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재활센터의 실내 불펜으로 향했다. 포수도 없이 텅 빈 홈플레이트를 향해 낡은 공 몇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정적 속에서 이현성의 거친 숨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자, 신발을 벗고 잠시 이리 와보시죠.”
지훈의 말에 이현성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그의 지시에 따랐다. 지훈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오전에 편의점에서 샀던 빳빳한 판 초콜릿이었다. 그는 포장지를 벗겨내고 두꺼운 종이 갑을 반으로 접었다.
“이게 뭡니까?”
“임시방편입니다. 지금 선수님께 필요한 건 좌측 발바닥의 아치를 살짝 받쳐줘서, 착지 시 발목이 바깥으로 돌아가는 걸 막아줄 일종의 인솔(깔창)입니다. 이건 그걸 흉내 내는 거죠.”
지훈은 접은 종이 갑을 이현성의 왼쪽 운동화 안, 발바닥 아치 부분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신발을 다시 신어보라고 했다. 이현성은 반신반의하며 운동화에 발을 넣었다.
“어…?”
어색했다. 발바닥의 특정 부분이 살짝 융기된 느낌. 하지만 동시에 묘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늘 살짝 바깥쪽으로 쏠리는 것 같았던 왼쪽 발목이, 안쪽에서 무언가 단단하게 받쳐주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 상태로 마운드에 서 보십시오. 그리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 공을 던져보세요. 스트라이크를 넣으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몸의 균형 감각에만 집중해서.”
이현성은 홀린 듯 마운드에 올랐다. 손에 익숙한 공의 감촉이 느껴졌지만, 발바닥의 이질적인 감각 때문에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홈플레이트를 향해 가볍게 팔을 뿌렸다.
휙-!
공은 형편없는 코스로 날아가 홈플레이트 한참 옆에 처박혔다. 역시나, 하는 실망감이 이현성의 얼굴을 스쳤다.
“거 보십쇼. 아무 차이… 없…”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공의 궤적은 엉망이었지만, 몸이 기억하는 감각은 달랐다. 투구 후, 언제나 왼쪽으로 미세하게 쏠리던 몸의 중심이 오늘은 달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기둥이 몸의 축을 단단히 잡아주는 것처럼,
놀랍도록 안정적인 피니시 자세가 만들어졌다.
“……!”
“느껴지십니까? 힘의 전달 과정이 다르다는 걸.”
지훈의 차분한 목소리가 이현성의 심장을 관통했다.
“한 번 더 던져보죠. 이번에는 70% 정도의 힘으로.”
이현성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 공을 집어 들었다. 그는 눈을 감고 방금 느꼈던 안정적인 밸런스를 되새겼다. 그리고 다시 한번 힘껏 팔을 뻗었다.
“퍼어엉-!”
이번에는 달랐다.
공이 포수 미트는커녕 벽에 처박히는 소리였지만, 그 소리의 질이 달랐다. 묵직하고 힘이 실린 소리. 전성기 시절, 그의 손끝을 떠난 공이 만들어내던 바로 그 파열음이었다.
이현성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공을 놓는 순간, 짜릿하게 전해졌던 임팩트의 감각. 2년 만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어떻게… 이게 어떻게…”
그는 중얼거렸다. 그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단순한 종이 쪼가리 하나가 2년간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주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
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전력으로 던지세요. 제구나 코스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직 단 하나, 지금 발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이어지는 그 ‘축’의 감각만 생각하는 겁니다. 몸이 기억하는 가장 완벽했던 순간의 밸런스를 믿고 그대로 팔을 뿌리세요.”
이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 다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절망과 불안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 공을 쥐었다. 와인드업. 키킹. 그리고… 지면을 박차고 나아가는 디딤발.
종이 갑이 만들어낸 단단한 지지대가 그의 발목을 완벽하게 잡아주었다. 그로 인해 골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회전했고 그 강력한 회전력이 허리를 타고 어깨를 거쳐, 팔꿈치와 손목, 그리고 마지막 손끝으로 완벽하게 전달되었다.
“쐐애애애애액-!”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하얀 공이 한 점이 되어 날아갔다. 포수는 없었지만, 이현성의 눈에는 보였다. 홈플레이트 정중앙, 스트라이크 존의 가장 완벽한 지점에 꽂히는 공의 궤적이.
“퍼어어어어엉-!!!”
불펜이 떠나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공은 포수 미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확히 꽂힌 후, 뒤쪽의 두꺼운 보호 매트에 깊은 자국을 남기며 처박혔다.
이현성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자신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통증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 개운했다.
막혔던 혈관이 뚫린 것처럼, 온몸의 힘이 한곳으로 완벽하게 모였다가 폭발하는 쾌감.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 하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은 이내 울음으로 변했다.
그는 얼굴을 감싸 쥔 채 아이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의 설움과 절망, 고통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마운드에 서는 것이 지옥 같았던 시간들.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불신과 혐오.
그 모든 감정이 뜨거운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강지훈은 아무 말 없이 그가 감정을 모두 쏟아낼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한참 후, 울음을 그친 이현성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고맙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의심이나 경계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심만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계약을 하자는 말씀이시죠?”
