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말에 남하준은 안색이 어두워지고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온몸에는 주위 공기를 얼릴 듯한 무서운 냉기가 감돌았다.서다인은 사실 이 남자를 화나게 하면 목숨을 잃을까 봐 무서웠다.하지만 그녀는 죽더라도 자신을 위해 변명할 기회를 얻어야 했다.남하준이 믿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의 마음속에 백하린의 무게는 변하지 않을 테니.남하준은 침묵했다.서다인의 연약한 눈동자 아래 꿋꿋한 강인함을 보았다.마치 사기 센터에서 그녀를 구했을 때, 도박장에서 그녀가 친오빠를 때릴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연약하지만 강인한 눈빛, 애써 눈물을 참으려 해도 눈물샘을 가누지 못하는 무기력함은 어린 시절 그 어떤 좌절에도 굴하지 않는 백하린과 너무 닮았다.남하준의 심장은 약간 두근거렸고 착각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했다.말을 마친 서다인은 손등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그녀의 손바닥 부상이 특히 눈에 띄었고, 남하준은 그제야 그녀의 부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았다.서다인은 자신의 짐 가방을 주워 들고 돌아서서 현관문으로 향했다. 두 걸음 걷던 그녀는 통증을 느끼고 허리를 굽혀 무릎의 상처를 살폈다.간단히 확인한 후 다시 몸을 쭉 펴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그녀의 가냘픈 뒷모습은 외롭고 씁쓸하고 고독해 보였다. 햇빛이 그녀에게 비쳐도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지 못하고 이따금 슬픔이 은은히 배어 있었다.백하린은 빨갛게 부은 볼을 감싸고는 안쓰럽게 흐느꼈다.“난 내연녀가 아니에요. 난 두 사람의 결혼을 깨뜨리지 않았다고요. 흑흑. 왜 날 때릴까요? 대체 왜?”백하린은 불쌍하게 울먹이며 집으로 들어갔다.남하준도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 바닥에 널브러진 책을 주웠다.하지만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백하린은 무조건 책을 분류 별로 정리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쌓아 두었다.그의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조용한 밤, 남원의 서재.남하준은 컴퓨터 앞에서 비디오 영상 하나를 전송했다.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M국 군
은경애는 서다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었다.“네 남편이 왔어.”서다인은 흠칫 놀라더니 얼굴이 약간 창백해졌다.은경애는 집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집 안에 있어.”서다인은 긴장해서 뒤를 돌아보았다.‘백하린의 복수를 하러 온 걸까? 아니면 나랑 이혼하러 온 걸까?’은경애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네가 어제 여기서 하룻밤을 잤으니 네가 보고 싶어 데리러 왔나 보다!”서다인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고 가슴이 찌릿찌릿 아팠다.할머니는 그들 사이가 얼마나 나쁜지 모르고 금슬이 좋은 부부인 줄 알고 있었다.은경애는 서다인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이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남하준이 방에서 나왔다.은경애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하준아, 이리 와 보거라.”“할머니.”남하준은 다가가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검은색 캐주얼 차림의 그는 듬직하고 위엄있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서다인은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심장이 마구 뛰었다.하지만 모순적인 것은 그가 밉고, 원망스럽고, 보고 싶지 않고,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남하준은 서다인이 할머니를 부축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늘어뜨리고는 줄곧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워낙 과묵하고 언변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서다인의 다친 손바닥을 보았을 때, 미안한 마음이 저절로 피어났다.침울한 기류가 분위기를 다운시키자 남하준이 목청을 가다듬더니 부드럽게 말했다.“그 상처 괜찮아?”은경애는 눈살을 찌푸리고 서다인의 다친 손을 잡아당겨 남자의 앞에 펼치고는 언짢게 말했다.“괜찮냐고? 봐봐, 여린 손바닥이 다 까졌어! 부주의로 넘어져 무릎을 다쳤고 손바닥에 찰과상을 입어 피가 났다더구나. 어제 내가 약을 발라줄 때 아주 펑펑 울었어. 나를 안고 아이처럼 두 시간 내내 울어서 눈도 퉁퉁 부었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실연당한 줄 알 거다!”서다인은 뻘쭘한 듯 할머니의 손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할머니, 제가 언제 울었다고 그러세요.”남하준은 부끄럽고
