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 돌아온 날, 나는 이혼했다

첫사랑이 돌아온 날, 나는 이혼했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08
Por:  움냠냥Actualizado ah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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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외도를 확인한 날, 서연은 미련 없이 이혼했다. 그러던 중, 우연인지 운명인지 가장 사랑했지만 이유도 모른 채 헤어졌던 첫사랑이 서연의 눈 앞에 다시 나타났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전남편은 그제야 무너진다. 자신이 먼저 버린 아내인데, 다른 남자에게 돌아가는 것만은 견딜 수 없었다. 끝난 결혼 뒤에서 집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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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ítulo 1

Chapter 1. 남편의 여자

차도현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결혼기념일이었다.

서연은 그날도 혼자 식탁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몫으로 준비했던 음식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와인잔은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였고,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작은 케이크의 초는 켜보지도 못했다.

오후 일곱 시가 조금 넘었을 때 도현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늦어.]

끝이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무슨 일이 생겼다는 설명도 없었다.

서연은 한참 동안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다가 짧게 답했다.

[알겠어.]

결혼한 뒤로 익숙해진 대화였다.

도현은 늘 바빴고, 서연은 늘 이해했다.

처음에는 서운했다.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날 연락도 없이 늦거나, 주말 아침 갑자기 회사로 나가는 날이면 괜히 이유를 묻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항상 비슷했다.

“일 때문에 그래.”

“꼭 설명해야 해?”

그 말을 몇 번 듣고 나자 서연도 더는 묻지 않게 됐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것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라고 믿었다.

도현은 원래 표현이 없는 사람이니까.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밤 열한 시가 넘어서도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서연은 결국 테이블을 정리했다.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으려던 순간, 진동음이 울렸다.

도현의 태블릿이었다.

그는 아침에 서류를 확인하다 그대로 두고 출근한 모양이었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화면 위에 뜬 이름이 이상하게 눈에 걸렸다.

민채원.

[오늘 정말 좋았어.]

서연의 손이 멈췄다.

이어 메시지가 하나 더 떴다.

[집에 들어가면 연락 못 하겠지?]

그리고 사진 한 장.

서연은 한동안 화면을 누르지 못했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결국 잠금 화면 위 알림을 눌렀고, 태블릿은 너무 쉽게 열렸다.

화면 속에는 도현이 있었다.

낯선 레스토랑.

맞은편에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도현의 손목에는 서연이 지난해 생일에 선물했던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그것보다 더 낯선 건 그의 표정이었다.

웃고 있었다.

아주 희미하게.

서연에게는 좀처럼 보여준 적 없는 얼굴이었다.

사진 아래로 메시지가 이어졌다.

[다음에는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

[나도.]

도현의 답장이었다.

짧은 두 글자.

그 순간 이상하리만큼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눈물이 날 줄 알았다.

화가 나서 뭔가를 집어 던질 줄도 알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연은 그저 화면을 몇 번 더 내렸다.

호텔 예약 내역.

늦은 밤의 메시지.

보고 싶다는 말.

다정한 이모티콘.

그동안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보내지 않았던 문장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쌓여 있었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게 아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정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에게 다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연은 태블릿 화면을 껐다.

그리고 식탁에 앉았다.

케이크 위에는 작은 초 두 개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결혼 2주년.

우습게도 도현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서연은 케이크 상자를 닫아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었다.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어 현관문이 열렸다.

도현이 들어왔다.

검은 코트에 희미한 향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서연의 것이 아닌 향이었다.

거실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본 도현이 시계를 확인했다.

“안 잤어?”

서연은 소파에 앉은 채 그를 바라봤다.

“응.”

“왜?”

그 한마디가 기가 막혀 잠시 웃음이 나올 뻔했다.

“기다렸어.”

도현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기다리지 말랬잖아.”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그제야 도현의 손이 멈췄다.

짧은 침묵.

그 표정만으로 충분했다.

몰랐다.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서연아.”

“나 하나만 물어볼게.”

도현의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서연은 생각보다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민채원, 누구야?”

도현의 표정이 굳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서연은 놓치지 않았다.

“내 태블릿 봤어?”

부정부터 하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었다.

서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왜 그랬어?”

도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설명할게.”

“뭘?”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건 아니야.”

그 말에 서연은 처음으로 화가 났다.

“그럼 복잡하면 바람이 아닌가?”

“서연.”

“호텔도 갔잖아.”

도현의 입이 닫혔다.

“사진도 봤고, 메시지도 봤어.”

“…….”

“좋았다고 했더라.”

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당신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네.”

도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비꼬지 마.”

