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3화. 월세부터 입금하세요
계단을 밟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한 명이 아니었다.
젖은 운동화가 바닥에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철제 난간을 붙잡을 때마다 울리는 덜컹거림, 숨을 죽이지 못한 남자들의 목소리까지.
“옥탑 맞다니까.”
“라이브 켰어?”
“잠깐만. 신호 왜 이렇게 안 잡혀.”
서지안은 노트북 화면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 사라진 댓글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B동 옥탑방에서 봤습니다.]
남시헌도 같은 생각을 한 듯 현관문 쪽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의 여유가 사라졌다.
“나갈 길 있습니까?”
“현관 말고는 없어요.”
“옥상 반대편은?”
“난간 아래가 바로 골목이에요. 여기서 뛰면 다리부터 부러져요.”
시헌은 무너진 벽 너머 수도실로 시선을 돌렸다.
안쪽에는 간이침대와 노트북, 생수병과 비상식량이 그대로 널려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던 흔적이었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쾅쾅쾅.
“안에 계세요?”
지안은 반사적으로 시헌의 팔을 붙잡았다.
“들어가요.”
“저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당신 찾으러 온 사람이잖아요.”
“그럼 더 위험합니다.”
“당신 얼굴이 보이면 지금보다 백배는 위험해져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휴대전화 카메라가 문에 부딪히는 듯한 소리까지 들렸다.
“잠깐만 확인하면 됩니다. 남시헌 씨 관련 제보가 들어와서요.”
역시나였다.
지안은 이를 악물고 무너진 벽 쪽을 살폈다.
벽 전체를 가릴 만한 것은 침대 위에 놓인 두꺼운 겨울 이불뿐이었다. 그녀가 이불을 잡아당기자 석고 가루가 사방으로 날렸다.
“뭐 합니까?”
“도와줘요.”
두 사람은 쓰러진 행거를 벽 앞에 세웠다. 옷이 걸린 행거 위에 이불을 넓게 펼치자 수도실로 이어진 구멍이 간신히 가려졌다.
아랫부분에는 여전히 잔해가 보였지만, 당장 문밖에서 들여다보는 정도라면 누수로 벽이 무너진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지안은 시헌을 수도실 안으로 밀었다.
“절대 나오지 마요.”
“당신 혼자 상대할 수 있습니까?”
“내가 비명 지르면 그때 나오든가요.”
“그때는 이미 늦을 텐데.”
“그럼 조용히 경찰에 신고하세요. 본인은 익명 신고 잘하실 것 같은데.”
시헌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지안은 그가 대꾸하기 전에 이불 끝을 내려버렸다.
현관문 앞에 선 사람들은 기다릴 생각이 없는지 손잡이까지 흔들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문 열어주세요. 제보 확인만 하겠습니다.”
“누구세요?”
지안은 안전고리를 건 채 문을 손바닥만큼 열었다.
문밖에는 우비를 입은 남자 셋이 서 있었다.
한 명은 휴대전화를 들고 지안의 얼굴을 촬영하고 있었고, 한 명은 짐벌에 카메라를 단 채 방 안을 들여다보려 했다. 맨 앞에 선 남자는 모자에 붙은 빗물을 털며 명함을 내밀었다.
<스타헌터 김도혁>
지안도 이름을 알고 있었다.
유명인의 목격담과 사생활 제보를 다루는 추적 채널 운영자였다. <사라진 별>과 같은 소재를 다루지만, 현장에 직접 들이닥치는 방식으로 조회 수를 올리는 인간이었다.
“촬영부터 끄세요.”
지안이 말했다.
도혁은 카메라를 내리지 않았다.
“저희한테 남시헌 씨 목격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요?”
“이 건물 옥탑에 숨어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걸 믿고 남의 집까지 올라왔어요?”
“제보자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댓글 하나 보고요?”
도혁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댓글 보셨습니까?”
지안은 속으로 혀를 찼다.
괜한 말을 했다.
하지만 이미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영상 보다가 봤어요. 지금 인터넷에 남시헌 목격담이 몇 개인데요?”
“그중 진짜가 있을 수도 있죠.”
“여기는 없어요.”
지안이 문을 닫으려 하자 도혁이 문틀에 손을 얹었다.
“잠깐만 안을 확인하겠습니다.”
