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신예린은 주시우의 귀를 살짝 잡아 올리면서 표정은 한껏 사납고 말투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제 말을 못 알아들었어요? 중점은 아무 데서나 매력을 내뿜지 말라는 거라고요!”주시우의 귀를 잡아 올리는 신예린은 손에 별로 힘을 주지 않았고 단지 투닥거리는 표정이었다. 주시우는 다정하게 신예린을 달래면서 연달아 대답했다.“알았어. 당신 말을 들을게.”신예린은 이런 식으로 군말 없이 맞춰 주는 주시우가 좋았다. 마음 한구석이 꿀로 가득 찬 듯 달콤했다.“휴... 남편이 너무 잘생겨도 고민이네요. 괜히 너무 불안하잖아요.”신예린이 말을 툭 던지자 주시우는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신예린한테서 잘생겼다는 말을 듣자 주시우도 기분이 좋았다.“내가 그렇게 잘생겼어?”주시우가 다가오자 신예린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그럼요. 제가 몇 번을 말했는데요.”“아내 칭찬은 많이 들을수록 좋은 법이지.”주시우의 얼굴에는 웃음이 잔잔히 번졌다.신예린이 아예 작정하고 말을 퍼부었다.“잘생김 끝판왕이죠. 절세 미남에, 영락없는 조각 미남... 멋짐이 폭발하는 데다가, 매력이 철철 넘치고, 키도 크고 듬직하기까지 하니...”일부러 과하게 치켜세우는 걸 알면서도 주시우의 입꼬리는 신예린의 말이 이어질수록 더 높아졌다.“아이고, 입꼬리가 아주 날아가겠네요.”신예린이 슬쩍 놀리자 주시우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눈빛을 깊게 했다.“키스 한 번, 오케이?”“시간이 이미 늦었어요. 내일 이른 비행기잖아요.”신예린이 밀어내려 하자, 주시우의 팔이 강철처럼 딱 버텼다.“키스 한 번 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앞으로 며칠 못 하겠는데 지금 미리 해 둬야지.”‘며칠 못 하는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신예린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솔직히 인정했다.‘사실 키스는 실로 중독되기는 하지...’신예린이 먼저 고개를 들어 입술을 맞댔다. 서로의 입술이 닿는 순간, 주시우의 눈빛이 번뜩였고 손바닥이 그녀의 목덜미를 살며시 감싸안았고 손목 힘이 조금 더 세졌다.주시우는 키스 한 번 하는
“신 선생님, 제가 드디어 5킬로 뺐거든요. 축하 의미로 오늘 과 사람들한테 밀크티 살 게요. 뭐 드실래요?”동료가 들뜬 얼굴로 의사 사무실에 뛰어들었다.“밀크티라고요?”신예린이 문득 떠올라 물었다.“어느 집으로 시킬 거예요?”“아직 못 정했어요. 배달 앱 좀 뒤져 보려고요.”“제가 괜찮은 집 하나 알거든요. 거기로 해 볼래요?”“아주 좋아요. 신 선생님 덕분에 고민 끝!”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가 밀크티를 한가득 들고 돌아왔다. 손에는 작은 디저트 상자도 쥐여 있었다.“어, 디저트는 또 뭐예요?”“몰라요. 가게에서 같이 주더라구요. 우리가 많은 걸 시켰다고 서비스 준 건가 봐요. 서프라이즈말이죠!”동료한테 고맙다고 인사한 뒤 신예린이 휴대폰을 켰다. 예상대로 조금 전, 정가을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너 심장외과라고 했지? 고마워. 다음에 또 밀크티 필요하면 미리 말해. 할인해 줄게.][고마워.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 디저트 정말 맛있었어.]그러자 정가을한테서 이모티콘 하나가 귀엽게 퐁 하고 날아왔다. 신예린은 피식 웃었다.주시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사람은 희망을 품어야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긴다.”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몰랐다.그날 저녁, 집에 돌아오자마자 날아든 소식은 달갑지 않았다.주시우가 며칠 외지로 출장을 가야 했다.그러자 신예린과 주아윤은 코딱지처럼 주시우에게 착 달라붙었다.“아빠, 가지 마세요.”신예린도 주아윤 따라 했다.“여보, 가지 마세요.”주시우는 한 손으로 신예린을, 다른 손으로 주아윤을 번쩍 받치며 웃었다.“딱 사흘이야. 셋째 날 밤에 바로 집에 올게.”신예린이 번쩍 떠올라 물었다.“그럼 아윤이는요?”신예린은 근무가 일정치 않은 심장외과 의사였기에 주말에도 쉬지 못할 때가 많다. 공교롭게도 출장 기간에 주말이 끼어 있었으니 주아윤을 혼자 둘 수는 없었다.세 사람은 거실 바닥에 동그랗게 앉아 주아윤을 돌보기 작전 회의를 열었다.“제가 동료랑 근무를 바꿔 볼게요. 당신이 오면 다시
