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귀국 후 3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심하게 흘렀다.
꿈만 같던 여행지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지만, 곰팡내 나는 반지하에서의 현실의 시계는 지옥처럼 느리면서도 잔인하게, 그리고 냉혹하게 돌아갔다.
형광등을 켜도 어두컴컴한 반지하 방, 오직 창백한 노트북 모니터 불빛만이 수염도 깎지 못한 한결의 퀭하고 초췌한 얼굴을 유령처럼 비추고 있었다.
새로고침을 누른 화면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메일이 떠 있었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이번 채용에서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마우스를 쥔 한결의 손등에 시퍼런 핏대가 섰다.
'구독자 10만 명을 앞두었던 해외여행 유튜버'라는 20대 시절의 화려했던 이력은, 냉혹한 한국의 취업 시장에서 철저히 독으로 작용했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에게 그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가 아니라, 그저 '현실 도피성 공백기가 비정상적으로 긴 몽상가' 혹은 '조직 생활의 쓴맛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튕겨져 나갈 부적응자'로 치부될 뿐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수십, 수백 군데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밀어 넣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복사해서 붙여넣은 듯한 기계적인 불합격 통보뿐이었다.
그사이,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다 못해 마이너스의 늪으로 속절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당장의 생계비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밀린 대출 이자가 급해진 신민아는 결국 알량한 자존심마저 모두 바닥에 접어버렸다.
낮에는 편의점 바코드 스캐너를 쥐었고, 저녁에는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고깃집의 기름진 불판을 수십 개씩 닦아내고 있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눈부시게 빛나던 20대의 아름다운 여자는, 이제 화장기 하나 없는 푸석한 얼굴로 한결을 먹여 살리기 위해 기꺼이 이 비참한 반지하의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자처했다.
시곗바늘이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1시.
쇳소리를 내며 낡은 현관문이 열리고 파김치가 된 신민아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온종일 무거운 불판을 나르고 서빙을 하느라 퉁퉁 부어오른 종아리를 애처롭게 절뚝이며 들어온 그녀의 몸에서 찌든 고기 기름 냄새와 매캐한 숯불 향이 비좁은 방안으로 훅 끼쳐왔다.
신발을 벗을 힘조차 없는 듯 현관에 잠시 기대어 숨을 고르던 그녀는, 불도 켜지 않은 채 핏발 선 눈으로 노트북 화면만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한결의 어두운 뒷모습을 발견했다. 민아가 지친 숨을 내쉬며 물었다.
"오빠... 안 자고 있었어? 밥은 먹었어?"
온몸이 부서질 듯 피곤한 와중에도 끼니를 거른 남편을 먼저 걱정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다정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수십 번째 불합격 통보를 받고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던 한결에게, 그 따뜻한 말은 오히려 무능함을 잔인하게 찌르는 날 선 비수처럼 심장에 꽂혔다.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한결의 꾹 다문 입에서 기어코 가시 돋친 말이 튀어나갔다.
"밥? 네가 온종일 남들 비위 맞추고 불판 닦아서 벌어온 돈인데, 그 돈으로 산 밥이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냐?!"
"오빠, 왜 말을 그렇게 해? 난 그냥 밥 챙겨 먹었냐고 물어본 건데..."
"그냥 묻는 게 아니잖아! 속으로는 '나는 밖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데, 너는 집구석에서 밥이 넘어가냐'고 욕하고 있는 거 다 알아! 내가 모를 줄 알아?!"
스스로에 대한 비참함과 혐오감을 고스란히 눈앞의 신민아에게 투사하며, 한결은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민아는 이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하니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깊게 상처받은 붉어진 눈빛으로 고개를 푹 떨구었다.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귀국 후, 두 사람 사이에서 처음으로 터져 나온 끔찍하고 신경질적인 싸움이었다.
"오빠 진짜... 사람을 너무 비참하게 만든다."