저녁 무렵.식탁에서 세 사람은 모두 조용히 저녁을 먹었다.남하준의 휴대폰이 울리면서 오붓한 식사 시간을 깨뜨렸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보더니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백하린이 영상통화를 걸어온 것이다.할머니와 서다인의 앞에서 그녀의 전화를 받기가 거북했다. 게다가 어제 서다인을 모함한 일도 미처 혼내지 못했다.남하준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고 메시지를 보냈다.[바빠, 시간 나면 전화할게.]메시지를 보낸 남하준은 휴대폰을 식탁 위에 놓고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은경애는 남하준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부드럽게 물었다.“요즘 바쁘냐?”“좀 바빠요.”“공적인 일로, 아니면 사적인 일로?”할머니는 휴대폰을 가리켰다.“중요한 전화 아니에요.”남하준이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영상통화가 다시 걸려왔다.서다인은 그것이 백하린의 전화라는 것을 단박에 눈치챘고 기분이 다운되어 조용히 식사했다.남하준은 서다인을 힐끗 쳐다보고는 휴대폰을 집어 다시 끊어버렸다.두 번이나 때아닌 영상통화로 할머니와 서다인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했던 남하준은 할머니에게 반찬을 집어 주고 또 서다인에게도 고기 한 점을 집어 주었다.서다인은 잠시 멍해졌다. 남자가 그녀의 그릇에 올려놓은 고기를 보면서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속으로 야호를 불렀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기뻐할 마음도 없이 묵묵히 고기를 집어 다른 접시에 놓았다.남하준은 눈살을 약간 찡그렸다. 서다인이 여전히 화가 났고 억울해하는 것 같았다.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계속 목구멍에 걸려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백하린의 세 번째 전화가 걸려오자 이번에는 은경애가 재빨리 남하준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영상통화를 받았다.전화를 받자마자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하준 오빠, 서다인 진짜 너무 해요. 왜 내 방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만지냐고요! 서랍도 엉망진창이고 몇천만 원짜리 목걸이도 사라졌어요. 서다인이 훔쳤을지도 몰라요!”은경애의 안
서다인은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남하준을 위해 해명했다.“그런 거 아니에요.”“그럼 방금 그 여자는 누구야?”할머니는 병세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는 안 되니 서다인은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남하준의 말을 곧이곧대로 중복했다.“아직 어린애가 헛소리하는 것뿐이에요.”남하준은 멍해졌다. 서다인은 그렇게 큰 억울함과 모욕을 당하고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백하린이 말한 것처럼 남을 헐뜯고 해코지할 사람이 아니었다.은경애는 서다인의 위로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저녁을 먹은 후, 세 사람은 정자 밖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밤빛이 몽롱하고 고요한 정원에는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가득했다.향긋한 차까지 더해지니 더욱 평화롭고 아늑했다.은경애가 손자 내외와 한창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하인이 다가와 공손히 말했다.“어르신, 백하린 씨라고 하는 분이 어르신과 도련님을 뵙고자 합니다.”서다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멍한 표정으로 계속 차를 마셨다.은경애가 물었다.“백하린?”“네. 도련님과 죽마고우이고, 도련님이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셨던 분이고, 어르신께서도 가장 아끼던 예비 손자며느리라고 하던데요?”남하준은 이 말을 듣고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섰다.“할머니, 제가 처리하고 올게요.”은경애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말했다.“넌 가만히 있어. 들어와서 똑바로 말해보라고 해.”남하준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차가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서다인은 겉으로는 덤덤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다.“할머니, 백하린 씨가 할 말이 있어 찾아온 것 같으니 저는 먼저 방으로 가서...”은경애가 엄숙하게 말을 끊었다.“너도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서다인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이때 하인은 이미 백하린을 화원 정자로 데리고 왔다.그녀는 하늘하늘한 흰색 원피스에 고가의 액세서리를 착용해 세련미를 뽐냈다.백하린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 오빠 안녕.”그녀는 유독 서다인을 투명인간 취
