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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작가: 민들레
“신지아, 당장 나와.”

이혼 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할지 곰곰이 생각하던 찰나, 변도영의 격앙된 목소리가 벽 너머로 터져 나왔다.

신지아는 순간 고개를 들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문을 열까 하던 그때 잠기지도 않은 방문이 발길질에 날아가듯 열렸다.

“신지아.”

변도영은 잔뜩 굳은 얼굴로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나은이 귀국한 거, 네가 어머니한테 말한 거 맞지?”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범인을 추궁하듯 몰아붙였다.

신지아는 잠시 멍해졌다가 곧 허탈하게 웃음을 지었다.

변명 따위는 이제 무슨 소용일까.

예전에도 늘 이렇게 오해받았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아니라고 증거를 찾아가며 애써 해명했었다.

한 번은 기어이 증거를 손에 넣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영 앞에 내밀었던 적도 있었다.

“봐요. 정말 제가 아니에요.”

그때 그녀의 눈빛엔 간절한 기대가 담겨 있었지만 변도영의 대답은 차가웠다.

“아니면 뭐? 신지아, 네가 왜 내가 제일 먼저 의심받는 사람인지 그건 생각 안 해봤어?”

그 말은 마치 한겨울 얼음물 같았다.

가슴 깊숙이 품어 온 따뜻함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그 기억이 뚜렷이 떠올랐기에 신지아는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지아의 침묵을 보고 변도영은 곧장 결론을 내렸다.

“역시... 떳떳하지 않으니까 말이 없는 거지.”

그는 코웃음을 치며 쏘아붙였다.

“너 아직도 질투에 눈이 멀어서 어머니한테 말한 거야? 그렇게 해서 뭐가 달라질 줄 알아? 신지아, 내가...”

“변도영 씨.”

그의 말을 단호히 끊으며 신지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시간 좀 내요. 저희 이혼하러 갑시다.”

“뭐라고?”

갑작스러운 말에 변도영은 순간 말을 잃었다.

“이혼?”

그의 입가엔 비웃음이 스쳤다.

“진짜 이혼하겠다고? 웃기는군. 네가 어떤 수를 써서 날 붙잡았는데 이렇게 쉽게 놓아주겠다고?”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신지아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러고는 책상 위의 서류를 들어 그 앞에 내밀었다.

“협의서는 이미 작성했어요. 필요한 제 서명도 다 끝냈습니다. 당신은 그냥 여기 사인만 하면 돼요.”

변도영의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손에 쥐어진 서류를 내려다보며 그는 어쩐지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번이나 강요하고 압박했을 때조차 끝내 거부했던 서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스로 내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의심스러움과 당혹감이 교차했으나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이혼 계약서를 받아 든 순간, 그는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유 모를 불쾌감이 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신지아는 그런 변도영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쁜가? 이제 날 매일 보지 않아도 되니까. 다른 여자랑 떳떳하게 함께할 수 있으니까.’

그녀는 입술을 다물고 펜을 건넸다.

“별 문제 없으면 사인하세요.”

변도영은 펜을 받지 않았다.

대신 목덜미를 짓누르듯 넥타이를 당기며 낮게 물었다.

“너 진심이야?”

“네.”

신지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는 다시 그녀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표정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하지만 보이는 건, 익숙하지 않은 평온함이었다.

예전 같으면 억울함, 분노, 두려움, 그 모든 것이 섞여야 할 얼굴은 오히려 한결 가벼워 보였다.

이혼이 신지아를 이렇게 편안하게 만들었다는 깨달음은 변도영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서 불쑥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다시 시선을 협의서로 내렸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조항.

[재산 분할.]

변도영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여긴 문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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