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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5 10:42:31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이것은 기회였다. GSM에서 쫓겨나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지금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는 곧장 이현성의 2군 훈련장 위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재활과 훈련을 담당하는 곳이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한적한 재활센터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음 날 새벽, 지훈은 첫차를 타고 이현성이 있다는 재활센터로 향했다. 무작정 찾아간다고 만나줄 리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현성의 진짜 문제점과 그 해결책이었다.

재활센터 앞에서 기다린 지 세 시간이 지났을까. 훈련을 마친 듯 지친 표정의 이현성이 혼자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전성기 시절의 빛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깊은 절망에 빠진, 스물두 살 청년의 모습만 남아있었다.

지훈은 심호흡을 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이현성 선수님, 맞으시죠?”

이현성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낯선 남자를 쳐다봤다.

“누구시죠?”

“제 이름은 강지훈이라고 합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기자라면 사절입니다. 인터뷰 안 합니다.”

이현성은 쌀쌀맞게 대답하고는 그를 지나치려 했다. 지훈은 다급하게 그의 앞을 막아섰다.

“기자 아닙니다. 저는… 선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말에 이현성은 코웃음을 쳤다.

“내 문제를 해결해?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 심리학 박사도, 미국에서 건너온 재활 트레이너도 못 고친 내 병을 당신이 고친다고?”

“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지훈은 이현성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시스템 창이 알려준 그대로를 읊었다.

“선수님의 문제는 입스 같은 심리적인 게 아닙니다. 물론 지금은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서 심리적인 문제가 커 보이지만, 그건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에요. 진짜 원인은 아주 사소한 신체 밸런스 문제입니다.”

이현성의 얼굴에 황당함과 짜증이 뒤섞였다. 또 어디서 나타난 사기꾼인가 싶었다.

“투구할 때, 디딤발인 왼발이 땅에 닿는 순간, 발목이 예전보다 바깥쪽으로 아주 미세하게, 약 2도가량 더 돌아갑니다. 그 작은 차이가 골반 회전에 0.02초의 오차를 만들고 결국 릴리스 포인트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는 겁니다. 맞습니까?”

“……!”

이현성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발목의 각도, 골반 회전의 오차.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아니, 그 자신조차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뭔가 예전과 다르다’고 막연하게 느끼고만 있던 감각이었다.

이 남자는 대체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지?

이현성의 세상이 멈췄다.

시간의 흐름이 왜곡되고 주변의 모든 소음이 멀어지는 감각. 그의 귓가에는 오직 ‘발목 각도 2도’, ‘골반 회전 0.02초’라는 날카로운 파편 같은 단어들만 맴돌았다.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소름이 돋았다. 공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지난 2년간 그를 괴롭혔던 지독한 악몽의 실체. 수십 명의 코치와 트레이너, 심리 상담사들조차 ‘입스’라는 편리한 단어로 뭉뚱그려 버렸던 문제의 핵심.

그 자신조차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그저 ‘잘못 되었다’고만 느끼던 몸의 미세한 이질감을, 눈앞의 남자는 마치 제 몸을 들여다본 것처럼 정확하게 짚어냈다.

“당신… 대체 누굽니까?”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경계심과 의심을 넘어선, 원초적인 궁금증이었다.

강지훈은 침착했다. 상대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은 이미 예상했다. 여기서 ‘사실 제 눈에 스탯 창이 보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미리 준비해 둔, 가장 그럴싸한 거짓말을 꺼냈다.

“저는 프리랜서 스포츠 분석가입니다. 선수들의 신체 역학, 즉 바이오메카닉스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하죠.”

“분석가? 그런다고 이런 것까지… 영상만 보고 알아냈다는 겁니까?”

이현성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영상 분석은 그 역시 지겹도록 해왔다. 구단 전력 분석팀은 그의 전성기 시절 투구 폼과 현재 폼을 1프레임 단위로 비교 분석했지만, 그 누구도 발목의 미세한 각도 따위를 지적하지는 못했다.

“네, 영상만 봤습니다. 대신 수백 번, 수천 번을 돌려봤죠.”

지훈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이어갔다. 반은 진실이었기에 뻔뻔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수많은 선수들의 영상을 분석하며 밤을 새웠다. 다만, 답을 찾아낸 것은 그의 노력이 아닌 시스템의 능력이었을 뿐.

“사람의 눈이라는 게 참 재밌습니다. 보통은 팔의 각도나 어깨의 회전 같은 큰 동작에만 집중하죠. 하지만 모든 힘은 지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주 작은 불균형 하나가 도미노처럼 연쇄 반응을 일으켜 전체 폼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선수님의 경우가 바로 그랬고요.”

그럴듯한 말이었다. 너무나 전문적이고 체계적이어서 반박할 여지조차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현성은 여전히 눈앞의 남자를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지난 2년간 너무 많은 사람에게 속고 또 실망해왔다. 희망 고문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그래서요? 내 문제가 그거라는 걸 알았으니, 이제 뭘 어쩌자는 겁니까? 말로만 하는 분석은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일부러 더 쌀쌀맞게 쏘아붙였다. 여기서 또다시 헛된 희망을 품었다가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지훈은 이현성의 가시 돋친 말을 묵묵히 받아냈다. 그의 절박함과 불안감을 이해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증명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증명해 보이면 믿으시겠습니까?”

“증명? 어떻게?”

“지금 당장, 여기서요.”

지훈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이현성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지훈의 눈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사기꾼의 허황된 눈빛이 아니었다. 상대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확신에 찬, 고요하지만 강렬한 눈빛이었다.

이현성은 마른 침을 삼켰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좋습니다. 어디 한번 증명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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