“영장 있어요?”
“숨길 게 없으면 보여주면 되잖아요.”
지안은 문틈 너머로 그를 빤히 바라봤다.
이런 인간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었다.
숨길 게 없으면 보여달라.
죄가 없으면 증명해달라.
자신들은 카메라 뒤에 숨어 있으면서, 타인의 삶은 문 하나만 열면 전부 가져도 된다고 믿는 얼굴.
“싫은데요.”
“남시헌 씨를 숨겨주는 겁니까?”
“내 월세도 못 내는데 톱스타까지 먹여 살릴 여유 없어요.”
뒤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도혁이 그를 노려보는 사이, 지안은 문을 조금 더 닫았다.
“계속 이러면 주거 침입으로 신고할게요.”
“제보금 오천만 원인 건 아시죠?”
그 말에 지안의 손이 멈췄다.
도혁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혹시 남시헌 씨를 봤다면 우리 쪽으로 먼저 연락하세요. <사라진 별>보다 더 드릴 수도 있으니까.”
“사람 하나 찾아서 채널끼리 경매라도 붙이게요?”
“대중이 진실을 궁금해하니까요.”
“대중이 궁금해하면 남의 집에 막 들어와도 돼요?”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문틈으로 방 안을 훑었다.
그의 시선이 행거 위에 덮인 겨울 이불에 잠시 머물렀다.
지안은 일부러 몸을 옆으로 옮겨 시야를 막았다.
“안 가요?”
“벽이 왜 저렇습니까?”
“비 새서 무너졌어요.”
“저쪽이 수도실 아닌가?”
“맞아요. 집주인이 수리도 안 해줘서 내가 이러고 살고 있고.”
지안은 천장에서 물을 받던 컵을 발끝으로 밀었다.
마침 물방울 하나가 컵 안으로 떨어졌다.
툭.
도혁이 컵과 누렇게 젖은 천장을 번갈아 봤다.
톱스타가 숨어 있기에는 너무 초라한 방이었다.
그 사실이 지금만큼 고마웠던 적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도혁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대신 명함은 받아두세요.”
“필요 없어요.”
그는 명함을 문틈으로 밀어 넣었다.
지안이 받지 않자 명함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생각 바뀌면 연락하시고.”
도혁은 내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말했다.
“남시헌 정도 되는 사람이 이런 데 숨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죠?”
지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데 숨는 겁니다.”
그들의 발소리가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현관문을 닫은 지안은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건물 입구 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확인한 뒤에야 안전고리를 풀었다.
행거 위에 걸린 이불이 들렸다.
시헌이 수도실에서 나왔다.
“다 갔어요?”
“목소리 들었잖아요.”
지안은 바닥에 떨어진 명함을 주워 쓰레기통에 던졌다.
시헌은 현관 앞에 서서 한동안 계단 쪽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 사람을 압니까?”
“유튜버예요. 유명인 쫓아다니는 걸로 먹고사는 사람.”
“당신이 일하는 채널과는?”
“경쟁 채널 비슷한 거죠.”
지안은 바닥에 떨어진 석고 조각을 발로 밀어 한쪽에 모았다.
“저런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면 곤란해요.”
“주소를 흘린 사람이 누군지 찾아보겠습니다.”
“그건 당신 문제고.”
지안은 손을 털고 그를 돌아봤다.
“우리 문제는 계약이 아직 제대로 안 끝났다는 거예요.”
“돈은 보냈습니다.”
“돈만 보내면 끝이에요?”
“뭘 더 원합니까?”
지안은 침대 옆 작은 책상에서 공책과 펜을 가져왔다.
찢어낸 종이 맨 위에 큼직하게 적었다.
[은신 계약서]
시헌이 종이를 내려다봤다.
“직접 씁니까?”
“변호사 부르면 당신 위치부터 광고하게 될 테니까요.”
“법적 효력은 없을 텐데.”
“양심 없는 사람한테 양심 확인용으로 받는 거예요.”
지안은 첫 번째 조항을 적었다.
“하나. 내 허락 없이 이 방에 들어오지 말 것.”
“벽이 뚫려 있는데?”
“그래도 허락은 받아요.”
“당신이 없을 때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불이 나도 노크부터 하세요.”
시헌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안은 무시하고 두 번째 조항을 적었다.
