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회사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양소빈이 말했다.“누군데요?”“안내데스크 말을 들어보니 전 사장이라는데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차갑게 웃었다.“이혁진 씨 그래도 사나이네요.”진서준은 이혁진이 유지수처럼 자기 가족을 납치할 줄 알았다.오늘 진서준은 진서라를 따갈 준비까지 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절대 다치지 말아요!”말을 마친 뒤 진서준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낙산컴퍼니로 향했다.양소빈은 회사의 임원으로서 안내데스크로 향했다.성숙하고 아름다운 양소빈을 본 이혁진은 차갑게 코웃음쳤다.“당신이 그 망나니가 만나는 여자야?”이혁진의 모욕에 양소빈은 무척 화가 났다.“무슨 헛소리예요? 경비원을 시켜서 당신의 입을 찢어버리기 전에 조용히 하세요.”이혁진은 그 말을 듣더니 경멸에 차서 웃었다.“그래. 그러면 경비원 불러와.”이혁진의 건방진 모습에 양소빈은 곧바로 이 건물 관리인에게 연락했다.관리인은 누군가 난동을 부린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경비원 네 명을 보냈다.“저 사람 쫓아내세요!”양소빈은 이혁진을 가리키며 말했다.경비원은 앞으로 걸어가서 이혁진을 끌고 가려 했다.그런데 줄곧 뒤에 서 있던 우소영이 갑자기 손을 썼고 네 명의 경비원이 순식간에 날아가서 벽에 쿵 부딪혔다.그 광경에 양소빈과 회사의 다른 직원들 모두 넋이 나갔다.노인인데 어떻게 힘이 이렇게 강한 걸까?게다가 힘만 강한 게 아니라 속도도 빨랐다. 그들은 심지어 우소영이 어떻게 움직였는지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흥, 이제 누굴 더 부를 거야?”이혁진은 건방진 걸음걸이로 양소빈에게 다가갔다.“당신이 그 자식 여자라면 우선 당신부터 손봐줘야겠어!”양소빈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녀는 이혁진이 여자인 그녀에게 손을 대려 할 줄은 몰랐다.우소영의 눈동자에 경멸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그를 말리지 않았다.이혁진은 양소빈의 앞으로 걸어가서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때리려 했다.양소빈은 그 광경을 보고 서둘러
우소영은 종사였기에 이혁진을 기습하는 사람의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느낄 수 있었다.그녀조차도 이 일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쿵 소리와 함께 난동을 부리던 이혁진은 그대로 멀리 날아가서 몸이 벽에 박혔다.이 건물은 완공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성년이 들소라고 해도 벽에 균열을 내기는 어려웠다.진서준의 발차기에 담긴 힘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벽에 처박힌 이혁진은 죽기라도 한 건지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진서준 씨...”양소빈은 제때 도착한 진서준을 보고 안도했다.만약 진서준이 조금이라도 늦게 왔다면 얼마나 고생했을지 모른다.진서준에게 손을 쓰려던 우소영은 당황했다.“진... 마스터님?”우소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두 손도 통제할 수 없이 떨렸다.고개를 돌린 진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우소영을 본 뒤 말없이 양소빈을 향해 다가갔다.양소빈의 뺨에 남은 빨간색 손바닥 자국을 본 진서준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관절에서 콰드득 소리가 날 정도였다.“아파요?”진서준은 들끓는 분노를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안 아파요. 왔으면 됐어요...”자기보다 몇 살이나 어린 남자가 바라보자 평온하던 양소빈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진서준은 자신의 체내에 있는 영기로 양소빈의 부기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사람이 워낙 많고 치료할 때 움직임이 남들에게 보여주기엔 조금 남사스러웠다. 소문이라도 난다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가서 수건으로 얼음찜질 좀 해요.”진서준이 말했다.“괜찮아요.”양소빈은 고개를 저었다.“얼른 가요.”진서준은 용납할 수 없다는 어조로 강하게 말했다.양소빈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곧바로 몸을 돌려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양소빈이 떠난 뒤 진서준은 회사의 남자 직원들을 바라보며 분노에 차서 따져 물었다.“당신들이 그러고도 남자입니까? 회사 사장 남자한테 맞고 있는데 그걸 멀뚱히 서서 지켜보고만 있어요?”진서준의 호통에 남자들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그들은 조금 전 양
