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여자를 장난감으로만 여기던 남자가, 자신을 손님으로만 대하는 여자에게 처음으로 장난감이 된다
Lihat lebih banyak#1화. 첫 만남
에덴에서 삼 년을 버틴 여자는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진서아처럼 삼 년 내내 가장 높은 자리를 지킨 여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에덴의 넘버원.
그 말은 단순히 얼굴이 예쁘다는 뜻이 아니었다. 예쁜 여자야 이곳에 차고 넘쳤다. 남자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어느 순간에 웃어야 하는지, 손끝을 얼마나 오래 머물게 해야 상대가 착각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진서아는 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실제로 대부분 그랬다. 처음에는 점잖은 척하던 남자도 술이 두 잔쯤 들어가면 서아의 손을 잡고, 세 잔째에는 다음 약속을 물었다.
서아는 그때마다 웃었다.
상대가 원하는 모양으로.
"서아야."
대기실 문이 열렸다.
거울 앞에 앉아 붉은 립스틱을 덧바르던 서아가 눈만 들어 실장을 봤다.
"오늘 VIP룸 들어가."
립스틱이 입술 위에서 멈췄다.
에덴에는 일반 룸과 VIP룸이 있었다. 일반 룸도 평범한 직장인이 드나들 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VIP룸은 차원이 달랐다.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재계와 정치권,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사람들이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찾는 방.
서아는 에덴에서 삼 년을 일했지만 한 번도 그 문 안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누군데요?"
"한율그룹 부사장."
실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한시준."
서아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한율그룹.
국내에서 돈과 권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한시준은 그 집안에서도 유난히 소문이 많은 남자였다.
잘생겼고, 오만하고, 여자관계가 복잡했다.
마음에 든 여자는 반드시 손에 넣고, 상대가 진심이 되면 미련 없이 버린다는 소문.
서아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날 지명했대요?"
"그래."
"보는 눈은 있네."
실장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서아는 진심이었다.
그녀는 검은 긴 머리를 한쪽 어깨 뒤로 넘겼다. 목선을 따라 진한 장미 향수를 뿌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려한 붉은 드레스가 몸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거울 속 여자는 완벽했다.
오늘 밤에도 중심은 자신일 것이다.
상대가 누구든.
VIP룸으로 향하는 복도는 유난히 조용했다.
두꺼운 카펫이 구두 소리를 삼켰다. 일반 룸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과 음악도 이곳까지는 닿지 않았다.
서아는 문 앞에 섰다.
직원이 문을 열어주자 어둑한 방 안으로 낮고 묵직한 향이 먼저 밀려왔다.
차갑게 마른 나무와 술이 섞인 냄새.
그리고 그 중심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 셔츠와 같은 색의 재킷. 길게 뻗은 다리를 느슨하게 벌린 채 소파 깊숙이 몸을 묻고 있었다.
첫인상은 컸다.
앉아 있는데도 방이 좁아 보일 정도였다.
검은 머리는 단정하게 갈라져 있었고, 날카로운 눈매 아래로 감정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쪽 귀에는 검은 피어싱이 박혀 있었고, 느슨하게 열린 셔츠 깃 위로 목을 타고 내려오는 문신이 보였다.
서아는 그의 시선을 느꼈다.
한시준은 인사를 건넬 생각도 없이 그녀를 훑고 있었다.
얼굴에서 시작한 시선이 목과 어깨, 허리를 지나 구두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노골적이었지만 조급하지 않았다.
물건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람처럼 여유로운 눈이었다.
서아는 그런 시선에 익숙했다.
오히려 자신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남자보다 솔직해서 편했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웃었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미소였다. 상대가 자신이 특별한 손님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서아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표정.
시준이 턱을 조금 들었다.
"진서아?"
"벌써 알고 계시네요."
"앉아."
명령에 가까운 말투였다.
서아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웃음을 유지한 채 그의 옆으로 걸어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앉았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남자가 한 번쯤 그 거리를 좁히고 싶게 만드는 위치였다.
