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수는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진서준 씨,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겁니까?”“효과 없으면 제가 왜 굳이 주겠어요?”진서준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좋아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셋째 삼촌이 안 보이던데 아마 밖에서 사업 얘기 중일 겁니다.”이번에 진서준이 온 이유는 삼촌 오주산을 찾아 용맥의 일족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괜찮아요, 일단 대장님 할아버지 상태를 살펴보세요.”“그럴게요.”오영수는 주먹을 쥐고 예를 표한 뒤 병실로 돌아갔다.그러나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오영수는 얼굴이 굳어졌다.노인은 피를 토하고 있었고 두 눈은 핏발이 서서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어서 오영준에게 전화해. 좀 더 서둘러야 해. 어르신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오주화가 소리쳤다.누가 봐도 어르신은 오래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오영수는 바로 앞으로 나아가 진서준이 준 알약을 꺼냈다.“넷째 삼촌, 이건 진서준 씨가 주신 약입니다.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을 겁니다.”오영화는 그 약을 힐끗 보더니 이내 분노를 터뜨렸다.“이건 아무리 봐도 수상쩍은 약이야. 게다가 네 친구가 준 거라고? 넌 할아버지를 해칠 작정이야?”“지금 할아버지 상황이 너무 심상치 않아요. 제 친구 알약 말고 다른 방법이 더 있어요?”오영수가 설득하려 했지만 오주화는 단칼에 거절했다.“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당장 치워.”화를 참지 못한 오주화는 약을 손바닥으로 쳐서 바닥에 떨어뜨리더니 이어서 단숨에 발로 짓밟아 산산조각을 냈다.“뭐 하는 겁니까?”오영수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고 얼굴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이런 쓰레기 같은 약은 필요 없어. 오영수, 너 그냥 전신전에 돌아가. 그리고 부탁이니까 다시는 우리 오씨 가문에 발 들이지 마.”오주화가 일그러진 얼굴로 싸늘하게 꾸짖었다.“됐어, 넷째야. 영수도 아버지를 살리려고 한 거잖아. 너무 몰아세우지 마.”오주화가 선을 넘는 것 같자 오주풍이 중재에 나섰다.그때였다.“왔어요. 주 신의가 오셨어요!”아까 주
“이건 회춘단이잖아! 당신 아버지를 살릴 유일한 보물을 짓밟아 버렸어!”주 신의는 통탄하며 급히 천 조각을 꺼내 회춘단의 부스러기를 조심스럽게 긁어모았다.“뭐라고요? 이 쓰레기 같은 게 우리 아버지를 살리는 보물이라고요?”오주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주 신의님, 농담하시는 거죠?”이 약이 정말 사람을 살리는 약이라면 오주화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대역죄인이 될 것이다.“제가 이런 농담을 할 것 같아요? 회춘단은 내상 치료에 기적적인 효과가 있어요. 한 알에 억 단위로 거래되지만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보물입니다.”주 신의는 안타까운 듯 고개를 연신 저었다.“아깝군, 너무나도 아까워. 이 약은 누가 준 겁니까?”주 신의가 다급히 물었다.“제 친구가 줬습니다.”오영수가 답했다.“영수야, 이렇게 중요한 약이면 진작 말했어야지. 다 네 탓이야.”오주화는 즉시 책임을 떠넘기기 시작했다.“제 탓이라고요? 아까 제가 약을 먹여 보자고 하지 않았나요?”오영수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근데 넌 이게 회춘단이라고 말하진 않았잖아. 내가 이 약이 그렇게 중요한 약인 줄 어떻게 알았겠어?”오주화는 억울한 듯 고개를 저었다.“그만하시죠. 지금 회춘단을 만든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당신 아버지를 살릴 희망이 있습니다.”주 신의가 둘 사이의 언쟁을 막았다.“좋아요, 지금 당장 제 친구를 데려오겠습니다.”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오영수는 곧장 별채로 뛰어가 진서준을 찾았다.“왜 그렇게 서두르는 겁니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진서준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태연하게 물었다.“진서준 씨, 어서 저랑 가셔야 할아버지를 살려 주세요.”오영수가 다급하게 외쳤다.“네? 그건 무슨 뜻이죠? 아까 제가 회춘단을 줬잖아요? 설마 할아버지가 복용하지 않은 겁니까?”진서준이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네, 그게... 넷째 삼촌이 발로 짓밟아 버렸어요.”오영수가 고개를 저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한테 왜