“둘. 불법적인 일은 시키지 말 것. 휴대전화 개통, 타인 명의 계좌, 신분증 대여 전부 안 됩니다.”
“그런 걸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셋. 내 물건 함부로 만지지 말 것.”
“나도 같은 조건을 요구하죠.”
“당신 물건은 수도실에 두세요. 내 방에 안 가져오면 만질 일도 없어요.”
지안은 잠시 생각하다 네 번째 줄을 추가했다.
“넷. 계약 기간 한 달. 연장은 쌍방 동의.”
“한 달 뒤에는?”
“당신이 나가든, 내가 신고하든 다시 협상해야죠.”
“신고가 선택지에서 사라진 건 아니군요.”
“오백만 원으로 내 평생을 산 건 아니잖아요.”
시헌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지안은 펜 끝으로 종이를 두드렸다.
“그리고 월세.”
“이미 보낸 돈으로 내면 되지 않습니까?”
“그건 당신 입막음 비용이고요.”
“은신 비용입니다.”
“명칭은 마음대로 하세요. 밀린 월세는 별도예요.”
시헌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왜 당신이 밀린 월세까지 내야 하죠?”
“내가 쫓겨나면 당신 수도실도 들켜요.”
지안은 집주인에게 온 부재중 전화 목록을 보여줬다.
“오늘까지 칠십육만 원 안 넣으면 비밀번호 바꾸겠대요.”
“집주인이 세입자 동의 없이요?”
“법 지킬 사람이었으면 저 벽이 저렇게 될 때까지 방치했겠어요?”
시헌은 무너진 벽을 한번 돌아봤다.
논리적으로 반박할 말이 없는 얼굴이었다.
“계좌번호.”
“이미 알잖아요.”
잠시 후 지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입금 760,000원]
지안은 입금 내역을 두 번 확인했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자 조금 전까지 조여 있던 숨이 겨우 풀렸다.
월세가 해결됐다.
적어도 집주인에게 쫓겨날 걱정은 한 달 미뤄졌다.
지안은 계약서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서지안.
종이를 돌려주자 시헌도 펜을 들었다.
남시헌.
반듯한 세 글자가 나란히 놓였다.
지안은 계약서를 절반으로 접었다.
“이제부터 벽 넘을 때는 허락받아요.”
“저쪽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
“옥상 공용 화장실 써요.”
“사람들에게 들키면?”
“새벽에 가든가.”
“샤워는?”
“그것도 공용.”
“온수가 안 나옵니다.”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해요?”
시헌은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계약 조건이 일방적이군.”
“싫으면 지금 나가요.”
시헌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지안은 속으로 작게 승리감을 느끼며 노트북 앞으로 돌아갔다.
방금 전 중단된 작업부터 마무리해야 했다. 영상 업로드가 늦어지면 강태준이 다시 연락할 것이고, 오늘 받은 편집비를 놓칠 수 있었다.
노트북 화면을 켜자 <사라진 별>의 채널 로고가 떠올랐다.
지안은 황급히 창을 내리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등 뒤에 서 있던 시헌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채널 로고에서 지안의 작업 폴더로 천천히 이동했다.
폴더 안에는 남시헌의 이름이 붙은 영상 파일이 수십 개나 정리돼 있었다.
[남시헌_호텔_최종]
[남시헌_폭행의혹_수정2]
[남시헌_제주목격_업로드본]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시헌이 아주 낮게 물었다.
“당신이었습니까?”
지안은 마우스를 잡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뭐가요?”
“지난 8개월 동안.”
그의 시선이 노트북 화면에 박혔다.
“나를 쫓던 영상들을 만든 편집자.”
