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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R-A-I-A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0 01:10:27

1초도 지체하지 않고 Hellena은 Kael Willian이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 단지로 서둘러 향했다.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점점 매서워지는 밤바람이 그녀의 피부를 사납게 때렸다. 그녀의 눈앞에는 어두운 유리로 뒤덮인 거대한 초고층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안에 사는 권력자와 똑같은 오만함을 풍기는 건물이었다.

지난 5년 동안 Kael의 개인 비서로 일해 온 Hellena에게는 회사의 비상 상황을 위해 특별히 발급된 출입 카드가 있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카드를 센서 패널에 갖다 댔다.

삑.

전용 로비의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진정해, Hellena. 돈을 빌리러 온 것뿐이야.”

그녀는 점점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이제 Kael 대표님만이 유일한 희망이야.”

엘리베이터가 소리 없이 위로 올라갔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금속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 안에서 Hellena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아직 눈물 자국도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헐렁한 출근복은 약간 구겨져 있었다.

플러스 사이즈인 그녀는 평소 자신의 존재가 투명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절박함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기분이었다.

Hellena은 머리를 매만지며 얼마 남지 않은 직업적인 모습을 다시 바로 세우려 애썼다.

엘리베이터가 알림음을 내며 멈췄고, 문이 열리자 곧바로 CEO의 펜트하우스 거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내는 넓었고 천장은 높았다. 검정, 차콜, 회색 등 남성적인 색조가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미니멀하고 완벽할 정도로 깔끔했다. 온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차가웠다.

Hellena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두 끝이 반짝이는 검은 대리석 바닥에 닿는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활짝 열린 발코니 너머로 익숙하고 넓은 어깨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Kael Willian은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소매를 팔꿈치까지 무심하게 걷어 올린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붉은 와인이 담긴 크리스털 잔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발코니 난간에 걸쳐져 있었다.

저 멀리 펼쳐진 도시의 불빛이 그의 실루엣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언제나 그를 둘러싸고 있던 압도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Hellena은 마른침을 삼켰다.

목구멍은 갑자기 사포처럼 바싹 말라 버렸고,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그녀가 인사조차 건네기 전에 남자가 몸을 돌리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내 시간을 낭비하지 마.”

Kael의 중후한 목소리는 낮고 무미건조했으며,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말해. 한밤중에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지?”

Hellena은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5년 동안 그와 함께 일했음에도 그의 이런 말투는 언제나 그녀를 위축시켰다.

그녀는 힘겹게 폐 속으로 공기를 끌어들였다.

“저…….”

목소리가 목구멍에 걸렸다.

“늦은 시간에 휴식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Kael 대표님.”

Kael이 마침내 몸을 돌렸다.

매처럼 날카로운 그의 검은 눈동자가 Hellena에게 곧장 향했다. 창백한 얼굴과 평소보다 흐트러진 그녀의 모습을 세심하게 살폈다.

“난 쓸데없는 잡담을 좋아하지 않아, Hellena. 알고 있잖아.”

Hellena은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가방 끈을 세게 움켜쥐었다.

자신의 남은 시간을 카운트다운하는 그 개자식들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이렇게까지 자존심을 내려놓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Kael 대표님…… 50만 유로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발코니 근처의 실크 커튼만 간간이 불어오는 밤바람에 흔들렸다.

Kael에게는 놀란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저 꿰뚫어 보는 듯한 평가의 시선으로 Hellena을 바라볼 뿐이었다.

“50만 유로? 비서에게는 상당히 큰 금액인데.”

Hellena은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표님.”

“그럼 담보는 무엇을 내놓을 거지?”

그 질문은 이미 실낱같이 매달려 있던 그녀의 자존심을 정면으로 찔렀다.

“담보로 내놓을 자산은 없습니다, 대표님. 하지만 매달 제 월급 전액을 차감하셔도 됩니다.”

Hellena은 두려움에 쫓기듯 빠르게 말을 이었다.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무급으로 야근하겠습니다. 24시간 내내 대표님의 모든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뭐든 하겠습니다. 제발…… 대표님, 정말 절박합니다.”

Hellena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의 도박 빚을 갚기 위해 필요한 돈이라는 사실을 털어놓기에는 너무 수치스러웠다. 게다가 사채업자들이 돈 대신 자신의 몸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Kael이 알게 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두려웠다.

Kael은 잔 안의 붉은 액체를 천천히 빙글빙글 돌렸다. 눈앞에 서 있는 여자를 침묵으로 괴롭히기라도 하듯.

“선임 비서인 네 월급에 연간 보너스를 전부 합친다고 해도 5년 안에는 그 금액을 갚을 수 없어.”

Kael은 차분하게 말하며 Hellena이 겨우 생각해 낸 유일한 계획을 손쉽게 무너뜨렸다.

