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이혼 관련 서류는 그날 저녁 도현에게 전달됐다. 서연이 집에 돌아왔을 때, 봉투는 이미 뜯긴 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도현은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서연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봤어?” “응.” “변호사 연락처도 적혀 있어.” 그제야 도현이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꼭 여기까지 해야겠어?” 서연은 대답 대신 그를 바라봤다. 며칠째 같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대답도 달라질 게 없었다. “응.” “민채원은 정리했어.” “잘했네.” “그게 끝이야?” “뭘 더 말해야 해?” 도현의 표정이 굳었다. “네가 원했던 거잖아.” “내가 원한 건 당신이 그 여자랑 헤어지는 게 아니야.” 서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결혼 생활에서 나오는 거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도현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예전 같았다면 저 침묵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가 화가 났는지, 실망했는지 눈치를 살폈을 테고 결국 자신이 먼저 말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서연이 먼저 몸을 돌렸다. “할 말 없으면 들어갈게.” “윤재하.” 걸음이 멈췄다. 서연이 천천히 돌아봤다. 도현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또 만날 거야?” “그 얘기가 왜 나와?” “대답해.” 서연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당신이 물어볼 자격 없다고 했잖아.” “그 사람이니까 묻는 거야.” 그 말이 이상했다. 서연은 몇 초간 도현을 바라봤다. “그 사람이라니?” 도현의 입이 다물렸다. “재하가 왜?” “……” “당신 며칠 전부터 이상해.” 서연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사진 한 번 보고 이름을 기억했다고 했지.” “맞아.” “내가 술 마시고 헤어진 얘기까지 했다고도 했고.” “그래.” “근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돼.”
호텔에 도착한 뒤에도 도현에게서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서연은 받지 않았다.[어디야.][전화 받아.][서연아.]마지막 메시지는 한참 뒤에 도착했다.[적어도 어디 있는지는 알려줘.]서연은 화면을 한동안 바라보다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우연이라고 믿었던 첫 만남부터 거짓이었다.도현은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재하와 어떤 사이였는지도 알고 있었다.그 사실을 숨긴 채 자신에게 다가왔고, 결국 결혼까지 했다.그런데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도현이 왜 자신을 찾아 봤는지.재하가 떠나는 데 그의 집안이 얼마나 깊이 관련돼 있었는지.그리고 그 모든 걸 알면서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지.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잠시 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재하였다.[괜찮아?]서연은 한참 고민하다 짧게 답했다.[응.]곧 답장이 왔다.[거짓말.]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다.예전에도 재하는 그랬다.괜찮다고 하면 가장 먼저 거짓말이라고 알아채던 사람.서연은 답하지 않았다.오늘만큼은 누구에게도 기대고 싶지 않았다.⸻다음 날 오전.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한서연 님, 1층에 방문객이 와 계십니다.]서연은 미간을 좁혔다.약속된 미팅은 없었다.[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우연 아니었을 수도 있어.”서연은 한동안 재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야.”“도현이가 나한테 일부러 접근했다는 거야?”재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오히려 서연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확실한 거야?”“그럴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거야.”재하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나도 최근에 알게 된 게 있어.”“뭔데.”“내가 한국 떠난 뒤에 도현이가 너에 대해 물어봤대.”서연의 미간이 좁아졌다.“누구한테?”“나랑 같이 일했던 형이 있었어. 우리 집 일 터지고 나서 정리 도와주던 사람.”재하는 잠시 말을 멈췄다.“도현이가 그 사람한테 연락했었대.”“뭐라고.”“네가 잘 지내는지. 어디서 일하는지.”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등 뒤로 서늘한 감각이 지나갔다.“언제?”“내가 떠나고 몇 달 뒤.”몇 달 뒤.그리고 서연이 도현을 처음 만난 것도 그때쯤이었다.그 기억이 너무 선명하게 떠올랐다.친구의 부탁으로 참석했던 작은 전시회 오프닝.사람들 사이에서 실수로 와인을 쏟았고, 가장 먼저 냅킨을 건넨 사람이 도현이었다.그게 첫 만남이었다.그 후 같은 카페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세 번째는 지인의 식사 자리였다.당시에는 묘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말도 안 돼.”서연이 낮게 중얼거렸다.“뭐가?”“나 도현이 처음 만났
