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교통사고에서 깨어난 천재 윤재희는 최근 3년의 기억을 잃었다. 그런데 눈앞의 낯선 남자가 자신이 남편이라고 주장한다. “죄송한데, 제가 왜 당신이랑 결혼했죠?” 남편은 재벌그룹의 대표 강태윤. 완벽한 외모와 재력까지 갖췄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는 이혼을 준비할 만큼 깊은 균열이 있었다. 기억을 잃어도 천재적인 두뇌는 그대로인 재희. 그녀는 남편의 비밀을 파헤치는 동시에, 세상이 버린 괴짜 천재들을 모아 문제 해결 회사 SOLVE를 설립한다. 무너지는 기업을 살리고 재벌들의 판을 뒤집으며 세상을 놀라게 하는 여자. 그러나 사고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남편을 향한 의심과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세상의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었다. **남편만 빼고.**
View More윤재희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묵직하게 울렸고,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시작된 통증은 뒷목까지 이어졌다. 입안은 모래를 씹은 것처럼 말라 있었으며, 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과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갈비뼈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통증이 자신이 심상치 않은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재희의 시선은 한동안 병실 천장에 머물렀다.
정사각형 천장에 매립된 조명 여섯 개 가운데 왼쪽 두 번째 조명만 미세하게 중심축에서 벗어나 있었다. 환기구와 스프링클러의 위치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시공 오차가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부터 균형이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순간에 천장 설계를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할 법도 했지만, 재희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구조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먼저 일어나는 습관이었고, 한 번 발견한 오류는 이유를 알아내기 전까지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재희는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장면을 떠올렸다. 대학 연구실 창문에는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옆자리 대학원생이 커피를 쏟아 키보드를 망가뜨렸다. 자신은 그 모습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방식보다 컵의 구조를 바꾸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말했었다.
그날의 습한 공기와 연구실에 퍼져 있던 커피 향까지 선명하게 떠올랐지만, 이상하게도 그다음 장면은 이어지지 않았다. 연구실에서 언제 나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되었는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빈 공간만 남아 있었다.
재희가 미간을 좁히며 기억의 끝을 붙잡으려던 순간, 침대 옆에서 의자가 급하게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희야?”
낮고 거친 남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침대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남자였다. 흰 셔츠의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고, 느슨하게 풀린 넥타이 아래로 단정한 목선이 드러났다. 평소에는 빈틈없이 차려입는 사람일 듯했지만 지금은 머리카락마저 흐트러져 있었으며, 눈 밑에 내려앉은 짙은 그늘과 면도하지 못한 턱이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재희는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상당히 잘생긴 남자였다. 선명한 눈매와 곧은 콧날, 쉽게 흐트러지지 않을 듯한 인상까지 갖추고 있었으나, 지금 그의 얼굴에는 외모를 감상할 여유조차 없게 만드는 절박함이 어려 있었다.
남자는 재희와 눈이 마주치자 숨을 멈춘 사람처럼 굳어졌다.
강태윤은 지난 사흘 동안 아내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다.
의료진이 의식 회복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을 때도, 검사 결과를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을 때도 그는 같은 자리를 지켰다. 병실의 기계음이 조금만 달라져도 심장이 내려앉았고, 재희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이면 숨을 죽인 채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태윤은 한순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내가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온몸을 관통하자 무릎에 힘이 풀릴 것 같았고, 며칠 동안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재희야, 정신이 들어? 어디 아픈 데는 없어?”
그는 급하게 침대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그녀의 얼굴과 손, 몸에 연결된 의료기기를 빠르게 살폈다. 호출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의사부터 부를게. 아직 움직이지 말고 있어.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하고.”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재희의 뺨으로 향했다.
평소였다면 이마를 짚고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을 것이다. 아프다고 투덜거리는 아내를 품에 안고 괜찮아질 때까지 등을 쓸어주었을 것이며, 그녀가 귀찮다며 밀어내더라도 한 번쯤 더 체온을 확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손끝이 닿기 직전, 재희가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 눈을 깜빡였다.