진서준은 어이없다는 듯 손을 휙 내저었다.“그럼 됐어, 다른 사람 알아봐. 난 겁이 많아서 협박당하면 떨려서 치료할 수 없거든.”환자를 살려달라고 불러놓고 이 난리라니, 오영수 체면이 아니었으면 진서준은 애초에 떠났을 거고 애당초 회춘단도 남겨두지 않았을 거였다.그런데도 오영준이 감히 협박까지 한다고?“이 멍청한 놈아.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오주화는 아들을 노려보며 언성을 높여 꾸짖었고 이내 진서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이봐, 저 녀석 말은 그냥 흘려들어. 네가 우리 아버지를 살리든 못 살리든 우리가 널 해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오영수도 재빨리 오주화를 거들었다.“진서준 씨, 저 녀석 개소리 신경 쓰지 마세요. 저 녀석은 얼굴만 번지르르하지 머릿속은 텅 비었어요.”“뭐? 네가 뭔데 내 머릿속이 비었다고 해?”오영준이 발끈하며 소리쳤다.아버지한테 욕먹는 건 그렇다고 쳐도 사촌인 오영수가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조금 전 회춘단은 오 대장 체면 봐서 그냥 준 거지만 이 마지막 한 알은 돈을 받아야겠네요.”진서준이 무심하게 새 제안을 꺼냈다.“좋아, 얼마면 돼?”오주풍이 바로 물었다.“너무 비싸지 않아요.”진서준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2억이라고? 그깟 알약 하나에 2억을 내라고?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네.”오영준의 얼굴이 새까매졌다.이건 아무래도 오씨 가문에 대놓고 바가지 씌우는 거였다.“정말 2억에 판다면 당신들은 살 기회조차 없을 건데요?”진서준은 쌀쌀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200억입니다.”“뭐라고? 200억이라고?”모두가 깜짝 놀랐다.물론 오씨 가문은 자산이 많았지만 200억을 들여 알약을 하나 사는 건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이딴 걸 200억에 판다고? 물건 파느라 하지 말고 차라리 강도질이나 해.”오영준이 그 말에 어이없어 말문이 막혔다.오영준은 일 년 내내 열심히 일해도 연말에 이만한 돈을 배당받지 못했다.“그래? 그럼 400억이야.”진서준이 태연하게 말을 바꿨다.
이윽고 영기가 은침을 타고 오씨 가문 어르신의 체내로 스며들었다.“이건 엄청난 침술이네요.”주 신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주 신의도 의술을 오랫동안 연구했고 체내에 진기도 있었지만 진서준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다루는 건 불가능했다.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무시무시한 의술을 갖추게 된 거지?주 신의는 이 청년의 배경이 슬슬 궁금해졌다.“이제 치료가 다 끝난 건가?”오주풍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은침은 두 시간 동안 그대로 둬야 합니다. 이따가 처방전을 써 줄 테니까 그 처방대로 약을 열흘 동안 드시면 완치될 겁니다.”진서준은 덤덤하게 대답하고 나서 손을 내밀었다.“이제 돈을 받아도 되겠죠?”사실 진서준은 처음에 돈을 받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하지만 오씨 가문 사람들이 진서준을 전혀 믿지 않았기에 결국 그는 값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돈이야 문제없지. 하지만 일단 아버지가 정말 위험에서 벗어났는지 확인해야겠어.”오주풍은 신중하게 말하며 주 신의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자 주 신의는 즉시 다가가 노인의 맥을 짚었다.“어라?”주 신의의 표정이 순간 심각해졌다.“왜 그러죠? 설마 할아버지 상태가 안 좋은 겁니까? 거봐, 저놈이 수상쩍다고 말했잖아.”오영준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서준을 공격하려 했다.“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주 신의는 황급히 손을 흔들며 해명했다.“어르신은 방금 완전히 위험에서 벗어나셨습니다. 게다가 손상된 경맥도 거의 회복되었네요. 방금까지 생사를 넘나들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회춘단과 진서준의 의술이 더해지니 노인은 이제 죽고 싶어도 못 죽을 지경이었다.주 신의는 진서준의 출신과 스승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도대체 어떤 대단한 인물이 이렇게 비범한 청년을 배양해 낼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주 신의님, 다음부턴 말을 끊지 말고 단숨에 다 하세요.”오주풍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방금 심장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기분은 정말 긴장감
