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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리치 사랑
안다혜는 허성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원래 서진우 때문에 허성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이젠 졸업한 데다가 서진우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 이 도시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바로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민성으로 돌아갔다.

공항에는 민초연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이번에 오면 안 갈 거지?”

“안가.”

예전에 안다혜는 서진우를 따라다니느라 민성에 오래 머물지 못했고 민초연과 같이 있을 시간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젠 내기에서 졌으니 떠날 이유도 없었다.

민초연은 그녀와 서진우의 이야기를 듣고 씁쓸해했지만 웃으며 그녀의 팔짱을 꼈다.

“액땜했다 치자. 너를 위해 환영 파티를 열어 줄게.”

안다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초연은 그녀를 민성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클럽으로 데려가 최고급 술을 주문하고 싱글 파티를 열어 주었다.

술 한 잔에 안다혜의 마음속 울적함이 반쯤 날아갔다.

“서진우랑 헤어져서 정말 다행이야.”

민초연은 농담했다.

“너 그때 서진우 때문에 얌전하고 여린 척하고, 술도 끊고 스포츠카도 안 몰고 매일 도서관에 처박혀 있었잖아. 나 진짜 놀랐다니까.”

서진우가 좋아하는 스타일과는 정반대였다. 안씨 가문은 민성에서 최고의 재벌가였고 예전의 안다혜는 원래 시끌벅적한 것을 좋아하고 자동차 경주와 승마, 등산과 번지점프를 즐겼다.

열정적이고 밝은, 사랑 같은 감정은 하찮게 여기던 소녀였다.

다만 서진우를 위해 안다혜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용하고 말 잘 듣는 얌전한 여자로 변신했다.

“아마 그땐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 봐.”

과거를 떠올리며 안다혜는 나른한 표정으로 무심하게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 아름다웠다.

다만 예전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은 옆에서 술을 따르는 남자까지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다.

민초연은 웃으며 물었다.

“다혜야, 서진우랑 헤어졌으니 진짜 안씨 가문으로 돌아가서 재산을 물려받을 거야?”

“내기에서 졌으니까 물려받아야지.”

안다혜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김미진은 엄청난 여장부였다. 남편이 돌아가고 나서 태안 그룹 내부의 권력 다툼은 심했지만 김미진은 혼자서 오랫동안 회사를 지탱했다.

안다혜의 언니 안소현은 몸이 약했고 안다혜는 자유를 좋아했기에 김미진은 그녀를 억지로 붙잡지 않고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그 내기가 성사된 것이다.

내기에 졌으니 약속을 지켜야 했다. 안다혜는 아직 그 정도로 못나지는 않았다.

민초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씨 가문의 규칙은 결혼부터 하고 사업을 물려받는 거잖아 아줌마가 널 위해 남자를 점찍어 뒀어?”

“아니.”

안다혜는 어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성격이 강하지만 배우자 선택에는 엄격하지 않았다. 당시 어머니가 반대한 것은 온전히 안씨 가문과 서씨 가문의 경쟁 때문이었다.

“다혜야, 네가 졌다고 해도 아줌마는 널 억지로 시집보내지 않을 거야. 솔직히 남자는 많잖아. 정 안 되면 내 사촌 오빠를 소개해 줄게.”

민초연의 사촌 오빠 윤해준은 차도남이었다. 금욕적이고 냉담하지만 외모만큼은 흠잡을 데 없이 잘생겼다.

안다혜는 어렸을 때 그에게 반했었다.

철없던 시절, 짧고 풋풋한 짝사랑을 했지만 그 감정은 금세 사라졌다.

그 뒤론 가끔 멀리서 본 것 외에는 다시 만난 적 없었다.

안다혜는 민초연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차가운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그녀는 뒤늦게 씁쓸한 맛을 느꼈다.

파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두 사람은 비틀거렸다.

민초연은 이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촌 오빠가 우리를 데리러 온대.”

이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사촌 오빠와 서먹서먹한 사이였고 친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촌 오빠가 갑자기 연락해서 다혜와 함께 있는지 묻더니 데리러 온다고 했다.

민초연은 그저 갑작스러운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몇 분 후, 수수한 마이바흐 한 대가 입구에 멈춰 섰다.

차창이 내려가자 차갑지만 매혹적인 남자의 눈매가 드러났다. 그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피부가 하얗고 고귀하고 우아했다.

달빛 아래에서 그의 얼굴은 눈부시게 빛났고 매우 아름다웠다.

잘생긴 얼굴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타.”

낮고 그윽한 목소리는 매혹적이었다.

윤해준의 시선은 민초연을 스치듯 지나 안다혜에게 머물렀다.

안다혜는 그의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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