재활센터 근처의 허름한 카페에 마주 앉은 이현성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직 잠겨 있었지만,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지훈은 미리 준비해 온 서류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정식 계약서는 아니었다. 기본적인 조건만 명시한 합의서에 가까웠다.
“정식 에이전트 계약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현성 선수에게는 이미 소속된 에이전시가 있을 테니까요. 저는 선수 개인의 ‘퍼포먼스 코칭 및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싶습니다.”
“퍼포먼스 코칭…”
“네. 오늘처럼 선수님의 신체적, 기술적, 심리적 문제를 분석하고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입니다.”
“조건은요?”
이현성은 망설임 없이 물었다. 지금 그에게 강지훈은 동아줄과도 같은 존재였다.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받아들일 기세였다.
“계약금이나 월급은 필요 없습니다.”
“네?”
“이제 정말, 다 끝났네요.”세연이 따뜻한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함께 폭풍우를 헤쳐 나온 동지애와 그를 향한 깊은 연민이 섞여 있었다.“아니요.”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선은, 클레이 커쇼의 3D 신체 모델링 데이터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이제 겨우, 진짜 전쟁을 시작할 준비가 끝났을 뿐입니다.”그의 말에, 세연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다시 자신의 세계에 깊이 몰입하는 그의 옆모습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저 남자의 어깨에 짊어진 세상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무게를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했다.그날 오후, 지훈은 커쇼를 데리고 K 퍼포먼스 랩, 즉 다이스 구단이 캐멀백 랜치 내에 그의 시스템을 위해 특별히 마련해 준 최첨단 분석실로 향했다. 그곳은 한국의 랩보다 몇 배는 더 크고, 정교한 장비들로 가득 차 있었다.“지난 일주일간, 우리는 잠자고 있던 근육을 깨우는 훈련을 했습니다. ‘브레이크’의 성능을 복원했죠. 오늘부터는, 당신의 ‘엔진’을 다시 설계할 겁니다.”지훈은 커쇼에게 수십 개의 센서가 달린 EMS(미세 전류 자극) 슈트를 입혔다.“지금부터, 선수님은 마운드 위에서 실제로 공을 던지게 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의지대로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지훈은 거대한 스크린에, 커쇼의 전성기 시절 투구폼과 현재의 투구폼을 나란히 띄웠다. 그리고 그 차이점을 붉은색 선으로 명확하게 표시했다.[투구폼 비교 분석]- 전성기: 높은 레그킥
그 모든 소란이 끝나고, 텅 빈 기자회견장에 홀로 남은 지훈에게 최세연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함께 서 있었다.LA 다이스의 살아있는 신, 클레이 커쇼였다.그는 수십 명의 기자들을 뚫고, 성큼성큼 단상 위로 걸어 올라왔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지훈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그는 마이크를 잡고, 전 세계를 향해 선언했다.“나는 이 남자를 모릅니다. 그의 과거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압니다.”그는 자신의 어깨를 가리켰다.“지난 10년간, 이 어깨는 나를 지탱해 온 영광이자, 나를 짓눌러 온 저주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의사들이 이 어깨를 보고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젊은이는,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지난 10년간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던 내 고통의 진짜 원인을 찾아냈습니다.”그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선배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후배에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와 존경이 담겨 있었다.“나는, 이 남자를 믿습니다. 그의 말이 진실이고, 그의 방식이 미래라는 것을. 그래서, WADA의 그 위대한 검사에… 나 역시 동참하겠습니다.”“……!”그의 폭탄선언에, 기자회견장은 다시 한번 경악에 휩싸였다.“만약 이 남자를 의심하고 비난하려거든, 먼저 나를 넘어 보십시오. 이 클레이 커쇼의 모든 것을 걸고, 내가 그의 진실성을 보증하겠습니다.”신의 보증.그것은
한 시간 후. 캐멀백 랜치의 공식 프레스센터.강지훈은 JK 그룹과 다이스 구단을 통해, 자신의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긴급 기자회견을 소집했다. 기자회견장에는 그의 몰락을 취재하기 위해 모인 수백 명의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단상 위로, 강지훈이 홀로 올랐다. 그는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오늘 아침, 저에 대한 많은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선수 시절부터 금지 약물을 사용했고, 그 약물을 제가 지도한 선수들에게도 사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장내를 둘러봤다.“이에 대해, 저는 그 어떤 변명이나 해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그의 예상 밖의 태도에 기자석이 술렁였다.“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세계반도핑기구(WADA)에 저 자신에 대한 최고 수준의 도핑 테스트를 공식적으로 요청합니다. 소변 검사, 혈액 검사는 물론, 모발과 손톱을 이용한 과거 약물 복용 이력 추적까지. 현존하는 가장 정밀한 방식으로, 제 몸의 모든 것을 검증받겠습니다.”“……!”기자회견장이 충격에 휩싸였다. 보통의 선수들이라면 어떻게든 피하려고만 하는 WADA의 검사를 스스로, 그것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요청한 것이다.하지만 그의 폭탄선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그리고 저 혼자만 받지는 않을 겁니다.”그의 등 뒤, 거대한 스크린이 켜졌다. 화면에는, 최강 라이온즈의 유니폼을 입은 이현성과 이하준, 박건우, 그리고 유도복을 입은 윤태웅, 다이스의 유니폼을 입은 리카도 리카