태윤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누구세요?”
“그래? 어떤 숫자인데?”재희는 공책을 내밀었다.정호는 딸이 적은 숫자를 살펴보다가 손을 멈췄다.577과 408.그는 급히 계산을 확인했다.정확했다.그러나 정호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숫자가 아니었다. 숫자 아래에 적힌 두 개의 식이었다.그는 딸이 만든 규칙을 읽어 내려가다가 얼굴을 들었다.“재희야, 이거 누가 알려줬니?”재희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앞에 있는 숫자들을 보고 만들었어.”정호는 공책을 다시 살폈다.그는 한 교수에게 다가갔다.“교수님, 잠깐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한 교수는 공책을 받아 들었다.처음에는 어린아이가 숫자를 대입해 우연히 다음 해를 찾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몇 줄을 읽어 내려가자 표정이 달라졌다.그는 칠판 앞으로 걸어가 재희가 적은 식을 옮겼다.(x, y) → (3x + 4y, 2x + 3y)학생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교수는 분필을 움직여 계산을 이어갔다.(3x + 4y)² − 2(2x + 3y)² = x² − 2y²그가 마지막 등식을 적었을 때 연구실이 조용해졌다.학생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교수님, 그러면 해가 하나만 있어도 계속 새로운 해를 만들 수 있는 겁니까?”한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양의 정수해에서 시작하면 다음 해도 양의 정수해가 되고, 숫자는 계속 커지니까요.”학생들은 급히 공책을 펼쳤다.재희가 발견한 규칙은 우연한 숫자 배열이 아니었다. 원래 등식의 값을 그대로 보존하는 변환이었다. 그 변환을 반복하면 새로운 해를 끝없이 만들어낼 수 있었다.한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이 풀이를 누가 생각했습니까?”정호는 딸을 바라보았다.“재희가 했습니다.”교수는 잠시 말을 잃었다.“저 아이가요?”재희는 어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조금 당황했다.그녀는 공책을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물었다.“틀렸어요?”한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주 정확하구나.”재희는 그제야 안도한 듯 웃었다.그러나 교수의 질문은 거기서
재희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림책은 오래 펼쳐두지 못했다.칠판에 적힌 식이 자꾸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한석준 교수가 학생들에게 내준 문제는 정수론에 관한 것이었다.그는 칠판 한가운데 다음과 같은 식을 적어놓았다.x² − 2y² = 1문제는 이 식을 만족하는 양의 정수 x와 y를 찾아내고, 그런 해가 무한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존 정리를 인용하지 않고 증명하는 것이었다.학생들은 작은 숫자를 넣어 몇 가지 해를 찾아냈다.(3, 2), (17, 12), (99, 70)그러나 그다음부터는 계산이 급격히 복잡해졌다.한 학생은 숫자를 계속 대입했고, 다른 학생은 식을 변형해 일반적인 규칙을 찾으려 했다. 몇몇은 이미 알려진 정수론의 정리를 적용하려 했지만, 한 교수는 기존 정리를 인용하지 말고 스스로 해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으라고 요구했다.“몇 개의 해를 찾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어떤 해에서 다음 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방법이 계속 통한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학생 한 명이 지친 얼굴로 말했다.“교수님, 숫자가 너무 빨리 커집니다. 앞의 해에서 다음 해로 넘어가는 규칙을 찾기가 어렵습니다.”한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좋은 문제인 거죠. 계산을 많이 하는 것과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니까요.”재희는 그림책을 덮었다.칠판에 적힌 식을 한참 바라보던 그녀는 공책을 꺼냈다.처음에는 식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재희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아빠, 저 위에 작은 2는 뭐야?”정호는 딸이 가리킨 부분을 확인했다.“같은 숫자를 두 번 곱하라는 뜻이야. 세 제곱은 세 번 곱하는 거고.”“그럼 저 글자들은 숫자 대신 쓰는 거야?”“그렇지. 어떤 숫자가 들어갈지 모르니까 문자로 적는 거야.”재희는 설명을 듣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그녀는 칠판에 적힌 세 쌍의 숫자를 공책에 옮겼다.3과 2, 17과 12, 99와 70.처음에는 아무 규칙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숫자들을 나란히 적어놓고
