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만 구한 남자의 모든 챕터: 챕터 1 - 챕터 10

100 챕터

제1화

“변 대표님, 지금 사고 현장은 너무 위험합니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구조대와 이미 연락이 닿았습니다. 구급차도 곧 도착합니다!”“변 대표님!”“비켜! 시간 끌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희 전부 목숨으로 갚아야 할 줄 알아!”귀를 찢는 듯한 고함이 사람들 속에서 터져 나왔고 그 소리에 신지아는 흐릿했던 의식이 서서히 돌아왔다.힘겹게 고개를 돌린 순간, 저만치서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남자는 마치 하늘에서 사는 신이 내려온 듯한 포스를 풍기며 자신에게 달려오고 있었다.그래서 신지아의 눈가는 순식간에 빨개졌다.사고가 난 뒤, 뒤집힌 차 안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갇혀 있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그녀는 변도영이 끝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게다가 사고 직전, 두 사람은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어젯밤 회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변도영은 아침에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약속을 깨고 사라져 버렸다.신지아가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받지 않았다.그러다 사고가 터졌고 남은 배터리로 간신히 그의 비서에게 위치를 보냈을 뿐이다.그녀는 변도영이 또다시 자신을 무시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오고 있었다.“아가, 사랑하는 내 아가... 우리 이제 살 수 있겠다. 아빠가 왔어.”피가 멈추지 않는 몸을 부여잡으며 신지아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았고 어지럼증에 토할 것 같은 기운도 억누른 채 입을 열려고 애를 썼다.하지만 목은 이미 타들어 가듯 잠겨 아무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그래도 괜찮아. 이렇게 나를 찾아왔잖아.’신지아는 힘없이 팔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그러나 예상과 달리 변도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지나쳤다.‘뭐지? 차를 잘못 본 건가?’오늘은 시댁에서 주는 차를 타고 나오지 않았다.그 차는 아침에 시누이가 몰고 갔고 지금 타고 있는 건 엄마가 선물해 준 차량이었다.평소 거의 몰지 않았으니 변도영이 못 알아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신지아는 다시 힘을 짜내어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계속된 출혈로 목소리는 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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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안타깝게도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늦었습니다. 산모는 수술이 잘 끝났지만 아이는 지킬 수 없었습니다.”“산모의 가족은 어디 있습니까?”“가족은 없었습니다. 동의서도 산모 본인이 직접 서명했습니다.”마취에서 막 깨어난 신지아는 아직 죽음 문턱을 오간 공포에 휩싸여 있었지만 의사와 간호사가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그녀는 무심코 손을 아랫배로 가져갔다.의사의 말대로 아이는 이미 세상을 떠났는지 부풀어 오르던 작은 배는 다시 평평했다.더 이상 두근거리던 작은 생명을 만질 수 없었다.지금쯤이면 울며 무너져야 맞는 건데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아마도 이미 너무 많이 울어버려서일지도 몰랐다.신지아가 눈을 뜬 걸 확인한 의사는 현재 상태를 물었고 돌아가기 전 몇 마디 위로를 남겼다.“몸 잘 추스르세요. 아이는 언제든 다시 가질 수 있으니까요.”신지아는 고개만 끄덕였지만 말하지 않았다.자신은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이번 아이는 ‘훔친 아이’였다.마치 이 결혼 자체가 훔친 것과 다름없듯이.그녀는 결국 연성시 변씨 가문의 자랑, 변도영과 결혼에 이르렀지만 그는 그녀를 음흉하고 계산적인 여자라며 증오했다.신혼 첫날 밤조차 대놓고 클럽으로 나가 신지아를 조롱거리로 만들었고 연성시 전체가 그녀를 비웃었다.결혼한 지 5년, 변도영의 태도는 조금 누그러졌을 뿐이다.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심하게 모욕할 때면 간혹 체면을 지켜주곤 했다.그래도 그는 분명히 선을 그어 말했다.“나는 너와 육체적인 사랑만 나눌 뿐, 마음은 주지 않을 거야. 내 아이를 낳는 건 절대 허락하지 않아.”그래서 언제나 철저히 대비했고 가끔 준비가 없을 때면 끝내고 나서도 피임약을 먹였다.신지아는 이 집안의 며느리이자 사모님으로서의 역할만 지키며 변도영의 규칙에 따라 살아왔다.그러다 석 달 전, 술에 잔뜩 취해 돌아온 변도영이 억지로 그녀를 안았다. 피임도 하지 않은 채.