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대리사경이 엄숙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폐하, 관병들이 모용걸의 저택에서 수색해낸 장부입니다. 군량만 횡령한 것이 아니라 운성상인들로부터 뇌물까지 받은 정황이 드러났습니다.”적우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남제는 홍매강의 관할권을 장악하고 선박과 매매 금지령을 내렸다. 모용걸은 그들에게 관선으로 위장하여 홍매강을 통행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던 것이다.“운성 상인들은 고가로 자철광을 적우부에 팔고 모용걸은 그들로부터 3할의 수고비를 받았던 거로 알려졌습니다.”소욱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했다.몰래 자철광을 타국에 내다 팔다니.나라를 팔아먹은 죄로 모용걸은 열 번 죽여도 모자란 놈이었다.오마분시로도 그가 저지를 죄를 처벌하기엔 부족한 것 같았다.당일, 감옥에 수감된 모용걸은 혹독한 심문을 못 견디고 모든 죄를 자백하였다.그의 말에 따르면 운성의 관료와 상인, 도적들이 결탁하여 나라가 운영하는 자철광으로 수많은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관부에 납부하는 자철광은 대부분 다른 광석으로 채워졌다. 관부의 매수가가 너무 낮다는 것이 이유였다.반면 적우부에 파는 자철광은 상등품이었다.이런 비밀 거래는 이미 선황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사실을 전해들은 소욱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운성이 아주 썩어들어가고 있었구나!”분명 엄격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대리사경이 계속해서 말했다.“폐하, 모용걸 사건을 듣다 보니 몇몇 흠차 대신들의 죽음이 떠올랐습니다.”“선황께서 즉위하셨을 때, 여러 번 흠차 대신을 운성으로 보내 자철광의 채굴 과정을 감독하게 하였죠.”“하지만 그 관원들은 모두 인황산을 경과할 때 벼랑에서 추락하여 숨졌습니다.”“귀안록에 따르면 인황산은 산세가 가파르고 험준한 산봉오리로 이루어져 있어 평소에도 원혼이 자주 출몰한다는 괴담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던 흠차 대신들이 모두 벼랑에서 추락하여 시신도 찾지 못하게 되었지요.”“그 뒤로 황성의 대신들은 운성으로 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지
봉구안이 일어서며 말했다.“폐하, 사복 순방은 대외적으로 위장 신분이 필요합니다.”“신변에 호위무사들을 많이 데리고 나가면 분명 의심을 사게 될 것입니다. 일부 지방 관료들은 패주 노릇을 하며 각지에 자기 사람들을 풀어 동향을 관찰하게 하지요. 눈에 띄는 외부인이 성에 진입하면 경계를 불러일으킬 것이고 놈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신첩과 동행하면 폐하의 부인으로 위장할 수 있고 오라버니는 많은 강호인사들과 인맥이 있으니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소욱은 부인이라는 말에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그녀가 이렇게 출궁을 주장하는 이유는 아마 그의 안위를 걱정해서일 것이다.그녀는 내력을 희생해가며 그를 위해 해독을 해주었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위해 날아오는 화살을 대신 맞지 않았는가.처음에는 황후가 사복 순방에 동행하겠다고 하였을 때 황당하다고만 생각했지만 달리 생각해 보니 이번 출궁은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황후는 출중한 무공실력을 지니고 있고 침술로 독을 해독할 수도 있으니 중요한 순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그리고 그녀가 제기한 이유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건 황후가 진짜 봉장미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녀가 어릴 때부터 무공을 연마한 것에 관해서 그는 아직도 의문을 품고 있었다.진길이 조사한 데 의하면 봉장미는 어릴 때부터 가야금과 바둑, 서예와 그림을 배웠고 나중에는 황성에서 손에 꼽히는 여 수재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머리가 비상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하지만 그가 아는 봉장미는 두터운 내공에 각 문파의 무공 초식을 꿰고 있으며 아주 뛰어난 경공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었고 그것은 절대 몰래 한가할 때 배워서 이룰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문무를 겸비한 인재가 하필이면 여인이라니!하지만 그녀가 분신술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아마 해내기가 불가능한 것들이었다.분명 그 과정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있을 것이다.그는 이번 출궁의
겉보기에는 아주 초라한 방이었는데 침상 위에 온갖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침상 옆의 욕조 주변에는 전신 거울이 놓여 있었다.창가에는 긴 의자가 있었는데 모양이 굉장히 독특했다.객잔 주인은 무표정한 그들의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우리 객잔에서 가장 잘나가는 방인데 별로 마음에 안 드십니까?”소욱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괜찮군.”그는 진길을 시켜 은화를 지불하라고 지시했다.객잔 주인은 그제야 싱글벙글 웃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소욱이 안으로 들어간 후, 봉구안도 당당히 안으로 들어갔다.사내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그녀는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오라버니께서 그러셨는데 많은 검은 객잔들이 환각향을 쓴다고 합니다.”