은경애는 화가 나서 몸을 약간 떨며 주먹을 불끈 쥐고 남하준에게 물었다.“하준아, 이 여자가 지금 거짓말을 하는 거지? 그렇지?”남하준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덤덤하게 말했다.“할머니, 이 친구가 백하린이에요.”은경애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얼굴이 붉어졌고, 떨리는 손으로 옆에 있는 서다인을 잡고 물었다.“완자야, 지금 너희들이 나를 속이고 있는 거지? 너야말로 내 손자며느리잖아!”서다인은 할머니의 불안한 감정의 변화를 눈치챘다.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전에는 할머니가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 줄 모르고, 할머니의 호의를 마음 편히 받아들였다.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오해라는 걸 알았으니, 서다인은 무슨 자격으로 계속 남하준의 아내로서 할머니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서다인은 마지막으로 남은 사랑을 잃게 될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지만 꿋꿋하게 말했다.“할머니가 저를 계속 완자라고 부르셔서, 저는 제 얼굴이 동그랗고 또 늘 완자 머리를 해서 그렇게 부르시는 줄 알았어요. 할머니가 저를 전에 아끼던 예비 손자며느리로 착각하신 줄은 정말 몰랐어요.”은경애의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서다인의 손을 꼭 잡고 흐느끼며 말했다.“난 착각하지 않았다. 네가 바로 완자야. 이미 잊은 거냐? 네가 어릴 때 통통하고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핑크빛이 돌아 하준이가 너보고 완자 같다고 해서 계속 너를 완자라고 불렀잖아.”“하준이는 어릴 때부터 너를 아주 많이 좋아하고 아꼈어. 하지만 넌 그때 너무 어리고 순진해서 그 마음을 전혀 몰랐지. 네가 유학을 떠나 우리와 연락이 끊긴 후로 하준이는 몇 년 동안 거의 혼이 나간 채로 지냈단다.”“그리고 네가 커서 귀국하면 어떻게든 너와 결혼하게 도와달라고 나한테 부탁했어. 다시는 너를 떠나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어. 내가 너희 둘 결혼을 얼마나 어렵게 성사시켰는데.”은경애는 말할수록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더욱 흐느꼈다.“그런데 지금 와서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고?”서다인은 할머니가 울자 심장이 불에 타
M국, 변경.서다인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친오빠라는 자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그녀를 2천만 원에 팔아버렸다!이 암담한 사기 센터에는 전화 사기, 인신매매, 장기매매, 구타와 학대가 매일 발생하고 있다. 이곳은 사람을 풀 베듯 함부로 죽이는 곳이다.서다인은 수려한 미모를 지녀 범죄자들에게 강제로 이끌려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다.그녀는 죽을지언정 필사적으로 반항하여 혹독하게 두들겨 맞아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몸에 온통 상처투성이였다.서다인은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여 절망의 끝자락에 놓였을 때 문득 남편 남하준이 떠올랐다.“제발 저 건드리지 마세요. 우리 남편더러 돈 보내오라고 할게요... 얼마든지 다 드릴 수 있어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그녀는 울먹이며 애원했다. 이건 최후의 몸부림이나 다름없다.금전 갈취는 그들의 업무 중 하나이다.앞장선 김호영이 화색을 띠며 서다인을 두들겨 패는 부하들을 멈춰 세우고 재빨리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넸다.“네 남편에게 40억 가져오라고 전해! 10원 한 장이라도 모자라기만 해봐. 그땐 여기 있는 우리 애들을 네가 전부 먹여 살려야 할 거야. 몸을 팔아서 손님들 돈을 벌어와야 한다고, 알아들었어?”서다인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겁에 질려 눈동자가 흔들렸다.짝사랑한 지 3년, 혼인 신고한 지 1개월이 지났지만 단 하루도 함께 지내지 않은 그녀의 남편이 진짜 40억을 내놓으며 그녀를 구할까?“알았어요.”서다인은 무기력하게 대답한 후 남하준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건 마지막 동아줄이다. 그녀의 생사가 걸린 마지막 전화 한 통이다.전화가 연결되자 수화기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누구세요?”그 순간 서다인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텅 비었다.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 초조하게 말했다.“저는 남하준 씨 아내 서다인이에요. 실례지만 남하준 씨 바꿔줄 수 있나요?”전화기 너머로 여자가 담담하게 말했다.“오빠 지금 낮잠 자고 있어요. 용건
