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혜가 입술을 앙다물고 웃었다.“납작하게 할 것까지는 없어요. 난 그저 회사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서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싶어요.”비서는 안다혜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야망이 큰 여자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큰 포부를 가진 사람이 한곳에 갇혀있는 걸 원할 리가 없었다.“얼른 가서 일 봐요. 상황은 내가 조금 더 고민해 볼게요.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말아요.”안다혜가 웃으며 말하자 비서도 뜻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했다.“네. 대표님.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르세요.”“그럴게요.”비서는 안다혜의 사무실에서 나오며 생각을 완전히 정리했다. 아무 쓸모 없는 사람들을 신경 쓰기보다는 안다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사람들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걸어가는 비서를 보며 임원들의 조롱이나 받는 사람을 모시면서 왜 저렇게 우쭐거리는지 의문이었다.안소현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비웃었다. 안다혜가 만약 해외 프로젝트를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임원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되면 안소현이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임원들의 미움을 산 안다혜가 알아서 나가떨어질 것이다.‘나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면 되겠네.’...부지를 사는 일로 안다혜는 아침 일찍 회사로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일했다. 결정권자들인 임원이 동의하지 않으니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저 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윤해준과 만날 기회가 매우 적었다.사실 윤해준도 저번에 안다혜를 그렇게 차갑게 대한 걸 후회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저녁이면 안다혜는 다른 방에서 잠을 잤기에 두 사람은 만날 기회가 아예 없었다.아침이 되어 윤해준이 식사 준비를 끝내면 안다혜는 이미 회사로 출근한 뒤었기에 결국 모든 음식은 다 한유라의 배로 들어갔다. 한유라는 이런 상황이 더없이 기뻤지만 윤해준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이런 상황을 계속 두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소통이 부족해서 생긴
임원들은 안다혜가 이렇게 오만한 이유를 태안 그룹을 혼자만의 회사라고 생각해 그런다고 여겼다. 언니도 이렇게 말할 정도면 본인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그렇게 상황은 점점 더 크게 번져갔고 결국 비서의 귀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비서는 억울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대표님은 분명 회사를 위해서 그런 건데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비서는 좋은 일을 하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안다혜가 안쓰러웠다. 얼마나 진솔한 사람인데 사람들이 어쩜 이렇게 막 대하는지 의문이었다.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비서가 이 일을 바로 안다혜에게 알렸지만 안다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쓸데없는 사람에게 신경 쓰다 보면 고민만 많아지기 때문이다.“괜찮아요. 우리는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면 돼요. 우리가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인데 쓸데없는 일에 나눠주면 너무 아깝지 않겠어요?”새로운 방안을 제기했으니 누군가가 이 일을 실행에 옮기기를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고 싶었다. 안다혜는 누군가에게 이끌려 가는 것보다 주도권을 손에 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안다혜가 생각보다 너무 덤덤하자 비서는 마음이 착잡했다. 왜 매번 안다혜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아무 말 하지 않고 혼자 소화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다혜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는 비서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왜 아직도 거기 서 있어요? 할 얘기가 남았어요?”비서는 참으려다가 결국 참지 못했다.“대표님은 왜 그렇게 성격이 좋아요?”비서가 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그거 아세요? 밖에 있는 사람들 사실 대표님 비웃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가 꿈에 불과하다면서요.”“게다가 회사를 안씨 그룹 소유라고 생각해서 설치는 거라는 말까지 떠돌고 있어요.”비서는 말하면 할수록 흥분했다.“하지만 대표님은 모두를 위해서 그러는 거잖아요. 회사를 위해서 회사가 이대로 걸음을 멈추는 게 싫어서 그러는 건데 왜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요?”비서는 안다혜가 등용