소욱은 별로 개의치 않고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이때, 봉구안이 갑작스럽게 그를 밀쳤다.“조심하세요!”벽 안쪽에 숨겨진 장롱이 보였는데 건드리기만 하면 화살을 발사할 것 같았다.두 사람이 서로 시선을 교환한 후에, 소욱은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장롱 안에는 민간인 화가가 그린 춘궁도가 들어 있었다.소욱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가장 먼저 불살라 버리라고 한 것들이었다.객잔은 관부의 수색을 피하기 위해 금기된 물건들을 숨겨진 장롱 안에 보관한 듯했다.멀찌감치 서 있던 봉구안이 궁금한 얼굴로 다가오자 소욱은 장롱 문을 닫고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별거 아니니 신경 쓸 거 없어.”봉구안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9월 중순의 기온은 점차 싸늘해지고 있었다.소욱은 방을 봉구안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어딘가로 나가서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봉구안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 신경도 안 쓰였지만, 그래도 홀로 방에 있자니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다음 날 아침, 소욱은 진길의 방에서 나왔다.여전히 풍채 늠름한 소욱에 반해 진길의 눈가는 거뭇거뭇했고 어딘가 힘이 없어 보였다.문을 열고 나온 봉구안은 그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폐하는 사실 여인이 아닌 사내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소욱은 당연히 그녀가 무슨 생각을
거대한 바위의 위력은 마차를 순식간에 산산조각내 버렸다.진길의 고함이 산골짜기에 울려퍼졌다.위기의 순간에 소욱이 마차에서 내리려던 순간, 옆에 있던 여인은 그보다 먼저 그의 손을 잡고 그를 바깥으로 이끌었다.그녀는 이미 진길이 주의를 주기 전에 바위의 동향을 예측하고 움직였던 것이다.그들이 마차를 벗어난 순간에 마차는 바위에 짓눌려 산산조각이 났다.놀란 말은 미친듯이 질주하다가 벼랑으로 추락했다.3인은 두 개의 거대한 바위 사이에 갇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후퇴할 수도 없었다.장검을 빼든 진길은 소욱의 앞을 가로막고 주변을 경계했다.“나리, 분명 놈들이 주변에 숨어 있을 겁니다!”소욱이 시선을 내리자 황후는 여전히 그의 손을 잡은 채, 진길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진길과 다른 점은 진길은 방어에 치중하였다면, 봉구안은 출구를 찾고 있었다.그녀는 이곳에서 목숨을 잃고 싶지 않았다.바위가 낙하하던 순간, 그녀는 절대 두 개뿐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고 분명 세 번째 바위가 떨어져 그들의 목숨을 취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그들은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살 수 있었다.하지만 험난한 산길에서 전방은 바위에 의해 가로막혔으니 어디로 도망간단 말인가!갑자기, 봉구안은 벼랑끝으로 걸음을 옮겼다.그 모습을 본 진길이 비명을 질렀다.“위험합니다!”그는 하도 당황한 나머지, 하마터면 마마라는 칭호까지 붙일 뻔했다.봉구안은 진길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곧이어 그녀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래로 뛰어야 합니다!”진길은 순간 아연실색했다.죽음을 자초하는 길 아닌가!봉구안은 벼랑 아래쪽을 가리키며 계속해서 말했다.“바위벽을 타고 자란 덩굴은 미인가시라는 품종인데 뿌리가 바위벽 내부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어 줄기는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뛰어내리면서 덩굴을 잡는다면...”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녀는 소욱을 끌고 아래로 뛰었다.진길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하지만 그는 비명을 지를
봉구안은 사내의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나가서 지원군이라도…”소욱이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아무데도 가지 말고 여기 있거라.”말을 마친 그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하지만 그의 손은 봉구안의 손목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봉구안은 안간힘을 써서야 겨우 그의 손아귀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손목을 보니 이미 뻘건 자국이 나 있었다.‘얼마나 꽉 잡고 있었던 거야…’봉구안이 밖으로 나가려는데 뜨거운 물을 들고 들어온 노부부가 그녀를 보고 재빨리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아씨!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혹시… 이대로 저 사내를 두고 떠나시려고요?”봉구안은 괜히 찔려서 얼굴을 붉혔다.노부부가 말했다.“아씨! 이대로 가시면 안 되지요! 아씨가 가면 저 안의 사내는… 혹시라도 이대로 죽으면 우리 두 늙은이들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입니까!”그들은 봉구안이 사내를 내팽개치고 혼자 도망갈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봉구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부드럽게 그들에게 말했다.“두고 떠나는 게 아니라 하인들과 함께 동행했는데 그 하인을 찾으러 가는 겁니다. 부군께서는 이미 고비를 넘겨서 걱정하지 않으셔도…”“어쨌든 이대로 떠나시는 건 아니됩니다! 우린 평범한 백성들이고 괜한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습니다!”