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이런 인생의 중대사를 치르는데 영상 하나 남기지 않았을 리 없었다.강희진이 집에 돌아왔을 때, 강학용이 자신의 청혼 영상을 보고 있는 걸 발견하곤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런데 강학용이 한 말은 고작 두 마디뿐이었다.“이 반지 보석, 꽤 좋은 물건이구나. 방주헌이 돈 좀 썼겠어.”강희진은 어색하게 웃었다.“아버지, 보는 포인트가 참 남다르시네요.”“근데 원래 청혼이라는 게 반지 끼워주고 나면 포옹도 하고 키스도 하는 거 아니냐? 너희는 왜 그런 게 하나도 없냐?”강희진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정말이지 너무 정확한 질문이었다.청혼 당일 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분 상태였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정신은 붕 떠 있었고, 세세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그러니 포옹이나 키스 같은 걸 떠올릴 정신이 있었을 리 없었다.하지만 더 예상 못 한 건, 아버지가 영상을 다 보고 내린 결론이 고작 그거였다는 사실이었다.“맞다. 정한이는 요즘 뭐 하고 지내냐? 통 얼굴 보기가 힘드네.”강학용은 청혼 영상을 다시 돌려 보며 물었다.강희진은 웃으며 답했다.육남혁이 예전부터 연주를 위해 목걸이 하나를 주문 제작했는데, 그걸 강정한이 맡고 있었다. 결혼 전에 꼭 직접 전해주고 싶어 최근 며칠째 밤새워 작업 중이었다.공정이 꽤 복잡한 탓에, 결국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순금으로 만든 목걸이였다.연주가 혼례 때 입을 드레스와도 잘 어울릴 터였다.육남혁은 결혼식 이틀 전부터 연씨 집안 친척들을 경성으로 모셔와 호텔에 머물게 했다. 신부 맞이 역시 호텔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온유란은 이른 아침 서은주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신부 보러 호텔로 오라는 연락이었다.온유란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했다.하이석은 들러리 명단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찍 육씨 저택으로 향했다.두 사람은 각자 따로 움직이기로 했다.온유란이 호텔 스위트룸에 도착하자 자연스레 시선이 쏠렸다.서은주가 너무도 친근하게 그녀의 팔짱을 끼고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
차는 흔들림 없이 매끄럽게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운전대를 잡은 왕 기사는 백미러 너머로 하이석의 표정을 몇 번이고 살폈다.무언가 단서를 찾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온씨 집안 친자 확인 결과를 본 뒤부터 하이석이 계속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온씨 쪽에서 재산 빼돌리는 건 어떤 루트를 쓰고 있어?”하이석이 물었다.“떳떳하지 못한 방식입니다. 온씨 그룹 직원들은 몇 달째 월급도 못 받아서 집안 살림이 다 무너질 지경인데, 회사 대표가 뒤로 재산 빼돌린다는 걸 알게 되면 아마 산 채로 찢어 죽이려 들 겁니다.”“지금까지 얼마나 옮겼지?”“아직은 일이 커질까 봐 일, 이억 정도만 시험 삼아 움직인 것 같습니다. 원래 이런 뒷돈은 절차도 복잡하고 흔적도 잘 안 남기니까요. 아마 이후엔 더 크게 움직일 겁니다.”“누구 앞으로?”“온창섭 아들인 온호 명의로 만든 해외 계좌입니다.”하이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온창섭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고 있었다.온유란의 새어머니가 결국 사모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도, 아들을 낳아줬기 때문이겠지.“계속 붙어서 지켜봐.”“알겠습니다. 그리고 온씨 집안 관련해서 하나 더 나온 게 있습니다.”왕 기사의 말이 끝나자, 하이석은 또 한 번 웃었다.온씨 집안 일은 파고들수록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 있었다.*온유란이 온창섭 친딸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계속 번져 나갔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화제들에 밀려 열기는 자연스럽게 식기 시작했다.육남혁과 연주의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육씨 가문에서 크게 떠들며 준비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관심은 자연히 쏠릴 수밖에 없었다.강학용까지 직접 회성에서 올라올 정도였으니 말이다.하나는 축하를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서은주와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였다.육수린은 강학용 앞에서 노래 한 자락 뽑아주었다.발음은 다 뭉개지고 박자도 엉망이었지만 강학용은 그걸 듣고도 함박웃음을 지었다.