠조차 제대로 못 잔 듯 퀭했고 수염마저 거뭇거뭇한 것이 전에 보던 위풍당당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유진을 보자마자 한빈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때, 유진아? 변호사는 뭐라고 했어?”

유진은 억지로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 변호사들이 최선을 다해줄 거야.”

“거짓말하지 마!” 한빈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강 씨 가문이 꾸민 일이야, 온 서울에 우리를 위해 변호해 줄 사람이 없는 거 맞지?”

한빈이 눈치챌 줄 몰랐던 유진은 어쩔 수 없이 답했다.

“... 변호사가 선금을 모두 돌려줬어. 강 씨 가문을 건드리는 사건이라고…”

한빈이 큰 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강 씨 가문이 일부러 그런 거야. 우리 회사를 집어삼키려고 의도적으로 날 함정이 빠트린 거지. 유진아 날 믿어줘, 난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도 알잖아. 내가 왜 자금 세탁 같은 일을 하겠어?”

유진이 답을 주기도 전에 한빈이 급하게 덧붙였다.

“날 구할 방법이 하나 있어. 네 도움이 필요해.”

유진이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방법인데?”

한빈은 유진의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말했다.

“강지찬한테 사정해 줘. 그만해달라고.”

강지찬은 강 씨 가문의 실권자로 K그룹 대표이자 CEO였다.

소문으로는 여색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다 했는데 유진 같은 미인 앞에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유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내가 사정한다고 해서 될까?”

한빈은 확신에 찬 얼굴로 유진을 꼬드겼다.

“당연하지. 네가 사정하면 무조건 될 거야. 강지찬만 조용히 넘어가면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바로 나갈 수 있어. 그럼 바로 결혼하는 거야. 유진아, 내 제일 큰 소원은 너에게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주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줄게.”

유진은 손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한번 해볼게.”

에이프릴 홀, 서울에서 가장 큰 연회장에서.

유진은 옷매무새를 고치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후 깊게 숨을 내쉬고 드레스룸을 나왔다.

“쟨 왜 왔대? 약혼자가 잡혀들어갔는데 나와서 놀 여유가 있는 모양이야. 양심도 없지.”

“네가 몰라서 그렇지. 약혼자가 미덥지 않으면 다른 남자라도 찾아야지. 오늘 강 씨 가문에서 주최한 연회인데 이 가문 남자들이 한빈보다 못하기야 하겠어?”

유진은 왈가왈부하는 여인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은 채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갔다.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갔고 유진은 한 바퀴 훑어보더니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인 강지찬을 발견했다.

무리의 남자들 모두 옆구리에 아리따운 여성들을 끼고 있었지만 강지찬만이 혼자 소파 하나를 차지한 채 앉아있었다.

역시 경제신문에서 보던 얼굴과 똑같았고 보는 사람마다 존경심이 생기게 하는 모습이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 유진은 강지찬에게 다가갔다.

“강 대표님...”

“꺼져.”

강지찬은 쳐다볼 가치도 없다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목소리에는 불쾌함마저 감돌았다.

구경꾼들이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낯짝이래. 강 대표님을 꼬시려고? 주제를 알고 나대야지.”

“강 대표님 정도면 저 쓸모없는 약혼남보다 한 만 배쯤 나으려나? 하하하!”

정유진도 모든 이가 그녀를 우스갯거리로 생각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녀도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양주 한 병을 잡아채더니 그대로 입에 가져다 댔다.

구경꾼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자리에 굳어졌다.

도수 높은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내려오자 고통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

한 병을 다 비우고 빈 술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소파에서 여전히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는 지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 대표님, 제발 우리 그이 한 번만 봐주세요.”

드디어 강지찬이 고개를 들어 정유진의 아름다운 얼굴에 시선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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