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지중해의 눈부신 햇살과 파리의 황금빛 야경은 한여름 밤의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귀국 후, 두 사람이 남은 돈과 영혼을 끌어모아 간신히 구한 보금자리는 서울 변두리의 낡은 다세대 주택 반지하 단칸방이었다.
대낮에도 햇빛 한 줌 제대로 들지 않는 우중충한 방안.
장판은 습기를 먹어 여기저기 울어 있었고, 벽지 구석구석에는 시커먼 곰팡이가 흉측한 얼룩을 피우고 있었다.
끼익거리며 낡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장마철 특유의 퀴퀴하고 습한 지하실 냄새가 두 사람의 코를 찔렀다.
'우리가 함께라면 구석진 방갈로라도 천국'이라며 발리의 밤하늘 아래서 속삭였던 낭만적인 맹세는,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이 비좁고 탁한 공간 속에서 서서히 질식해 가고 있었다.
"와, 그래도 우리 둘만의 첫 집이네! 내가 금방 깨끗하게 치울게."
캐리어 두 개를 펼칠 공간조차 부족한 좁은 방 한가운데서, 신민아는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녀는 마트에서 천 원을 주고 사 온 복숭아 향 방향제를 방 안 곳곳에 뿌려대고, 물티슈를 뽑아 벽지에 핀 곰팡이를 벅벅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공적인 복숭아 향 방향제는 지독한 곰팡내와 섞여 오히려 구역질 나는 악취를 만들어낼 뿐이었다.
쪼그려 앉아 묵묵히 바닥을 닦는 신민아의 가녀린 뒷모습을 내려다보며, 한결은 심장이 무거운 돌덩이에 짓눌리는 듯한 지독한 무력감과 죄책감에 휩싸였다.
파리의 스위트룸에서 실크 가운을 입혀주었던 여자에게, 귀국하자마자 곰팡이 핀 반지하 방의 걸레질을 시키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짐승보다 못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뜸해진 깊은 밤.
두 사람은 이 불안하고 비참한 현실을 잊기 위해, 바닥의 한기가 그대로 올라오는 좁고 딱딱한 매트리스 위에서 서로를 끌어안았다.
"민아야..."
한결은 파리 스위트룸에서의 황홀했던 기억을 어떻게든 되살려보려 애쓰며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새 거칠어진 민아의 손을 꽉 쥐고,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조심스럽게 티셔츠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민아 역시 차가운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한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의 애무에 응했다.
키스를 주고 받으며 달콤한 타액을 교환했다.
뜨거운 열기를 잔뜩 머금은 민아의 봉긋한 유방을 주무르며 한결은 자신의 페니스가 빳빳하게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민아의 손을 가져와 자신의 페니스에 얹어 놓고, 그녀가 천천히 페니스를 문지르자 거친 숨을 토해냈다.
한결은 민아의 티셔츠를 걷어 올리고 그녀의 유방을 입 안 가득 머금었다.
입 속에서 혀를 굴려 유두를 빨고 핥으며 애를 태우자, 페니스를 쥔 민아의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둘은 다시 한 번 키스를 주고받으며 속옷을 벗어던졌다.
한결이 민아를 눕히고 위로 올라가 두 사람의 본격적인 섹스가 시작되려던 찰나였다.
「크흠! 카아악- 퉤!」
「쏴아아아-!」
방음이라곤 전혀 되지 않는 얇은 합판 벽 너머로, 옆집 남자가 가래 끓는 기침을 뱉어내는 소리와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가 마치 귓가에서 울리듯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파리의 고요하고 완벽했던 야경을 채우던 낭만적인 침묵 대신, 하수구 배관을 타고 흐르는 오물 소리가 두 사람의 고막을 강타했다.
순간, 신민아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한결 역시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던 손을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현실을 덮어보려던 로맨틱한 무드는 그 역겨운 소리 한 번에 산산조각이 났다.
설상가상으로, 굳어버린 신민아의 시선이 천장 구석을 향한 순간이었다.
"꺄아악-!"
신민아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한결의 품에서 거칠게 벗어나 방구석으로 물러섰다.
그녀가 가리킨 천장 모서리에는 어른 엄지손가락만 한 시커먼 바퀴벌레 한 마리가 더듬이를 움직이며 기어가고 있었다.
"하아... 씨발, 진짜..."