안다혜는 그 임원을 보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부지만 손에 넣는다면 70%의 가망이 있다고 봅니다.”이 말에 현장이 조용해졌다. 상황을 지켜보던 김미진도 이 프로젝트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시선을 한쪽으로 옮겼다. 이 능구렁이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김미진이 제일 잘 알았기 때문이다.안다혜는 임원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무엇을 더 설명해야 할지 몰라 눈을 질끈 감고 그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사상을 다시 한번 전달하고는 마지막으로 정리했다.“풍산과 협력하면서 국내 시장은 이미 완전히 공략한 상태입니다. 돈을 벌려면 반드시 해외 업무를 개척해야 합니다.”“제 공유는 이상입니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회의는 이상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돌아가서 더 고민해 보셔도 좋습니다.”안다혜의 말이 끝나도 임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일어서지 않았다. 그러자 김미진이 결국 입을 열었다.“그래. 얘기도 끝났다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다들 돌아가서 잘 고민해 보세요.”안다혜는 자리에 앉아 임원들이 물건을 정리하는 걸 지켜봤다. 김미진이 보인 태도에서 안다혜는 김미진이 그녀의 생각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다. 아니면 이렇게 애매모호한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다만 안다혜가 분석한 데 의하면 태안이 발전하려면 업무 확장이 제일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주먹을 불끈 쥔 안다혜의 예쁜 눈동자에 야망이 가득 차올랐다. 표정만 봐도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표 자리에 앉은 이상 태안 그룹을 이끌어 더 높은 자리로 오르고 싶었다.임원들이 북적거리며 나가는데 그중 한 명이 안다혜가 앉은 의자에 부딪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난감한 표정으로 안다혜와 인사를 나눴다. 이미 밖으로 나간 임원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안다혜를 토론하기 시작했다.“이 프로젝트 어떻게 생각해요?”다른 임원이 이렇게 말했다.“나는 가망 없다고 보는데. 아니 없어도 너무 없다고 생각해요.”“그러게나 말이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국내 업무로도 충분한데 왜 모험하려 드는지 모
안소현은 김미진의 눈동자에 스친 흐뭇함을 놓칠 리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것으로 분노를 꾹꾹 눌러 담더니 시선을 안다혜에게로 돌렸다.‘내 동생아, 이번에는 또 어떤 계획을 세웠을까? 이렇게 많은 주주들이 보고 있는데 기대해 볼게.’안다혜는 이제 자료를 공유해도 좋다는 의미로 비서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비서가 그 말에 맞춰 바로 자료를 화면에 공유하자 안다혜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가더니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제 관찰에 의하면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그러니 시선을 더 길게 뺄 수밖에 없습니다.”안다혜가 긴 손가락을 움직여 자료를 다음 페이지로 넘기자 사람들의 시선도 그녀의 사유를 따라 흘러갔고 이내 그들은 안다혜의 야망이 얼마나 큰지 알아챘다.“여러분들도 한번 보세요. 태안은 이미 국내의 헤드 기업인 풍산 그룹 프로젝트를 따내면서 태안의 이름을 알린 상태입니다.”안다혜가 잠깐 뜸을 들였다.“이제 시선을 해외로 돌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이 말에 현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화색을 드러낸 사람도 있었지만 우려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안다혜의 생각이 너무 모험적이라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사람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미 풍산 그룹 프로젝트까지 따냈는데 더 먼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는 걸 다들 몸소 느끼고 있었다.의견이 분분한 사람들을 보며 안다혜가 천천히 말했다.“제가 봐둔 해외 부지가 있는데 태안이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오락 시설을 지어도 바로 수익이 날 겁니다.”그러자 김미진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점점 더 흐뭇한 표정으로 안다혜를 바라봤다. 안다혜가 정말 그녀와 많이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은 정말 김미진과 똑 닮았다.그때 안소현이 우려를 보였다.“하지만 외국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 부지가 어떤지 알아보기도 전에 무턱대고 사들였다