크게 상처로 와닿지는 않았지만 모욕감은 극에 달했다.오영준의 분노가 순식간에 폭발했다.“이 자식이 감히 여기서 깝쳐? 여기가 어딘지 알기나 해?”오영준의 고함이 끝나기 무섭게 방 안으로 오씨 가문의 정예 무인 열댓 명이 들이닥쳤다.이들은 전부 무공을 익힌 무인이었다.무인들은 전부 혼자서 거뜬히 백 명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괴물이었다.“네가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준 건 인정해. 하지만 우리 집에서 살아남고 싶으면 무릎 꿇고 사과해. 안 그러면 오늘 네놈이 이 집을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거야.”오영준은 싸늘한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봤다.하지만 진서준은 오영준을 무시한 채 오주화를 바라보았다.“자식이 개판인데 아버지는 상관하지 않나요? 설마 저 녀석이 당신 허락받고 나한테 이러는 건 아니겠죠?”“이봐, 어르신 말 들어. 너무 날뛰지 마. 40억도 적은 돈이 아니야. 평생 호화롭게 살 수 있는 돈이지. 그러니 이쯤에서 만족하고 가는 게 좋을 거야.”오주화 역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쯤 되면 이 부자는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고 있다는 게 뻔했다.그야말로 교묘한 토사구팽이었다.“어이없네...”진서준이 싸늘하게 웃었다.“400억이라고 했으면 400억이야. 단 한 푼도 깎을 생각 하지 마.”“야, 네가 감히 어디서 개기는 거야? 네놈이 먼저 선을 넘은 거니까 날 원망하지 마. 다들 덮쳐서 이 자식 뼈를 부숴버려.”오영준이 손을 휘두르자 정예 무인들이 일제히 진서준을 향해 달려들었다.하지만 진서준은 도망치는 대신 오히려 앞으로 나아갔다.진서준의 몸이 사람들 사이를 휙휙 가르며 움직였고 상대가 눈앞에 오자 손바닥이 날아갔다.퍽!괴력을 담은 일격에 무인들이 하나둘씩 튕겨 나갔다.순식간에 정예 무인들이 벽으로 내던져졌고 바닥에 쓰러졌으며 방 안에는 신음이 가득 찼다.“뭐, 뭐야? 네놈이 무공도 할 줄 안다고?”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에 오영준이 당황한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얼씨구, 네놈이 좀 하는구나. 그럼 내가 직접 상대해 주
“그러죠.”일행은 주 신의를 따라 앞마당으로 향했다.그곳에서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오지웅 노인이 악마가 몸에 붙은 것처럼 날뛰며 사람들을 쫓아다니고 있었다.“죽여, 다 죽여버려!”“아버지, 대체 왜 이러십니까?”오주화가 다급하게 뛰어와 외쳤다.“모르겠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갑자기 관 속에서 튀어나온 귀신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사람들을 마구 때려. 방금 하인 두 명이 거의 죽을 지경으로 맞았어.”오주풍이 인상을 잔뜩 쓰며 말했다.“이건 분명 저 자식 짓이야. 저놈이 일부러 할아버지를 해치려 한 거라고.”오영준이 재빨리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겼다.“헛소리 집어치워. 진서준 씨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오영수가 단호하게 진서준 편에 섰다.한편, 진서준은 오지웅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곧바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오지웅의 몸에 꽂혀 있던 은침이 하나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누가 어르신 몸의 은침을 건드렸죠? 하나가 빠졌잖아요?”진서준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본래 은침 일곱 개가 노인의 몸에 흐르는 기운을 억제하고 있었고 그 사이 장청의 힘이 손상된 경맥을 치유하는 원리였다.그런데 은침 하나가 빠지면서 기운이 폭주해 사방으로 퍼졌고 결국 지금처럼 악마가 몸에 붙은 듯한 폭주 상태에 빠진 것이다.“정말 하나가 빠졌잖아.”오영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누군가 일부러 할아버지를 죽이려 하고 있는데 그게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다.“그걸 논할 시간 없어. 지금은 아버지를 진정시키는 게 급선무야.”오주풍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진정시켜?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오주화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다들 어르신을 붙잡아 주세요. 제가 다시 은침을 꽂을 테니까요.”진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농담이 지나치네. 우리 아버지가 집안에서 실력이 제일 강한데 누가 붙잡을 수 있겠어? 우리 다 덤벼도 상대가 안 된다고.”오주화가 냉랭하게 웃으며 반박했다.오지웅의 실력은 르벨에서도 손꼽힐 정도였기에 상대가 거의
