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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5 10:44:10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재활센터의 실내 불펜으로 향했다. 포수도 없이 텅 빈 홈플레이트를 향해 낡은 공 몇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정적 속에서 이현성의 거친 숨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자, 신발을 벗고 잠시 이리 와보시죠.”

지훈의 말에 이현성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그의 지시에 따랐다. 지훈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오전에 편의점에서 샀던 빳빳한 판 초콜릿이었다. 그는 포장지를 벗겨내고 두꺼운 종이 갑을 반으로 접었다.

“이게 뭡니까?”

“임시방편입니다. 지금 선수님께 필요한 건 좌측 발바닥의 아치를 살짝 받쳐줘서, 착지 시 발목이 바깥으로 돌아가는 걸 막아줄 일종의 인솔(깔창)입니다. 이건 그걸 흉내 내는 거죠.”

지훈은 접은 종이 갑을 이현성의 왼쪽 운동화 안, 발바닥 아치 부분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신발을 다시 신어보라고 했다. 이현성은 반신반의하며 운동화에 발을 넣었다.

“어…?”

어색했다. 발바닥의 특정 부분이 살짝 융기된 느낌. 하지만 동시에 묘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늘 살짝 바깥쪽으로 쏠리는 것 같았던 왼쪽 발목이, 안쪽에서 무언가 단단하게 받쳐주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 상태로 마운드에 서 보십시오. 그리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 공을 던져보세요. 스트라이크를 넣으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몸의 균형 감각에만 집중해서.”

이현성은 홀린 듯 마운드에 올랐다. 손에 익숙한 공의 감촉이 느껴졌지만, 발바닥의 이질적인 감각 때문에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홈플레이트를 향해 가볍게 팔을 뿌렸다.

휙-!

공은 형편없는 코스로 날아가 홈플레이트 한참 옆에 처박혔다. 역시나, 하는 실망감이 이현성의 얼굴을 스쳤다.

“거 보십쇼. 아무 차이… 없…”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공의 궤적은 엉망이었지만, 몸이 기억하는 감각은 달랐다. 투구 후, 언제나 왼쪽으로 미세하게 쏠리던 몸의 중심이 오늘은 달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기둥이 몸의 축을 단단히 잡아주는 것처럼,

놀랍도록 안정적인 피니시 자세가 만들어졌다.

“……!”

“느껴지십니까? 힘의 전달 과정이 다르다는 걸.”

지훈의 차분한 목소리가 이현성의 심장을 관통했다.

“한 번 더 던져보죠. 이번에는 70% 정도의 힘으로.”

이현성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 공을 집어 들었다. 그는 눈을 감고 방금 느꼈던 안정적인 밸런스를 되새겼다. 그리고 다시 한번 힘껏 팔을 뻗었다.

“퍼어엉-!”

이번에는 달랐다.

공이 포수 미트는커녕 벽에 처박히는 소리였지만, 그 소리의 질이 달랐다. 묵직하고 힘이 실린 소리. 전성기 시절, 그의 손끝을 떠난 공이 만들어내던 바로 그 파열음이었다.

이현성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공을 놓는 순간, 짜릿하게 전해졌던 임팩트의 감각. 2년 만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어떻게… 이게 어떻게…”

그는 중얼거렸다. 그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단순한 종이 쪼가리 하나가 2년간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주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

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전력으로 던지세요. 제구나 코스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직 단 하나, 지금 발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이어지는 그 ‘축’의 감각만 생각하는 겁니다. 몸이 기억하는 가장 완벽했던 순간의 밸런스를 믿고 그대로 팔을 뿌리세요.”

이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 다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절망과 불안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 공을 쥐었다. 와인드업. 키킹. 그리고… 지면을 박차고 나아가는 디딤발.

종이 갑이 만들어낸 단단한 지지대가 그의 발목을 완벽하게 잡아주었다. 그로 인해 골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회전했고 그 강력한 회전력이 허리를 타고 어깨를 거쳐, 팔꿈치와 손목, 그리고 마지막 손끝으로 완벽하게 전달되었다.

“쐐애애애애액-!”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하얀 공이 한 점이 되어 날아갔다. 포수는 없었지만, 이현성의 눈에는 보였다. 홈플레이트 정중앙, 스트라이크 존의 가장 완벽한 지점에 꽂히는 공의 궤적이.

“퍼어어어어엉-!!!”

불펜이 떠나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공은 포수 미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확히 꽂힌 후, 뒤쪽의 두꺼운 보호 매트에 깊은 자국을 남기며 처박혔다.

이현성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자신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통증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 개운했다.

막혔던 혈관이 뚫린 것처럼, 온몸의 힘이 한곳으로 완벽하게 모였다가 폭발하는 쾌감.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 하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은 이내 울음으로 변했다.

그는 얼굴을 감싸 쥔 채 아이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의 설움과 절망, 고통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마운드에 서는 것이 지옥 같았던 시간들.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불신과 혐오.

그 모든 감정이 뜨거운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강지훈은 아무 말 없이 그가 감정을 모두 쏟아낼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한참 후, 울음을 그친 이현성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고맙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의심이나 경계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심만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계약을 하자는 말씀이시죠?”

재활센터 근처의 허름한 카페에 마주 앉은 이현성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직 잠겨 있었지만,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지훈은 미리 준비해 온 서류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정식 계약서는 아니었다. 기본적인 조건만 명시한 합의서에 가까웠다.

“정식 에이전트 계약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현성 선수에게는 이미 소속된 에이전시가 있을 테니까요. 저는 선수 개인의 ‘퍼포먼스 코칭 및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싶습니다.”

“퍼포먼스 코칭…”

“네. 오늘처럼 선수님의 신체적, 기술적, 심리적 문제를 분석하고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입니다.”

“조건은요?”

이현성은 망설임 없이 물었다. 지금 그에게 강지훈은 동아줄과도 같은 존재였다.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받아들일 기세였다.

“계약금이나 월급은 필요 없습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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