“업무 시간 외에 다른 일을 구하겠습니다.”

Hellena이 조용히 대답했다.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제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Kael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Hellena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지난 5년 동안 눈앞의 플러스 사이즈 여성은 늘 효율적이고 끈기 있으며 프로페셔널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처럼 보이는 업무를 맡겼을 때조차 그녀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Hellena은 그의 재력을 보고 감탄하는 눈빛을 보내거나 그를 유혹하려 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유일한 여자였다.

그런데 오늘 밤의 그녀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산산조각 날 것 같은 유리 조각처럼.

Kael의 생각은 몇 시간 전 병원 중환자실에서 있었던 일로 향했다.

그의 어머니는 수많은 튜브와 기계에 둘러싸인 채 힘없이 누워 있었다. 의식을 잃기 직전, 노모는 남아 있는 얼마 되지 않은 힘으로 그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Kael…… 결혼하렴.”

그날 그의 어머니는 애원하듯 말했다.

“네가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내가 영원히 눈을 감기 전에.”

Kael은 코로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결혼?

그에게 결혼은 그저 성가신 거래에 불과했다.

사랑이란 한 남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만드는 나약함일 뿐이었다.

그에게 감정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어머니의 상태는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었다.

Kael은 다시 Hellena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여자는 영리하고 순종적이었다. 그의 삶의 모든 비밀과 리듬을 잘 알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감정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이보다 편리한 우연이 또 있을까?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Hellena은 마침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Kael Willian은 동정심 때문에 돈을 아무렇게나 내던지는 자선가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괜한 무례로 대표님을 방해했네요.”

Hellena은 목소리를 최대한 침착하게 유지하며 말했다.

그녀는 다시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정확히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오늘 밤이 되어서야 그녀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Hellena은 몸을 돌려 힘없이 전용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잠깐.”

단 한마디에 그녀의 발이 대리석 바닥에 못 박힌 듯 멈췄다.

Hellena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Kael이 발코니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와인 잔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은 뒤 그녀에게 다가왔다.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를 완전히 꿰뚫었다.

“돈을 주지.”

Kael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Hellena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정말입니까, 대표님?”

“네가 방금 요청한 금액보다 더 줄 수도 있어.”

압도적인 안도감과 갑작스러운 경계심 사이에서 그녀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Kael Willian에게 공짜란 존재하지 않았다.

Kael은 정확히 두 걸음 앞에서 멈췄다.

그의 크고 위압적인 체격은 Hellena을 단숨에 압도했다.

“조건이 하나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팽팽하게 조여드는 것 같았다.

Hellena은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조건입니까, 대표님?”

Kael의 표정은 여전히 읽을 수 없었다.

“나와 결혼해.”

순간 Hellena을 둘러싼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상사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네? 대표님…… 결혼이요?”

Kael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조금의 농담기도 없었다.

마치 평생을 함께할 신성한 결혼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 계약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똑똑히 들었을 텐데, Hellena.”

“Kael 대표님…… 농담하시는 겁니까?”

“나는 결혼을 농담으로 이용하지 않아.”

그의 어조는 단호했고, 반박할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았다.

Hellena의 세계가 다시 한번 균형을 잃었다.

오늘 밤은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황당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Herry에게 배신당하고, 사채업자들에게 협박당하고, 이제는…….

자신의 상사에게 결혼을 청혼받았다.

“저……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 됩니다.”

Hellena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목소리는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았다.

“간단해. 너는 당장 돈이 필요하고, 나는 당장 아내가 필요하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어딘가 알 수 없는 의미를 품고 있었다.

Hellena은 눈앞의 냉엄한 남자를 바라보며 속임수나 숨겨진 의도가 있는지 조금이라도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Kael은 여전히 그녀가 알고 있던 그대로였다. 돌처럼 차가운 남자.

“왜 하필 저입니까, 대표님?”

그녀는 결국 물었다.

자신의 주변에는 완벽한 몸매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왜 하필 자신이란 말인가?

Kael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 관계에 감정을 끌어들이는 아내가 필요하지 않아.”

그 솔직한 대답에 Hellena은 숨이 턱 막혔다.

“내 어머니 앞에서 Willian 부인의 역할을 맡아 줄 만큼 프로페셔널한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Kael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역할.

그 단어가 Hellena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본능이 위험하다고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었다.

Kael처럼 무자비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사자 굴에 걸어 들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런 계약 결혼은 언제나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사채업자들의 흉악한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에게 남은 22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돈 한 푼 없이 이 아파트를 나선다면 내일 밤까지 그녀의 인생은 끝날 것이었다.

“그럼…… 제가 대표님의 제안을 거절하면 어떻게 됩니까?”

Hellena이 낮게 속삭였다.

Kael은 무관심하게 한쪽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출구는 네 뒤에 있다. 선택은 네 몫이야, Hellena.”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숨 막히는 긴장감만이 그 자리를 채웠다.