“가게 열기 전에 한 번 도준호를 찾아갔어. 침대에 누워 꼼짝도 못 하고, 거의 시체처럼 있더라. 그땐 마음속으로 빌었어. 제발 의식은 남아 있게 해 달라고, 그렇게 백 살까지라도 살아보라고 말이야.”움직일 수는 없지만 모든 걸 느끼는 삶, 그것이야말로 통쾌한 처벌이라 생각했다.“그러다 재활병원 복도 다리에서 비 온 뒤 무지개를 봤어. 그때 문득 마음이 풀어지더라. 세상에는 비만 내리는 게 아니고, 이렇게 예쁜 무지개도 뜨잖아. 난 도준호를 용서한 게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을 놓아준 거야. 도준호의 인생은 거기서 멈췄지만, 내 인생은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정가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고요함이 배어 있었다.신예린은 목이 콱 막힌 듯했고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정가을이 화제를 돌렸다.“지금은 의사로 일하는 거야?”신예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태성 병원 심장외과에 있어.”정가을이 미소를 지었다.“좋겠다. 나도 예전에는 의사가 되고 싶었거든.”그런 일들이 없었다면, 해외에 나가 공부한 사람도 정가을이었을 테고 흰 가운을 입은 것도 정가을이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도 나쁘지 않아. 난 지금에 만족해.”신예린이 입꼬리를 띄웠다.“정말 다행이다.”“그때 내가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준 게 너랑 주 교수님이었지. 치료비도 도와줬고... 걱정하지 마. 열심히 벌어서 꼭 갚을게.”신예린이 급히 손사래를 쳤다.“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사실 그 돈은 주시우의 부모님이 보탠 것이기도 했다.하지만 정가을은 똑바로 신예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당장 다른 동기가 없을 땐, 그걸 내가 버티는 이유로 삼을래.”신예린의 표정이 살짝 가라앉았다.“아무튼 그 얘기는 여기까지야. 내가 여기에서 일하는 걸 알았으니... 시간 되면 놀러 와. 밀크티는 서비스로 줄게.”“응.”신예린이 웃으면서 대답했고 정가을은 문 앞까지 배웅했다.“여기까지만 나와... 너도 바쁠텐데 얼른 가서 일 봐.”
신예린이 상대를 유심히 보더니 확신했다. 두꺼운 안경을 벗고 머리를 길게 묶어도 또렷한 이목구비는 분명 정가을이었다.신예린이 살짝 주시우의 옆구리를 건드려 저쪽을 가리키자, 주시우의 눈빛이 스쳤다. 주시우도 바로 정가을을 알아봤다.정가을은 밀크티 가게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같은 직원으로 보이는 여직원을 등 뒤로 감싸며 맞은편 손님에게 쏘아붙였다.“겉모습은 멀쩡해 보이는데 왜 이렇게 부끄러운 짓을 해요.”손님은 일이 커지자 발끈 화를 냈다.“이게 당신들 가게 서비스야? 점장 불러. 바로 신고할 거야.”정가을은 물러서지 않았다.“제가 점장입니다.”손님의 표정이 굳었다.정가을은 직원의 어깨를 살짝 앞으로 밀며 차갑게 말했다.“선택하세요. 첫째, 직원분께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하든가. 둘째, 제가 지금 경찰에 신고해서 며칠간 경찰서에 계시든가...”주변에서 웅성거림이 번지자 손님의 얼굴이 시뻘게져 입술이 달달 떨렸다. 결국 이를 악물고 말했다.“미안합니다.”그는 더 버티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직원을 짧게 달랜 정가을이 다시 일을 시작하려던 순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을아.”고개를 들자, 조금 떨어진 곳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주 교수님은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고, 신예린은 밀크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순간, 정가을은 시간을 건너온 듯 어지럽고도 아득했다. 이내 눈빛이 흔들리더니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오랜만이야.”...길가에서 주아윤은 주시우의 그림자를 콩콩 밟으며 빙글빙글 돌았다. 주시우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고개를 숙이고 주아윤을 보며 웃었다.신예린과 정가을은 창가 자리에 마주 앉아 그 모습을 통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봤다.“아이도 많이 컸네.”정가을의 목소리에는 묘한 감개가 스며 있었다.“응. 시간도 참 빠르네.”신예린의 시선이 정가을에게로 옮겨졌다. 마지막으로 만난 지 벌써 5년이 넘었다.그 시선을 느낀 정가을이 고개를 갸웃했다.“내가 어떻게 지내는