물기가 가득 배어 울먹이는 민아의 떨리는 목소리에 한결은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아차 싶었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빌고 싶었지만, 이미 바닥에 엎질러진 물이었다.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역겨운 자괴감을 도저히 견디지 못한 한결은 방구석에 굴러다니던 구겨진 겉옷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들고,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으며 도망치듯 집을 박차고 나갔다.
찬 바람을 맞으며 한결이 충동적으로 향한 곳은 집 근처의 허름한 편의점이었다.
낡은 지갑에 꼬깃꼬깃 남은 마지막 지폐 몇 장으로 가장 싼 플라스틱 페트병 소주 하나를 사 들고, 아무도 없는 으슥한 공원 구석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씨발... 병신 새끼. 좆같은 새끼..."
플라스틱 뚜껑을 거칠게 따고 미지근하고 독한 소주를 물처럼 목구멍으로 들이켜며, 한결은 스스로의 뺨을 짝, 짝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때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소주와 함께 입안으로 들어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카메라 앞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전 세계의 아름다움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던 당당하고 매력적이었던 청년, 강한결의 모습은 이제 그 어디에도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가난이 주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찌든 채, 싸구려 플라스틱 소주병에 의지해 어두운 밤거리를 비틀거리는 짐승만도 못한 패배자 한 명만이 그 차가운 벤치 위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머리통이 깨질 듯한 지독한 숙취와 위장을 뒤틀리게 하는 메스꺼움과 함께 번쩍 눈을 뜬 한결은 습관처럼 옆자리를 더듬었지만, 텅 빈 방 안에는 이미 서늘한 공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어젯밤 자신에게 그토록 모진 말을 듣고도, 민아는 동이 트기 무섭게 아침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간 뒤였다.
갈라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던 한결의 시선이 머리맡에 놓인 낡은 접이식 교자상에 스르르 머물렀다.
그 위에는 민아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 일찍 일어나 정성스레 끓여둔 소박한 콩나물 해장국과 흰쌀밥이 식지 않도록 투명한 랩으로 덮여 있었고, 그 랩 한가운데에는 꼬깃꼬깃한 노란색 포스트잇 한 장이 반듯하게 붙어 있었다.
[오빠, 어제 피곤해서 예민했어. 미안해. 밥 꼭 챙겨 먹고 오늘 하루도 힘내. 내가 항상 응원하는 거 알지? 사랑해.]
피곤함에 떨리는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그 비뚤빼뚤한 글씨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한결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덩어리를 참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헌신적이고 착하고 예쁜 여자를, 이 냄새나고 끔찍한 지옥의 밑바닥으로 끌고 들어온 자신이 소름 끼치도록 혐오스러웠다.
그렇게 방바닥을 치며 한참을 바보처럼, 참회하듯 울고 있을 때였다.
한결의 스마트폰 액정이 환하게 켜지며, 정적을 깨는 경쾌한 알림음이 짧게 울렸다.
퉁퉁 부은 눈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 한결의 시선이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에 멈췄다.
[진우: 한결아! 귀국했다며? 잘 지내지? 우리 이번 주말에 집들이할 건데 제수씨랑 꼭 와라! 너 좋아하는 와인도 사놨어 임마. ㅋㅋㅋ]
대학 시절만 해도 어딘가 어리숙해 보여 자신이 은근히 한 수 아래로 무시했었지만, 묵묵히 스펙을 쌓더니 이제는 굴지의 대기업에 번듯하게 취업해 탄탄대로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동창, 진우가 보낸 메시지였다.