한결은 붉어진 눈시울로 욕설을 짓씹으며 바닥에 뒹굴던 슬리퍼를 집어 들고 벽을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벌레의 잔해가 낡은 벽지에 짓눌러 터졌다.
휴지로 그것을 대충 닦아내면서 한결은 비참함에 입술을 꽉 깨물어 피를 냈다.
여행지에서 끓어오르던 짐승 같던 성욕조차, 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와 곰팡이 냄새 앞에서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육체의 쾌락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가난의 끔찍하고 구역질 나는 실체를 뼈저리게 체감하는 반지하의 첫날밤이었다.
"오빠... 나 씻고 올게."
벌레를 잡은 찝찝함과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기 위해 신민아가 비좁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잠시 후, 화장실 안에서 탁, 탁, 하고 보일러 스위치를 껐다 켜는 소리만 반복될 뿐 따뜻한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왜 그래? 물 안 나와?"
"...보일러가 고장 났나 봐. 따뜻한 물이 안 나와."
물기 젖은 목소리가 얇은 화장실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결국 신민아는 얼음장 같은 찬물로 대충 몸을 씻고 나와야 했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채 말없이 매트리스에 누운 그녀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 얇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어두운 방 안, 얇은 이불이 규칙적으로 들썩이며 소리 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애써 밝은 척 방향제를 뿌리던 그녀가 결국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서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한결은 이불속에서 떨고 있는 신민아의 좁은 등을 차마 안아주지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저 여자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온 건가?'
스스로의 무능함을 향한 지독한 원망과 혐오가 한결의 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눈부시게 찬란했던 청춘의 도피처가 악취 나는 지옥으로 변해버린 반지하의 밤.
한결은 아내의 숨죽인 울음소리를 들으며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호텔 조식 뷔페는 기대 이상이었다. 하얀 식탁보 위에 놓인 신선한 열대 과일과 따뜻한 오믈렛, 갓 내린 에스프레소를 천천히 음미했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출 필요없이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면 되는 평화로운 식사 시간이었다. 스위트룸으로 올라와 가볍게 샤워를 마친 민아는 편안한 리조트 룩으로 갈아입고 로비로 내려갔다. 약속 시간 10분 전이었지만, 어제 그 승무원은 이미 로비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깔끔한 반소매 셔츠에 단정한 슬랙스를 입은 모습이 푸른 아침 햇살 아래서 단정하게 빛났다. “일찍 나오셨네요.” “손님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되죠.” 남자는 싱긋 웃으며 민아를 맞이했다. 그의 안내는 능숙하고 편안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뻔한 명소 대신, 올드 두바이의 좁은 골목과 현지인들만 찾는 호젓한 전통 시장으로 민아를 이끌었다. 크릭 강을 건너는 목선 아브라를 타고 바람을 맞았고, 강변의 작은 야외 카페에서 진한 아랍식 커피와 대추야자를 나누어 먹었다. 남자가 들려주는 비행 에피소드와 낯선 도시의 이야기들은 소소했고 무해했다. 이야기를 재밌게 잘 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민아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멋진 풍경에 몰두할 수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도, 장부 조작도 없는 세계의 대화였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두 사람은 호텔 로비로 돌아왔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구경 잘했어요.” “저도 재미있었습니다. 옷 버린 빚은 이걸로 다 갚은 걸로 해 주시는 거죠?” 남자가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돌아설 채비를 했다. 민아는 돌아서는 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대로 방으로 올라가 혼자 밤을 보내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여운이 감돌았다. “저기요.” 남자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저녁 먹고, 방에서 가볍게 술 한잔 더 할래요?” 남자의 눈동자에 찰나의 놀라움이 스쳤다. 민아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룸 넘버를 적은 작은 메모지를 건