주아윤이 손을 뻗어 꽃을 살짝 만지더니 고개를 들었다.“엄마, 꽃 한 송이 가져가도 돼요?”“그럼. 한 송이는 무슨... 열 송이도 가져도 돼.”신예린이 웃으며 답했다.뒷좌석에서 신이 난 주아윤이 들썩거리자, 신예린에게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아, 이 꽃들 어떻게 할지 생각났어요.”그러자 운전하던 주시우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신예린이 주아윤에게 물었다.“아윤아, 엄마 아빠랑 게임 하나 하자. 어때?”“좋아요!”주아윤의 맑은 대답이 차 안을 채웠다....도시의 밤, 화려한 네온이 얽혀 빛을 만들고 사람들은 바쁘게 스쳐 지나갔다.크지 않은 광장 한편에서 한 여자와 아이가 지나가는 이들에게 꽃을 나눠 주고 있었다..“아가씨, 꽃 한 송이 드릴게요. 오늘도 행복하세요.”“언니, 이 꽃은 언니만큼 예뻐요.”“할아버지, 노래 정말 잘하시네요. 이 꽃 받으세요.”“오빠, 오늘 입은 옷 멋있네요. 꽃 드릴게요!”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시우는 두 사람을 지켜봤다.지금 이 순간의 모녀는 유난히 반짝였다. 누군가에게 선의를 건네며 동시에 되돌아오는 온기를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신예린은 두 손이 텅 빈 채 종종걸음으로 돌아왔다. 계속 걸어 다닌 탓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얼굴에는 들뜬 홍조가 피어올랐다.“자.”어디서 꺼냈는지 신예린은 꽃 한 송이를 불쑥 내밀었다.“진정한 주인한테 드려야죠. 마지막 한 송이는 당신을 위한 꽃이에요.”“내 것도 있어?”주시우가 받으며 고개를 기울였다.“당연하지. 당신이 내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니까요. 난 당신이 가장 행복했으면 좋겠어요.”‘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그 말이 주시우의 가슴을 울렸다.“신기하네. 나도 같은 생각 중이었거든.”그 말과 함께, 주시우가 등 뒤로 감춰 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에는 선명한 장미 두 송이가 들려 있었다.“너희가 나누기 전에 살짝 빼놨어. 기쁨과 행복을 나누는 김에, 우리도 한 송이씩은 가지자.”서로를 먼저 떠올렸
“교수님은 오늘에 왜 저렇게 급하게 나가시지?”“평소에는 우리가 다 나간 다음에 움직이셨는데...”“전화받는 중인 것 같던데.”학생들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주시우는 곧장 계단을 내려가 신예린에게 전화를 걸었다.“왜?”신예린이 금세 받았다.“남의 연애 구경하는 게 그렇게 재밌어?”주시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신예린의 낮은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렀다.“그럼... 나랑 연애하는 건 재미없고?”“우리 사이가 벌써 몇 년인데요.”“그래서 마음이 식었다... 그 말이야?”“그런 뜻은 아니고요.”신예린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달랬다.“지훈 씨랑 이 선생님이 이제 연애를 막 시작해서 아주 달콤해 보이길래, 그냥 당신한테 사진을 공유한 거죠.”“우리는 안 달콤해?”주시우가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달죠, 너무 달아 죽겠어요.”신예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렇게 승부욕이 생겼으면 소지훈 씨랑 선물하는 꽃다발 크기도 비겨 보시든가요. 오늘 지훈 씨가 들고 온 꽃은 당신이 전에 나한테 준 것보다도 훨씬 크더라고요.”그 말이 화근이었다.바로 그날 저녁, 병원 앞으로 신예린을 데리러 온 주시우의 품에는 99송이 장미가 안겨 있었다.“와, 신 선생님의 남편분은 로맨틱하시다. 오늘 결혼 기념일이에요?”“저건 봐도 아흔아홉 송이네.”“무거우면 제가 잠깐 들어드릴까요?”신예린은 거대한 꽃다발을 보며 말문이 막혔다.마침 소지훈도 병동에 들어서다 그 장면을 보고 움찔했다.“여기서 뭐 해?”“아내 데리러 왔지.”“그건 다 알지. 나도 여자 친구 데리러 왔거든... 그게 아니라, 왜 꽃다발이 이렇게 커?”“예린이가 나한테서 받았던 꽃다발이 네가 오늘 산 것보다 작다고 해서... 다시 샀어.”‘딱 날 잡으러 온 거네.’소지훈은 급히 휴대폰을 꺼냈다.“넌 또 뭘 하려고?”주시우가 물었다.“너한테 질 수 없어. 다시 주문해야지. 넌 몇 송이 샀는데?”“그걸 왜 내가 알려줘.”“안 알려줘도 괜찮아. 난 천 송이로 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