스마트폰 액정의 하얀 백라이트 불빛 위로 선명하게 떠오른 '집들이'와 '와인'이라는 호화로운 활자가, 현재 한결이 숨 쉬고 있는 이 방 안을 채운 지독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눈앞에 놓인 싸구려 콩나물 해장국과 잔인할 만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노트북 화면에 송금 완료 문구가 뜨는 순간, 강한결은 1초도 지체하지 않았다.그리고 생각해 두었던 계획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윤은선이 자신을 검찰에 팔아넘길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한결은 옷소매로 노트북 키보드와 마우스에 남은 지문을 재빨리 닦아냈다.그리고 마지막 채권과 보안 카드가 들어 있던 서류 가방을 챙겨 들었다.모자를 깊게 눌러쓴 한결은 서둘러 오피스텔 문을 열고 복도로 빠져나갔다.비상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와 건물을 빠져나간 지 불과 몇분 뒤였다.간발의 차이로 검은 정장 차림의 검찰 수사관 수명이 들이닥쳐 한결이 머물던 오피스텔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도어락을 강제로 열고 들어간 수사관들을 맞이한 것은 텅 빈 방과 홀로 켜져 있는 모니터뿐이었다.한결은 멀리서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수사관들의 뒷모습을 슬쩍 살피며 유유히 대로변으로 걸어 나갔다.윤은선이 짠 판에서 탈출해 강한결과 신민아가 열 새로운 세상이었다. 같은 시각, 본사 최상층 사장실.밀실 안을 서성대던 오태환의 귀에 바깥 비서실 쪽의 거친 소란이 들려왔다.누군가 비서진의 제지를 뿌리치고 사장실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오는 발소리였다.“뭐야? 김 실장인가? 잡았어?!”오태환이 일말의 기대를 안고 밀실 문을 열고 사장실 본실로 튀어 나갔다.그러나 사장실 바깥쪽 문이 열리며 들어온 것은 김 실장이 아니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단정한 차림의 사내 십여 명이 사장실 안으로 신속하게 밀려 들어왔다.그들은 모두 검찰 마크가 있는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그들의 맨 앞에 선 사내가 목에 걸고 있던 신분증과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검찰 특수부입니다. 오태환 씨 되십니까?”오태환의 얼굴에서 핏기가 한순간에 싹 가셔 나갔다.“이, 이게 무슨 짓거리야! 당장 나가지 못해?! 내가 누군 줄 알고 함부로 여길 들어와!”오태환이 핏발 선 눈으로 고함을 질렀지만, 수사팀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법원에서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
택시는 낯선 신도시의 오피스텔 단지 앞에 세워졌다.강한결은 이마의 상처를 숨기려 모자를 눌러쓴 뒤, 주변을 살피며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윤은선이 문자로 보내준 비밀번호를 누르자 오피스텔 문이 열렸다.방 안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듯 썰렁한 기운이 가득했다.거실 한가운데 놓인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보안 랜선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한결은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노트북 전원을 켜자 바탕화면에 해외 법인 계좌 접속 창이 떠 있었다.윤은선이 오태환의 비자금을 자기 손에 넣기 위해 마련해 둔 판이었다.한결은 모자를 살짝 고쳐 쓰며 천장을 슬쩍 흘겨보았다.화재경보기 구석에서 작은 렌즈가 미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윤은선이 이 방 안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한결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의자에 앉아 서류 가방을 열었다.마지막 채권과 대포 통장, 보안 카드를 책상 위에 꺼내 놓았다.그때 책상 한쪽에 놓여 있던 대포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찍힌 이름은 윤은선이었다.“도착했습니까, 강한결 씨?”“네. 방금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좋습니다. 오태환 쪽에서 손을 쓰기 전에 화면에 떠 있는 계좌로 남은 돈을 전부 이체하세요. 작업이 끝나면 당신들 부부가 도피할 자금을 챙겨서 따로 연락하겠습니다.”뻔한 거짓말이었다.