할아버지는 강경한 태도로 대문을 잠가버렸다.할머니는 대야를 내려놓고 봉구안을 안으로 등떠밀었다.어린 손자도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곧이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 문이 밖에서 잠겼다.한 시진 후.소욱은 정신을 차렸다.눈을 뜬 그에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방 문을 바라보고 있는 봉구안의 모습이었다.무표정한 얼굴을 하고는 있지만 그녀의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봉구안도 침상에서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고개를 돌리자마자 약간은 우울해 보이는 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화살에 부상을 입은데다 높은 곳에 추락하다가 뼈를 다쳤는지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모양이었
갑자기 나타난 소욱 덕분에 봉구안은 도주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겉으로는 평온하고 침착하게 대답했다.“산길이 험난할 것 같아 진으로 가서 의원을 데려올 생각이었습니다.”아이는 바구니를 집어 봉구안에게 돌려주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누나, 산길은 전혀 험난하지 않아요.”소욱은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해명을 기다렸다.봉구안은 더 이상의 해명 없이 그들에게 물었다.“두 사람이 어떻게 같이 나왔지요?”아이가 소욱을 가리키며 대신 답했다.“누나의 부군이 저한테 누나 찾으러 같이 가달라고 했어요. 두 분은 금슬이 좋나 봐요. 마치 저희 부모님처럼 한시도 떨어져 있기 싫나 봐요!”소욱은 입가에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금슬이 좋긴 하지.”봉구안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그 뒤로 세 사람은 그 길로 다시 농가로 돌아갔다.방으로 들어온 소욱은 봉구안의 손목을 꽉 잡고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물었다.“나가서 뭘 하려고 했던 거지?”봉구안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담담히 답했다.“의원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소욱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다가 여러 차례 목숨 걸고 자신을 구해주었던 그녀의 마음이 떠올라서 다시 의심을 거두었다.하물며 이곳을 떠난들, 그녀가 어디로 갈 수 있을까?‘괜한 의심이었나.’하지만 해야 할 말은 꼭 해야 했다.“너의 신분을 잊지 말거라.”봉구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예.”한편, 오백은 송려에게서 가사약을 받았다.송려가 정중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안 쓰는 게 좋다고 전하거라.”“몸의 근간을 해치는 약이야. 심각하면 근맥이 모두 끊어지고 내력을 모두 소실할 수도 있어.”“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약이야. 이 약을 먹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다고 하지.”설명을 들은 오백은 불안에 떨었다.“그렇게 위험한 약이라고요!”송려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약은 다 독성이 있기 마련이야. 죽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약물이니
자객이 공격하는 동시에 봉구안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소욱은 그녀의 허리를 꽉 붙잡고 몸을 뒤집어 그녀를 아래로 숨겼다.어둠 속에 그녀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싸늘한 살기는 느낄 수 있었다.쾅!사내가 손을 뻗자 강력한 내력이 파도가 되어 침상 근처에 있는 자객들을 공격했다.털썩!몇몇 자객들이 바닥에 쓰러졌고 침상의 상대가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자 급기야 소리쳤다.“같이 덤벼!”곧이어 침상에서 한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그는 강력한 위압감을 풍기며 말했다.“같이 덤빈다고?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살인을 한지 정말 오래됐거든.”소욱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그대로 몸을 날려 한 자객의 가슴에 주먹을 꽂았다.그 자객은 신음 한번 못 내고 쓰러졌다.몸을 일으킨 봉구안은 조용히 상황을 살폈다.자객들은 소욱의 상대가 아니었다.잠시 후, 안뜰에 불빛이 보이더니 진길이 시위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섰다.“폐하를 호위하라!”황제의 내전 시위들이라 전부 일당 백하는 고수들이었다.그들은 자객들을 하나씩 쓰러뜨리기 시작했다.소욱이 음침한 목소리로 분부했다.“모두 끌고 가거라.”“예!”방 안은 여전히 불이 꺼진 상태였다.전투가 끝난 후, 소욱은 어둠 속에서 침상으로 돌아왔다.봉구안이 담담히 물었다.“일부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목을 끈 이유가 놈들을 유인하기 위함이었습니까?”소욱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그는 그녀의 앞에 서서 손으로 그녀의 턱을 붙잡아 치켜올리고 말했다.“왜 마취향이 너에게 통하지 않았는지 말해 보거라.”봉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되물었다.“신첩이 놈들과 공범이라고 생각하십니까?”그녀는 교묘히 화제를 돌렸다.소욱은 단지 그녀가 무공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그녀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황후, 짐의 인내심도 한계가 있어. 궁으로 돌아가기 전에 사실을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봉구안은 침묵을 택했다.소욱은 손을 뻗어 그녀를 침상에 쓰러뜨렸다.가까이 다가온 사내가 그녀