# 외전 5화. 오늘도 함께 살겠습니다 [외전완결]남시헌이 두 번째로 반지를 내민 것은 첫 번째 약속 반지를 맞춘 지 정확히 일 년 뒤였다.이번에는 상자를 몰래 두지 않았다.서지안이 편집을 마치고 작업실에서 나오자, 거실 식탁 위에 작은 케이크와 반지 상자를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집 안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촛불도 없었고 꽃잎도 뿌려져 있지 않았다.시헌은 촬영장에서 입고 돌아온 검은 티셔츠 차림이었고, 지안은 하루 종일 작업하느라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고 있었다.“이게 뭐예요?”지안이 묻자 시헌은 소파에서 일어났다.“결혼해달라는 뜻입니다.”“바로 말하네요.”“이번에는 돌려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상자도 안 숨기고요?”“숨기면 또 화낼 것 같아서.”“잘 배웠네요.”지안은 식탁 앞에 앉지 않았다.대신 시헌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오늘이에요?”시헌은 미리 준비한 답을 외우지 않았다.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오늘이 특별한 날은 아닙니다.”“그런데요?”“그래서 오늘 하고 싶었습니다.”그는 지안과 함께한 지난 일 년을 떠올렸다.남시헌의 복귀작은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지안의 채널 은 구독자 수보다 긴 영상으로 더 유명해졌다.정우현은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게 됐고, 백윤서는 독립 제작사의 연극으로 돌아갔다.최민석은 재판을 기다리면서도 자신이 보관했던 자료를 수사기관에 모두 넘겼다.장기석과 강태준의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밝혀야 할 일도 남아 있었다.그래도 두 사람의 일상은 계속됐다.아침마다 누가 먼저 일어났는지 확인하고.월세 이체 날짜가 되면 각자 절반씩 보내고.시헌이 촬영 때문에 집을 비울 때면 돌아올 시간을 알리고.지안이 밤새 편집하다 소파에서 잠들면 시헌이 담요를 덮어줬다.싸운 날도 있었다.시헌이 지안의 악성 댓글을 몰래 신고하다 들킨 날.지안이 몸살을 숨긴 채 사흘 동안 작업하다 쓰러진 날.남시헌의 해외 촬영 제안을 지안이
# 외전 4화. 결혼은 합의부터서지안은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상자를 발견하고도 바로 열지 않았다.아침 일곱 시 십 분.남시헌은 이미 촬영장으로 출발한 뒤였다.머리맡에는 출발 시간을 알리는 메시지가 남아 있었고, 냉장고 안에는 그가 만든 샌드위치가 들어 있었다.그런데 작업실 책상 위에 놓인 상자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짙은 남색 상자.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리본도 없고 메모도 없었다.지안은 문 앞에 서서 한동안 상자를 바라봤다.반지 상자와 비슷했다.너무 비슷해서 손을 대기 어려웠다.며칠 전 공개 연애 인터뷰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시헌은 중요한 발표는 지안과 먼저 합의하겠다고 답했다.그날 집에 돌아온 뒤에도 결혼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지안 역시 묻지 않았다.말하지 않는 것이 거절은 아니었다.그렇다고 동의도 아니었다.그런데 상자가 나타났다.지안은 휴대전화를 들었다.[책상 위에 있는 상자 뭐예요?]촬영 중인지 답장은 오지 않았다.지안은 상자를 열지 않은 채 노트북을 켰다.오늘은 의 새로운 인터뷰를 촬영하는 날이었다.정우현이 직접 출연하겠다고 했다.공식적으로 사망한 뒤 다른 이름으로 병원에 감금됐던 팔 개월.남시헌을 배신했다는 누명을 쓴 시간.자신 대신 불탄 차량 안에 있었던 신원 미상의 피해자.우현은 수사기관에서 진술했지만 대중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시헌을 통해 그의 상태를 짐작하는 기사만 쏟아졌다.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 싶다고 했다.오전 열 시.정우현은 지팡이를 짚고 스튜디오로 들어왔다.해솔이 준비한 작은 공간이었다.배경은 흰 벽.의자 두 개.정면 카메라 한 대와 측면 카메라 한 대.우현은 카메라를 확인한 뒤 지안에게 물었다.“생방송은 아니죠?”“녹화예요.”“편집은?”“원하시는 부분만 자를게요.”“내가 멈추는 건 그대로 두고.”“네.”“울면?”“그것도 원하는 대로요.”우현은 의자에 앉았다.“시헌이 방송에서는 다
# 외전 3화. 카메라 밖의 사람남시헌의 복귀작 첫 촬영은 오전 여섯 시부터 시작됐다.