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다온갤러리 2층의 작은 회의실이었다. 처음 받은 기획안에서는 호텔 스위트룸과 웨딩드레스를 촬영 장소로 제안했지만, 수정된 기획안에는 민유리의 사진이 걸린 전시장과 작업실만 남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도 결혼 반지를 강조하기 위한 꽃 장식 대신 《좋아한다는 마음을 찍는 법》과 싱가포르 전시에 출품할 작품 목록이 놓였다.유리는 자리에 앉기 전 녹음기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인터뷰를 맡은 기자는 삼십 대 중반의 여자였다. 그녀는 먼저 명함을 건네고, 사전에 합의한 질문 외에는 추가 질문을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그래도 민 작가님께서 불편하시면 언제든 중단하셔도 됩니다.”“네. 저도 질문에 따라 대답하지 않을 수 있고요.”“물론입니다.”기자가 녹음 버튼을 누르기 전 다시 동의를 구했다. 그 작은 절차만으로도 유리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록하는 자리였지만, 오늘은 무엇을 남길지 미리 알고 있었다.첫 질문은 파리에서 찍은 〈기다리는 사람의 자리〉 연작에 관한 것이었다. 유리는 두 개의 커피잔에서 시작한 작업이 어떻게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가족과 이름을 잃은 사진들로 넓어졌는지 설명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행동이라고 말했다.“사진집 제목이 《좋아한다는 마음을 찍는 법》인데요. 작가님께 사진은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의 표현인가요?”“네. 다만 예전과는 뜻이 많이 달라졌어요.”“어떻게 달라졌나요?”유리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예전에는 오래 바라보면 잘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오래 바라본다는 이유로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많이 안다고 느끼는 순간, 상대의 뜻을 묻지 않고 넘어가기 쉬워지거든요.”“그 변화에는 과거 팬 사진을 촬영하셨던 경험도 영향을 주었을까요?”사전 질문지에는 없던 문장이었다. 질문 자체가 무례하지는 않았지만, 유리는 대답하기 전에 기자를 바라보았다. 기자는 서두르지 않고 기다렸다.“그 질문은 하셔
청첩장 인쇄본이 도착한 날, 민유리는 현관 앞에 놓인 작은 상자를 한동안 열지 못했다. 상자 안에 든 것은 종이 오십 장뿐이었다. 이미 시안도 여러 번 확인했고 인쇄 직전에는 정태준과 나란히 앉아 이름의 간격과 글자 크기까지 살폈다. 그런데 막상 실물로 도착하고 나니, 그 종이가 두 사람이 정말 결혼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처럼 느껴졌다.유리는 식탁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사진부터 찍었다. 포장된 상태로 한 장, 칼로 테이프를 가른 뒤 한 장, 청첩장의 모서리가 처음 보이는 순간도 한 장.맞은편에 앉아 있던 태준이 물었다.“언제까지 찍을 겁니까?”“기록하는 중이에요.”“조금 전에는 카메라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연습을 한다고 했잖아요.”“결혼식 날 이야기죠. 오늘은 제가 찍어도 돼요.”“청첩장보다 당신이 먼저 보고 싶습니다.”유리가 카메라를 내렸다.“왜요?”“내 표정이 어떤지 궁금하다면서요.”그제야 유리는 렌즈를 태준 쪽으로 돌렸다. 그는 평소처럼 단정한 셔츠 차림으로 식탁에 앉아 있었지만, 상자 위에 올린 손끝이 아주 조금 굳어 있었다. 유리가 셔터를 누르지 않고 기다리자 태준이 눈썹을 올렸다.“안 찍습니까?”“긴장했어요?”“아닙니다.”“손가락에 힘 들어갔는데.”태준이 상자에서 손을 뗐다.“이제 아닙니다.”“그렇게 숨기면 더 티 나요.”유리는 카메라를 식탁에 내려놓고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맨 위에는 인쇄소에서 보호용으로 넣은 얇은 종이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걷자 아이보리색 청첩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면에는 온실을 나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작게 인쇄되어 있었다. 유리는 카메라 가방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은 태준과 맞잡고 있었다.청첩장을 펼친 태준이 안쪽의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정태준과 민유리가서로의 가장 평범한 날을 함께 살아가기로 했습니다.그 아래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똑같은 크기로 나란히 적혀 있었다.유리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어때요?”“좋습니다.”“그게 다예요?”“종이를 보고 울지는 않습니다.