이때 우소영은 조금 전만큼 두려워하지는 않았다.비록 진서준이 아주 유명하고 남주성 사람들이 다 진 마스터를 존경한다고 해도 그녀의 사부도 약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우소영은 이혁진이 상대하려는 사람이 진서준이라는 걸 몰랐다.무지한 자는 죄가 없다는 말이 있다.하지만 우소영은 먼저 진서준에게 사과했다.“진 마스터님, 이씨 일가가 상대하려던 사람이 진 마스터님일 줄은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절대 그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을 거예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차갑게 웃었다.“그들이 죽이려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접니다. 우소영 씨도 여자인데, 이혁진이 약한 여자를 때리는데도 가만히 있었던 겁니까?”진서준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혼내자 우소영은 아주 난감했다.그녀는 진서준보다 40살은 더 많았고 나이만 본다면 할머니뻘이었다. 게다가 우소영은 이미 진서준에게 사과했다.진서준이 마구 몰아붙이자 우소영은 아주 불만스러웠다.그녀는 차갑게 웃었다.“진 마스터님, 잊으셨나요? 전 진 마스터님 부하가 아닙니다.”“아, 제가 깜빡했네요. 우소영 씨는 제 부하가 아니니까 때릴 수 있네요!”우소영이 뻔뻔하게 굴자 진서준도 더는 봐주지 않고 손을 들었다.속도가 아주 빨라서 우소영은 반응할 틈조차 없었다.우소영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진서준의 분노에 찬 손길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콰득!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회사 안에 울려 퍼졌다. 다들 머리털이 쭈뼛 서서 충격받은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조금 전 우소영은 혼자서 네 명의 경호원을 쓰러뜨렸다. 그래서 다들 우소영이 만만치 않은 무인이라는 걸 알았다.그러나 지금 우소영은 진서준의 앞에서 세 살짜리 애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맞기만 했다.그들의 회사 대표는 너무도 강했다.우소영은 더욱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놀라움과 원망이 있었다.그녀는 진서준이 다짜고짜 공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어제 밥을 먹을 때 우소영은 진서준에게 사부님에 관해 얘기한
이혁진을 찼을 때 진서준은 마지막에 힘을 살짝 거두어들여서 그를 단번에 죽이지는 않았다.그렇지만 이혁진의 상태가 좋은 건 아니었다. 콧대가 내려앉고 얼굴과 목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다.지금 이혁진은 겨우 숨만 붙어있는 상황이었다.이혁진은 눈빛이 흐리멍덩했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흰색과 빨간색뿐이었다.진서준의 목소리를 들은 이혁진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분통함과 분노가 가득했다.“진서준, 난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네가 죽게 되면 내가 겪었던 이 모든 고통을 그대로 너에게 돌려줄 거야.”이혁진은 자신이 오늘 틀림없이 죽을 거로 생각했다. 진서준이 다시 그를 살려둘 리가 없었다.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빌 바에야 차라리 저주를 퍼붓는 게 나았다.진서준은 그의 말을 듣더니 차갑게 말했다.“이혁진 씨, 이 지경이 돼서도 아직도 날 탓하네요. 당신이랑 당신 아들의 모함 때문에 난 감옥에 3년 동안 갇혀 있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게 지금 내 문제라는 거예요?”만약 당시 이지성이 밥 먹을 때 유지수를 희롱하지 않았더라면 진서준도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원래는 사소한 싸움이었는데 이씨 일가에서는 사람을 찾아 진서준을 감옥에 보내버렸다.더욱 괘씸한 것은 진서준이 감옥에 들어간 뒤 이지성과 유지수가 사람을 시켜 조희선의 다리를 부러뜨렸다는 점이다.두 사람의 행위는 짐승만도 못했다.이혁진은 그의 말을 듣더니 피를 뱉으며 웃어 보였다.“진서준, 사실 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된 건 우리 때문이 아니야.”“이제 와서 변명하려는 거예요?”진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나랑 내 아들은 당시 널 감옥에 보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어.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인맥이 없었어. 그런데 누군가 날 찾아와서 널 감옥에 보내 3년 동안 형을 살게 할 수 있다고 했어.”이혁진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이씨 일가의 재력과 인맥으로는 검찰총장을 매수하기엔 역부족이었다.진서준이 형을 살게 된 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때문이었다.그런데 그 사