그날 이후 약을 챙겨 먹으려 했지만 약통은 이미 비어 있었다.약을 사러 갈 틈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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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병실 안.하민재는 여전히 열을 올리며 이나은이 해외에 있던 동안 변도영이 신지아를 어떻게 대했는지 얘기하고 있었다.“어느 해는 말이죠. 손목을 그어 자살하겠다면서 도영이 형한테 사진까지 보냈다니까요? 그런데 형이 어떻게 한 줄 아세요?”“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밖으로 내던졌어요. 그리고 아주 차갑게 말했죠. 죽을 거면 나가서 죽으라고 했어요. 집 더럽히지 말고.”이 일은 하민재도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였다.당시 기온은 영하 10도, 신지아는 눈바람 속에서 덜덜 떨며 팔목의 피조차 얼어붙을 때까지 버려졌다고 했다.그 얘기를 하며 하민재는 한편으론 우습고 또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듯 웃어댔다.“도영이 형이 신지아 씨를 대하는 태도는 뻔히 보이지 않습니까? 반대로 누나가 해외에서 감기만 걸려도 형은..”“그만.”하민재의 말을 변도영이 차갑게 끊어버렸다.“쳇, 괜히 민망해선.”“나은 누나, 봐요. 형이 저렇게 협박하잖아요. 이거 그냥 넘어가실 거예요?”하민재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이나은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변도영의 마음은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으로 얽혔다.마침 그때, 하민재가 예약해 둔 VIP 병실이 준비되었다.변도영은 말없이 전표를 집어 들고 직접 수속을 밟으러 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보며 하민재는 이나은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보셨어요? 누나가 일만 걸리면 형은 누구보다 신경 쓰잖아요.”그 말은 작게 흘러나와 변도영은 듣지 못했다.그는 전표를 들고 내려가 수납을 마쳤다.일부러 환경이 조용한 병실을 골라주었지만 일을 끝내자 문득 신지아가 떠올랐다.잠시 망설이던 변도영은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그제야 신지아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신지아 씨 보호자분 안녕하세요. 저희는 하성 병원 의료진입니다. 여러 차례 전화를 드렸으나 연결이 되지 않아 메시지로 남깁니다. 신지아 씨가 교통사고로 위중한 상태라 긴급 수술 동의가 필요합니다. 확인 즉시 병원으로 와주십시오.]하성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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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뭐라고?”변도영은 순간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그러자 신지아가 아까 했던 말을 또렷하게 반복했고 변도영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신지아,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야?”“전 진심이에요.”신지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변도영 씨, 저는 당신이랑 이나은을 위해 물러날 거예요. 변호사도 이미 만났고요. 지금 저 위층 병실에 있으니까 시간 되면 오세요. 이혼에 대해 얘기 좀 하게.”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변도영은 무언가 깨달은 듯 비웃듯 대답했다.“난 바빠.”뚝!그렇게 그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분노와 조롱이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역시 반응이 이상하다 했더니 결국 날 불러내는 게 목적이었네. 이혼 운운하는 것도 나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였어.’‘하마터면 또 속을 뻔했네.’그는 예전에도 수차례 강제로 이혼을 요구한 적이 있다.반을 떼 주겠다고, 전부 다 주겠다고 했지만 모든 조건을 신지아는 거절했었다.그래서 일부러 다른 여자와 스스럼없이 끌어안고 집안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고 친구들 앞에서도 냉대했다.눈치 있는 여자라면 벌써 등을 돌렸을 것이지만 그녀는 버텼다.처음엔 탐욕이라 생각했다.더 많은 걸 얻고 싶어서.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는 깨달았다.신지아가 원한 건 재산도 지위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이었다는 걸.변도영은 속으로 다짐했다.‘내 마음은 평생 못 얻을 거야.’이내 그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나와 나은이는 모두 너를 만나고 싶지 않아. 네가 알아서 처신해.]그러고는 더 이상 신지아를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가 눈치 좀 챘기를 바랐다.