Hellena은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극단적인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쪽 길은 확실한 파멸로 이어졌다.

다른 한쪽 길은 폭군과 함께하는 불확실한 미래로 이어졌다.

“지금 대답이 필요해.”

Kael은 플래티넘 시계를 힐끗 바라보며 재촉했다.

“내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너도 마찬가지고.”

Kael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는 듯 Hellena의 풍만한 몸에 숨겨진 두려움 하나하나를 읽어 내려갔다.

Hellena은 힘겹게 침을 삼켰다. 목구멍에 걸린 덩어리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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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3장헬레나가 나선형 계단을 따라 1층 거실로 내려오자, 긴 소파에 한가롭게 앉아 있는 두 여자의 모습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한셀 부인과 비비안 휠러는 여전히 파티 때 입었던 우아한 드레스 차림으로 차분하게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었다.헬레나의 경직된 발소리가 두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비비안이 먼저 돌아서더니, 헬레나의 손에 들린 가방을 발견하자마자 얼굴 가득 승리감에 도취된 미소를 지어 보였다."어머나... 드디어 정신을 차렸나 보네." 비비안이 온 거실에 울려 퍼지도록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비꼬았다. "그래도 아직 염치는 조금 남아 있나 봐? 드디어 이 집에서 나가는 걸 보니 말이야."한셀 부인은 유리 탁자 위에 도자기 찻잔을 내려놓고는, 한때 늘 감싸고 아껴주던 시어머니로서의 따스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차갑고 딱딱한 표정으로 헬레나를 바라보았다."드디어 자각했다니 다행이구나." 한셀 부인이 가슴 앞에 팔짱을 끼며 차갑게 말했다. "카엘이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미래에 맞는 여자를 선택했어. 이곳은 너 같은 여자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단다."헬레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글래머러스한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퍼져나갔지만, 그들 앞에서 조금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다툴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들의 조롱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그나마 남아 있는 적은 기력마저 낭비하는 일일 뿐이었다. 헬레나는 평온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의 모욕을 무시한 채 현관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헬레나! 기다려!"거친 목소리가 거실의 팽팽한 정적을 깨뜨렸다. 흰 셔츠가 약간 어지럽혀지고 뺨에는 여전히 희미한 붉은 자국이 남아 있는 카엘이 계단을 달려 내려왔다. 현관문 손잡이에 단 한 걸음만을 남겨둔 헬레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패닉으로 크게 흔들렸다.그는 아내를 따라잡아 막아서려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지만, 한셀 부인이 즉시 소파에서 일어나 아들의 건장한 팔을 낚아채 잡았다."카엘! 멈춰라!"

  • 통통한 비서, 상사와 계약 결혼하다   82

    제82장스미스 가문 저택의 마스터 베드룸 안으로 헬레나가 발을 들여놓았을 때, 방 안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적막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창밖의 보슬비는 한층 더 세차어져, 마치 통통한 여인의 산산조각 난 심장을 함께 슬퍼해 주기라도 하듯 창문 유리창을 부드럽게 두드렸다.헬레나는 약간 젖어버린 네이비 벨벳 드레스 자락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침실 불을 켰다. 여전히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으로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를 벗어던지고, 자신이 가진 가장 단순한 평복인 헐렁한 면 티셔츠와 무난한 긴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화장의 흔적도, 진주 귀걸이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남아있는 것이라곤 붉게 부어오른 동그란 두 눈을 한 창백한 얼굴뿐이었다.헬레나는 옷장에서 중간 크기의 캐리어를 꺼내 들었다. 그녀는 수수한 옷가지들을 하나씩 접어 캐리어 안에 차곡차곡 담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카엘이 사주었던 그 많은 사치품이나 고급 드레스, 보석류에는 단 하나도 손대지 않았다. 옷장 안에 있던 그 모든 옷과 장신구들을 그대로 남겨두었다."이제 떠날 시간이야." 헬레나가 적막한 방을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체념이 깔려 있었다. "사장님과의 이 말도 안 되는 관계를 끝내야겠어."견딜 수 없을 만큼 씁쓸하고 옅은 미소가 헬레나의 입술 위로 번졌다. 캐리어 안에 쌓인 옷가지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 위로 다시금 눈물이 억제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카엘 말이 맞았어... 내가 정말 너무 멍청했지." 그녀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더니, 이내 슬픔으로 가득 찬 텅 빈 웃음을 터뜨렸다. "침대 위에서 속삭이던 그 달콤한 말들, 따뜻한 속삭임, 사치스러운 약속들을 그렇게 쉽게 믿어버리다니. 내가 무슨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잠깐 가지고 놀다 버리는 장난감에 불과했던 거야."헬레나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냈다. 비록 심장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났지만, 그녀의 이성은 여전히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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