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도현은 로렌과의 면담에서 반드시 원하는 답을 얻고 싶었다.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설득해야 했다. 로렌 아리사의 능력은 지금 도현에게 너무도 절실했다.하지만 도현이 준비한 조건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로렌은 서류를 읽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계약서에 적힌 연봉만 해도 현재 받는 금액의 두 배가 넘었다.물론 조건도 있었다.동일 업종 이직 금지.로렌에게는 사실상 종신계약이나 다름없는 조건이었다.한참 동안 서류를 살펴보던 로렌이 고개를 들었다."제가 이 서류에 사인하면 제가 얻는 건 뭘까요, 사장님?"도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경영본부장 자리를 제안합니다."로렌의 눈이 커졌다."어머. 저 지금 대리인 건 아시죠?""네, 알고 있습니다."도현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정상적인 성과를 인정받고 승진했다면 지금쯤 부장급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로렌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웃었다."전 지금 자리도 만족해요."도현은 그녀를 바라봤다."진심이십니까?"로렌은 도현의 적극적인 태도에 잠시 머뭇거렸다.그러다 이내 미소를 지었다."그럼 사장님. 저도 조건이 하나 있어요."도현은 곧바로 대답했다."말씀해 보시죠. 가능한 건 맞춰드리겠습니다."로렌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사장님, 저랑 열 번만 데이트해 주세요.""네?"도현의 표정이 굳었다.로렌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데이트요. 그냥 가벼운 만남 말고, 연인끼리 하는 데이트요."그녀는 도현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가능하세요?"순간 도현은 당황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렸다.딸깍!컵이 책상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그 모습을 본 로렌은 환하게 웃었다."사장님, 연애 안 해보셨어요? 하하."도현은 황급히 컵을 바로잡았다."아니요. 그런 건 아니지만……."잠시 말을 고른 뒤 덧붙였다."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건이라 조금 당황스럽습니다."로렌은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하하. 그럼 고민해 보시고 오늘 중으로
토요일 아침.도현은 주말이라고 느긋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앞으로 회사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하며 책상 앞에 앉아 메모를 하고 있었다.얼마나 집중했는지 휴대전화가 울리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잠시 후 다시 벨소리가 울렸다.그제야 도현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아, 죄송합니다. 리천 형님.""아래에 도착하셨다고요? 네, 지금 내려가겠습니다."리천이 도착했다는 말에 도현은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1층에 도착한 도현은 리천을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그런데 리천의 옆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도착하시기 전에 미리 연락을 주시지 그러셨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형님."리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아니야. 강 사장이 바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안 그래?"그리고 옆에 선 남자를 소개했다."아, 그리고 강 사장. 인사하게. 이쪽은 카터 문이라고 하네. 자네와 같은 조선 출신이야."도현은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안녕하십니까. 강도현입니다."남자도 손을 내밀며 웃었다."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조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네요. 문성진입니다. 편하게 카터 문이라고 불러주십시오.""예. 그럼 카터 문 씨라고 부르겠습니다."도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말했다."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시죠."세 사람은 근처의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자리에 앉자 리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강 사장. 카터 문 씨는 카지노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야."잠시 도현을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쉬카이 형님이 어렵게 수소문해서 모셔 온 분이니 잘 부탁하네."카터 문이 손사래를 쳤다."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예전에 쉬카이님께 신세를 진 것도 있고요."그는 도현을 바라보며 웃었다."무엇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강 사장님에게 흥미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도현은 고개를 숙였다."고맙습니다. 저는 지금 무엇보다 사람이 절
