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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Author: 팔방지재
완희는 성지원이 지난 수십 년의 정을 쉽사리 저버리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성지원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서신을 써서 너를 궁으로 돌려보내는 게 좋겠구나. 앞으로는 궁에 머물며 다시는 나오지 말거라."

"진심이십니까?" 완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성지원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완희는 그제야 다급해졌다. "공주님, 어찌 그리 매정하실 수 있으십니까! 노비는 공주님 곁에서 수년 동안 모셨는데, 이제 와서 궁으로 돌아가면 어느 주인님이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네가 노비라는 것을 아직도 잘 알고 있구나." 성지원이 몸을 살짝 숙였다.

완희는 칠흑 같은 두 눈과 마주치자,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들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성지원은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완희를 쳐다보았다.

완희는 그제야 이를 악물고 무릎을 꿇은 채 성지원의 앞으로 기어갔다. "공주님, 노비는 정말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노비는 공주님과 세자 저하께서 하루빨리 화해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주님께서 노비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앞으로는… 노비가 두 번 다시 주제넘는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날 위해서라니, 참으로 기특한 변명이구나.'

성지원은 속으로 생각하며 입꼬리를 올렸고 곧이어 입을 열었다. "네가 스스로 주제넘는 짓을 했다는 걸 아는구나. 앞으로는 사등 시녀로 강등되어 바깥에서 청소나 하는 일을 맡거라."

"공주님?!" 완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성지원의 눈빛과 마주치자, 그녀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갔다.

이 일로 인해 완희는 최씨가 당부한 말을 까먹고 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설령 전했다 하더라도, 성지원은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그날 밤 성지원은 푹 잠을 잤다.

정란이 세 번째로 들어와 날이 밝았음을 알리고 나서야 성지원은 마지못해 침상에서 게으르게 눈을 떴다.

"공주님, 오늘 부인님께 문안 인사 드리지 않으십니까?" 정란은 그녀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일깨워주었다.

성지원은 그제야 생각났다.

전생에 그녀는 기윤재와 혼인한 지 4년째 되던 해에 기윤재가 따로 저택을 하사받아 기국공부에서 나와 살게 되면서 매일 문안 인사를 올릴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었다.

"안 갈 것이다." 성지원이 말했다. "창고로 가자꾸나."

성지원은 직접 몇 가지 약재를 고른 후 작은 부엌으로 가서 약재와 작년에 담근 국화주로 술지게미 경단을 만들었다.

그 술지게미는 맛이 진하고 달콤하며 부드러웠고, 약재의 맑은 향과 어우러져 몸을 따뜻하게 하고 비장을 튼튼하게 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성지원은 경단을 그릇에 담아 정교한 찬합에 넣었다.

"공주님께서는 부인님께 가져다 드리려는 것입니까?" 지안이 물었다.

성지원은 눈썹을 치켜떴다. 물론 아니었다.

지안과 정란에게 머리를 올리고 화장을 시키게 한 뒤, 2년 동안 입지 않았던 조복으로 갈아입었다.

금빛 치마는 섬세한 꽃무늬로 수놓아져 있었고, 넓은 소매와 허리띠는 그녀의 몸매를 더욱 날씬하게 돋보이게 했다.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은 해당화와 순금 머리 장식으로 단정하게 묶여 있었다.

작은 구슬 장식의 비녀가 가볍게 흔들릴 때마다 눈부신 아름다움을 뽐냈다.

지안과 정란은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공주님이야말로 경성 제일의 미인이십니다. 제가 보기에 소위 말하는 경성 사대 미인들도 공주님께는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성지원은 외출을 좋아하지 않았고, 설령 외출하더라도 항상 수수한 차림이었다.

"마차를 준비하거라. 입궁할 것이다." 성지원은 정란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올랐다.

멀지 않은 곳에서 몇몇 한량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그녀의 모습을 보았고, 그중 선두에 서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젊은이가 손에 쥔 고삐를 잡아당겼다.

다른 사람들도 움직임을 듣고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

"저분은... 경녕 공주?" 어떤 이가 놀랐다.

"기윤재에게 시집 가려고 단식까지 했다는 그 공주 말입니까?"

"맞습니다!"

"하하, 그럼 상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은 기회가 없겠군요. 공주님의 신분은 말할 것도 없고, 공주님의 남편은 우리 모두를 합쳐도 한 줌도 안 될테니까요."

"과거시험에 연이어 합격하고, 창남에서 큰 공을 세웠다지요. 오늘 궁에 들어가 상을 받을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에 폐하께서 그를 정사품 평연 장군으로 봉할 뜻이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쯧, 저렇게 젊은 나이에 사품 장군이라니, 역사상 처음이겠지요. 예전에 경녕 공주를 비웃던 귀족 아가씨들은 오늘 이후로 경녕 공주를 엄청 부러워할 겁니다."

"그건 또 모르는 일이지요. 기윤재가 이번에 창남에서 여인 하나 데려오지 않았습니까?"

"그게 뭐가 대수겠습니까? 어느 남자가 세 아내와 네 첩을 두지 않겠습니까? 그저 노리개일 뿐, 경녕 공주를 넘어설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경녕 공주께서 이렇게 아름답게 자라셨으니, 기윤재가 데려온 여인도 꽤 괜찮을 것 같지 않습니까?"

"듣자 하니 농가 출신이라던데..."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떠드는지 소년은 듣지 못했다. 마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던 그는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생각나서 오늘 취향루(醉香樓)는 못 갈듯 합니다!"

"어이, 어이! 상 둘째 도련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다시 불러보려 했지만, 소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경성 제일의 한량이 무슨 중요한 일이 있다고? 혹시 한턱내기 싫어서 일부러 도망친 것이 아닌지요!" 사람들은 몇 번 비웃었다.

성지원은 입궁하여 가마로 갈아탄 후 바로 자혜궁(慈慧宮)으로 향했다.

자혜궁 안은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 싱그러웠고, 그녀가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심었던 계수나무에서는 그윽한 계화 향이 퍼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예전과 같으면서도, 또 예전과 같지 않은 듯했다.

특히, 자단나무 안락의자에 기대어 앉아 계신, 안색이 다소 수척해 보이시는 할머니를 보자, 성지원은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태후의 어깨를 주무르던 수 어멈은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 말을 하려다, 성지원의 손짓에 저지당했다.

성지원은 조용히 수 어멈의 자리로 가서 그녀를 대신해 할머니의 어깨를 주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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