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0화

Author: 수박빙수
윤하경이 술을 마시는 모습은 금세 파티장의 관심을 끌었다. 그녀는 이전에 구지호의 기분을 신경 쓰느라 이들과 술을 마신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술잔을 드는 모습을 처음 보며 놀랐고 농담을 던졌다.

“하경 씨, 오늘 정말 특별한 날인가 보네요. 이렇게 큰 판을 깔아주시다니요.”

윤하경은 대꾸하기도 귀찮아했다.

‘몇억 원짜리 계약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성의는 보여줘야지.’

그녀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띠고 강현우를 바라봤지만 그는 미동도 없었다. 이에 윤하경은 다시 잔을 들어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큰 잔의 술을 급하게 마시다 보니 위스키가 입가에서부터 턱, 목선을 타고 흘러내리며 그녀의 쇄골과 드레스 속으로 스며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고 아무도 강현우가 그녀를 바라볼 때 목젖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몇 잔의 술이 넘어가며 윤하경의 얼굴엔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지만 강현우는 여전히 멈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옆에 앉은 여자가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윤하경은 멈추지 않고 이를 악물고 한 잔씩 더 마셨다. 몇 잔을 더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고 강현우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그 순간,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고 순간 윤하경은 동작을 멈췄다.

문을 박차고 들어선 사람은 바로 구지호였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윤하경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오늘 밤 계약하러 간다더니 이런 데 와서 술 마시고 있었어? 윤하경, 넌 자존심도 없어?”

술기운에 흐릿했던 윤하경의 눈빛은 단숨에 차갑게 변했고 차분히 입술을 다물었다. 막 말을 꺼내려던 찰나, 강현우가 먼저 나섰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윤하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경 씨, 일단 개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다시 저한테 와서 계약 이야기하시죠.”

비즈니스와 관련된 말 같았지만 윤하경은 그 속에서 조롱의 뉘앙스를 읽어냈다. 그녀가 더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강현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큰 키와 존재감은 방 안을 압도했고 그가 나가는 동안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윤하경은 구지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끝났다고 말했잖아. 인제 그만 좀 해.”

윤하경은 속으로 구지호가 지긋지긋했다.

‘강현우와의 계약이 틀어지면 네가 그 돈을 물어줄 거야? 아니잖아.’

화가 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 했지만 구지호가 손목을 잡고 억지로 끌어냈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 상황을 지켜보며 흥미로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술기운에 조금 취기가 오른 윤하경은 구지호에게 끌려가며 휘청거렸다. 구지호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조금 전 추성운이 올린 SNS를 보고 윤하경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진 속에서 강현우가 윤하경을 바라보는 눈빛을 마치 사냥감을 기다리는 맹수와도 같았다.

같은 남자로서 그는 그 시선을 너무 잘 알았다. 남자의 본능적인 소유욕이 들끓으며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의 타깃이 되는 걸 견딜 수 없었다.

윤하경은 비틀거리며 구지호에게 끌려 자동차 뒷좌석에 들어갔고 구지호가 다짜고짜 그녀 위로 몸을 던지자, 윤하경은 화가 치밀어 올라 망설임 없이 손을 올려 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구지호, 너 미쳤어? 제정신이야?”

윤하경은 거침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구지호는 붉어진 눈으로 윤하경을 내려다보며 비웃듯 말했다.

“왜? 나랑은 싫고 강현우랑은 좋다는 거야?”

그는 갑자기 그녀의 턱을 움켜잡으며 차갑게 웃었다.

“너 진짜 강현우가 널 거들떠보기라도 할 것 같아? 꿈 깨, 윤하경.”

윤하경은 몸부림치며 구지호를 밀쳐내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의 드레스 끈을 잡아당겨 찢어버렸다.

갑자기 자동차가 크게 흔들리며 구지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악!”

구지호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차 안에 울려 퍼졌다.

윤하경은 얼떨결에 몸을 일으켜 상황을 살피자 차 밖에는 비상등을 켠 검은색 벤틀리가 서 있었다.

잠시 후, 차에서 키가 크고 다리가 긴 한 남자가 내려 다가왔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강현우였고 그는 입에 담배를 물고 느긋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실례합니다. 발이 미끄러져 차가 제멋대로 움직였네요. 괜찮으신가요, 구지호 씨?”

말은 사과 같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구지호는 방금 전 자동차 문에 발이 걸려 그대로 차에 부딪히며 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평생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에게 이런 고통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는 고통에 말을 잇지 못하고 다리를 감싸 쥔 채 비명을 질렀다.