서지안이 눈을 떴을 때 침대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이번에는 놀라지 않았다.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오전 4시 50분에 촬영장으로 출발했습니다.][주방에 아침을 두었습니다.][달걀은 중불로 익혔습니다.]지안은 마지막 문장을 확인하고 웃었다.주방 식탁에는 모양이 조금 찌그러진 달걀 프라이와 식빵이 놓여 있었다.검게 탄 부분은 없었다.노른자도 터지지 않았다.접시 옆에는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먹기 전에 사진을 보내주면 다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겠습니다.]지안은 접시를 촬영해 시헌에게 보냈다.[합격.]곧바로 답장은 오지 않았다.촬영이 시작된 모양이었다.지안은 혼자 아침을 먹은 뒤 작업실로 들어갔다.의 세 번째 영상 편집이 남아 있었다.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세림엔터테인먼트에서 칠 년 동안 연습생으로 지냈던 여자였다.그녀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목소리도 일부 변조해달라고 부탁했다.다만 자신의 침묵만큼은 자르지 말아달라고 했다.질문을 받고 대답하기까지 이십칠 초.말을 하려다 멈춘 시간 십사 초.울음을 참으려고 고개를 숙였던 일 분 가까운 공백.예전의 지안이었다면 모두 잘라냈을 장면이었다.시청자가 지루해할 테니까.영상의 흐름이 끊길 테니까.그러나 이번에는 그대로 두었다.말하지 못하는 시간 역시 그 사람의 이야기였다.오전 열한 시가 넘었을 때 남시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오전 촬영 종료.][달걀은 괜찮았습니까?]지안은 편집 프로그램을 잠시 멈췄다.[괜찮았어요.][촬영은요?]한동안 답장이 없었다.읽음 표시만 남았다.지안은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대답을 기다렸다.약 오 분 뒤 메시지가 도착했다.[오후 촬영에 호텔 장면이 있습니다.]지안의 손이 멈췄다.대본을 읽으며 알고 있던 장면이었다.주인공이 고향을 떠나기 전 오래된 여관에 머무는 장면.호텔 사건과
# 외전 2화. 공개 연애의 조건남시헌의 첫 복귀 인터뷰는 오후 세 시였다.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세 시간.서지안은 거실 바닥에 앉아 질문 목록을 펼쳤다.정우현이 보낸 예상 질문은 열두 개였다.복귀를 결심한 이유.호텔 사건 이후의 심경.정우현과 백윤서에 관한 질문.서지안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 일에 대한 책임.그리고 마지막 항목.[현재 서지안 씨와 교제 중입니까?]지안은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이 질문이 나오면 뭐라고 할 거예요?”소파 대신 맞은편 상자에 앉은 시헌이 대답했다.“교제 중이라고 말하겠습니다.”“끝?”“더 설명해야 합니까?”“질문이 이어질 거잖아요.”지안은 다음 문장들을 읽었다.“언제부터 만났는지. 동거 중인지. 결혼 계획이 있는지. 서지안 씨가 복귀작에 영향을 미쳤는지.”“사실대로 답하면 됩니다.”“결혼 계획도요?”시헌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없습니까?”“지금 나한테 묻는 거예요?”“질문이 나올 수 있다면서요.”“그래서 오늘 결혼 계획까지 정하자고요?”“계획이 없다면 없다고 답하면 되고.”그는 지나치게 침착했다.지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있는 것 같은데.”“생각은 해봤습니다.”“언제요?”“이 집을 계약할 때.”“같이 산 지 며칠이나 됐다고.”“기간이 중요합니까?”“중요하죠.”“얼마나 지나야 생각해도 됩니까?”지안은 말문이 막혔다.남시헌에게 연애는 여전히 기준이 없는 영역이었다. 기준이 없으니 매번 자신에게 확인했고, 답이 없으면 정하려 했다.지안은 질문 목록으로 그의 팔을 가볍게 쳤다.“오늘 인터뷰에서 결혼 이야기는 하지 마요.”“왜요?”“내가 아직 대답 안 했으니까.”“그럼 질문이 나오면.”“계획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요.”“정해지지 않은 이유도 말해야 합니까?”“그냥 웃고 넘어가요.”시헌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었다.“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 적이 없습니다.”“배우잖아요. 웃는 것도 연기해요.”“당신과 관련된 질문에 연기하고 싶지 않습니다.”지안의
# 외전 1화. 계약이 끝난 다음 날서지안이 눈을 떴을 때 남시헌은 침대에 없었다.옆자리에 남은 온기는 아직 따뜻했다.커튼 사이로 아침 햇빛이 길게 들어왔고, 거실 쪽에서는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쨍그랑.