그렇지 않다면 이 자리에서 병원 밖으로 끌어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신지아는 차가운 경고처럼 느껴지는 그 메시지를 보고 허탈하게 웃음을 지었다.이미 각오한 일이었지만 막상 확인하니 마음 한구석이 얼어붙는 듯했다.5년 동안의 결혼, 이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지만 의외였다.예전 같으면 서럽고 아팠을 텐데 이번에는 담담했다.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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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간호사가 막 입을 떼려는 순간, 옆을 지나던 하민재가 가볍게 웃으며 끼어들었다.“아, 위층 병실에 있던 산모 얘기야. 원래 있던 병원에서 쫓겨난 사람이지. 형, 괜히 저런 말 믿지 마. 간호사들이 들은 소문이 많다 보니 헷갈린 거야.”하민재의 말을 변도영은 의심하지 않았다.더구나 그와 신지아는 수년간 철저히 피임을 해 왔으니 아이가 생기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변도영은 무심한 말투로 물었다.“신지아는 어때? 병원에 왔다고 들었는데.”하민재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아, 별일 없어. 그냥 가볍게 다친 정도지. 아마도 형이 여기 와서 나은이 누나 챙기는 걸 보고 괜히 질투해서 아픈 척한 거겠지.”그는 은근히 눈치를 살폈지만 변도영은 별다른 의심 없이 미간만 살짝 찌푸리고 비웃었다.그리고 곧 발길을 돌려 병실을 떠나자 하민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그는 곁에 있던 두 간호사에게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이 병실 환자에 관한 얘기, 절대 밖으로 새 나가선 안 됩니다.”변도영이 이나은과 어렵게 다시 이어졌는데 변수가 생겨선 안 된다.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변도영이 신지아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한 일이었으니까.그러나 아이 이야기는 달랐다.혹시 변도영이 그 아이 때문에 연민이나 죄책감을 느낀다면?그렇다면 모든 게 어그러질 수 있었다.그래서 막아야 했다.신지아의 ‘계략’이 절대 성공하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말이다....신지아는 이틀간 몸을 추스른 뒤, 퇴원했고 곧장 아이를 위해 묘지를 마련했다.태어나는 순간부터 원치 않던 존재였기에 미리 준비한 옷이나 장난감 같은 건 없었다.그래서 직접 백화점에 들러 점원의 권유에 따라 아기 물건들을 하나하나 골랐다.옷, 장난감, 작은 신발.쓸모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그러자 마지막엔 점원마저 조심스럽게 말했다.“아가씨, 아기는 금방 자라요. 너무 많이 사면 다 못 쓰고 버리게 돼요.”그 순간, 신지아의 코끝이 시큰거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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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신지아는 잘 알고 있었다.지금 고미애의 요구를 따라 나가봤자 변도영의 미움만 더 깊어질 뿐이라는 걸.하지만 시어머니라는 신분 앞에서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그래서 언제나처럼 두 갈래 길 사이에서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신지아, 나는 네가 과거에 어떤 집안 출신이었는지, 어떤 수작으로 도영이와 결혼했는지는 상관 안 해. 중요한 건 지금 넌 이미 변씨 가문에 들어왔으면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할 거 아니야.”고미애의 목소리는 여전히 날카로웠다.“남편이 사흘이나 집에 안 들어왔는데 그냥 놔둬? 그래, 그렇다 쳐. 그런데 네가 뻔뻔하게 사흘 동안 집을 나가 있어? 도대체 네가 무슨 체면으로 변씨 가문 며느리랍시고 살고 있는 거야?”예전 같으면 신지아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고 그 모든 비난을 그대로 받아냈을 것이지만 이번엔 달랐다.그녀는 차갑지만 담담히 입을 열었다.“어머님도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그저 변도영 씨 아내지, 어머니가 아니라고. 그러니 변도영 씨를 다시 교육할 의무 같은 건 제게 없어요.”“뭐라고?”고미애가 발끈했다.“네가 미쳤구나! 감히 오늘 나한테 이런 태도를 보여?”신지아는 흔들림 없이 대꾸했다.“저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고미애는 한순간 화를 내려다 곧 무언가를 떠올린 듯 비웃음을 터뜨렸다.“흥, 알겠다. 질투에 정신이 멀어 아닌가 보구나. 나은이 돌아온 거 맞지? 요 며칠 도영이가 나은이랑 함께 지냈니?”신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고미애는 이미 확신한 듯 코웃음을 쳤다.“봐, 역시 내 말이 맞네. 너 지금 괜히 이나은 때문에 화풀이하는 거잖아.”잠시 뜸을 들인 뒤, 고미애의 목소리는 더 차가워졌다.“하지만 잊지 마. 나는 도영이의 어머니야. 내가 허락해야 도영이가 누구와 함께할 수 있는 거고 내가 마음먹으면 내일 당장 네 짐 싸서 이 집에서 내쫓을 수도 있어.”