그 광경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그들은 조폭들까지 그들의 대표님을 존경할 줄은 몰랐다.다들 후회막급이었다. 만약 그들이 조금 전 의연하게 달려들어 양소빈을 지켰다면 대표의 눈에 들어 승진하고 월급이 인상됐을지도 몰랐다.“끌고 가요.”진서준이 이혁진을 가리켰다.강성철은 이혁진을 힐금 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 파동도 없었다.네 명의 부하가 잽싸게 이혁진을 자루 안에 넣어 그를 데리고 떠났다.“강성철 씨도 가봐요. 깔끔하게 처리해 주세요.”진서준은 낮은 목소리로 강성철에게 말했다.“진서준 씨, 걱정하지 마세요.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강성철은 사람을 데리고 떠났다.진서준은 회사 직원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남자들은 알아서 떠나요. 제가 자를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요.”용서해달라고 할 생각이던 사람들은 조금 전 진서준의 무시무시한 힘을 직관하고 마음을 접었다.진서준이 양소빈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양소빈은 젖은 수건으로 얼음찜질을 하고 있었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오자 양소빈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움직이지 말아요. 그냥 앉아있어도 돼요.”진서준은 손사래를 치면서 양소빈에게 앉으라고 했다.양소빈은 허사연이 진서준을 도와 회사 업무를 처리하라고 보낸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맞았으니 진서준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죄송해요, 양소빈 씨.”진서준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진서준 씨 탓이 아니에요. 그 남자가 이상한 거죠.”양소빈은 진서준의 사과를 감당할 수 없었다.그녀는 허사연과 진서준이 연인이라는 소문을 들었다.앞으로 진서준은 허씨 일가의 주인, 그녀의 미래 상사가 될지도 몰랐다.진서준은 양소빈의 정중한 태도를 보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얼굴 좀 봐요.”진서준이 다가가서 말했다.“괜찮아요. 아직 부기가 내려가지 않아서 좀 못생겼어요.”양소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진서준이 다정하게 말했다.“난 양소빈 씨 얼굴의 부기가 더 빨리 가
문을 두드리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허사연을 제외하고 없었다.진서준이 손을 거두어들이기 전, 허사연이 들어왔다.“진서준 씨, 괜찮아...”허사연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양소빈의 얼굴에 놓인 진서준의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뭐 하는 거예요?”허사연이 사무실 문을 쾅 닫으며 화가 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남자 친구가 자기 회사 여직원과 썸을 타다니!“사연 씨, 그런 거 아니에요. 전 양소빈 씨 얼굴에 남은 손바닥 자국을 치료하고 있었어요.”진서준은 곧바로 허사연에게 다가가서 해명했다.양소빈도 무척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아가씨, 저랑 진서준 씨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진서준 씨는 제 얼굴 부기를 가라앉혀주고 있었어요.”양소빈은 자기 때문에 진서준과 허사연 사이가 틀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부기를 가라앉히고 있었다고요? 진서준 씨처럼 부기를 가라앉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허사연이 화를 내며 말했다.“손을 소빈 언니 얼굴에 올려뒀잖아요! 제가 제때 오지 않았더라면 소빈 언니 옷 안에 손을 넣었겠어요!”허사연은 분통을 터뜨린 뒤 억울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다 몸을 돌려 사무실에서 나갔다.진서준은 말문이 막혀서 그 자리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조금 전 그와 양소빈의 행위가 조금 남사스럽긴 했다.진서준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것이 양소빈 얼굴의 부기를 가라앉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회사 사장인 양소빈이 얼굴에 손바닥 자국을 달고 회사에 출근하게 둘 수는 없었다.“진서준 씨, 넋 놓고 있지 말고 얼른 아가씨를 쫓아가요.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죠.”양소빈은 황급히 진서준의 어깨를 밀었다.“하지만 사연 씨는 지금 단단히 화가 난 상태인걸요.”진서준은 조금 망설였다.“정말 바보 같네요. 가서 달래면 되잖아요? 여자들은 달래줘야 한다고요.”양소빈이 못 말린다는 듯이 말했다.그녀는 진서준처럼 목석같은 남자가 어떻게 허사연의 마음을 얻은 것인지 궁금했다. “정 안 되겠으면 아가씨를 안고 입을 막아버려요