한결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도, 겉으로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알겠습니다, 윤 실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랑 민아 좀 여기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걱정 말고 자금 이체부터 끝내세요.”전화가 끊겼다.한결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이체 절차를 시작했다.하지만 그의 목적은 단순히 윤은선이 지시한 계좌로 돈을 보내는 것만이 아니었다.한결은 모니터 하단의 암호화 설정창을 유심히 살폈다.그리고 어젯밤 모텔에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던 스위스 비밀 계좌의 마스터 라우팅 번호와 보안 코드를 차분히 확인했다.이체 최종 승인
거친 숨소리가 어두운 풀숲 사이로 터져 나왔다.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가를 적셨지만 한결은 손등으로 대충 문질러 닦으며 달렸다.뒤쪽 길가에서 사내들의 고함이 간발의 차로 들려왔지만, 높게 자란 갈대밭은 한결의 몸을 숨겨주기에 충분했다.한참을 뛰어 도로에서 멀어진 한결은 상가 건물 구석의 낡은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세면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처참했다.이마의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고, 옷은 흙과 먼지로 더러워져 있었다.한결은 휴지를 뭉쳐 이마의 피를 지그시 누르며 품 안의 서류 가방과 휴대폰을 확인했다.마지막 무기명 채권과 대포 통장, 그리고 어젯밤 촬영해 둔 윤은선의 해외 계좌 정보는 무사했다.손끝이 가늘게 떨렸지만, 머릿속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결은 휴대폰을 꺼내 윤은선의 번호를 눌렀다.수신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강한결 씨? 무슨 일입니까? 예정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자금 이체 소식이 없어서 연락하려던 참이었습니다.”전화 너머 윤은선의 목소리에는 차분함 속에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한결은 거친 호흡을 일부러 가다듬지 않은 채 긴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윤 실장님… 오태환이 절 지금 해외로 보내서 죽이려 했습니다.”“무슨 소리예요?”“오늘 아침 작업실을 나서자마자 김 실장과 덩치들이 절 둘러쌌습니다. 오태환 사장이 자금 정리만 마치면 바로 공항으로 끌고 가서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태우라고 했다더군요. 제가 고의로 차 사고를 내고 겨우 도망쳤습니다.”잠시 전화기 너머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윤은선이 머릿속으로 계산을 돌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오태환이 예상보다 일찍 강한결을 치우려 했다는 것은, 비자금 세탁의 주도권을 오태환이 가져가려 한다는 뜻이었다.또한 강한결이 잡히거나 남은 채권을 오태환에게 빼앗기면, 그 자금을 중간에서 가로채려던 자신의 오랜 계획도 물거품이 될 터였다.“…지금 어디입니까? 남은 채권이랑 대포 통장은 무사합니
민아는 발소리를 죽여 환풍구로 다가갔다.덮개를 열고 숨겨둔 스마트폰을 꺼낸 뒤 곧바로 한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빠, 오태환이 검찰 수사랑 윗선 압박 때문에 많이 몰려 있어. 마지막으로 남은 채권 세탁이 끝나는 대로 비리 장부를 터뜨리고 유럽으로 도망칠 생각이야. 오빠를 캄보디아로 보낸다는 것도 내일 자금 정리만 끝나면 바로 진행될 거야. 절대 순순히 따라가지 마.]전송을 마친 민아는 메시지 내역을 지우고 휴대폰을 다시 환풍구 안에 넣었다.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서울 외곽의 한 한적한 도로.강한결은 작업실로 쓰던 모텔을 나와 차로 향했다.손에 든 검은 서류 가방 안에는 오태환에게 받아서 아직 현금화하지 못한 마지막 무기명 채권 다발과, 그동안 교환해서 정리해 둔 대포 통장 및 보안 카드가 들어 있었다.그리고 주머니 속 휴대폰에는 어젯밤 찍어둔 윤은선의 해외 계좌 정보가 담겨 있었다.민아의 문자를 확인한 후 한결은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오늘 일을 끝내면 오태환은 자신을 해외로 보내 치워버릴 것이고, 윤은선 역시 돈만 챙기고 꼬리를 자를 게 분명했다.한결이 차 문을 열려던 순간이었다.타이어가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은색 SUV 두 대가 한결의 차 앞뒤를 바짝 가로막았다.