국가의 안위를 위해 침략자를 몰아내며 피로 물든 전쟁을 이어가면서도 두려운 기색은 추호도 없었다.남하준은 중동 내부전쟁에 참가한 군사의 왕이고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며 가장 참혹한 전쟁에서 포위를 뚫은 신과 같은 존재인데 눈앞에 있는 연약한 여자가 그의 아내라니, 이건 당최 말이 안 되는 일이다.김호영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부하를 타일렀다.“걱정들 붙들어 매. 남하준이 어떤 사람이야? 권력이 하늘을 찌르고 단지 이름 석 자만으로도 사람을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는데 그런 사람의 아내를 누가 감히 팔겠어? 내가 알기로 남하준은 아직 미혼이야. 아마 동명이인일 거야. 이년 남편한테 계속 연락해서 40억 갖고 오라고 해!”남자들은 계속 남하준에게 연락했다.서다인은 마음이 재가 되어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절망감에 휩싸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얼마나 지났을까.귀가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콰당!”대지가 흔들릴 정도의 폭격 소리였다.서다인은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떴다.방에서 한창 카드놀이를 하며 서다인의 몸값을 기다리던 남자들이 식겁하여 넋을 놓았다.밖에 있던 부하들도 공포에 휩싸여 큰소리로 외쳤다.“보스, 큰일 났어요. 우리 대문이 폭발해버렸어요.”“폭발?”김호영은 겁에 질렸다.“누구 짓이야?”“그게... 군전 그룹 사람들이에요. 어마어마한 군부대가 거침없이 쳐들어와 우리 센터를 포위해버렸어요.”부하는 상공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전투기 헬리콥터도 두 대 더 있어요...”“필레 전쟁에 참여한 군전 그룹을 말하는 거야? 우린 이젠 뒈졌어!”이때 김호영이 가녀린 체구의 서다인을 잡아당기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윽박질렀다.“네 남편이 정말 군전 그룹 수장 남하준이야?”서다인은 무기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김호영은 순간 미친 듯이 후회가 밀려왔다. 그는 서다인에게 총을 겨눈 채 밖으로 나갔다.사기 센터 밖에는 수십 대의 무장 차량이 이곳을 가지런히 에워쌌다.수백 명의 건장한 무장 병사가 강렬한
김호영은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며 끝까지 협박했다.“그럼 도련님 아내분과 함께 죽을 겁니다.”남하준은 살인에 늘 단호한 법이다. 그 누구에게도 협박당해보지 못한 그였기에 두 눈에 살기가 스쳤다!별안간 일곱 발의 탄알이 폭발하는 소리가 서다인의 고막을 울렸다.그녀는 몸을 움찔거리더니 온몸에 피가 굳은 듯 제자리에 경직되어서 두 눈만 질끈 감고 있었다.잔인한 참살이 이뤄지고 선홍빛 핏물이 창백한 그녀의 얼굴에 튀었다.이 순간 그녀가 남하준의 아내란 신분은 단지 우스갯소리에 불과했다. 이토록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남하준이 구한 건 그녀가 아니라 사기 센터에 갇힌 수천 명의 피해자였으니 실수로 그녀를 죽여도 전혀 괜찮겠지?!서다인은 한없이 연약한 몸으로 이런 충격을 견디지 못해 비통한 슬픔에 젖은 채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군전 그룹 본사.M국 최대 규모의 무기 생산 기지이자 삼엄한 경계를 이룬 국영 병기 공장.“안돼...”악몽에서 놀라 깬 서다인은 땀에 흠뻑 젖어서 두 눈을 부릅떴다.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의식이 흐트러진 채 사방을 둘러보다가 침대 맡에 서 있는 여자에게 시선이 멈췄다. 의학의 힘을 빌린 정교한 이목구비는 마치 인형 같았고 요염함 속에 은은한 청순함이 돋보였다.여자의 손에 쥔 쟁반에는 온수 한 잔과 전복죽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깼어? 오빠가 먹을 것 좀 가져다주라길래.”백하린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고마워요.”서다인은 친절하게 고마움을 표하고는 나른한 몸을 이끌고 겨우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그녀는 종일 물 한 방울도 안 마셔서 지금 허기지고 온몸에 기운이 쫙 빠졌다.백하린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나더러 네게 음식을 갖다 주라고 하긴 했지. 근데 아쉽게도 네가 대접받을 급은 아니잖아.”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백하린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수중의 음식을 바닥에 내던지고 본인도 잇따라 주저앉았다.물건이 깨지는 요란한 소리가 문밖까지 울려 퍼졌다. 백하린은 울먹이는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