도현이 회의실로 들어가자 임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도현은 천천히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자리 앞에 서서 직원들을 바라봤다.그리고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본사에서 새로 온 강도현입니다.""자, 다들 자리에 앉으실까요."임직원들과 도현이 자리에 앉았다."자, 오늘은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얼굴 익히려고 만든 자리입니다.""큰 변화가 있어도 다들 잘 따라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지금 앞에 놓인 서류들을 검토해주시고, 내일 이 시간에 다시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이것으로 취임사를 대신하겠습니다."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자 직원들도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도현은 회의실을 나서며 직원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눴다.짧은 취임사를 대신하는 인사였다.도현이 밖으로 나가자 직원들도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사장실.도현은 자리에 앉아 실무 서류들을 살펴보고 있었다.그때.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네, 들어오세요."문이 열리고 직원 한 명이 들어왔다.직원은 도현의 책상 위에 서류를 올려놓고 말했다."사장님, 정말 비서 없이 괜찮으시겠습니까?""하하. 제가 지금까지 하던 게 비서였습니다.""한동안은 이게 편할 것 같습니다.""예. 그럼 그렇게 알고 따로 준비하지 않겠습니다.""네.""참, 그리고 재무이사님 좀 뵙자고 해주십시오.""예."직원은 물러갔고, 도현은 남은 서류를 검토했다.잠시 후.재무이사가 도현의 방으로 들어왔다.둘은 한동안 서류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이야기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도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재무이사와의 회의를 마쳤다.재무이사가 자리를 떠나자 직원이 다시 들어와 도현에게 말했다."사장님, 여기 부탁하신 직원 인사기록 카드입니다.""네, 감사합니다. 자리에 놓고 일 보세요."도현은 직원들의 인사기록 카드를 검토하며 앞으로의 구상을 생각하고 있었다.직원들 기록을 보던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이름을 하나
도현은 마카오 국제공항에 내렸다. 마중 나온 직원이 손짓했다. "어서 오십시오. 안내하겠습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직원은 도현의 짐을 나눠 들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사장님, 밤이 늦었으니 일단 숙소로 가겠습니다." "네, 그럼." 직원은 짐을 차에 싣고 도현을 뒷좌석에 태웠다. 차는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와 한적한 밤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도현은 뒷좌석에서 거리를 바라봤다. 문득 마지막으로 봤던 장신위에의 모습이 떠올랐다. 도현의 마음속에 있는 여자는 윤서연 한 명이었다. 하지만 장신위에에게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감정이 있었다. 어쩌면 조금은 연민에 가까운 감정인지도 몰랐다. 도현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차량은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직원은 주차를 마친 뒤 뒷좌석 문을 열고 도현을 안내했다. 호텔방 키와 차키를 도현에게 건넸다. "사장님, 여기 키 받으십시오." "짐은 올려 보내라고 얘기해놓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그리고 내가 오전에 통화로 지시한 건 어떻게 됐죠?" "예, 사장님." "말씀하신 건 내일 중으로 준비될 것 같습니다." "그래, 고마워요." "내일 오전 9시에 전체회의를 진행할 테니 다들 모이라고 해주세요." "예, 사장님.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직원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 호텔방. 도현은 테이블에 앉아 물 한 잔을 마셨다. 마음속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이제 시작이다.' 도현은 지갑을 열어 부모님의 사진과 윤서연의 사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다시 조선에 돌아간다면 그 누구도 나를 어찌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돌아가야 한다.' 도현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 한편, 같은 시각. 장신위에는 도현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와 화장대 앞에 멍하니 앉아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도현은 씻고 장 회장의 집무실 앞에 섰다.노크를 하며 말했다."회장님, 접니다.""그래, 강 팀장. 들어오게."도현은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 장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 오늘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장 회장은 서류를 살펴보며 물을 한잔 마셨다."그래. 오늘은 별일 없군.""강 팀장, 준비는 다 된 건가?""예, 회장님. 준비는 마무리했습니다.""그래. 그럼 자네 일정 알아서 처리하고 저녁에 집에서 가기 전에 마지막 식사라도 하고 떠나지?""예, 회장님. 그럼 그리 알고 저녁 식사 전까지 맡은 일 처리해놓겠습니다.""그래. 그럼 일 보게."도현은 장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나왔다.먼저 장 회장의 비서실에 들렀다.한 직원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강 팀장님 가시면 이제 저희끼리 잘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도현은 웃으며 직원들에게 다가가 격려의 말을 전했다."잘들 하실 거라 믿고 갑니다."도현은 한참 동안 직원들에게 설명했다.자신이 천웨이에게 배웠던 것과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까지 모두 직원들에게 숙지시키고 있었다.인수인계는 점심쯤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도현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예. 그쪽으로 지금 이동 중입니다.""예. 간단하게 식사하시면서 이야기하시죠."전화를 끊고 운전을 계속했다.도현이 도착한 곳은 어느 고급 식당이었다.들어가자 직원이 도현을 알아보고 방으로 안내했다.직원이 방문을 열어주자 안에서는 쉬카이, 류펑, 마준, 리천, 뤄진 이렇게 다섯 명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쉬카이가 반기며 자신의 옆자리로 오라고 손짓했다.도현은 인사를 하고 쉬카이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방금 시작했다. 어서 와서 먹자."마준과 류펑, 리천, 뤄진과 차례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자, 인사는 뭐 다 아는 사이니까 어서 식사부터들 하자. 이야기는 식사하고 난 다음에 시작할 거다."다들 쉬카이의 말에 고개