윤혜림 작가와 정식 계약을 마친 다음 날, 민유리와 정태준의 거실 테이블 위에는 세 종류의 문서가 놓였다. 가장 얇은 것은 사진 촬영 계약서였고, 그 옆에는 유리 온실 대관 계약서가 있었다. 마지막 하나는 서한나가 직접 만들어 온 결혼 준비 목록이었다.세 번째 문서만 유난히 두꺼웠다.유리는 첫 장을 넘기자마자 이마를 짚었다.“한나야, 이게 다 뭐야?”“결혼식 준비 목록.”“목록이 왜 열일곱 장인데?”“네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석 달이면 충분하다고 큰소리쳤다며.”서한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빨간 펜으로 항목 하나를 두드렸다.“장소랑 사진작가는 정했지. 그다음은 드레스, 정장, 헤어·메이크업, 부케, 식순, 사회자, 축가, 식사 메뉴, 답례품, 청첩장, 하객 명단, 좌석 배치, 혼인 서약, 양가 부모님 의상, 주차 안내, 비상약, 우천 대비—”“잠깐만.”유리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온실인데 우천 대비가 왜 필요해?”“비가 많이 오면 유리 천장에 빗소리가 커서 마이크 음향을 다시 맞춰야 한대.”“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내가 너보다 먼저 업체에 물어봤으니까.”태준은 문서를 읽으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필요한 내용입니다.”유리가 옆을 돌아보았다.“태준 씨까지 왜 그래요?”“질문 항목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내가 만든 목록과 합치면 누락을 줄일 수 있겠어요.”“그쪽 목록은 몇 장인데요?”“열두 장입니다.”한나의 눈이 빛났다.“역시 변호사님. 저랑 공유해 주세요.”“메일 주소를 주시죠.”“두 사람 지금 신났지?”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유리는 두꺼운 종이 뭉치를 내려다보다가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결혼은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날짜를 정하고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약속하면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준비를 시작하니 결정해야 할 것은 약속 자체보다 그 약속을 둘러싼 것들이 훨씬 많았다.한나가 다음 장을 펼쳤다.“우선 오늘 결정할 건 하객 명단. 온실 최대 좌석이 오십 석이라면서?”“응
정태준은 곧장 전화를 걸지 않았다. 민유리의 휴대전화에서 메시지를 확인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원본 화면을 캡처하고, 발신 번호와 수신 시각이 함께 보이도록 별도의 사진을 남기는 것이었다. 첨부된 이미지도 전달받은 상태 그대로 저장했다. 그 모든 행동은 빠르고 정확했지만, 유리의 휴대전화를 쥔 손에는 눈에 띌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태준 씨.”“네.”“손부터 풀어요.”그제야 태준은 자신의 손가락이 휴대전화 가장자리를 세게 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천천히 힘을 풀고 유리에게 기기를 돌려주었다.“이 번호로 연락하지 마요. 발신자 확인은 제가—”“잠깐만요.”유리가 말을 끊었다. 태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왜요?”“제 휴대전화로 저한테 온 메시지예요.”“그래서 더 조심해야 합니다.”“조심하는 것과 제가 빠지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태준의 입술이 굳었다. 온실 안에서 유리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사람과 같은 남자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차가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유리는 이제 그 얼굴이 분노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놀랐고, 두려웠고, 자신이 먼저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유리는 그의 손을 잡았다.“대신 혼자 답장하지는 않을게요. 우리 같이 문장을 정해요.”“답장을 해야 합니까?”“상대가 무슨 목적으로 보냈는지는 물어보고 싶어요. 사진을 어디서 찍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보냈는지 확인해야 하고요.”태준은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질문만 보냅시다. 감정적인 반응은 하지 말고.”“그건 제가 정해요.”“유리 씨.”“제가 화났으면 화났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다만 지금은 화를 내기 전에 확인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예요.”그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예전 같으면 유리를 차에 태워 집으로 보내고 자신이 모든 절차를 처리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러고 싶은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결국 한 걸음 물러났다.“알겠습니다. 당신이 쓰고, 보내기 전에 같이 확인하죠.”유리는 메시지 입력창을 열