윤하경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멍해졌다고 속에서 알 수 없는 역겨움이 밀려왔다.

‘내가 저런 사람을 좋아했다고?’

그때, 강현우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윤하경을 한 번 훑어보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구지호를 바라보았다.

“치료비와 관련 비용은 모두 제가 책임질 테니, 추가로 요구사항이 있으면 회사로 찾아오세요.”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면서 차분히 말했다.

“아니면 변호사를 통해서 해결하셔도 됩니다.”

윤하경은 가까스로 차에 기대어 간신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뒤적였지만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들어 강현우에게 물었다.

“담배 있어요?”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1238화

    배경빈은 이렇게 뻔뻔한 여자는 난생처음 보는 듯했다.담배를 쥔 손이 잠시 멈추고 배경빈은 고개를 숙여 강소연을 진지하게 훑어보았다.강소연의 얼굴에는 간절한 기대가 서려 있었고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배경빈은 잠시 착각했다. 마치 윤하경 앞에 서 있던 자신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그는 결국 독한 말을 삼켰지만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 짧게 내뱉었다.“됐어, 말해봐.”배경빈이 마침내 허락하자 강소연은 환호성을 내질렀다.“야호! 그럼 오늘 밤 여기서 나랑 같이 있어 줘. 스무 살 생일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보내고 싶어.”강소연은 어려서부터 곱게 자라며 원하는 건 뭐든 손에 넣었다. 좋아하는 남자도 갖고 싶은 물건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배경빈은 달랐다. 그녀의 마음을 단호히 뿌리치는 첫 번째 사람이었다.처음에는 화가 나야 하는데 오히려 그는 멀리할수록 더 가까이 가고 싶어졌다.‘나는 정말 미친 게 틀림없어....’배경빈은 그녀의 말을 듣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피식 웃으며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감아올렸다. 그러고는 힘껏 당겨 순식간에 둘의 자리를 바꿔버렸다.강소연은 차체에 몸이 밀려 붙여지며 순간 멍해졌다. 곧 얼굴이 발갛게 물들고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이거... 너무 빠른 거 아니야?”배경빈은 강소연이 오래도록 쫓아다닌 사람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가까워지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듯했다. 가슴은 금세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쳤다.배경빈은 비웃는 듯 낮게 말했다.“못 할 것도 없지.”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하지만 내가 너 소원 들어줬으니 너도 내 부탁 하나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강소연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배경빈의 깊은 눈빛을 마주쳤다.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다.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며 원하는 남자를 골라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랫동안 배경빈만을 쫓아다니는 건 이유가 분명했다.그는 정말 잘생겼다. 어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목구비, 또래에게서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1237화

    “싫어!”강소연이 단호하게 소리치며 고개를 홱 돌렸다.“오늘이 내 생일이야. 그런데 왜 전화도 안 받았어? 내가 식당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아?”배경빈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윤하경 앞에서 보였던 태도와는 달리, 강소연에게는 훨씬 거칠고 매서웠다.“마지막으로 말한다. 내려.”그의 목소리는 냉랭했다.그러자 강소연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싫다니까... 안 내려.”배경빈은 낮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렸다.“후회하지 마.”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갑자기 시동을 걸고 액셀을 힘껏 밟았다. 차가 튀어 나가며 도로 위를 미친 듯이 질주했다.강소연은 깜짝 놀라 급히 안전벨트를 채우고 두 눈을 토끼처럼 붉게 만든 채 배경빈을 노려봤다. 겁에 질려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꾹 참으며 소리 한마디 내지 않았다.원래도 스피드를 즐기던 배경빈은 이번에는 아예 장난처럼 속도를 더 높였다. 차는 도로 위를 이리저리 가르며 달렸고 그에게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레이싱의 쾌감이 스며들었다.그는 흘끗 옆을 보았다. 창백해진 얼굴로 이를 악물고 버티는 강소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억지로 굳힌 표정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거슬리게 했다.순간, 그는 핸들을 세게 꺾었다. 차가 요동치며 도로를 가로질러 회전한 뒤 방향을 바꿔 도시 외곽 쪽으로 내달렸다.도심보다 차가 적은 외곽 도로에서도 그의 운전은 여전히 위험했고 강소연의 표정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두려움이 온몸을 조여 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자존심을 지켰다.차는 산을 향해 이어진 굽이진 길을 거침없이 치고 올라갔다. 어두워질수록 길은 더 험해졌고 배경빈의 발끝에 짓눌린 액셀은 끊임없이 엔진음을 울려댔다.마침내, 마지막 굽잇길 앞에서야 차가 멈춰 섰다.강소연은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며 차가운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안전벨트를 움켜쥐고 있던 손바닥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옆자리에 앉아 있던 배경빈은 차를 멈추더니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흘깃 보며 비웃듯 말했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1236화