윤재희의 질문이 떨어진 뒤에도 강태윤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아침 햇살이 병실 바닥을 길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태윤은 손에서 미끄러진 숟가락을 바로 놓은 뒤 물컵을 집어 들었지만, 정작 물은 마시지 않았다. 유리잔을 감싼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서 물 표면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재희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남자는 질문이 뜻밖이어서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언젠가 반드시 듣게 될 말을 예상하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재희는 침대 옆에 놓인 메모지를 펼쳤다.“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가 알고 싶은 건 우리가 실제로 어떤 상태였는지예요. 사진을 보면 결혼 초기와 최근의 관계가 상당히 달라졌거든요.”태윤은 그녀가 적어놓은 항목들을 바라보았다.사진 촬영 빈도의 변화, 함께 등장하는 장소의 차이, 부모님의 반응, 그리고 자신이 보인 행동까지. 재희는 잃어버린 결혼생활을 몇 개의 단서로 나누어 검토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태윤의 가슴 한쪽이 저릿해졌다.그녀는 여전히 윤재희였다.누군가가 옳다고 말하는 것보다 왜 옳은지를 먼저 확인하고,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결론 앞에서 가장 먼저 의문을 품던 여자였다.태윤은 처음 그녀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그날도 재희는 국내 최고의 물류 전문가들이 이미 결론을 내린 문제 앞에서 혼자 고개를 저었다. 수백억 원이 걸린 사업 계획을 검토하던 회의실에서, 스물네 살의 여자는 다른 사람들이 놓친 숫자 하나를 발견했다.하지만 태윤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보다 훨씬 놀라웠다.윤재희는 여덟 살 때부터 그런 아이였다.여덟 살의 윤재희는 자신이 수학을 특별히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녀에게 숫자는 그림과 비슷했다. 얼핏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오래 들여다보면 서로 닮은 부분이 나타났고, 복잡한 식 역시 모양을 조금 바꾸면 전혀 다른 관계가 드러났다.아버지 윤정호는 그런 딸을 재미있어했다.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
그는 재희가 깨어 있는 모습을 확인하자 걸음을 잠시 멈췄다.아침 햇빛 아래에서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평범한 광경이 태윤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졌다.재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왜 그렇게 봐요? 제가 이상해요?”태윤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아니. 그냥 네가 이렇게 깨어 있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서.”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덧붙였다.“살아 있어서 고마워.”재희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깜빡였다.태윤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보온 용기를 열고 죽을 그릇에 덜어주면서 그녀가 먹기 편하도록 숟가락의 위치를 바꾸고 물컵을 손이 닿는 곳에 놓았다.모든 동작이 익숙했다.오랫동안 누군가를 돌봐온 사람처럼.재희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강태윤 씨, 질문이 하나 있어요.”태윤은 의자를 끌어 앉았다.“말해. 궁금한 건 뭐든 물어봐.”재희는 메모지를 넘겼다.“우리가 결혼한 건 확인했어요. 그런데 제가 왜 당신이랑 결혼했는지는 아직 모르겠거든요.”태윤은 보온 용기의 뚜껑을 열다가 손을 멈췄다.그 질문이 얼마나 잔인한지 재희는 모를 것이다. 자신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선택이었고, 그녀와 결혼한 날 태윤은 처음으로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한다는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그런데 지금 재희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묻고 있었다.태윤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네가 나를 좋아했으니까. 그리고 나도 널 좋아했고.”재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엄마도 제가 먼저 좋아했다고 말했어요.”태윤은 희미하게 웃었다.“맞아. 네가 먼저 좋아한다고 했어.”그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하지만 결혼하자고 한 건 나였어. 너랑 평생 살고 싶어서.”재희는 잠시 말을 잃었다.남자의 눈빛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태윤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지금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며,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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