“그러니 감히 나한테 목소리 높이기 전에 네 위치부터 똑바로 알아둬라.”신지아는 여전히 조용했기에 고미애는 예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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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신지아는 다시 한번 로펌을 찾았다.이미 병원에 있을 때 대부분의 이혼 계약서를 작성해 두었기에 이제 남은 건 재산 분할 부분뿐이었다.결혼 전, 그녀는 꽤 괜찮은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변씨 가문은 며느리가 세상 앞에 얼굴을 드러내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결국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오로지 변도영의 의식주만 챙기며 살아야 했다.변도영은 늘 조용함을 원했다.그래서 집 안의 청소 도우미와 가사 도우미들도 하나둘 내보내더니 마지막에 오영희 한 사람만 남겼다.오영희는 고미애의 사람이었다.그 덕에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신지아 위에서 군림했고 집안일은 대충 넘기면서 오히려 신지아를 부려 먹었다.변도영은 그 사실을 몰랐을까?아니, 아마 알고도 모른 척했을 것이다.그래서 신지아의 위치는 며느리라기보다 차라리 변도영의 욕망을 해결해 주는 파트너이자 도우미에 더 가까웠다.신지아는 변도영의 재산 절반을 바라지도 않았다.다만 최소한 빈손으로 쫓겨나고 싶지는 않았다.신지아는 변호사에게 부탁해 자신이 과거 몸담았던 업계에서 지난 몇 년간 받을 수 있었던 평균 임금을 조사하게 했다.그 금액을 토대로 합리적인 액수를 산출했고 그것을 계약서에 적어 넣었다.모든 걸 마친 뒤, 계약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현관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건 난장판이었다.거실 바닥에는 껍질과 휴지, 귤껍질이 널려 있었고 커피 테이블 위는 마치 쓰레기장 같았다.범인은 소파에 늘어져 과자를 까먹으며 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오영희였다.그녀는 신지아를 보고서야 잠깐 긴장하더니 금세 어깨를 내려놓고 태연하게 말했다.“아, 오셨어요?”그러고는 다시 푹 파묻히듯 소파에 기대 드라마에 몰두했다.변도영이 있을 땐 얌전한 가정부의 모습을 흉내냈지만 그가 없을 땐 이 집의 진짜 주인처럼 군림하는 게 오영희였다.처음엔 신지아도 차마 못 본 척하며 그녀와 함께 청소를 했다.나이가 돌아가신 어머니와 비슷하니 인간적으로 거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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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신지아, 당장 나와.”이혼 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할지 곰곰이 생각하던 찰나, 변도영의 격앙된 목소리가 벽 너머로 터져 나왔다.신지아는 순간 고개를 들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문을 열까 하던 그때 잠기지도 않은 방문이 발길질에 날아가듯 열렸다.“신지아.”변도영은 잔뜩 굳은 얼굴로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나은이 귀국한 거, 네가 어머니한테 말한 거 맞지?”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범인을 추궁하듯 몰아붙였다.신지아는 잠시 멍해졌다가 곧 허탈하게 웃음을 지었다.변명 따위는 이제 무슨 소용일까.예전에도 늘 이렇게 오해받았다.그럴 때마다 자신이 아니라고 증거를 찾아가며 애써 해명했었다.한 번은 기어이 증거를 손에 넣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영 앞에 내밀었던 적도 있었다.“봐요. 정말 제가 아니에요.”그때 그녀의 눈빛엔 간절한 기대가 담겨 있었지만 변도영의 대답은 차가웠다.“아니면 뭐? 신지아, 네가 왜 내가 제일 먼저 의심받는 사람인지 그건 생각 안 해봤어?”그 말은 마치 한겨울 얼음물 같았다.가슴 깊숙이 품어 온 따뜻함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그 기억이 뚜렷이 떠올랐기에 신지아는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신지아의 침묵을 보고 변도영은 곧장 결론을 내렸다.“역시... 떳떳하지 않으니까 말이 없는 거지.”그는 코웃음을 치며 쏘아붙였다.“너 아직도 질투에 눈이 멀어서 어머니한테 말한 거야? 그렇게 해서 뭐가 달라질 줄 알아? 신지아, 내가...”“변도영 씨.”그의 말을 단호히 끊으며 신지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시간 좀 내요. 저희 이혼하러 갑시다.”“뭐라고?”갑작스러운 말에 변도영은 순간 말을 잃었다.“이혼?”그의 입가엔 비웃음이 스쳤다.“진짜 이혼하겠다고? 웃기는군. 네가 어떤 수를 써서 날 붙잡았는데 이렇게 쉽게 놓아주겠다고?”“믿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신지아는 담담하게 대꾸했다.그러고는 책상 위의 서류를 들어 그 앞에 내밀었다.“협의서는 이미 작성했어요. 