오태환의 손이 혜진의 멱살을 거칠게 틀어쥐었다.“말해! 신민아 그 년이랑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사, 사장님… 흑, 아파요… 저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혜진은 턱을 덜덜 떨며 울부짖었다.그녀의 얼굴은 이미 눈물과 번진 마스카라로 얼룩져 있었다.오태환은 혜진의 어깨를 쥐고 사정없이 흔들었다.“네 년이 대표이사잖아! 네 인감으로 돈이 수백억씩 빠져나갔는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그냥… 실장님이 사장님 심부름이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도장만 찍은 거예요… 진짜예요, 사장님!”혜진의 눈동자에는 오직 영문 모를 공포와 억울함만이 가득 차 있었다.그 무지한 눈빛을 보는 순간, 오태환은 속이 뒤집히는 듯한 절망을 느꼈다.이 계집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바지사장에 불과했다.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가 또다시 요란하게 진동했다.화면에 뜬 이름은 ‘김 실장’.백 영감 측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벌써 일곱 번째였다.오태환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저 전화를 받지 못하면 자신은 오늘 밤 안으로 시체가 될 수도 있었다.“이 멍청한 년 때문에 내가…!”오태환은 혜진을 바닥으로 거칠게 내동댕이쳤다.혜진은 차가운 바닥을 기며 흐느꼈고, 오태환은 미칠 듯이 울려대는 전화를 차마 받지 못한 채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그 시각, 고도 3만 피트 상공.두바이행 항공기의 퍼스트 클래스 기내에는 쾌적하고 안락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민아는 리클라이너 좌석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창밖을 응시했다.발아래로는 끝없는 구름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서울에서 벌어지고 있을 진흙탕 싸움은 이제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그때, 갑작스러운 난기류로 기체가 거칠게 요동쳤다.안전벨트 표시등이 켜지며 좌우로 강한 진동이 일었다.마침 민아의 테이블에 샴페인을 서빙하던 젊은 남성 승무원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앗…!”짧은 탄성과 함께 유리잔이 기울어졌다.차가운 샴페인이 민아가 입고 있던 짙은 녹색 실크 드레스 위로 쏟아져 내렸다.“죄송합니다,
가평의 회원제 골프장은 평일 아침부터 한산했다.선선한 바람이 페어웨이를 쓸고 지나갔다.18홀을 도는 내내 오태환의 손은 클럽보다 혜진의 허리와 엉덩이에 더 자주 머물렀다.혜진은 몸에 달라붙는 흰색 골프웨어를 입고 샷을 날릴 때마다 일부러 엉덩이를 요염하게 흔들었다.그녀의 웃음소리가 필드 위에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라운딩이 끝난 뒤 두 사람은 클럽하우스 안쪽,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된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테이블 위에는 룸서비스로 주문한 두툼한 한우 안심 스테이크와 차가운 샴페인이 차려져 있었다.오태환은 샴페인을 들이켜며 나른한 포만감에 젖었다.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편백나무 향이 짙게 배어 있는 룸 안쪽 사우나로 들어갔다.뜨거운 수증기가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땀방울이 혜진의 탄력 있는 어깨와 가슴골을 타고 흘러내렸다.오태환은 혜진의 풍만한 허벅지를 제 무릎 위에 얹어두고 연신 주무르며 그녀의 몸을 핥아댔다. 회사 운영이나 비자금 장부 따위는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사우나를 마친 뒤, 두 사람은 가운만 걸친 채 나란히 킹사이즈 침대에 엎드렸다.호출된 두 명의 전문 마사지사가 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오일을 발랐다.은은한 아로마 향과 함께 굳은 근육이 부드럽게 풀려나갔다.혜진이 베개에 뺨을 댄 채 고개를 돌려 오태환을 바라보았다.“사장님.”교태가 듬뿍 묻어나는 콧소리였다.“응?”“저 다음 주말에요, 한남동에 새로 나온 오피스텔 하나만 보러 가면 안 돼요? 회사랑 가까운 곳에 하나 얻어 주시면 사장님도 자주 놀러오시고 좋잖아.”오태환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요망한 것. 슬슬 집까지 내놓으라 이거지?”“치이, 제가 사장님한테 그 정도도 안돼요? 흥.”혜진이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눈웃음을 쳤다.오태환은 마사지사의 손길을 받으며 흡족하게 눈을 감았다.“알았다, 알았어. 다음 주에 신 실장한테 말해서 계약금 넣으라고 해.”“정말요? 사장님 최고!”혜진이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떨던 그때였다.협탁 위에 놓여 있던 오태환의 휴