지안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이번에는 타는 냄새가 났다.“남시헌.”대답은 없었다.침대에서 내려온 지안은 바닥에 떨어진 셔츠를 주워 걸쳤다.자신의 옷은 아니었다.커다란 셔츠 자락이 허벅지까지 내려왔다.어젯밤 두 사람이 거실에서 시작한 입맞춤은 침실까지 이어졌다.계약도, 약속된 연기도 아니었다.누가 먼저 다가가야 하는지 정해놓은 규칙도 없었다.그런데 아침이 되자 남자는 사라졌고 주방에서는 연기가 나고 있었다.지안은 급히 방문을 열었다.남시헌은 프라이팬 앞에 서 있었다.한 손에는 뒤집개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휴대전화 화면을 내리고 있었다.화면에는 달걀 프라이 만드는 방법이 떠 있었다.“지금 뭐 해요?”시헌이 돌아봤다.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검은 티셔츠, 회색 바지 차림이었다.프라이팬 안에는 달걀로 추정되는 검은 물체가 있었다.“아침 준비 중입니다.”“그건 이미 끝난 것 같은데요.”지안이 가스레인지를 껐다.“불은 왜 이렇게 세게 했어요?”“빠르게 익을 줄 알았습니다.”“요리할 때 강한 불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에요.”“설명에는 중불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그런데요?”“중불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습니다.”지안은 이마를 짚었다.톱스타 남시헌은 수백 명의 스태프 앞에서 감정을 연기할 수 있었다.백만 명이 지켜보는 생방송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중불은 몰랐다.“아침은 내가 할게요.”지안이 뒤집개를 가져가려 하자 시헌이 손을 피했다.“내가 하겠습니다.”“왜요?”“공동생활 규칙에 적혀 있습니다.”냉장고 문에는 두 사람이 작성한 규칙이 붙어 있었다.[집안일은 가능한 한 반씩 나눈다.]시헌은 그중 집안일이라는 단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어제 설거지는 내가 했으
# 50화. 월세는 반씩 [본편완결]“전액을 보냈다고요?”서지안의 목소리에 남시헌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아침 햇빛이 커튼 없는 창문을 통과해 그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조금 전까지 잠결에 지안을 놓아주지 않던 사람은 사라지고, 잘못을 계산하는 얼굴만 남았다.“첫 달이라 내가 먼저 내는 편이 편할 것 같았습니다.”“누구한테요?”“집주인에게.”“나한테는 안 편한데요.”지안은 은행 앱을 다시 확인했다.월세 백이십만 원.입금자 남시헌.반드시 반씩 내자고 합의한 지 이틀도 지나지 않았다.“왜 마음대로 보냈어요?”“마음대로 한 건 아닙니다.”“그럼 나한테 물어봤어요?”시헌의 입이 다물렸다.지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돈 없는 합의서 다시 가져와요?”“그 합의서는 공동 대응에 관한 내용입니다.”“상대방 결정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아직 유효해요.”“내가 월세를 냈다고 당신 결정을 대신한 건.”시헌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지안의 눈빛을 확인했기 때문이다.“대신한 거 맞군요.”“네.”인정은 빨랐다.그러나 지안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처음에도 그랬어요.”“무슨 뜻입니까?”“돈을 주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잖아요.”월 오백만 원.밀린 월세.생활비.냉장고를 채운 음식.남시헌은 늘 지안보다 먼저 돈을 냈다.그 돈 덕분에 지안이 버틴 것도 사실이었다.그렇다고 같은 방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당신이 많이 버는 건 알아요.”지안이 말했다.“앞으로 나보다 훨씬 많이 벌 수도 있고요.”“아직 복귀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그건 나중 문제고.”지안은 시헌 앞에 앉았다.“나는 이 집에 얹혀살고 싶지 않아요.”시헌의 표정이 굳었다.“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당신이 생각하지 않아도 내가 느낄 수 있어요.”“내가 어떻게 해야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까?”“약속한 대로 하면 돼요.”“월세를 반씩?”“네.”“수입 차이가 나도?”“월세는 반씩.”지안은 단호하게 말했다.“관리비도 반씩.”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