필요한 제 서명도 다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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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변도영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지더니 계약서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꾹 짚었다.“재산 분할. 내가 언제 너랑 이런 거 상의했지?”뜻밖의 질문에 신지아는 잠시 멍해졌다.변씨 가문은 돈이 부족한 집안이 아니었고 변도영 또한 평소 그녀에게 차갑게 대하더라도 돈 문제로 트집을 잡은 적은 없었다.심지어 이혼을 강요하던 그때조차 내걸었던 조건은 지금 자신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후했었다.그래서 신지아는 깊이 따지지 않고 준비해 온 서류를 건넸다.“제가 받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변호사가 계산해 준 근거예요.”변도영은 흘낏 시선을 돌려 서류를 보더니 코웃음을 터뜨렸다.“네 말인즉슨, 나랑 결혼한 게 네 인생에 손해라는 거네?”이내 그는 서류를 덮어버리며 비웃었다.“신지아, 네 능력으로는 월급 100만 원 받기도 힘들 거야. 누가 감히 네가 월급 500만 원 받는다고 써넣었지?”변도영은 이어 조목조목 반박했다.“집에는 아주머니도 있잖아. 너는 변씨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편히 지냈을 뿐인데 어디서 감히 노동비용까지 챙기려 들어? 그리고...”서류 위의 수치를 하나하나 지우듯, 변도영의 목소리는 매섭게 가라앉았고 신지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돈 때문이 아니었다.그녀를 더 무너뜨린 건 자신이 그토록 포기했던 일, 그토록 지켜온 삶, 그 모든 헌신이 그의 눈에는 한 푼의 가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숨조차 가빠진 신지아는 이를 악물며 반박했다.“그래도 집안일은 제가 다 맡아왔어요.”“네가?”변도영은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채더니 문밖으로 끌고 나갔다.“그럼 똑똑히 봐.”거실 난간까지 끌려간 순간, 그는 손으로 신지아의 머리를 꾹 눌렀다.이윽고 눈앞에 펼쳐진 건, 쓰레기로 어지럽혀진 바닥을 정리하는 오영희의 모습이었다.“아, 변 대표님.”오영희는 변도영을 발견하자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죄송해요. 금방 치울게요.”그 모습에 변도영의 눈빛은 더 날카로워졌다.“신지아. 이게 네가 관리했다는 집이야?”그는 비웃음을 감추지 않은 채, 다시 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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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런 생각이 스치자마자 신지아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불과 지난달만 해도 변도영은 이나은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밤중 비행기를 끊어 해외로 달려갔다.그녀 곁에서 사흘 밤낮을 지새우며 돌봤고 기분을 풀어주겠다며 수십억짜리 목걸이까지 선물했다.집에 돌아온 뒤에도 꿈속에서조차 이나은의 이름을 불렀다.그 정도로 사랑하는데 어떻게 이혼을 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지만 변도영의 시선은 그녀가 돈을 못 가져가 실망한 거라고 오해했다.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웃었다.“변씨 가문은 네가 원할 때 들어오고 원할 때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애당초 약혼을 깨지 않으려고 버텼던 네가 이젠 쉽게 돈 챙겨서 떠날 거라 생각해?”신지아는 답답하게 물었다.“이 돈... 당신이 첫사랑이랑 같이 있기 위해서라면 값어치 없는 거 아니에요?”그 말에 변도영은 잠시 멍해졌다.‘이나은? 이게 왜 나은이랑 이어지는 거지?’그러나 곧 그녀의 속뜻을 알아챘다.즉, 자신과 이나은을 위해 스스로 물러나는 ‘희생’의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포장했다는걸.변도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자기 엄마랑 똑같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눈을 맞추게 했다.“누가 그랬어? 내가 이혼해야만 나은이랑 함께할 수 있다고?”차갑게 흘러나온 목소리에 신지아의 심장도 얼어붙는 것 같았다.‘그렇지.’변도영은 도덕이나 결혼 따위에 매여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자신이 이혼을 하든 말든 변도영이 이나은을 찾는 건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그는 더욱 얄밉게 웃어 보였다.“신지아, 그만 좀 꾸며. 이런 꼼수... 지겹지도 않아?”변도영은 큰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었다.그리고 이혼 서류를 그대로 내던졌다.“빈손으로 나가든가, 아니면 변씨 가문의 안주인답게 고개 숙이고 살든가. 선택은 네 몫이야.”말을 마친 그는 더 이상 신지아를 돌아보지 않았다.“아주머니, 요즘 일 잘하더라. 다음 달부터 월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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