도현의 방문이 조용히 열리고 그림자가 들어왔다.도현은 방금 잠이 들어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그림자는 서서히 도현에게 다가가 도현이 덮고 있던 이불을 살며시 올렸다.그리고 도현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도현을 등 뒤에서 안은 채 숨을 죽이고 조용히 도현의 등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느꼈다.그림자는 장신위에였다.도현이 잠결에 뭐라고 잠꼬대를 했지만 장신위에는 들을 수 없었다.장신위에는 속삭이듯 도현의 귓가에 말했다."오늘만이야. 오늘만. 다음부터는 이러지 않을게."그리고 도현을 안은 채 눈을 감았다.도현은 피곤과 술기운에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장신위에도 도현의 품에서 잠들었고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한편.린메이화는 응접실에 있었다.린메이화는 혼자 조용히 와인을 한잔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장신위에가 도현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린메이화는 장신위에의 마음이 다칠까 봐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기에 말릴 수 없었다.장신위에가 스스로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그렇게 자라왔고 배웠기 때문에 도현의 존재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장신위에는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첫사랑의 감정을…….---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장신위에는 조용히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방에서 나온 장신위에는 주방으로 가서 물 한 컵을 마시고 있었다.그때 린메이화가 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오고 있었다.장신위에는 흠칫 놀랐지만 태연하게 말했다."엄마, 일찍 일어났네."린메이화는 조용히 말했다."신위에야…….""응, 엄마."린메이화는 다짐한 듯 말했다."그런다고 강 팀장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야."장신위에는 놀랐지만 린메이화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 체념하고 솔직하게 말했다."알아요. 오늘이 이 집에서 강 팀장에게 마지막 밤이라는 걸 알기에 참을 수가 없었어요.""도현이한테는 오늘만이라고 말했지만 도현이는 내가 다
"강도현."윤태성은 서류철을 덮었다.책상 위에는 한 청년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평범한 옷차림.평범한 외모.평범한 집안.귀족 사회에서는 하루에도 수천 명씩 스쳐 지나가는 평민 중 하나였다.그런데 그런 인간이.자신의 딸과 만나고 있었다."대학교 2학년."비서가 보고를 이어갔다."성적은 우수합니다.""가문은?""부친은 공장 근로자, 모친은 식당 종업원입니다."윤태성은 피식 웃었다.아주 짧은 웃음이었다."딱 평민이군."비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가씨는?""최근 외출 횟수가 늘었습니다.""이유는?
도서관에서 만나는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었다.강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창가 자리를 먼저 확인했다.그리고.그 자리에 윤서연이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반대로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괜히 허전했다.오늘도 마찬가지였다."안녕하세요."서연이 먼저 손을 흔들었다.도현은 웃으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일찍 오셨네요.""도현 씨가 늦은 거예요.""설마 기다리신 겁니까?"장난처럼 던진 말이었다.그런데 서연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조금요.""..."도현은 순간 말을 잃었다.서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책
그날 이후. 강도현은 이상하게도 윤가 저택에서 만난 여자를 잊을 수 없었다. 이름도 모른다. 나이도 모른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났다. "정신 차려." 도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상대는 귀족이다. 그것도 평범한 귀족이 아니라 최고 명문가 사람. 자신과는 처음부터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 며칠 뒤. 서울 시립도서관. 도현은 평소처럼 취업 관련 서적을 찾고 있었다. 그
8년 전. 서울. 조선의 수도. 초고층 빌딩이 하늘을 찌르고 무인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현대 도시. 하지만 사람들의 신분은 여전히 수백 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귀족. 그리고 평민. 태어나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는 나라. 조선이었다. * "도현아! 늦겠다!" 이른 아침. 낡은 주택가 골목에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강도현은 허겁지겁 신발을 신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다녀오겠습니다!" "밥은 먹고 가!" "시간 없어요!" 도현은 손을 흔들며 골목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