“비꼬는 거 아니야. 진짜 몰랐거든.”

결혼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던 말이었다.

보고 싶다.

오늘 좋았다.

다음에 또 만나자.

그 간단한 말들을 다른 여자에게는 너무 쉽게 하고 있었다.

서연은 그제야 확실히 알았다.

이 결혼에서 자신이 얼마나 오래 혼자였는지.

“언제부터야?”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됐어.”

서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현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어디 가.”

“방.”

“이렇게 끝내지 말고 얘기해.”

서연은 잡힌 손목을 내려다봤다.

이상했다.

평소에는 먼저 손을 잡아주는 일조차 거의 없던 남자가 지금은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말해봐.”

서연이 그를 바라봤다.

“내가 뭘 더 들어야 하는데?”

“정리하려고 했어.”

그 말에 서연은 결국 웃었다.

아주 작게.

“그 여자랑?”

도현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아니면 나랑?”

그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서연은 천천히 손목을 빼냈다.

“내일 변호사 알아볼게.”

도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슨 뜻이야.”

“이혼하자고.”

이번에는 도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연은 그 표정을 가만히 바라봤다.

놀란 건지,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서연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서연아.”

“나 당신 붙잡을 생각 없어.”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그러니까 당신도 나 붙잡지 마.”

서연은 그대로 침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나서야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러나 여전히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떠오른 건 도현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처럼 바라보던 얼굴.

그리고 어느 날 아무런 설명도 없이 떠나버린 사람.

윤재하.

서연은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던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날은 몰랐다.