[이번에는 피하지 않을게.]서연은 메시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몇 년 전이었다면 저 말 하나만으로도 바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왜 떠났는지.왜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는지.자신을 정말 사랑하기는 했는지.그토록 묻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다.그런데 지금 서연이 가장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도현이랑 아는 사이야?]메시지를 보내자 읽음 표시가 금세 떴다.잠시 후 답장이 왔다.[응.]서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역시.[언제부터?]이번에는 답이 늦었다.[너 만나기 전부터.]순간 손끝이 차가워졌다.도현과 똑같은 대답이었다.둘은 자신과 상관없이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다.그 사실을 자신만 몰랐다.서연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재하는 한 번의 신호음 만에 받았다.— 서연아.“지금 만날 수 있어?”재하는 잠시 침묵했다.— 어디야?⸻두 사람이 다시 만난 곳은 지난번 카페가 아니었다.서연이 일부러 다른 장소를 골랐다.조용한 호텔 라운지 한쪽.사람은 적었고 자리 사이 간격도 넓었다.재하는 먼저 와 있었다.서연이 다가가자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앉아.”서연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주문조차 하기 전에 물었다.“도현이랑 무슨 사이야?”재하가 예상했다는 듯 시선을 내렸다.“예전에 알
이혼 관련 서류는 그날 저녁 도현에게 전달됐다. 서연이 집에 돌아왔을 때, 봉투는 이미 뜯긴 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도현은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서연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봤어?” “응.” “변호사 연락처도 적혀 있어.” 그제야 도현이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꼭 여기까지 해야겠어?” 서연은 대답 대신 그를 바라봤다. 며칠째 같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대답도 달라질 게 없었다. “응.” “민채원은 정리했어.” “잘했네.” “그게 끝이야?” “뭘 더 말해야 해?” 도현의 표정이 굳었다. “네가 원했던 거잖아.” “내가 원한 건 당신이 그 여자랑 헤어지는 게 아니야.” 서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결혼 생활에서 나오는 거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도현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예전 같았다면 저 침묵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가 화가 났는지, 실망했는지 눈치를 살폈을 테고 결국 자신이 먼저 말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서연이 먼저 몸을 돌렸다. “할 말 없으면 들어갈게.” “윤재하.” 걸음이 멈췄다. 서연이 천천히 돌아봤다. 도현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또 만날 거야?” “그 얘기가 왜 나와?” “대답해.” 서연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당신이 물어볼 자격 없다고 했잖아.” “그 사람이니까 묻는 거야.” 그 말이 이상했다. 서연은 몇 초간 도현을 바라봤다. “그 사람이라니?” 도현의 입이 다물렸다. “재하가 왜?” “……” “당신 며칠 전부터 이상해.” 서연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사진 한 번 보고 이름을 기억했다고 했지.” “맞아.” “내가 술 마시고 헤어진 얘기까지 했다고도 했고.” “그래.” “근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돼.”
다음 날 아침, 도현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했다.[확인했습니다.]그 아래 처음 보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윤재하의 현재 번호.도현은 한동안 화면을 내려다 봤다.몇 년 전 마지막으로 알고 있던 번호와는 달랐다.한국을 떠나면서 바꾼 모양이었다.도현은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다.그대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신호음이 두 번쯤 울렸을 때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도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몇 년이 흘렀는데도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조금 낮아졌을 뿐이었다.— 누구시죠?“나다.”잠깐의 침묵.재하가 먼저 이름을 말했다.— 차도현?도현의 입가가 차갑게 굳었다.“기억은 하네.”— 네 번호 아니잖아.“내 번호도 기억하고 있었나 봐.”— 무슨 일이야?반가움은 없었다.재하의 목소리는 단숨에 경계로 바뀌었다.도현은 창밖을 바라봤다.“한국 들어왔다며.”이번에는 재하가 잠시 침묵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한 달 됐다던데.”— 그래서?“왜 돌아왔어.”재하가 낮게 웃었다.— 내가 한국 들어오는 것까지 너한테 보고해야 해?“그건 아니지.”도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서연이만 안 만났으면.”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이번 침묵은 이전과 달랐다.도현은 아무 말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