신속히 몸을 일으킨 봉구안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입가를 닦았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고 표정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상대가 황제가 아니었다면 주먹이 나갔을 것이다.따라서 몸을 일으킨 소욱은 어둠 속에서 그녀를 빤히 노려보았다.곧이어 그는 그녀의 팔목을 잡아당겨 자신과 시선을 맞추게 했다.“밀고 당기기라고 해도 거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거다.”봉구안은 들을수록 화가 치밀었다.그녀는 최대한 분노를 억제하고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뭔가 오해를 하셨나 본데, 신첩은 폐하와 밀고 당기기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소욱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그녀를 잡고 있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넌 짐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졌다. 그리고 짐의 처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지.”봉구안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 반박했다.“폐하를 구한 건 폐하이기 때문입니다. 대신들이 폐하를 지키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죠. 시위가 폐하의 안위를 지키는 것을 모두 애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폐하의 처가 되겠다고 한 일은 아마 잘못 기억하고 계셨을 겁니다. 저는 이미 황후이고 그런 말을 폐하께 했을 리가 없지요.”소욱의 표정이 점점 음침하게 굳어갔다.현실이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짐이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황후, 정말로…”“그런 적 없습니다.”봉구안은 그가 물으려는 게 뭔지 알기에 서둘러 대답했다.이미 여기 오기 전부터 황제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대놓고 말을 하지 않으니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이다.하지만 지금은 참을 수 없었다.상대가 황제라서 에둘러 말한 것뿐이었다.그녀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혼인식 날, 폐하께선 신첩에게 경고하셨지요. 총애를 받을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요. 신첩은 그 말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 경외심은 있지만 다른 감정은…”거기까지 들은 소욱이 피식 비웃음을 터뜨렸다.젊은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
봉구안의 한마디가, 마침내 모용길의 본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그는 쇠창살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눈앞의 사람을 갈가리 찢어놓고 싶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이놈이! 감히 태조 폐하를 저주하다니!”“태조 황제 폐하께서 이 강산을 개척하지 않으셨다면, 너희 같은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오늘날을 누리겠느냐!”“특히 너! 소가의 자식! 네놈이 정말 태조께서 살아계시길 바란다면 당장 본좌를 풀어라!”소욱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태조 황제께선 지금 어디 계시느냐.”모용길은 그를 믿지 않았다.“당장 날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다!”소욱은 억눌린 분노를 담아 담담히 말했다.“태조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그것은 분명 기쁜 일이겠지.”“하지만… 그 전에 말해보거라.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반드시 밝혀야겠다.”모용길은 한참이나 소욱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리고 망설임 끝에 마침내, 한 곳의 지명을 내뱉었다.“육지산.”그곳은 황성 내부에 있는 산이었다.소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직접 병사를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봉구안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모용길이 함정을 파놓았을 가능성, 또는 산속에 기관 장치를 숨겨놓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녀도 소욱을 따라나섰다.한 시진이 지나, 일행은 육지산에 도착했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구름이 몰려들어 햇빛을 가리며, 마치 용이 잠든 연못을 둘러싼 기운처럼 음침한 기색이 피어올랐다.거센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야를 가렸다.소욱의 옷자락은 세차게 펄럭였고, 그는 고개를 들어 육지산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산에 오른다. 태조를 찾아라!”“예!”그는 봉구안이 회임 중인 것을 고려해, 줄곧 옆에서 손을 뻗어 부축했다.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봐서였다.그러나 봉구안은 전혀 허약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날쌘 걸음으로 병사들보다 먼저 앞서 나갔다.해가 저물 무렵, 마침내 병사들이 한 구덩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폐하!