    “나 고기 먹을래.”오랜만에 이런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본 진해리는 배지훈이 괜히 분위기를 깨는 게 싫어 짐짓 투정을 부렸다.배지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기를 챙겨주었다.식사가 끝나갈 무렵, 윤하경은 더 이상 젓가락을 들지 않고 자리를 빌미로 진해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강현우도 일어서며 곁눈질로 배경빈을 바라봤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 그를 향하자 배경빈은 오히려 입꼬리를 올려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강현우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내 인내심은 한계가 있어.”짧은 말만 남기고는 윤하경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배지훈은 참다못해 배경빈의 뺨을 세차게 갈겼다.방금 전까지 윤하경 앞에서 억지로 웃음을 띠던 배경빈은 이내 표정을 굳히며 매섭게 물었다.“왜 이러는 거야?”“내가 왜 이러겠어?”배지훈의 목소리에는 답답함이 묻어났다.“윤하경이 강현우랑 이미 결혼한 거 몰라?”“알지.”배경빈은 코웃음을 치며 태연하게 답했다.“결혼이 뭐 대수라고? 마음만 먹으면 못 흔들 담장이 어디 있겠어.”그 뻔뻔한 말에 배지훈은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배경빈이 먼저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렸다.등을 보이며 사라지는 배경빈을 바라보던 배지훈은 이를 악물었다.자신도 한때는 철없다 불릴 만큼 방탕했지만 지금의 배경빈은 도를 넘어 있었다.하필 눈길을 준 여자가 강현우의 아내라니. 온 경성을 통틀어 감히 강현우와 맞설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배지훈은 확신했다. 자신이 중간에서 막아서지 않았다면 강현우는 벌써 배경빈을 땅속에 묻어버렸을 거라고.진해리는 흥분한 배지훈의 손목을 붙잡아 진정시키려 했다.“아직 어리잖아. 괜히 화내지 마. 내가 보기에는 강현우도 크게 화내진 않은 것 같아.”“그건 평소에 집에서 너무 오냐오냐 키운 탓이야. 그러니 저 모양이지.”배지훈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진해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아기 때부터 내가 지켜봐 와서 알아. 본래는 참 착한 애였어. 다만 그 일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1235화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진해리가 나타나지 않자 윤하경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 했다. 그 순간, 어깨 위에 갑자기 따뜻한 손길이 닿았다.“누나.”익숙한 호칭이 들려오자 윤하경은 본능적으로 몸이 굳었다. 고개를 돌리니 배경빈이 옅은 웃음을 띠고 서 있었다. 윤하경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그냥 이름 부르세요.”평범한 말이었지만 배경빈 입에서 나오면 괜히 묘한 기운이 섞였다. 불필요하게 친밀하고 선을 넘는 듯한 뉘앙스가 있어 윤하경은 불편하기만 했다.오랜만에 마주한 얼굴이었다. 진해리를 보러 올 때도 그가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윤하경은 그의 손을 조용히 치워내며 시선을 피했다.그러자 배경빈이 서운하다는 듯 낮게 물었다.“왜 제 연락을 다 막으셨어요?”윤하경은 곁눈질로 그를 흘겨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이유 모르세요? 제 목숨이 아까워서였죠.”예전에 무모하게 끌려 나갔다가 자동차 레이스에 휘말려 사고까지 난 기억은 평생 잊히지 않을 일이다.배경빈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짧은 침묵 끝에 그는 다시 물었다.“하경 씨, 강현우랑 결혼했다는 거... 사실이에요?”윤하경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식 올릴 때 부를게요. 와서 축의금 내세요.”너무 담백하고 냉정한 대답에 배경빈은 가슴을 움켜쥐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한테는 이제 정말 기회가 없는 건가요?”윤하경은 하늘을 보듯 눈을 굴리며 황당해했다. 진지하게 대답해 주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강한 손이 뻗어와 그녀의 손목을 단번에 끌어당겼다.순간, 윤하경의 몸은 익숙한 품에 안겼다.“내가 있는 한, 넌 기회 없어.”낮고 묵직한 강현우의 목소리가 그녀의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 고개를 들자 흐릿한 불빛 아래 드러난 그의 매끈한 옆얼굴이 보였다.강현우는 윤하경을 단단히 끌어안은 채 배경빈을 내려다봤다. 입가에는 차가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하경이는 늘 성숙한 사람을 좋아하지, 철없는 애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배경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독기 어린 시선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1234화