허사연은 손을 멈췄다. 분노로 가득 찼던 그녀는 곧바로 진서준을 걱정했다.“서준 씨, 왜 그래요? 아까 어디 다친 거예요?”허사연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진서준은 속으로 몰래 웃었다.“네, 살짝 다쳤었는데 사연 씨가 때려서 부상이 심해진 것 같아요.”진서준은 콜록거리면서 거짓말을 했다.“네? 전 힘을 쓰지 않았는데요!”허사연은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진서준이 계속해 말했다.“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 이야기 못 들어봤어요?”진서준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자 허사연은 황급히 물었다.“그러면 얼른 병원에 가봐요.”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시간이 없어요...”“진서준 씨, 나 겁주지 말아요!”허사연은 너무 초조한 나머지 눈물이 나왔다.진서준은 장난이 심했던 것 같아 곧바로 말했다.“나 지금 숨이 잘 쉬어지지 않으니까 좀 도와줘요.”허사연은 그 말을 듣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진서준의 입에 입을 맞췄다.진지하게 인공 호흡을 하던 허사연은 문득 진서준의 손이 얌전치 못하다는 걸 발견했다.허사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가 웃음기 어린 진서준의 눈동자를 보고 자신이 속았음을 눈치챘다.그녀는 진서준을 힘껏 두 번 때렸지만 진서준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오히려 더 꽉 끌어안았다.허사연이 숨이 막혀할 때쯤에야 진서준은 그녀를 놓아줬다.“나쁜 놈!”허사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진서준을 마구 때렸다.그러나 그 정도 힘은 진서준에게 있어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것과 다름없었다.“내 부하직원에게 집적거리더니 이번에는 나한테 작업 거는 거예요?”진서준은 허사연의 손을 잡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연 씨, 내가 그런 사람 같아 보여요?”“네!”허사연은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허사연 씨가 날 좋아했을까요?”진서준은 웃었다.“난... 난 서준 씨에게 속은 거예요.”허사연은 삐져서 말했다.평정을 되찾은 허사연은 진서준이 바람을 피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
어제저녁 이지성이 돌아와서 진서준을 만났다고 했을 때부터 이혁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그래서 어제저녁 미리 문자를 작성해서 예약 발송했다.만약 이튿날 살아남는다면 그 문자를 취소할 생각이었고, 살아남지 못한다면 앞으로 이지성은 혼자 살아가야 했다.이것이 이혁진이 보낸 문자 내용이었다.[혁진아, 네가 이 문자를 보고 있을 때면 난 이미 세상에 없을 거야. 복수할 생각은 하지 말고 셋째 삼촌을 찾으러 가. 가서 평온하게 여생을 살아.]이혁진은 이지성에게 대신 복수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종사마저 진서준을 죽일 수 없다면 진서준의 실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할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이런 상황에서 이지성의 유일한 살길은 셋째 삼촌을 찾아가서 그가 계획해 준 대로 여생을 사는 것이었다.“아버지, 제가 꼭 복수할게요!”이지성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원한 때문에 두 눈이 멀었다.지금 이지성의 머릿속에는 진서준을 죽여 아버지를 위해 복수를 할 생각뿐이었다.이지성이 기차를 타고 고양시에 도착했을 때 이상범은 호텔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아버지는? 왜 너 혼자 돌아왔어?”이지성이 혼자 돌아오자 이상범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이지성은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고 악을 썼다.이상범은 이혁진이 죽었다는 말에 심장이 조여들었다.이혁진은 그의 친형이었다. 예전에 이상범이 안산에서 창업했을 때 이혁진은 여러 차례 그를 도와줬었다.그게 아니었다면 이상범이 그들 가족을 위해 경기도에서 남주성으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죽었다고? 설마 네 아버지 원수가 한 짓이야?”이상범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예요. 진서준을 제외하면 우리 아버지를 죽일 사람이 없어요.”진서준의 얘기가 나오자 이지성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진서준을 산채로 찢어 죽이고 싶었다.“가자. 일단 여기서 떠나서 어떻게 복수를 해야 할지 더 생각해 보자.”이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