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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당신이 내 남편이라고요?

Autor: 설월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10-15 08:45:19

그 순간 태윤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래 의식이 없었던 탓에 잠시 혼란스러운 것일 수도 있었고, 약물의 영향이 남아 있거나 갑자기 깨어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그런 가능성들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재희의 얼굴을 살폈다.

“재희야, 나야.”

재희는 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지만, 눈빛에 떠오른 것은 반가움이 아니라 곤혹스러움이었다.

“제 이름은 아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쪽이 누군지 모르겠거든요. 혹시 병원 관계자는 아니시죠?”

그녀의 시선이 남자의 손목시계와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로 옮겨갔다. 고급 시계와 결혼반지, 몸에 익은 듯한 셔츠 차림까지 고려하면 병원 직원일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럼 제 보호자세요?”

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가슴을 가득 채웠던 안도감이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그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을 관찰하는 눈이었다.

태윤은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처음 재희를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을 정확히 그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직함이나 배경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만 따지던 여자였다.

그때는 그 눈빛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함께 사랑하고 살아온 시간이 지워진 지금, 똑같은 눈빛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병실 문이 열리고 의료진이 들어오자 태윤은 간호사가 침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시선만큼은 재희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의사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에도 손을 움켜쥔 채 움직이지 못했다.

혹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돌아올지도 몰랐다. 지금의 혼란이 사라지면 예전처럼 자신을 불러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태윤은 차마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재희는 끝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태윤은 마른 입술을 열었다.

“강태윤이야. 네가 나를 그렇게 불렀어.”

재희는 그 이름을 머릿속에서 몇 번 굴려보았다.

어딘가에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태강이라는 기업 이름과 함께 오래전 들었던 것 같기도 했지만, 눈앞의 남자와 자신을 연결할 만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태윤은 그녀의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기억나는 게 있어?”

재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 짧은 움직임에 태윤의 가슴이 다시 무너졌다.

그는 가까스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네 남편이야. 우리 결혼했어.”

재희는 눈을 깜빡였다.

“제가요? 그쪽이랑요?”

태윤은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견디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희의 눈에 잠깐 놀라움이 스쳤지만, 곧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됐는데요?”

“거의 3년 됐어.”

“그렇군요. 그럼 혼인관계증명서부터 확인할 수 있을까요?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려면 최소한의 근거는 필요하거든요.”

태윤은 입술 안쪽을 세게 깨물었다.

그녀가 자신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다. 기억이 없는 상황에서 낯선 남자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재희다운 반응이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이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담당 의사는 재희의 이름과 생년월일, 부모의 이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소부터 확인했다.

재희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아버지 윤정호가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는 사실도, 어머니 박미선이 작은 식당을 운영한다는 사실도 정확히 기억했다.

대학에서 연구했던 알고리즘과 수학 이론에 관해서는 오히려 의사가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문제는 날짜였다.

“지금이 몇 년도인지 아시겠습니까?”

재희가 대답한 연도는 실제보다 3년 전이었다.

의사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차트를 확인한 뒤 최근에 살던 집과 현재 직업, 결혼 여부를 차례로 물었다. 재희가 대답한 주소는 이미 오래전에 떠난 곳이었고, 그 이후의 생활에 관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이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질문이 이어질수록 재희의 표정은 점점 진지해졌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불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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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재아내는 남편을 기억하지 못한다   9화. 말하지 못한 진실

    그러나 재희는 자신을 미워하지도 않았다. 미워할 기억조차 없었기 때문이다.태윤은 휴대전화를 꺼냈다.화면에는 결혼식 날 찍은 사진이 떠 있었다. 재희는 그의 팔을 붙잡고 환하게 웃고 있었고, 사진을 찍기 직전 자신에게 했던 말까지 또렷하게 떠올랐다.'강태윤 씨, 웃어요. 결혼식 사진인데 장례식 사진처럼 나오면 어떡해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그의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태윤은 그 장난스러운 행동에 결국 웃음을 터뜨렸고, 재희는 그제야 만족한 듯 카메라를 바라보았다.태윤은 사진 속 아내의 얼굴을 손끝으로 쓸었다.차가운 유리 화면이었다.예전에는 손을 뻗으면 언제나 닿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잠결에 자신의 팔을 베고 누워 있거나, 책을 읽다가 아무렇지 않게 어깨에 기대던 여자였다.그런데 이제는 병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태윤은 고개를 숙였다.“재희야, 나 어떻게 해야 하냐.”아무도 없는 복도에 낮은 목소리가 흩어졌다.그때 휴대전화 화면에 회사에서 보낸 긴급 결재 요청이 떠올랐다. 태윤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보고서를 열어 필요한 내용을 확인하고, 담당 임원에게 정확한 지시를 남겼다.수십 명의 직원이 기다리는 결정이었다. 그는 감정을 끼워 넣지 않고 필요한 일을 처리했다.하지만 결재를 마친 뒤 다시 병실 문을 바라보자 조금 전까지 유지하던 침착함이 무너졌다.회사에서는 복잡한 문제도 판단할 수 있었다. 손실을 계산하고 협상 조건을 조정하며, 누군가의 실수를 수습하는 일도 할 수 있었다.그런데 아내의 기억만큼은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었다.태윤은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기억을 되찾지 못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하려 했다. 자신을 다시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녀가 다시 한번 자신의 곁을 선택해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싶었다.그러나 곧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깨달았다.재희는 누군가의 뜻대로 움직이는 여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이유도 바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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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윤은 서류를 덮었다.“다툰 적은 있어.”“부부니까 다툴 수 있죠. 제가 묻는 건 그 정도가 아닌데요.”그가 고개를 들었다.재희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우리가 서로를 좋아하는 상태였는지, 아니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상태였는지 궁금해요.”태윤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아 있던 표정이 사라졌다.그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그 질문이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재희는 기억을 잃었는데도 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 균열을 찾아내고 있었다. 태윤은 손을 움켜쥔 채 자신이 지키려 했던 것들과 재희에게 말하지 않았던 결정들을 떠올렸다.그녀를 위험에서 떼어놓기 위해 대신 선택했던 일들.그때마다 자신은 옳다고 믿었다. 아내를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정작 재희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태윤은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그런데 이제 재희는 그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골라 들려줄 수도 있었다. 우리는 행복했고 서로 사랑했으며,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녀는 당장 반박할 기억조차 없었다.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적어도 재희에게만큼은.태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지금은 쉬어. 아직 회복 중이잖아.”“대답을 피하는 건가요?”그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인정했다.“피하는 거 맞아. 지금 말하면 내가 나한테 유리한 이야기부터 할 것 같아서.”재희가 눈썹을 올렸다.태윤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네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아. 조금만 시간을 줘.”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말을 이어가면 결국 자신을 변명하게 될 것 같았다.태윤은 침대 옆에 놓인 물컵을 확인하고, 간호사 호출 버튼이 손에 닿는 위치에 있는지 살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가져가려다 재희가 아직 사진을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대로 내려놓았다.“필요하면 더 봐도 돼.”그가 문 쪽으로 걸어가자 재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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