한편, 안다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인데 이제는 풍산 그룹 프로젝트까지 따냈으니 다른 건 더 도전할 의미가 없어 새로운 업무를 확장하려 한 것이다.그때 비서가 다가와 물었다.“대표님, 회의하자고 부를까요?”“네. 10시에 회의실에서 보자고 해요.”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겼으니 여기서 멈추지 않고 길을 넓힐 생각이었다.회의실로 불려 온 직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안다혜가 부른 이유를 추측했다.김미진의 표정도 살짝 어두웠다. 회의를 소집하기 전에 김미진과 상의한 적이 없으니 김미진도 안다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저번에 사무실로 불렀지만 나타나지 않은 것에 화가 난 상태였다.안소현이 얌전한 모습으로 김미진의 옆에 앉아 입을 열었다.“엄마, 요즘 집에 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견식도 넓히고 바람도 쐴 겸 회사로 나왔어요.”“화내지 마세요. 너무 집에 있어서 심심해서 나온 거예요.”김미진이 위로했다.“화내긴. 심심할 때 회사 좀 나와보는 게 어때서.”김미진은 언변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사람을 위로할 때도 늘 그 몇 마디뿐이었다. 안소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말하자 대화는 그렇게 끝나버렸다.안소현은 다리 위에 올려둔 손을 꽉 움켜쥐었다.‘안다혜, 또 무슨 꿍꿍이인 거야? 대표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주주들 앞에서 설치는 거지?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안다혜는 이 능구렁이 같은 양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수 있지만 안소현은 참 잘 알았다. 고집불통이라 자기주장이 분명했고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안다혜, 꼴이 얼마나 우스워지는지 한번 보자고.’안소현이 생각에 잠겨있는데 안다혜가 마침 비서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오피스룩을 갖춰 입은 안다혜는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고 옅은 화장이 원래도 정교한 얼굴을 더 돋보이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간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 같았다. 그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빠져든 건가...’안다혜가 빨간 입술을 깨물더니 이렇게 말했다.“아니요. 그저 잠깐 다른 생각 좀 했어요.”“난 괜찮아요. 프로젝트가 중요하니까 디테일을 조금 더 토론해요.”안다혜가 이렇게 나오니 공준호도 더는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원래도 안다혜에게 배우러 나온 거라 절대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회의실로 향했다.자리를 떠난 윤해준은 다른 곳으로 간 게 아니라 사무실로 돌아갔다. 뒤따라 들어간 오정우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 방금 도대체 뭐 하신 거예요?”“그렇게 차갑게 대했다가 사모님이 오해하시면 어떡해요?”오정우는 복주로 유배를 가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해준을 나무랐다. 사모님께 그렇게 심하게 얘기하면 돌아가서 화낼 게 뻔했기 때문이다.윤해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오정우를 쏘아봤다.“언제부터 내가 하는 일에 토를 달았지?”이 말에 오정우도 더는 뭐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입을 닫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원망이 담겨 있었다.‘예쁘기만 한 사모님이 어쩌다 이런 곰 같은 남자를 만났지?’윤해준이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너 자꾸 그런 눈빛으로 보다가 눈알 뽑히는 수가 있다.”오정우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폭군이 따로 없네. 봐도 안 되나.’이런 보스 밑에서 일하는 건 살얼음판을 걷는 거나 다름없었다.“마음속으로도 생각하지 마.”이 말에 오정우는 정말 울고 싶었다.‘아니. 마음속으로 하는 생각까지 관여하겠다는 거야? 이런 폭군이 어디 있어. 이게 맞아?’벼랑 끝에 내몰린 오정우가 눈을 질끈 감고 이렇게 말했다.“아무튼 사모님께 그런 말투로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모님 무조건 기분 상했을 거예요.”“저도 다른 부부를 많이 만나봤지만 대표님처럼 그러는 사람은 처음이었어요.”“대표님이 저를 복주로 유배 보낸다고 해도 말할 거예요.”오정우가 숨도 쉬지 않고 이렇게 말하더니 자리로 돌아가 윤해준의 발령 공지를 기다렸다. 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