이 광경을 본 오씨 가문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애초에 모두가 진서준이 반드시 죽을 거라고 확신했고 설령 운 좋게 살아남더라도 평생 반신불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진서준은 멀쩡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뿐하게 오지웅의 주먹을 막아낸 것이었다.진서준은 이 틈을 타 은침을 꺼내 오지웅의 몸에 찔렀다.“푹 쉬세요.”이어서 손바닥으로 오지웅의 목덜미를 가볍게 치자 다음 순간, 오지웅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뭐, 뭐야? 이 자식 실력이 이렇게 강했던 거야? 우리 할아버지 공격을 막아냈다고?”오영준은 진서준의 실력에 소름이 돋아 저도 몰래 중얼거렸다.오영준은 할아버지도 당해 낼 수 없었는데 진서준에게 덤볐더라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지 불 보듯 뻔했다.아까 진서준에게 달려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괜히 싸움을 걸었다간 아주 처참하게 당했을 터였다.“아냐, 지금 우리 아버지는 정신이 나간 상태라서 본래 실력의 반도 안 나왔어. 저놈이 막아낸 건 단순한 운이야.”오주화가 애써 부정했다.“아하, 그렇네요. 제가 보기에도 저 녀석 실력이 그 정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아요.”오영준도 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의견에 동조했다.이 모습을 본 오영수는 입꼬리를 실룩거렸다.이 사람들이 조금 전까지 할아버지한테 쫓겨 다니던 거 벌써 까먹은 건가?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까지 자존심을 지키려 하다니, 정말 꼴불견이었다.“다들 얼른 와서 어르신을 방으로 옮겨.”오주풍이 정신을 차리고 하인들에게 지시했다.곧 하인들이 우왕좌왕하며 오지웅을 부축해 방으로 모셔갔다.“진서준 씨 덕분에 살았네요. 진서준 씨가 없었다면 아무도 아버지를 막지 못했을 겁니다.”오주풍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그러나 오영준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큰아버지, 저 녀석은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서 실력이 많이 내려간 겁니다.”“그래? 그럼 넌 왜 아까 도망쳤어? 왜 네가 직접 할아버지를 막지 않았어?”
“명심하겠습니다, 진서준 씨. 저희가 24시간 내내 아버지를 지킬 겁니다.”오주풍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오영수와 함께 400억 수표를 받으러 갔다.수표를 손에 넣자마자 진서준은 본론을 꺼냈다.“대장님 셋째 삼촌은 언제 돌아오죠?”“아마 3일 정도 걸릴 겁니다.”오영수가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진서준 씨, 그동안 우리 집에서 머무시는 게 어떨까요?”“그건 사양하겠습니다.”진서준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아까 그 부자가 저한테 하는 꼴 봤잖아요. 제가 여기서 지내면 분명히 저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오주화와 오영준은 온갖 수를 써서 진서준을 괴롭히려 할 게 분명했다.그러다가 또다시 모함이라도 당하면 그땐 진서준이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소용없을 거였다.“죄송해요, 진서준 씨. 넷째 삼촌이 그런 사람일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오영수가 자책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과 대장님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잖아요. 대장님이 그런 사람으로 변하지 않으면 되죠.”진서준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대신 대장님 할아버지 안전은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겁니다.”진서준이 다시 귀띔했다.“은침을 누군가 일부러 뽑았습니다. 어르신을 죽이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이건 사실 진서준이 말하지 않아도 오영수가 잘 아는 사실이었다.오영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꼭 조심할게요. 사실 저는 이미 의심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래요? 누구죠?”진서준이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혹시 오주화를 의심하는 건 아니죠?”“아까 넷째 삼촌 행동을 보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죠.”오영수가 씁쓸하게 말했다.오영준은 진서준이 건넨 약을 일부러 밟아 부쉈고 이후에도 계속 시비를 걸었다.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떠났을 상황이었다.진서준은 오로지 오영수의 체면을 봐서 여기에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의심 대상 1순위이긴 하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둘에게 범행 시간이 있었을까요?”“그렇지만 두 사람이 다른 사람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