끝나버린 결혼의 문 앞에서 떠올린 그 이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신의 앞에 나타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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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이혼하자
아침이 되자 서연은 가장 먼저 변호사 사무실을 검색했다.밤새 거의 잠을 자지 못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맑았다.어젯밤까지만 해도 믿기지 않았던 일들이 아침이 되자 선명해졌다.도현에게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그 사실만으로 충분했다.더 확인할 것도, 더 물을 것도 없었다.서연은 상담 예약을 잡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그때 침실 문이 열렸다.도현이었다.밤새 소파에서 잔 건지 셔츠는 구겨져 있었고,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서연은 아무 말 없이 옷장을 열었다.출근할 옷을 꺼내는 손길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그 모습이 오히려 도현을 불편하게 만드는 듯했다.“어제 한 말.”서연의 손이 멈췄다.“무슨 말.”“이혼하자는 말.”“응.”“진심이야?”서연은 그제야 돌아봤다.“내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할 사람처럼 보여?”도현의 표정이 굳었다.“하룻밤 사이에 결정할 일이 아니잖아.”“하룻밤 사이에 알게 된 일은 맞지.”“서연아.”“나는 충분히 생각했어.”도현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잘못한 건 알아.”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너무 늦게 나온 사과라서였을까.아니면 그조차도 감정이 빠진 문장처럼 느껴져서였을까.서연은 옷걸이를 다시 걸어두었다.“그래?”“그래.”“그럼 더 쉬워졌네.”“뭐가.”“이혼.”도현의 시선이 단번에 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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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다시 나타난 첫사랑
[나 재하야.]서연은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이름이었다.잊었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이제는 그 이름을 봐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고작 세 글자에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윤재하.스무 살의 서연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처음 믿게 만든 사람.그리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 믿음을 끝내버린 사람.서연은 메시지 창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답장을 쓸 이유가 없었다.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다고.그때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해.]잠시 뒤 하나가 더 이어졌다.[번호 바뀐 줄 알았어.]서연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몇 년을 사라져 있던 사람이 할 말치고는 지나치게 평범했다.손가락이 화면 위를 맴돌았다.결국 짧게 답했다.[무슨 일이야?]메시지는 거의 바로 읽혔다.그러나 답장은 한동안 오지 않았다.괜히 보냈나.서연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던 순간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한국 들어왔어.]그 문장을 보는 순간 가슴 한쪽이 묘하게 시큰거렸다.그가 떠났던 날이 떠올랐다.비가 오던 저녁이었다.평소처럼 만나자고 해놓고, 재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갑자기 말했다.우리 그만하자고.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다른 사람이 생겼냐고 물었을 때도 아니라고 했다.그럼 왜냐고 몇 번을 물어도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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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다시 마주한 얼굴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일찍 도착했다.서연은 카페 앞에 서서 유리문 너머를 바라봤다.평일 오후라 안은 한산했다.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보는 사람, 이어폰을 낀 채 책을 읽는 사람. 모두 평범한 풍경이었다.그런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연은 한참을 들어가지 못했다.윤재하.몇 년 동안 입 밖으로 꺼낸 적조차 거의 없는 이름이었다.한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렀다.좋아서 불렀고, 보고 싶어서 불렀고, 헤어진 뒤에는 원망하면서 불렀다.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예 부르지 않게 됐다.그게 잊은 거라고 생각했다.서연은 짧게 숨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딸랑.작은 종소리가 울렸다.그리고 거의 동시에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서연의 걸음이 멈췄다.재하였다.사진으로 본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것도 아니었다.몇 년 만에 실제로 마주한 얼굴이었다.예전보다 조금 말라 있었다.소년 같던 인상은 사라졌고 턱선은 더 선명해졌다. 검은 셔츠 위로 짙은 회색 코트를 걸친 모습은 서연이 기억하던 스물몇 살의 재하와는 확실히 달랐다.그런데 눈은 그대로였다.서연을 볼 때마다 유난히 부드러워지던 눈.재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마치 자신도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먼저 입을 연 건 서연이었다.“오랜만이네.”재하가 아주 천천히 웃었다.“응.”그 짧은 대답에 기분이 묘해졌다.한때는 너무 익숙했던 목소리였다.서연은 맞은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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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누구 만났어?
서연이 집에 돌아왔을 때 거실 불은 이미 켜져 있었다.서연은 현관에 서서 잠시 안쪽을 바라봤다.소파에는 도현이 앉아 있었다.재킷은 벗어둔 채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모습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노트북이 펼쳐져 있었지만 화면은 꺼져 있었다.서연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보였다.서연은 아무 말 없이 구두를 벗었다.“일찍 왔네.”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응.”“어디 갔다 왔어?”서연의 손이 잠시 멈췄다.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었을 것이다.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들렸다.서연은 가방을 내려 놓으며 되물었다.“왜?”“그냥 물어본 건데.”도현의 목소리는 평온했다.너무 평온해서 오히려 불편했다.“카페.”“혼자?”서연이 그를 바라봤다.도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시선을 맞췄다.“아니.”“누구랑.”짧은 질문이었다.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보고할 이유는 더 없었다.“당신이 알 필요 있어?”도현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아직 법적으로 부부야.”“그래서 내 일정까지 말해야 해?”“누굴 만났냐고 물었을 뿐이야.”서연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아는 사람.”도현의 손가락이 천천히 테이블을 두드렸다.“남자야?”서연은 결국 헛웃음을 흘렸다.“당신 진짜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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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알고 있던 이름