김혜진의 핸드백이 바뀌었다.지난주까지만 해도 백화점 세일 코너에서 샀다던 핸드백 대신, 금장 로고가 번쩍이는 한정판 플랩백이 책상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목에는 멍 자국을 가리기 위한 화려한 고급스런 스카프가 둘러져 있었고, 손목에는 롤렉스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오태환의 법인카드로 긁어낸 탐욕의 잔여물들이었다.혜진은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덧발랐다.밤마다 사장실에서 짐승처럼 찢기고 짓밟히는 고통의 대가 치고는 꽤나 달콤한 열매였다. 타 부서 직원들이 결재판을 들고 비서실로 들어올 때마다, 혜진은 턱을 치켜들고 도도한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오태환의 몸을 받아낸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알량한 권력욕이었다.“실장님, 사장님이 오늘 점심은 저랑 호텔 일식당 가시겠대요.”혜진이 민아의 책상 앞으로 다가오며 짐짓 미안한 척 입을 열었다.그 목소리 밑바닥에는 ‘이제 사장님의 전담은 나’라는 오만한 과시가 노골적으로 깔려 있었다.민아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잘 다녀와요. 사장님이 혜진 씨를 정말 각별하게 생각하시나 보네.”“다 실장님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제가 은혜는 꼭 갚을게요.”혜진은 교태 어린 웃음을 흘렸다.민아는 서랍에서 결재 서류철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JH 홀딩스 법인 설립 및 지분 취득 건.’두 배로 늘어난 2차 비자금을 세탁하기 위해 급조된 유령 페이퍼 컴퍼니였다.“혜진 씨. 점심 나가기 전에 이거 서명 하나만 해 줄래요?”혜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게 뭔데요?”“사장님이 특별히 지시하신 거예요. 이번에 조 의원님 쪽 비자금을 분산 관리할 새 법인인데, 대표이사로 혜진 씨 이름을 올리라고 하셨어요.”“네? 제, 제 이름을요?”혜진의 숨이 일순 멎었다.“사장님이 아무한테나 자기 돈을 맡기지 않는 건 혜진 씨도 알죠? 이제 혜진 씨를 단순한 파트너가 아니라,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신뢰하신다는 뜻이에요.”민아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고, 설득은 매끄러웠다.“원래
사장실의 가죽 소파 위로 혜진의 몸이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민아가 일러준 대로 어설픈 저항이 이어졌지만, 오태환에게 그것은 더 큰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전희에 불과했다. 오태환은 혜진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익숙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민아의 몸에 배어 있던 그 음습하고 달콤한 향수였다.하지만 살결의 질감은 완전히 달랐다.처음부터 팽팽하고 차가운 완숙미가 있는 느낌이었다면, 혜진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듯한 따듯하고 부드러운 솜사탕 느낌이었다. 오태환의 투박한 손바닥이 혜진의 드레스를 단숨에 뜯어내듯 젖혔다.“하읏, 사, 사장님… 제발요….”겁에 질려 울먹이면서도, 혜진은 민아가 시킨 대로 그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식적인 거부와 비명 속에서도, 사내의 행위를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오태환의 입술이 비열하게 비틀려 올라갔다.“요망한 것. 배운 건 있어 가지고 제법이네.”그는 혜진의 속옷까지 단 숨에 벗겨냈다. 민아의 옷과 구두까지 탐했던 그의 페티시적인 성향이 지금은 그의 새로운 파트너가 될 수도 있는 혜진의 속살이 궁금해 잠시 감춰져 있었다. 혜진의 몸은 민아의 것과는 결이 달랐다. 민아의 몸매는 매끄러운 도자기처럼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오태환의 명령으로 윤은선과 함께 관리를 받은 결과물이기도 했다.하지만 혜진의 몸은 그 나름대로 매력이 충분했다. 젖살이 빠지지 않은 듯 풍만하고 거대한 유방과 젤리처럼 탄력있는 엉덩이. 게다가 까무잡잡한 속살은 섹시한 매력까지 더해져 있었다. 오태환은 새로운 멋잇감 앞에서 굵고 단단하게 핏대를 세운채 사정없이 밀어 붙였다. "하읏... 사, 사장님... 아파요... 아파요..."마치 첫경험이라도 하는 듯이 아프다고 소리쳤지만 혜진은 사실 남자 경험이 많았다. 자유분방하게 수많은 남자들을 만난 이력의 소유자였다.그 중에는 학점을 위해 가깝게 지내던 전공 교수도 있었고, 골프 치다 친해져서 몸까지 섞게 된 유부남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