"뭐 드실래요?"
서아가 술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시준이 먼저 병목을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이 닿기 직전이었다.
"내가 따르지."
"제가 할 일인데요."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네 일 아닌가?"
무례한 말이었다.
하지만 시준의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상대가 화를 내는지, 참는지 지켜보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서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손을 거뒀다.
"맞아요."
그리고 조금 더 환하게 웃었다.
"돈 많이 쓰는 손님 말은 잘 들어야죠."
시준의 손이 잠깐 멎었다.
서아는 못 본 척했다.
시준은 잔 두 개에 술을 따랐다. 큰 손이 크리스털 잔을 감싸자 잔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그가 서아의 잔을 내밀었다.
"한잔하지."
"좋아요."
잔이 부딪쳤다.
맑은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길게 울렸다.
서아는 술을 입에 머금었다. 독한 술이 혀를 스치고 목 안으로 흘렀다.
그 순간에도 시준은 술이 아니라 그녀를 보고 있었다.
"맛있네요."
서아가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몇 초간 이어진 침묵 끝에 그가 몸을 기울였다.
소파가 무게를 받아 낮게 울었다.
남자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서아는 피하지 않았다. 그의 숨결이 뺨을 스칠 만큼 가까워졌는데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시준의 시선이 붉은 입술에 닿았다가 다시 눈으로 올라왔다.
"그 미소."
"네?"
"방금 그거."
그가 낮게 말했다.
"오늘 나한테 몇 번째지?"
서아의 눈이 아주 잠깐 멈췄다.
시준은 그 미세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들어올 때 한 번."
그의 손가락이 소파 등받이를 천천히 두드렸다.
"앉을 때 한 번."
시선이 서아의 입술에 머물렀다.
"술 마시고 한 번."
시준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세 번 다 똑같은 미소더라."
서아는 그를 바라봤다.
자신의 웃음이 계산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남자는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정확히 횟수까지 세어가며 말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흥미가 생겼다.
불쾌함보다 먼저 든 감정이었다.
서아는 이번에는 눈꼬리를 조금 낮췄다. 입술의 힘을 풀고, 들킨 사람처럼 수줍은 표정을 만들었다.
완전히 다른 미소였다.
"이건 어때요?"
시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도 가짜고."
"여긴 진짜를 파는 곳이 아닌데."
"뭘 파는데?"
"손님이 진짜라고 믿고 싶은 거."
서아가 대답하며 그의 빈 잔을 채웠다.
술병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손끝이 시준의 손등을 스쳤다.
우연처럼 보이도록 계산한 접촉이었다.
대부분의 남자는 이때 숨을 멈추거나 손가락에 힘을 줬다.
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손을 뒤집어 서아의 손목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힘에 그녀의 팔이 멈췄다.
손가락이 가느다란 손목을 단단히 감쌌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놓아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서아의 시선이 붙잡힌 손목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이것도 서비스인가?"
시준이 물었다.
서아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예요?"
"방금 닿은 거."
"제가 닿았어요?"
"모르는 척까지 포함해서?"
시준의 엄지가 손목 안쪽을 느리게 눌렀다.
맥박이 뛰는 자리였다.
서아는 본능적으로 손을 빼지 않았다.
먼저 피하는 순간, 이 남자가 자신이 흔들렸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손님이 그렇게 느끼셨으면 그런 거겠죠."
"누구한테나 해?"
"필요하면요."
시준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서아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질투해서는 아니었다. 아직 그럴 단계도 아니었다.
자신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서아는 속으로 웃었다.
다루기 쉬운 남자였다.
다만 힘과 돈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 귀찮을 뿐.
"놓아주실래요?"
그녀가 부드럽게 물었다.
시준은 오히려 손목을 끌어당겼다.
서아의 몸이 그의 쪽으로 기울었다.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서아의 손바닥이 시준의 가슴 위에 닿았다. 얇은 셔츠 아래로 단단한 몸이 느껴졌다.
