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공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의사는 사고로 인한 기억상실 가능성을 설명했다. 현재 확인된 신체 상태와 추가 관찰이 필요한 부분을 구분했고, 기억이 돌아올지 또는 언제 회복될지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태윤은 그 설명을 들으며 재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울거나 겁에 질리는 대신 메모지와 펜을 달라고 하더니 자신의 상태를 차분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태윤은 그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재희는 언제나 그랬다. 남들이 당황하는 순간에도 가장 먼저 문제의 구조를 파악했고,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해결할 수 있는 부분부터 찾아냈다.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본능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다.태윤은 그런 재희를 사랑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비범한 머리에 끌렸고, 나중에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다.그런데 지금은 그 익숙한 모습이 오히려 잔인했다. 말투도, 생각하는 방식도, 펜을 쥐는 습관도 그대로였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세계에서 자신과 함께한 시간만 사라져 있었다.“제가 잃어버린 기억의 범위가 정확히 3년인가요?”“현재로서는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재희는 종이에 긴 선을 하나 긋고 왼쪽 끝에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날짜를 적었다. 이어 사고가 발생한 날짜와 현재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의사가 확정적으로 말한 사실과 추정이라고 설명한 부분을 구분해 적었다.사고 발생 사흘 전, 최근 약 3년의 개인적 기억 공백, 언어와 전문지식 유지, 사고 경위 조사 중.그녀는 정리한 내용을 다시 살피다가 의사가 건네준 검사 안내지에서 한 가지를 발견했다.사고 이후 작성된 기록에는 의식 회복 시점과 검사 시간이 정확히 표시되어 있었지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문장 가운데 일부는 확정된 사실과 추정이 섞여 있었다.재희는 펜으로 해당 부분을 가리켰다.“여기에는 기억상실 범위를 약 3년으로 추정한다고 되어 있는데, 아래 설명은 마치 그 기간 전체가 사라진 것처럼 적혀 있네요. 정확히 확
Last Updated : 2026-10-1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