반면, 육남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서은주는 집에 돌아간 뒤에도 육강민 앞에서 연신 하이석 이야기를 꺼냈다.“예전엔 하이석 씨랑 자주 엮일 일이 없어서 그냥 젠틀하고 차분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완전 아내 바보더라고요. 일 처리하는 것도 얼마나 시원시원한지 몰라요.”육강민은 코웃음을 쳤다.“협상 테이블에서 얼마나 뻔뻔한 인간인지 못 봐서 그래.”“질투하는 거 아니에요?”“난 이미 아내도 있고 아들딸도 있는데, 내가 뭐 하러 저 늙은이를 질투해.”하이석은 기껏해야 몇 살 더 많을 뿐인데, 어느새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서은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온씨 집안 일은… 아직 안 끝난 것 같아요.”*온씨 가문의 일은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후 방주헌이 나서서 실시간 검색어를 내리긴 했지만, 여론의 열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온유란을 안쓰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녀 어머니가 바람을 피웠다며 욕하는 이들도 있었다.심지어 온창섭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예전에 밖에서 여자를 둔 것도 이유가 있었다느니,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자가 어떻게 참겠느냐느니 하는 말들이 끝없이 쏟아졌다.인터넷은 그야말로 온갖 말들로 들끓고 있었다.하지만 온유란은 며칠 내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냈다. 헤이엘과 삼정 병원을 오가고, 틈틈이 재봉 도구를 사러 다닐 뿐이었다.자신은 괜찮으니, 하이석에게 괜히 일까지 미루지 말라고도 했다.하이석 역시 그녀가 특별 대우를 받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출근하고 퇴근했지만, 이전부터 그녀를 지키던 경호원 두 명만큼은 끝내 거두지 않았다.그날 밤, 하이석은 육강민과 사업 이야기를 나누기로 되어 있어 늦게 들어갈 예정이었다.밤 여덟 시쯤.그는 부하에게서 사진 한 장을 전달받았다.사진 속 온유란은 헤이엘 근처 광장 계단에 홀로 앉아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텅 빈 눈빛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도자기 인형 같았다.“남은 얘기는 다음에 해.”하이석은 짧게 말한 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강
설마… 아무 말도 없이 정말 하씨 가문에 시집간 걸까.온유정은 얼굴이 퉁퉁 부어 돼지처럼 변해 있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제비집 같았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엉망으로 울고 있었다.하지만 온창섭은 그녀를 달랠 여유조차 없었다.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온유란은 원래 정에 약한 아이라는 걸. 자신이 부녀의 정을 내세워 사정한다면, 어쩌면 온씨 가문에도 마지막 숨통 정도는 남겨줄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출생이 드러난 이상, 그마저도 끝이었다.하이석의 태도를 보면, 온유란이 마음만 먹고 입을 여는 순간 온씨 가문은 그대로 무너질 게 뻔했다.현정민은 온창섭을 차갑게 흘겨보며 비웃듯 말했다.“온씨 가문 핏줄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러세요? 우린 애초에 유란이를 아낀 거지, 당신들 집안 보고 데려온 거 아니에요.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다니, 속이 뻔히 보이는군요. 차라리 어릴 때 시골에 보내 키운 게 다행이었어요. 당신들 집안 같은 환경에서 컸으면 애 진작 망가졌을 테니까.”온유정은 처음엔 온유란의 출생을 폭로하면 하이석이 분명 그녀를 혐오하고 버릴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현정민까지 직접 나설 줄이야.처음부터 끝까지 온유란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씨 가문 사람들은 끝까지 그녀의 편을 들었다.그 사실이 온유정을 더욱 분하게 만들었다.동시에 미칠 듯 질투났다.왜 온유란만 저렇게 운이 좋은 걸까.하지만 얼굴이 심하게 부어 입조차 제대로 열 수 없었다.온유란은 낯빛이 참담하게 굳은 온창섭을 바라보며 단 한 마디만 물었다.“전… 정말 당신 친딸이 아니에요?”온창섭은 고개를 떨군 채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침묵이 곧 대답이었다.그 역시 이제는 체면이 남아 있지 않았다.그럼에도 무언가 변명이라도 해보려 애써 입을 열었다.“유란아… 그래도 내가 예전엔 너한테 잘해줬잖니. 너도 기억하지? 사실 그동안 난 정말 너를…”“온창섭.”현정민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오늘 아침을 많이 안 먹어서
