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접어들자, 갑작스러운 비가 자주 내렸다.성지원은 풍경각을 따라 이어진 낭하 아래에 서 있었고, 보슬보슬 내리는 빗방울이 눈앞에서 구슬발을 이루었다."공주님, 세자 저하께서 밖에서 밤낮으로 꼬박 하루를 서 계셨습니다. 예전의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는데 비까지 맞으셨으니, 혹 감기라도 드시면 내일 전하 앞에서 있을 봉상에 지장이 생길까 염려됩니다.""더욱이 세자 저하께서도 다른 이의 계략에 빠져 그 농가의 여식과 관계를 맺게 되신 것인데, 공주님께서 진심으로 뉘우치는 그 마음을 헤아리시어 받아들이신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어차피 그저 한 미천한 농가의 여식일 뿐인데, 공주님보다 더 귀할 리 있겠습니까? 그저 작은 별채를 내어주고 차갑게 대하면 그만인 것을요."대궁녀 완희가 뒤에 서서 재잘거렸다.오랫동안 미동도 하지 않던 성지원이 갑자기 돌아섰다.지난 생에 그녀는 완희의 말을 듣고 맹가온이라는 그 농가의 여식을 받아들였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던가?온갖 고난을 겪던 농가의 여식에서, 수도 전역에 상점을 거느린 맹씨가 되고, 재민을 위해 아낌없이 재물을 털어놓는 세자의 소첩이 되어, 온 경성의 칭송을 받으며 황제로부터 정실부인과 동등한 지위를 하사받았다.결국,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오랫동안 병을 앓아 치료가 어려워졌고, 투기가 심하다는 이유로 서민으로 강등된 성지원 앞에 나타났다."공주님께서 어찌하여 늘 자식이 없으셨고 병석에 누워 계셨는지 아십니까?""진작 생각하셨어야 할 일인데, 공주님께서는 애써 외면하셨지요.""이제 마지막이니 공주님께 한 번 깨달음을 드리겠습니다. 세자 저하께서 말씀하시길 공주님께서 세자 저하의 아이 하나를 해쳤으니, 이 생에서는 자식 없이 속죄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자 저하께서 공주님을 찾아뵐 때마다 지니고 오셨던 향낭은 특별히 제조된 것이었지요.""공주님께서 늘 그 향을 맡으셨으니, 어찌 회임하실 수 있었겠습니까?"성지원의 눈앞에 맹가온의 새빨간 옷자락이 다시금 떠올랐다.그랬다. 그때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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