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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수박빙수
윤하경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러자 추성운이 혀를 차며 말했다.

“어이구, 네가 구지호를 차버렸다던데 사실이야?”

윤하경은 살짝 웃으며 대꾸했다.

“성운 씨, 언제부터 이렇게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으셨죠?”

사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수다를 떨려고 온 게 아니었다. 오늘 그녀의 목표는 바로 강현우와의 계약을 따내는 것이다.

수억 원 규모의 이번 계약이 성사되면 회사 운영이 한결 여유로워질 뿐 아니라 앞으로의 시장 확장에도 큰 도움이 되게 된다.

온지우는 그녀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채고 얼른 끼어들며 분위기를 풀었다.

“성운 씨, 아까 드시기로 한 술이 아직 석 잔 남아 있는 거 기억하시죠? 제가 직접 따라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시죠.”

온지우는 추성운을 다른 자리로 끌고 가며 윤하경에게 살짝 윙크를 날렸다. 윤하경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답한 뒤, 잔을 손에 들고 강현우가 있는 자리로 다가갔다.

막 입을 열려던 순간, 강현우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그의 팔에 매달리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현우 씨, 저 좀 불편한데 여기 좀 눌러주세요.”

그 여자는 말하면서도 경계 어린 눈길로 윤하경을 힐끔거리더니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것처럼 불안해하며 윤하경을 째려봤다. 이때 강현우는 그녀의 말에 나지막이 웃으며 물었다.

“그래? 어디가 불편한데? 여기? 아니면 여기?”

그는 말하며 그 여자의 허리 주위를 천천히 어루만졌고 그러는 동안 단 한 번도 윤하경을 쳐다보지 않았다.

강현우의 태도는 윤하경에게 굴욕을 주려는 듯 보였고 여자는 그의 행동에 얼굴이 새빨개지며 숨소리가 가빠졌다.

“현우 씨, 정말 나쁜 남자야.”

윤하경은 입가를 살짝 씰룩이며 억지로 미소를 유지했다. 그녀도 꽤 많은 상황을 겪어 봤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여전히 낯부끄럽게 느껴졌다.

살짝 얼굴이 달아오른 윤하경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저기, 강 회장님, 사실 오늘은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계약 건으로 다시 말씀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지금 이 분위기를 방해하는 게 무례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회사의 운명이 걸린 일이었다.

비록 회사가 없어져도 그녀 혼자 살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직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소지연은 회사 초창기에 가진 돈 전부를 털어 윤하경을 도왔다. 소지연의 집안은 평범했고 그 돈은 그녀가 오랜 시간 한 푼 한 푼 모아 온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소지연을 위해서라도 자존심을 버리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강현우는 눈빛에 살짝 짜증이 어린 듯한 표정을 지었고 몸을 약간 뒤로 젖히며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불만이 담겨 있었다.

그러더니 그는 테이블 위의 고급스러운 상자에서 시가 한 대를 꺼냈다.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얼른 불을 붙여주려 하자, 윤하경은 잽싸게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강현우는 윤하경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살짝 웃음을 지었고 별말 없이 라이터 불을 받아들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윤하경을 죽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차가웠다.

강현우는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이며 목에 걸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가 드러낸 날카로운 턱선과 목젖은 시선을 끌 만큼 인상적이었다.

강현우는 조각처럼 뚜렷한 이목구비로, 연예계에 있었다면 단연 톱스타가 되었을 외모였다. 게다가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난 그는 모든 행동과 태도에 품격을 지니고 있어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운 느낌을 주었다.

윤하경은 그의 미소 속에 담긴 무언가를 읽으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가방에서 새로 준비한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이건 저희 팀이 밤새워 수정한 새로운 기획안이에요. 이번엔 꼭 만족하실 거예요.”

하지만 강현우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에도 계약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강현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을 많이 했으니 목마르겠네? 마셔 봐.”

윤하경은 그의 말에 순간 멈칫했고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강현우의 차갑고도 단호한 목소리가 다시 귀에 스며들었다.

“이런 자리에서 계약을 논하려면 이 정도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어?”

윤하경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둘 다 같은 상류층 세계에 속해 있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윤씨 집안은 강씨 가문과 같은 레벨이 아니었다.

‘이 남자, 정말... 너무 한 거 아니야.’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몇 잔이면 될까요?”

그녀는 최대한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매력적으로 웃었다. 그 미소 덕분에 방 안의 조명이 한층 더 밝아진 듯했다.

강현우는 수많은 여자를 봐왔지만 윤하경의 그 미소에 살짝 눈길이 멈췄다. 그는 목을 한 번 가볍게 넘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진심에 달렸지.”

그 말은 곧, 한계는 없다는 의미였다. 윤하경은 자신의 주량에 자신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담담하게 웃으며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가지러 갔다. 순간, 강현우 옆에 있던 여자가 먼저 나섰다.

“직접 움직이실 필요 없어요. 제가 따라드릴게요.”

그 여자의 태도에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강현우가 있는 자리에서 괜히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순순히 맡겼다.

그러나 그 여자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는 방 안의 수납장에서 대형 유리잔을 7~8개나 꺼내 일렬로 늘어놓고는, 테이블 위의 위스키를 잔에 가득 부었다.

“...”

이를 눈치챈 온지우가 다급히 다가와 상황을 정리하려 했지만 윤하경이 그를 가볍게 손짓으로 막았고 웃는 얼굴로 온지우에게 말했다.

“괜찮아. 현우 씨만 즐거우시면 돼.”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말에서는 분명 이를 악문 기색이 느껴졌다.

온지우는 그녀의 속마음을 알아차렸고 강현우도 이를 눈치챘다. 강현우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좁히며 윤하경을 바라보았고 그의 눈빛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

“하경 씨, 무리하지 마세요.”

그녀는 대답 대신 조용히 잔을 집어 들고 단숨에 비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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