윤혜림 작가와 만나기로 한 목요일 오후, 민유리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세 번이나 가방 안을 확인했다. 카메라 본체, 여분 배터리, 작은 단렌즈, 메모리카드. 오늘 촬영할 일은 전혀 없는데도 장비를 챙겨 나온 것은 습관에 가까웠다. 카메라가 있으면 어디에 손을 둬야 하는지 알 수 있었고, 어색한 순간에는 렌즈 뒤로 몸을 숨길 수 있었다.정태준은 운전석에서 그런 유리를 말없이 지켜보다가 시동을 껐다.“오늘 사진 찍으러 가는 거 아닙니다.”“알아요.”“그런데 왜 다 가져왔습니까?”“혹시 모르니까요.”“뭘요?”유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태준이 가방 위에 얹힌 그녀의 손을 바라보더니 안전벨트를 풀었다.“두고 가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저도 안 두고 갈 거예요.”“그럴 줄 알았습니다.”“그런데 왜 물어봐요?”“당신이 카메라를 들고 가는 이유를 당신 입으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려고.”유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요즘 변호사님이 자꾸 사람을 상담해요.”“결혼 상대가 생각이 많아서 그렇습니다.”“결혼 상대가 아니라 의뢰인 같아지면 상담료 청구할 거예요.”“이미 평생 계약을 앞두고 있는데 별도 비용까지 받습니까?”“그 계약, 아직 날짜도 안 썼거든요.”태준이 문을 열다 말고 그녀를 돌아보았다.“오늘 쓰면 되겠네요.”지나치게 태연한 말투였지만 손은 운전대에서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유리는 그가 결혼식 날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귀보다 손이 먼저 긴장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됐다. 상대를 재촉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은 때때로 기다리는 쪽에서 더 초조해졌다.유리는 그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윤 작가님 만나 보고요.”“네.”“온실도 다시 보고요.”“네.”“우리 둘 다 좋으면 그때 날짜 알아봐요.”그제야 태준의 손이 운전대에서 떨어졌다.“알겠습니다.”“표정은 하나도 안 기쁜데요?”“지금 웃으면 서두르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참고 있습니다.”“이미 충분히 보여요.”태준의 입꼬리가 결국 올라갔다. 유리는 그
민유리의 첫 사진집 《좋아한다는 마음을 찍는 법》 출간 기념 행사는 토요일 오후 두 시, 다온갤러리 1층의 작은 서점에서 열렸다.행사 시작을 한 시간 앞두고 도착한 유리는 입구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유리창 너머로 자신의 사진들이 보였다. 파리에서 찍은 두 개의 커피잔, 비어 있는 의자,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가족의 뒷모습, 이름을 잘라낸 불법 인쇄물을 다시 원래 자리에 놓은 〈이름이 있는 자리〉. 그리고 그 아래, 손바닥만 한 활자로 적힌 이름.사진 민유리.한때는 사진 아래에 붙는 이름이 두려웠다. 정시온의 팬사이트 운영자 ‘온리원’이라는 이름이 자신을 삼켜 버릴까 봐 숨었고, 누군가가 그 이름을 멋대로 떼어 간 뒤에는 다시는 카메라를 들 수 없을 것 같았다.그런데 이제는 본명이 있었다. 감출 필요도, 빼앗길 이유도 없는 이름이었다.“밖에서 감상만 하실 겁니까, 작가님?”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유리가 돌아보았다. 정태준이 종이컵 두 개를 든 채 서 있었다. 검은 셔츠에 짙은 회색 재킷을 입은 그는 출판 행사보다는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의 기자회견에 더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유리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오늘은 제 약혼자가 아니라 관객으로 오기로 했잖아요.”“관객도 커피 배달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관객치고 너무 비장하게 입었는데요.”“사진집 첫 행사라면서요. 혹시라도 책에 시비 거는 사람이 있으면 법적으로—”“안 돼요.”“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표정이 이미 내용증명이에요.”태준은 억울하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유리는 웃으며 그가 건넨 컵을 받았다. 뚜껑 위에는 검은 펜으로 ‘작가님’, 다른 컵에는 ‘관객’이라고 적혀 있었다.“직원분이 구분해 주셨습니까?”“제가 부탁했습니다.”“왜요?”“오늘은 역할을 헷갈리지 않으려고.”유리는 컵을 쥔 채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장난처럼 말했지만 태준은 정말로 연습하는 중이었다. 유리가 앞에 설 때 자신은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것. 누군가가 유리에게 질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