시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 낮게 웃었다.
"진짜로 싫으면 밀어내."
서아는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바라봤다.
날카로운 눈, 느긋하게 휘어진 입술, 자신이 거절당할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표정.
서아는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밀어내는 대신, 시준의 셔츠 깃을 가볍게 정리해줬다.
그의 눈빛이 한층 짙어졌다.
서아는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속삭였다.
"손님이 착각하셨나 봐요."
"뭘."
"제가 안 밀어낸다고 해서 원하는 건 아니에요."
그녀는 시준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냈다.
서두르지 않았다.
마지막 손가락까지 손목에서 떨어진 뒤, 서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갔다.
"지금은 손님이니까 참아드린 거예요."
시준이 턱을 쓸었다.
"손님 아니면?"
"그때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죠."
"뭘 하고 싶은데?"
서아가 웃었다.
이번에도 그가 처음부터 세고 있던 미소 중 하나였다.
"그건 손님이 알 필요 없어요."
두 시간 동안 시준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대신 서아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얼마를 써야 특별한 손님이 되는지, 에덴 밖에서도 이렇게 웃는지.
서아는 모든 질문에 능숙하게 답했다.
정답처럼 들리지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말들.
시준은 그녀를 관찰했고, 서아는 그가 원하는 반응을 골라 보여줬다.
시간이 끝났을 때 먼저 일어난 사람은 서아였다.
"벌써 끝났나?"
"예약 시간이 끝났어요."
"더 있지."
"다음 손님이 기다려요."
시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 다음에 다른 놈을 받아?"
서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잔을 정리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내가 더 내면?"
"오늘은 안 돼요."
처음으로 시준의 제안을 단번에 잘라냈다.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아는 자신이 세운 순서를 바꾸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중요한 손님이라도 첫날부터 예외를 주면 안 됐다.
서아는 가방을 들고 문 쪽으로 향했다.
"진서아."
그녀가 돌아봤다.
시준은 소파에 앉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주 같은 시간."
"예약은 실장님 통해서 해주세요."
"네가 기다린다고 해야 예약하지."
서아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원하는 말을 알고 있었다.
"기다릴게요."
완벽한 접객용 미소였다.
문을 열기 직전, 시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말도 거짓말이지?"
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깨 너머로 그를 돌아보며 웃었다.
무엇을 믿을지는 손님의 몫이라는 듯.
문이 닫혔다.
복도에 나온 서아는 손목을 내려다봤다.
시준에게 붙잡혔던 자리에 희미한 열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손목을 한 번 문지르고 다음 방으로 걸어갔다.
조금 까다롭고, 돈이 많고, 자신감이 지나친 남자.
그뿐이었다.
VIP룸에 홀로 남은 시준은 한동안 닫힌 문을 바라봤다.
방 안에는 진한 장미 향이 남아 있었다.
시준은 여자에게 거절당해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자신에게 아무 감정도 갖지 않은 여자와 만나본 적이 없었다.
서아는 그에게 잘해줬다.
지나치게 완벽하게.
그래서 더 불쾌했다.
자신이 아니라 손님을 상대했다는 사실이 선명했으니까.
시준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에덴 실장에게 전화를 걸자 상대는 첫 신호가 끝나기도 전에 받았다.
"다음 주 같은 시간."
시준은 닫힌 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같은 방, 진서아."
통화를 끊은 그의 입가에 느린 미소가 번졌다.
다음에는 저 여자가 자신을 보게 만들 생각이었다.
돈을 쓰는 손님도, 한율그룹 부사장도 아닌 한시준을.
그때의 시준은 아직 몰랐다.
진서아의 시선을 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장난감이 된 것은 자신이었다.