곧이어 문이 열리며 체격이 건장한 사내들이 내렸고, 조수석에서 오태환의 수하인 김 실장이 걸어 나왔다.“강 대리님, 일찍 나오시네.”김 실장이 서늘한 눈빛으로 한결을 내려다보았다.이미 사내들이 한결의 양옆을 완벽하게 둘러싼 뒤였다.“김 실장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사장님 지시입니다. 오늘 마지막 작업이 제일 중요하니, 저희가 직접 강 대리님을 모시고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바로 출국하셔야 하니까, 공항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에스코트라는 탈을 쓴 감금이었다.오태환은 한결을 제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잡아두고, 일이 끝나는 즉시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태워 처리할 작정이었다.한결은 반항해 봐야 당장 매를
실크 가운과 얇은 속옷이 차가운 밀실 바닥으로 힘없이 스르륵 떨어져 내렸다.어스름한 조명 아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신민아의 하얗고 완벽한 나체가 드러나자 오태환의 눈동자에 굶주린 짐승 같은 열기가 단숨에 타올랐다.접대 자리에서 자신보다 윗선인 거물들에게 느꼈던 모멸감과 살기가, 눈앞의 연약하고 만만한 먹잇감을 향 가학적인 정욕으로 변질되었다. 오태환은 넥타이를 거칠게 바닥에 던지며 민아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이리와 무릎 꿇어, 신 비서.”민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다가가 순종적으로 무릎을 꿇었다.오태환은 거친 손길로 자신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이미 흉흉하게 달아올라 핏대가 선 거대한 페니스를 꺼내 민아의 뺨을 툭툭 쳤다.“입 벌려.”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민아는 입술을 열고 뜨거운 페니스를 머금었다.오태환은 민아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움켜쥐고는, 자비 없이 자신의 허리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우욱, 읍…!”숨이 막히고 목구멍이 찢어질 듯한 압박감이 밀려왔다.눈물이 핑 돌았지만 민아는 두 손으로 오태환의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은 채, 오히려 혀를 굴려 페니스의 기둥과 귀두를 정성스럽고 음탕하게 핥아 올렸다.그녀의 완벽한 애무에 도취된 오태환은 입가에 잔혹한 미소를 띤 채 민아의 뺨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다, 이내 풍만한 가슴을 거칠게 쥐어뜯고 주물렀다.“하아… 싼 티 나는 암캐 같은 년. 그래, 그렇게 숨도 쉬지 말고 빨아봐.”오태환은 입안에 사정할 듯 짐승처럼 허리짓을 하다가, 돌연 민아의 머리채를 잡아 위로 홱 끌어 올렸다.“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 엉덩이 높게 쳐들고.”민아는 침대 위로 기어올라 엎드린 채 허리를 한껏 낮추고 엉덩이만 치켜올린 짐승 같은 자세를 취했다.오태환은 손바닥을 높히 들어 민아의 하얀 엉덩이를 세차게 내리쳤다.찰싹! 찰싹!“아으윽!”매질이 가해질 때마다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부풀어 올랐다.피부가 터질 듯한 통증에 눈물이 고였지만, 오태환은 그 붉어진 살결을 두꺼운 손가락
한결과 통화를 끝낸 신민아는 오태환이 자리를 비운 지금이 내부를 살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민아는 사장실 내부에 있는 밀실에 있는 곳곳을 자세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 장식장의 서랍 한 칸의 색상이 아주 약간 바래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민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장식장 세 번째 칸 아래로 손을 뻗었다.차가운 나무의 결을 따라 더듬거리던 손끝에, 그때의 그 서늘하고 좁은 홈이 만져졌다.민아는 홈 안쪽의 작은 나무 조각을 손끝으로 강하게 눌렀다.그 순간, 둔탁한 나무 마찰음과 함께,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던 서랍의 이중 밑바닥이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어두운 공간이 입을 벌렸다.그 좁고 깊은 서랍 안에는 몇 개의 USB와 띠지로 묶인 고액 수표 다발, 그리고 낡은 가죽 서류첩 하나가 들어 있었다.