봉구안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둘째는 황실의 혈족을 해한 죄이다.”모용길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비웃었다.“허, 무지한 계집이구나. 헛소리도 정도껏 하거라.”“폐하께서 절 죽이고 싶으시다 해도, 이렇게까지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그 얼굴에는 오히려 당당함이 어려 있었다.그러나 봉구안의 시선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네가 해한 이는 바로 태조 황제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그 말에 소욱도 놀라 고개를 돌렸다.모용길이… 태조의 측근들을?그녀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모용길의 웃음은 사라졌고, 시선은 무겁게 봉구안에게 꽂혔다.봉구안은 단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소욱이 언젠가 말했던 ‘옥비석의 재앙’.남제가 건국된 직후, 태조 황제를 지키던 측근들이 하나둘 기이하게 목숨을 잃어갔다.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옥비석의 반작용 때문이라 여겼지만… 봉구안은 단정했다.“그 죽음들은 전부 너 모용길이 꾸민 짓이 아니더냐.”그 말이 떨어지자, 모용길의 눈동자가 매섭게 떨렸다.봉구안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날카롭게 울렸다.그녀는 시선을 한 치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내 짐작이 맞다면, 그 시절의 태조는 이미 병세가 깊었던 상태였을 거야.”“너는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기 위해 사술을 익혔고, 그 실험 대상으로 태조 곁에 있던 이들의 피를 썼지.”“다만 수많은 이들의 피를 말려 죽였는데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을 거야.”“그러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옛 서왕, 지금의 서왕의 부친이셨던 거지.”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 피만이 태조의 몸에 반응을 보였을 거야. 그렇게 태조께서는 ‘살아 있는 시체’가 됐고, 넌 그때부터 계속해서 약쟁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진짜 목적은 태조를 살리는 거였지. 그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바로 그게 너의 최종 목표였을 거야.”모용길은 냉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그러나 봉구안은
그 노도사는 봉구안이 데려온 가짜 도사였다.사실 그는 타국의 평범한 백성일 뿐이지만, 실제로 삼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기도 했다.이번 계책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였다.약쟁이 사건의 진짜 배후를 꾀어내기 위해서였다.봉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그 자의 진짜 목적은 불로장생.그렇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단번에 끝을 내야 했다.하지만 마음 한켠엔 조바심이 일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핀 소욱이 조용히 말했다.“약이 식겠다. 먼저 약부터 마시거라.”……밤이 깊은 시각, 궁 밖에서 전갈이 날아들었다. 노도사를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소욱과 봉구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빛을 교환했다.그리고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폐하, 은이와 그 일행이 도사를 납치한 자를 붙잡았습니다! 지금 천옥으로 이송 중입니다!”소욱은 심장이 요동쳤다.진실을… 진실을 확인해야만 했다.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그는 봉구안과 함께 곧장 천옥으로 향했다.반 시진쯤 지나, 천옥.두 사람은 마침내 그 사내와 마주했다.노도사를 납치했던 자이자, 어쩌면 약쟁이단의 진짜 주모자일지도 모를 인물이었다.봉구안은 호위복으로 변장한 채 소욱 옆에 서 있었다.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르기에, 그녀는 단단히 경계하고 있었다.감옥 안의 남자는 매우 늙어 보였다.눈은 푸르스름하게 흐려졌고, 머리는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확실히 동방세가 그려낸 인물과 유사했다.그는 소욱을 바라보더니, 마치 이미 모든 결말을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다.“절 잡기 위해, 아주 큰 판을 짰다던데 과연 사실이었군요.”소욱은 감방 너머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네 정체가 무엇이냐.”그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모용길입니다.”소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을 직접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정말로… 이 남자가 그 전설의 모용길이란 말인가.이백 년을 살아온 그 인물이 맞다고?모용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당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