강지훈의 과거를 겨눈 최민석의 마지막 화살은, 그가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고 치명적으로 날아갔다.[단독] ‘기적의 코치’ 강지훈, 선수 시절부터 금지 약물 투여 의혹… ‘각성’의 비밀, 결국 약물이었나?대한유도협회 스캔들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터져 나온 두 번째 폭탄은, 이전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불법 의료 행위’는 해석의 여지라도 있었지만, ‘금지 약물’, 즉 도핑은 스포츠계에서 용납될 수 없는, 절대 악과도 같은 금기였기 때문이다.기사는 교묘했다. 강지훈이 GSM에서 해고당한 직후 약 한 달간 두문불출했던 시기를 ‘의문의 공백기’로 명명하고, 그 직후 갑자기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점을 의심스럽게 연결 지었다.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와 함께 일했던 익명의 전 GSM 트레이너의 인터뷰를 실었다. ‘강지훈이 인턴 시절부터 정체불명의 영양제들을 섞어 마시며 무언가 실험하는 듯 보였다’는 식의, 증거는 없지만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악의적인 증언이었다.여론은 순식간에 최악으로 돌아섰다. 그를 향한 찬사는 순식간에 배신감과 혐오로 바뀌었다.“결국 약쟁이었나? 어쩐지 능력이 비정상적이다 했다.”“자기 몸에 약물 실험하던 놈이, 다른 선수들 몸은 제대로 고칠 수 있겠어? 소름 돋네. 이현성, 이하준도 전부 약물로 만든 거 아니야?”“다이스는 당장 저 사기꾼을 해고해라! 메이저리그의 수치다!”미국 현지 언론까지 이 스캔들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강지훈을 ‘미친 도박&rs
최민석의 눈이 번뜩였다.“강지훈이… 저런 곳에 있었다고?”“네. 6개월간, 환자가 아닌 연구원 자격으로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저희가 확보한 당시 방문자 기록에 따르면, 강지훈은 그곳에서 단순히 재활만 한 것이 아니라, 허준이라는 의사와 함께 무언가… 아주 특별한 연구를 진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정보원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강지훈이 가진 능력의 비밀. 어쩌면, 그 모든 것의 시작이… 바로 이곳일지도 모릅니다.”최민석의 입가에, 마침내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미소가 걸렸다. 그는 즉시 정보원에게 지시했다.“파. 그 허준이라는 놈의 과거, 의료 사고의 진실, 그리고 강지훈이 그곳에서 대체 뭘 했는지, 먼지 한 톨까지 전부 다 파헤쳐. 이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지.”그림자는, 마침내 강지훈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과거, 그의 힘의 ‘근원’을 향해 손을 뻗치고 있었다.일주일 후, 커쇼의 개인 훈련장.일주일간의 호흡 훈련과 기초 재활을 마친 커쇼의 몸은, 미세하지만 분명한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지훈은 그를 데리고, 훈련장 한쪽에 있는 작은 수영장으로 향했다.“오늘부터는, 물속에서 공을 던질 겁니다.”“물속에서요?”“네. 물의 부력은 어깨 관절에 가해지는 중력을 상쇄시켜, 가장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물의 저항은, 선수님의 근육들이 평소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움직이도록 강제할 겁니다. 우리는 오늘 닳아버린 브레이크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이제, 제가 알려드리는 대로 숨을 쉬어 보십시오. 코로 4초간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가슴이 아닌 배를 풍선처럼 부풀리는 겁니다. 그렇죠. 그리고 6초간, 아주 천천히 입으로 숨을 내뱉으세요. 뱉는 숨이 끝날 때, 배꼽을 등 쪽으로 당긴다는 느낌으로 복부 전체를 수축시키고요.”커쇼는 어색했지만, 그의 지시에 따라 심호흡을 시작했다. 그가 복식 호흡을 반복하자, 모니터의 그래프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가슴과 어깨 근육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그래프는 거의 평탄해진 반면, 복부 근육의 활성도 그래프는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보이십니까. 견갑하근의 긴장도 그래프가, 숨을 내쉴 때마다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선수님의 뇌가, 처음으로 그 ‘브레이크’ 근육에게 ‘쉬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커쇼는 자신의 어깨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느꼈다. 깊게 숨을 내쉴 때마다, 늘 뭉쳐있던 어깨 앞쪽 깊숙한 곳의 근육이 아주 조금씩, 부드럽게 이완되는 감각 지난 몇 년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완전한 ‘쉼’의 감각이었다.그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오직 지훈의 목소리와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했다. 세계 최고의 투수가, 자신의 몸을 다스리는 가장 근원적인 방법론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었다.한편, 캐멀백 랜치의 메인 구장에서는 강지훈이 만들어낸 또 다른 기적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리카도 리카도.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방출 명단에 오르내리던 그가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6이닝 무실점 10탈삼진이라는 충격적인 투구를 선보이며 승리 투수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