지금의 하이석은 표정이든 분위기든, 쉽사리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만드는 냉랭한 거리감이 있었다.사람들은 모두 하씨 가문의 권세를 탐냈지만, 동시에 그 권세를 두려워했다.“하, 하 대표님…”온창섭은 비위를 맞추듯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곁에 있던 온유정을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얼른 일어나.”하이석은 차갑게 시선을 내리깔았다.“지난번 일로 온 대표도 충분히 교훈을 얻으신 줄 알았습니다만. 설마 이렇게까지 기억력이 나쁘실 줄은 몰랐군요.”그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서늘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살기가 몰아치는 듯해, 온창섭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오, 오늘 일은 오해입니다. 오늘은 유정을 데리고 사과드리러 온 겁니다.”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유정이 울분 어린 얼굴로 외쳤다.“하 대표님, 온유란은 애초에 우리 온씨 가문 사람이 아니에요!”한바탕 얻어맞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그녀는 이를 악문 채 온유란에게 악의적인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저 여자, 절대 좋은 마음으로 대표님 곁에 있는 거 아니에요.”“우리 아빠가 돈 안 주기 시작하니까 바로 대표님한테 붙은 거잖아요. 결국 돈 보고 접근한 거라고요. 대표님도 속지 마세요. 저 여자 그냥 잡종이에요. 대표님 같은 분이랑은 애초에 어울리지도 않는다고요!”온유란은 맞고도 저렇게까지 독한 말을 쏟아내는 온유정을 보고 순간 멍해졌다.혼자 들을 때야 참고 넘길 수 있었지만 하이석 앞에서까지 저런 말을 들려주고 싶진 않았다.무슨 말을 꺼내려던 순간, 서은주가 조용히 그녀를 붙잡았다.서은주는 옆에 서 있던 하씨 가문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따뜻한 물 한 잔만 부탁드릴게요.”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곧 뜨거운 물이 담긴 컵이 건네졌고, 서은주는 그걸 온유란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형수님, 손 좀 녹이세요.”온유란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러자 서은주가 몸을 가까이 기울이며 작게 속삭였다.“하이석 씨가 계시잖아요. 저런 인간 상대하는 건 남편한
하이석의 본가는 북쪽 외곽에 있어 삼정 병원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그러니 병원까지 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그는 운전하는 내내 계속 전화를 걸어 현장 상황을 확인했다. 온유란이 곤란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혼자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현정민은 연신 한숨을 쉬었다.“남의 가정을 깨고 들어가는 것들은 원래 체면도, 양심도 없는 법이지.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비니 말이야. 온씨 집안 일은…”그녀가 혀를 찼다.“아직 끝난 게 아니야.”하이석은 아무 말 없이 액셀을 깊게 밟았다.차는 그대로 도로 위를 미친 듯 질주했고, 현정민은 욕이 목끝까지 차오를 지경이었다.*그 시각, 삼정 병원.온유정은 일부러 일을 더 크게 만들려는 듯 바닥을 구르며 악을 써댔다. 체면이고 뭐고 완전히 내던진 모습이었다.주변에서 지켜보던 의료진과 환자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다.돈 많은 집에서 키운 딸인데 어쩜 저렇게 버릇이 없냐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물론 그렇다고 구경을 멈추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과 영상을 찍는 이들만 점점 늘어갔다.온유정은 그 모습을 보자 더 기세등등해졌다.“온유란, 넌 그냥 사생아야! 네 몸에서 흐르는 피는 애초에 우리 온씨 집안 핏줄이 아니라고. 네 엄마가 대체 어떤 놈이랑 붙어먹고 널 낳았는지나 모르겠네. 역시 피는 못 속여. 엄마는 바람피우고, 딸은 몸 팔고!”그 말에 도정숙은 온몸을 떨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원래 점잖고 교양 있는 사람이었던 그녀는, 살면서 그런 막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욕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으니 얼굴만 붉게 달아오른 채 온유란의 손을 꼭 붙잡고 계속 말했다.“저 말 듣지 마. 다 헛소리야.”온유정이 비웃듯 말했다.“헛소리? 그럼 내가 친자 확인서라도 가져와 줄까?”창백해진 온유란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통쾌함과 우쭐함이 가득했다.온유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왜 아빠가 널 시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