# 특별외전 - 우리가 사는 방식## 진서아 시점결혼했다고 해서 라운지의 규칙이 바뀌지는 않았다.한시준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런데 결혼 후 첫 금요일, 그는 예약도 없이 라운지 문을 열고 들어왔다.나는 바 안쪽에서 그를 바라봤다."오늘 예약 없는데요."시준이 멈췄다."남편도 예약해야 해?""손님으로 올 거면요."그의 표정이 굳었다.라운지에는 이미 손님이 몇 명 있었다.그중에는 강도현도 있었다.시준은 도현과 바 위에 놓인 디저트 상자를 번갈아 봤다.결혼 전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조합이었다."그럼 손님 아니면.""뭐로 왔는데요?"시준은 잠시 생각했다."너 보러.""그건 영업 끝나고요."직원 한 명이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시준은 불쾌한 얼굴로 바 끝자리에 앉았다."그럼 예약할게.""오늘은 자리가 없어요.""여기 비어 있잖아.""그 자리는 예약석이에요.""누가.""곧 오세요."시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나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예약자를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남자라면 취소시키고 싶을지도 몰랐다.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잠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끝나면 연락해.""가려고요?""네 규칙이라며."화를 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표정만으로도 라운지 온도가 내려갈 정도였다.그래도 나가야 할 때 나갔다.나는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괜찮으세요?""뭐가?""부사장님 화난 것 같은데.""맞아.""그런데 그냥 보내요?"나는 새 잔을 꺼냈다."화난 건 본인이 해결해야지."그날 마감을 마치고 나가자 시준은 건너편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정확히 네 시간 동안.차에 타자마자 그가 물었다."예약자 누구였어.""여자 손님이요."굳어 있던 얼굴이 아주 조금 풀렸다."그걸 먼저 말했어야지.""왜요?""괜히 기다렸잖아.""여자면 괜찮고 남자면 안 괜찮아요?"시준은 안전벨트를 매주는 척 내 쪽으로 몸을 기울
#특별외전 - 한시준 시점(2)## 네가 내게 걸어오던 날결혼식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많이 내리지는 않았다.문제는 비가 내린다는 사실 자체였다.나는 한 시간 단위로 기상 자료를 확인했다.오후에는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만 가능성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실내로 옮길까요?"행사 담당자가 물었다.정원과 연결된 실내 공간은 이미 준비돼 있었다.하객을 전부 수용할 수 있도록 테이블 배치도 바꿀 수 있었다.결정만 하면 됐다.나는 정원 끝의 작은 단상을 바라봤다.서아가 그곳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 상상된다고 말했다.그래서 이 장소를 골랐다.정확히는 서아가 골랐고, 내가 동의했다."기다려."나는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서아에게 전화하면 드레스와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비 이야기부터 꺼낼 것이다.그녀가 직접 결정하게 해야 했다.그 사실은 알았지만 기다리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오전 열한 시가 넘어 서아에게 메시지가 왔다.[비 오는 것도 괜찮아요.]나는 화면을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다."밖 봤어?"[봤어요.]"정원 바닥 젖어."[의자만 닦으면 되죠.]"드레스도 젖을 수 있어."[그럼 조금 젖죠.]"감기 걸리면."[한시준 씨.]서아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였다.[저 결혼하러 가는 거지 야외 촬영하러 가는 거 아니에요.]"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원래대로 해요.]"비 계속 오면."[우산 쓰고요.]역시 진서아였다.나는 담당자에게 정원 예식을 그대로 진행하라고 말했다.대신 통로 위에 투명 천막을 설치하고, 하객 자리에 우산과 담요를 추가했다.서아가 부탁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선택을 바꾸는 일은 아니었다.비를 멈출 수는 없어도 그녀가 불편하지 않게 준비할 수는 있었다.하객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강재혁은 나를 보자마자 웃었다."긴장하셨습니까?""아니.""넥타이가 비뚤어졌습니다."손을 올려 확인하자 멀쩡했다.재혁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농담입니다.""오늘 끝나고 보자.""결혼