탕비실 문틈은 1센티미터 남짓 열려 있었다.그 좁은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비서실의 백색 조명이 민아의 눈동자에 맺혔다.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선 그녀의 시선은 혜진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선 오태환을 향해 있었다.사냥감을 잡아두고 희롱하는 수컷 특유의 움직임이었다.오태환의 손가락이 혜진의 쇄골을 지나 블라우스 안쪽으로 파고드는 참이었다.“피부가 아주 부드럽네.”오태환의 낮고 끈적한 음성이 비서실의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렸다.공포에 질린 혜진의 입술 사이로 억눌린 옅은 신음이 샜다.하지만 반항이나 거부의 기색은 없었다.혜진이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오태환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곧이어 오태환의 손바닥이 혜진의 풍만한 가슴을 얇은 실크 옷감 위로 거칠게 움켜쥐었다.“하읏, 사, 사장님….”“오늘 퇴근하고 나면 밤 9시에 다시 사장실로 와.”명령은 짧고 단호했다.거부권 따위는 애초에 주어지지 않는, 일방적인 통보였다.하지만 오태환을 올려다보는 혜진의 젖은 눈동자에는 수치심 대신 빠르게 굴러가는 탐욕의 계산기가 비치고 있었다.“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오태환이 만족스러운 듯 실소를 터뜨렸다.그는 혜진의 엉덩이를 한 번 강하게 움켜쥔 뒤 두어 번 툭툭 치고 물러섰다.“신 실장 오면, 서류는 내 책상 위에 올려두라고 전해.”발소리가 멀어지고, 사장실의 방음문이 닫히는 소리가 비서실을 울렸다.긴장이 풀린 혜진이 파일 캐비닛을 짚고 바닥에 주저앉았다.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민아는 탕비실 싱크대 위에 올려두었던 커피 컵 두 개를 집어 들었다.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고 단정한 걸음으로 밖으로 나섰다.구두 굽 소리에 놀란 혜진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옷매무새를 다듬고 일어났다.“실장님… 언제 오셨어요?”“방금요. 회계팀에 사람이 많아서 커피는 여기서 탔어요.”민아는 물이 맺혀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 하나를 혜진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그러고는 다가가 혜진의 흐트러진 블
외출을 앞두고 전신 거울 앞에 선 신민아는 신경질적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몇 년 전, 한결과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할 때 입었던 화사한 플로럴 원피스였다.당시에는 영상 속에서 그녀의 눈부신 젊음과 어우러져 찬사를 받았던 옷이지만, 지금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그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얇은 쉬폰 소재는 잦은 세탁으로 보풀이 일고 윤기를 잃었으며, 허리선에 잡힌 주름은 낡은 티를 내고 있었다.단순히 예쁜 옷을 입지 못해서가 아니다.존재 자체가 초라한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 버린 듯한 그 지독한 위축감.민아는 자신의
귀국 후 3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심하게 흘렀다.꿈만 같던 여행지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지만, 곰팡내 나는 반지하에서의 현실의 시계는 지옥처럼 느리면서도 잔인하게, 그리고 냉혹하게 돌아갔다.형광등을 켜도 어두컴컴한 반지하 방, 오직 창백한 노트북 모니터 불빛만이 수염도 깎지 못한 한결의 퀭하고 초췌한 얼굴을 유령처럼 비추고 있었다.새로고침을 누른 화면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메일이 떠 있었다.[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이번 채용에서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두꺼운 암막 커튼 틈새로 파리의 눈부신 아침 햇살이 스위트룸을 비췄다.엉망으로 뒤엉킨 새하얀 시트 위에서 눈을 뜬 민아는, 곤히 잠든 한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간밤의 황홀했던 기억에 그녀의 입가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한결의 품으로 조금 더 파고들며 민아는 다시 달콤한 늦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두 사람이 나누는 평온한 꿈결과 달리, 협탁 위에 놓인 한결의 스마트폰은 무음 상태로 미친 듯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징-, 징-.[신한카드] 누적 사용금액 초과로 인한 한도 정지 안내.[토스뱅크]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탈진할 듯한 격렬한 정사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삐걱거리는 낡은 침대 위에 엉켜 누웠다.천장에서는 녹슨 선풍기가 털털거리며 미지근한 바람을 아래로 토해내고 있었다.땀방울이 맺힌 가슴을 오르내리며 숨을 고르던 민아는, 한결의 단단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듯 동그라미를 그렸다."오빠...""응.""나, 오빠가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 그냥 우리 한국 가지 말고 평생 여기서 이렇게 살까?"나른한 쾌감에 젖어 속삭이는 민아의 목소리.한결은 민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땀에 젖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