    윤하경은 소지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중에 시간 되면 같이 가자.”소지연이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근데 강현우가 허락하겠어?”윤하경은 어깨를 으쓱였다.“결혼했다고 내 인생까지 다 맡긴 건 아니잖아.”그러면서도 강현우의 집착에 가까운 소유욕이 떠올라 순간 마음이 움찔했다. 그래도 애써 고개를 곧게 들고 말했다.“그때 가서 생각해 볼게.”말이 끝나자마자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윤하경이 고개를 돌리자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뜻밖에도 유호천이었다. 그녀는 순간 미간을 좁혔다.‘어쩜 올 때마다 꼭 마주치네...’윤하경은 곧장 소지연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럼 난 이만 갈게.”문 쪽으로 걸어가다 유호천을 향해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인사했다.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뒤에서 유호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연아, 방금 너 해외에 나가고 싶다던데... 내가 같이 가면 안 돼?”윤하경의 발이 잠시 멈췄다. 병실 쪽을 힐끗 돌아보며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린 뒤, 아무렇지 않은 듯 발걸음을 옮겨 나왔다.윤하경이 강현우와 함께 사는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배씨 가문 저택.그곳에 도착하니 이미 소식을 들은 진해리가 정원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임신 중이라 더위를 많이 타는 진해리는 오늘 검은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헐렁한 옷차림 덕분에 배가 불러온 건 아주 희미하게만 드러났다. 영양사가 매일 끼니마다 챙겨주고 돌본 덕에 살이 불지 않고 오히려 임신 전보다 얼굴빛이 더 좋아 보였다.진해리는 윤하경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아유, 귀한 손님 오셨네. 드디어 왔네? 우리 지훈이가 나서지 않았으면 끝내 못 보는 줄 알았다니까요.”윤하경은 장난스럽게 눈을 굴리며 받아쳤다.“다음에 또 그런 농담하시면 저 진짜 안 올 거예요.”“아이고 참.”진해리가 웃으며 윤하경의 손을 꼭 잡았다.“농담이죠, 뭐.”두 사람은 정원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진해리는 하인을 불러 차를 내오게 했고 윤하경은 무심코 그녀의 배에 손을 얹었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1233화

    윤하경은 잠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애써 묻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진혁 씨, 혹시... 지유 씨랑 두 사람...”민진혁은 거리낌 없이 담담하게 답했다.“네, 우리 사귀기로 했습니다.”그의 말은 솔직하고 당당했다. 원래부터 돌려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다.옆에서 그 대답을 들은 백지유는 얼굴이 금세 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숙였다. 수줍게 입술을 깨물던 그녀는 황급히 일어나 말했다.“저... 저 먼저 씻고 올게요.”도망치듯 욕실로 향하던 그녀는 전날 밤의 여파로 다리에 힘이 풀려 문 앞에서 휘청이며 넘어질 뻔했다. 민진혁이 재빨리 달려가 부축하자 백지유는 눈길조차 주지 못한 채 황급히 욕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민진혁은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전화를 귀에 댔다.“형수님, 무슨 일이십니까?”윤하경은 애써 속내를 감추며 물었다.“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오늘 시간 되면 잠깐 들를 수 있어요?”민진혁은 욕실 쪽을 흘깃 본 뒤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오늘은 좀 어렵습니다. 사정이 있어서요. 번거로우시겠지만 대표님께 제가 일이 있다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정리되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윤하경은 눈치로 상황을 짐작하고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알았어요. 전해 드릴게요.”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본래의 질문을 꺼냈다.“그럼... 모성 쪽은 어떻게 됐나요? 하석호는 무사하죠?”“네. 멀쩡합니다.”민진혁은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다친 것도 그냥 연기일 뿐입니다. 정리 끝내고 나면 따로 어르신 산소를 다시 모실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전하셨습니다.”“그렇군요.”윤하경은 안도하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알았어요. 지유 씨랑 푹 쉬세요.”전화를 끊은 윤하경은 마음이 복잡했다.그때, 닫혀 있던 서재 문이 열리며 강현우가 걸어 나왔다. 하룻밤을 고요히 보낸 탓인지 다시 예전처럼 절제된 기품이 돌아와 있었고 그의 주위는 여전히 차갑고 위압적인 기운으로 가득했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