#특별외전 - 진서아 시점(2)## 내가 고른 결혼식결혼식을 하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다만 한시준과 결혼한다는 이유로 내 결혼식까지 한율그룹 행사가 되는 건 싫었다.그 생각이 더 확실해진 건 한율 비서실에서 보내온 첫 번째 결혼식 기획서를 본 뒤였다.서울 시내 특급호텔 그랜드볼룸.하객 예상 인원 천이백 명.정재계 주요 인사와 계열사 대표, 해외 협력사 관계자까지 포함된 명단.결혼식이라기보다 한율그룹 후계자의 공식 발표회에 가까웠다.나는 기획서를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확인한 뒤 시준을 바라봤다."이거 봤어요?"시준은 소파에 앉아 태블릿으로 업무 자료를 확인하고 있었다."뭘."나는 두꺼운 기획서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표지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한율그룹 한시준 부사장 결혼식 진행안.신부 이름은 작은 글씨로 그 아래에 붙어 있었다.진서아."제 이름이 부제예요?"시준이 문서를 펼쳐보더니 표정이 굳었다."누가 보냈어.""비서실이요."그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집었다.나는 그의 손을 눌렀다."또 전화부터 하지 말고요.""이건 내가 지시한 게 아니야.""알아요."시준이 원했다면 신부 이름조차 없는 결혼식 기획서가 왔을지도 모른다.그래도 그는 적어도 내게 묻기 전에는 장소조차 정하지 않았다."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시준이 물었다.나는 기획서를 다시 넘겨봤다."여기 있는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건 하나 있어요.""뭔데.""음식."시준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그것만?""네."나는 기획서를 덮었다."결혼식은 작게 하고 싶어요."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얼마나 작게.""제가 얼굴과 이름을 아는 사람만 부를 수 있을 정도로요.""그럼 한율 쪽은.""시준 씨가 정말 부르고 싶은 사람만요."시준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한율 후계자의 결혼식은 개인 행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이미 여러 번 들었을 것이다.회사와 집안, 언론과 투자자까지 모두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내가 그 현실을
#특별외전 - 한시준시점 (1) ## 처음으로 갖지 않기로 한 사람결혼한 뒤에도 진서아는 내 것이 아니었다.법적으로는 배우자였고, 같은 주소에 살았으며, 서류 위에는 내 이름 옆에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하지만 그것이 서아를 소유할 권리는 아니었다.그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망쳤다.에덴에서 진서아를 처음 본 순간,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정확히는 가지고 싶었다.긴 검은 머리와 붉은 입술,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시선을 자신에게 모으는 태도.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여자였다.그런 여자는 익숙했다.원하는 것을 물어보고, 적당한 가격을 제시하면 됐다.그런데 진서아는 달랐다.완벽하게 웃으면서도 나를 보지 않았다.내가 무슨 말을 원하는지 알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알았지만, 그 안에 자신은 없었다.세 번의 미소가 전부 같다고 말했을 때 그녀의 눈빛이 처음으로 조금 변했다.그 짧은 흔들림이 마음에 들었다.그래서 손목을 잡았다.그녀가 나를 의식하게 만들고 싶었다."밀어내지 않는다고 원하는 건 아니에요."서아가 내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냈다.기분이 나빴다.내 손을 거절한 여자는 있었지만, 내가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치듯 말한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날부터 나는 진서아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단순한 승부라고 생각했다.다른 손님에게 보이는 얼굴과 내 앞에서 보이는 얼굴을 다르게 만들면 내가 이기는 것이었다.비싼 귀걸이를 보냈다.당연히 하고 올 거라고 생각했다.서아는 돌려보냈다.대신 값도 알 수 없는 검은 귀걸이를 하고 나타났다.내가 선택한 것을 거절하고 자신이 선택한 것을 보여주는 여자.불쾌한데도 눈을 뗄 수 없었다.일부러 늦게 도착한 날에도 그녀는 기다리지 않았다.나를 위해 시간을 비워두는 대신 다른 손님을 받았다.다음부터는 늦지 말라고 했다.그 말을 듣고도 다시 예약했다.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때부터 이미 지고 있었다.그녀가 정한 시간에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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