민아는 떨리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 서류첩을 꺼내 들었다.민아는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겼다.첫 장을 넘기자마자 굵은 글씨로 적힌 이름 세 글자가 시야에 박혔다.‘윤은선.’민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서류는 단순한 업무 일지가 아니었다.5년 전, 오태환 사장과 당시 수석 비서였던 윤은선 사이에 작성된 비밀 협약서였다.그 안에는 ‘Project Black Dragon’의 초기 기획안과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한 자금 세탁의 밑그림이 상세히 그려져 있었다.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거대한 비자금의 지분 30%를 윤은선에게 배분한다는 조항과 함께 그녀의 친필 서명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윤은선은 단순한 비서나 조력자가 아니라, 이 판을 함께 짠 공동 설계자였다.하지만 서류의 뒤쪽으로 갈수록 내용은 달라졌다.이면 합의서에는 오태환이 윤은선에게 거액의 횡령 혐의를 교묘하게 뒤집어씌워 회사에서 무일푼으로 쫓아낸 기록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윤은선이 앙심을 품고 폭로하지 못하도록, 그녀의 약점과 범죄 가담 증거를 쥐고 흔든 오태환의 협박 내역도 빼곡했다.‘윤 실장의 목적은 오태환에게 복수하는게 전부가 아니었어…’
외출을 앞두고 전신 거울 앞에 선 신민아는 신경질적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몇 년 전, 한결과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할 때 입었던 화사한 플로럴 원피스였다.당시에는 영상 속에서 그녀의 눈부신 젊음과 어우러져 찬사를 받았던 옷이지만, 지금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그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얇은 쉬폰 소재는 잦은 세탁으로 보풀이 일고 윤기를 잃었으며, 허리선에 잡힌 주름은 낡은 티를 내고 있었다.단순히 예쁜 옷을 입지 못해서가 아니다.존재 자체가 초라한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 버린 듯한 그 지독한 위축감.민아는 자신의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탈진할 듯한 격렬한 정사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삐걱거리는 낡은 침대 위에 엉켜 누웠다.천장에서는 녹슨 선풍기가 털털거리며 미지근한 바람을 아래로 토해내고 있었다.땀방울이 맺힌 가슴을 오르내리며 숨을 고르던 민아는, 한결의 단단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듯 동그라미를 그렸다."오빠...""응.""나, 오빠가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 그냥 우리 한국 가지 말고 평생 여기서 이렇게 살까?"나른한 쾌감에 젖어 속삭이는 민아의 목소리.한결은 민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땀에 젖은
그녀의 애타는 요청에, 한결은 허리에 힘을 주어 단번에 그녀의 좁고 뜨거운 질 내벽을 가르고 들어갔다."아앙! 흣... 으응...""하아... 젠장, 너무 조여... 민아야..."빈틈없이 맞물린 점막의 마찰.뜨겁고 축축한 살덩어리가 빈틈없이 채워지는 감각에 두 사람은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처녀는 아니었지만, 이 완벽한 감정적 교류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결합은 마치 처음인 것처럼 강렬했다.한결은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깊숙이 박아 넣었다가 끝까지 빼내는 느릿하고 진득한 피스톤 질.그때마다 민아의 좁은
코발트블루.끝을 알 수 없이 깊고 푸른 에게해가 눈부신 햇살을 머금고 반짝였다.그리스 산토리니,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듯한 최고급 풀빌라의 테라스.하얗게 칠해진 외벽은 눈이 시릴 정도로 빛났고, 불어오는 해풍은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여유를 품고 있었다."자,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드디어 저희가 벼르고 벼르던 산토리니의 하이라이트, 선셋을 보러 왔습니다! 한결 오빠가 무리해서 예약한 보람이 있네요!"카메라 렌즈를 향해 활짝 웃는 신민아의 미소는 지중해의 태양보다 눈부셨다.하얀 비키니 위로 가볍게 걸친 얇은 리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