다음 날 아침, 도현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했다.[확인했습니다.]그 아래 처음 보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윤재하의 현재 번호.도현은 한동안 화면을 내려다 봤다.몇 년 전 마지막으로 알고 있던 번호와는 달랐다.한국을 떠나면서 바꾼 모양이었다.도현은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다.그대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신호음이 두 번쯤 울렸을 때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도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몇 년이 흘렀는데도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조금 낮아졌을 뿐이었다.— 누구시죠?“나다.”잠깐의 침묵.재하가 먼저 이름을 말했다.— 차도현?도현의 입가가 차갑게 굳었다.“기억은 하네.”— 네 번호 아니잖아.“내 번호도 기억하고 있었나 봐.”— 무슨 일이야?반가움은 없었다.재하의 목소리는 단숨에 경계로 바뀌었다.도현은 창밖을 바라봤다.“한국 들어왔다며.”이번에는 재하가 잠시 침묵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한 달 됐다던데.”— 그래서?“왜 돌아왔어.”재하가 낮게 웃었다.— 내가 한국 들어오는 것까지 너한테 보고해야 해?“그건 아니지.”도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서연이만 안 만났으면.”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이번 침묵은 이전과 달랐다.도현은 아무 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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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
이혼 관련 서류는 그날 저녁 도현에게 전달됐다. 서연이 집에 돌아왔을 때, 봉투는 이미 뜯긴 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도현은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서연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봤어?” “응.” “변호사 연락처도 적혀 있어.” 그제야 도현이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꼭 여기까지 해야겠어?” 서연은 대답 대신 그를 바라봤다. 며칠째 같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대답도 달라질 게 없었다. “응.” “민채원은 정리했어.” “잘했네.” “그게 끝이야?” “뭘 더 말해야 해?” 도현의 표정이 굳었다. “네가 원했던 거잖아.” “내가 원한 건 당신이 그 여자랑 헤어지는 게 아니야.” 서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결혼 생활에서 나오는 거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도현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예전 같았다면 저 침묵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가 화가 났는지, 실망했는지 눈치를 살폈을 테고 결국 자신이 먼저 말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서연이 먼저 몸을 돌렸다. “할 말 없으면 들어갈게.” “윤재하.” 걸음이 멈췄다. 서연이 천천히 돌아봤다. 도현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또 만날 거야?” “그 얘기가 왜 나와?” “대답해.” 서연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당신이 물어볼 자격 없다고 했잖아.” “그 사람이니까 묻는 거야.” 그 말이 이상했다. 서연은 몇 초간 도현을 바라봤다. “그 사람이라니?” 도현의 입이 다물렸다. “재하가 왜?” “……” “당신 며칠 전부터 이상해.” 서연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사진 한 번 보고 이름을 기억했다고 했지.” “맞아.” “내가 술 마시고 헤어진 얘기까지 했다고도 했고.” “그래.” “근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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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그때의 일
[이번에는 피하지 않을게.]서연은 메시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몇 년 전이었다면 저 말 하나만으로도 바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왜 떠났는지.왜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는지.자신을 정말 사랑하기는 했는지.그토록 묻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다.그런데 지금 서연이 가장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도현이랑 아는 사이야?]메시지를 보내자 읽음 표시가 금세 떴다.잠시 후 답장이 왔다.[응.]서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역시.[언제부터?]이번에는 답이 늦었다.[너 만나기 전부터.]순간 손끝이 차가워졌다.도현과 똑같은 대답이었다.둘은 자신과 상관없이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다.그 사실을 자신만 몰랐다.서연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재하는 한 번의 신호음 만에 받았다.— 서연아.“지금 만날 수 있어?”재하는 잠시 침묵했다.— 어디야?⸻두 사람이 다시 만난 곳은 지난번 카페가 아니었다.서연이 일부러 다른 장소를 골랐다.조용한 호텔 라운지 한쪽.사람은 적었고 자리 사이 간격도 넓었다.재하는 먼저 와 있었다.서연이 다가가자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앉아.”서연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주문조차 하기 전에 물었다.“도현이랑 무슨 사이야?”재하가 예상했다는 듯 시선을 내렸다.“예전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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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우연 아니었을 수도 있어.”서연은 한동안 재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야.”“도현이가 나한테 일부러 접근했다는 거야?”재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오히려 서연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확실한 거야?”“그럴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거야.”재하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나도 최근에 알게 된 게 있어.”“뭔데.”“내가 한국 떠난 뒤에 도현이가 너에 대해 물어봤대.”서연의 미간이 좁아졌다.“누구한테?”“나랑 같이 일했던 형이 있었어. 우리 집 일 터지고 나서 정리 도와주던 사람.”재하는 잠시 말을 멈췄다.“도현이가 그 사람한테 연락했었대.”“뭐라고.”“네가 잘 지내는지. 어디서 일하는지.”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등 뒤로 서늘한 감각이 지나갔다.“언제?”“내가 떠나고 몇 달 뒤.”몇 달 뒤.그리고 서연이 도현을 처음 만난 것도 그때쯤이었다.그 기억이 너무 선명하게 떠올랐다.친구의 부탁으로 참석했던 작은 전시회 오프닝.사람들 사이에서 실수로 와인을 쏟았고, 가장 먼저 냅킨을 건넨 사람이 도현이었다.그게 첫 만남이었다.그 후 같은 카페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세 번째는 지인의 식사 자리였다.당시에는 묘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말도 안 돼.”서연이 낮게 중얼거렸다.“뭐가?”“나 도현이 처음 만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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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 그녀가 알고 있는 것
호텔에 도착한 뒤에도 도현에게서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서연은 받지 않았다.[어디야.][전화 받아.][서연아.]마지막 메시지는 한참 뒤에 도착했다.[적어도 어디 있는지는 알려줘.]서연은 화면을 한동안 바라보다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우연이라고 믿었던 첫 만남부터 거짓이었다.도현은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재하와 어떤 사이였는지도 알고 있었다.그 사실을 숨긴 채 자신에게 다가왔고, 결국 결혼까지 했다.그런데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도현이 왜 자신을 찾아 봤는지.재하가 떠나는 데 그의 집안이 얼마나 깊이 관련돼 있었는지.그리고 그 모든 걸 알면서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지.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잠시 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재하였다.[괜찮아?]서연은 한참 고민하다 짧게 답했다.[응.]곧 답장이 왔다.[거짓말.]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다.예전에도 재하는 그랬다.괜찮다고 하면 가장 먼저 거짓말이라고 알아채던 사람.서연은 답하지 않았다.오늘만큼은 누구에게도 기대고 싶지 않았다.⸻다음 날 오전.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한서연 님, 1층에 방문객이 와 계십니다.]서연은 미간을 좁혔다.약속된 미팅은 없었다.[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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