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를 뵈옵니다.”동방세는 평소 웃음기를 머금던 눈동자가 이젠 고요한 죽은 물처럼 아무런 감정도 없는 채로 고요히 말했다.소욱은 냉랭히 물었다.“맹주, 아직 그 골칫거리들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냐?”동방세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닙니다. 저는 이제 맹주가 아닙니다.”봉구안은 그가 속이 불편하리라 여겨, 우선 그를 별채로 보내 쉬게 했다.그 후, 그녀는 소욱에게 물었다.“이 늦은 시각에 폐하께서 이곳에 무슨 일이시온지?”소욱은 동방세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 자와 오늘 밤 여기서 묵겠단 말인가?”봉구안은 동방세를 이곳으로 데려와 자신이 세를 내어 머물던 집에 머물게 했으니, 이는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었다.그러나 소욱은 달리 생각했다.무엇보다 남녀가 어찌 한 방에서 지낼 수 있다는 말인가?봉구안은 부인하지 않고 단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어나갔다.“밤이 깊었습니다, 폐하.”이는 곧 나가달라는 뜻이었다.소욱은 갑자기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저 자를 다른 곳으로 보내거라.”봉구안은 그가 너무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고 느꼈다.소욱은 이어서 말했다.“짐이 맹주를 위해 다른 집을 세 내겠다. 짐을 위해 일해준 공로가 있는데, 어찌 이렇게 홀대할 수 있단 말이냐.”봉구안은 단호히 말했다.“이 집으로도 충분합니다.”소욱은 가슴이 답답했다.“소환, 그대는 정말 무심하구려. 아니면, 혹시 그대는 동방세와 다른 마음이라도 품고 있는 것이냐?”봉구안은 눈살을 찌푸렸다.그가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소욱은 계속해서 말했다.“동방세가 내게 말했다. 그대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동방세가 곤경에 처하자마자 그렇게 급히 구하러 갔으니, 짐으로서는 그대가 동방세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기 어려운 것이다.”봉구안은 속이 타들어갔다.“폐하께서 과대망상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남자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저 자와 같은 사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말을 마친 그녀
봉구안은 동방세에게 물을 한 잔 따라 주며 말했다.“이리도 근심 가득한 얼굴이라니, 맹주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이오?”동방세의 눈에 다시금 희미한 웃음기가 스쳤다.“설마 그럴 리가. 너도 알다시피, 나는 본래 맹주 자리에 오르고 싶어한 적이 없었소.”“네가 예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처음부터 내가 그 자리에 오른 것은 다른 이들이 억지로 떠밀어서였다고.”“이제는 이렇게 된 것도 괜찮소. 자유를 되찾은 셈이지.”“사실, 나는 우리가 함께 강호를 누비던 그 시절이 더 그립소.”“천룡회의 일은 우리 스스로 조사하겠소.”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스스로 조사하는 것이 옳소. 저 사람들은 믿을 게 못 되오.”동방세는 부드럽게 말했다.“그들도 잠시 눈이 가려졌던 것뿐이니, 너무 나무라지는 마시오.”봉구안의 눈빛은 차가웠다.“나 역시 알고 있소. 여기까지 일이 커진 것은 천룡회가 뒤에서 부추긴 탓이라는 것을…”“그러나 그들이 사심이 없었다면, 이런 이간질에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오.”“강호의 문파는 많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오.”“천룡회는 그저 이 틈을 벌리고, 확대했을 뿐이오.”“나는 자네만큼 인자하지 못하오. 내 눈에는 그들도 결코 무고하지 않소.”동방세는 다시 눈을 가늘게 뜨며,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소환, 너와 나는 근본적으로 다르구려.”“저들이 나를 청우방의 방주를 죽인 자로 몰아세웠을 때, 나는 증거를 찾아 내 결백을 증명하고자 했소.”“그 며칠간 나는 오직 그것에만 몰두했지.”“그래서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소.”“그와 달리 너는 완전히 달랐소. 그들이 너를 몰아세울 때조차, 너는 변명하려 하지 않았지.”“아마 너야말로 무림맹을 이끌기에 더 적합한 인물이었을 것이오.”지도자가 되려면 자비로움만으로는 부족하다. 위압감 또한 필요하다.지난 세월 동안 강호가 평화로웠기에, 그의 예리함은 거의 마모되어 버렸다.봉구안은 더 이상 그 화제를 이어가지 않았다.사람의 마음이란
황궁.어전에서, 진한길은 공손히 절하며 똑똑한 어조로 말했다.“폐하, 명부를 대조하여 오늘 또 반조정 인물 두 명을 잡았습니다. 이미 대감옥에 가두어뒀습니다. 자백에 따르면, 그들은 창구파 소속으로, 동방세와 소환이 황성에 있다는 정보를 얻고 위험을 무릅쓰고 온 것이라 합니다.”소욱은 상소문을 읽으며 눈썹 사이에 서늘한 기운을 띠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죽을 줄도 모르고 설치는군.”진한길이 말했다.“평소에는 황성에서 문제를 일으킬 생각조차 못하던 자들인데, 요 며칠 추살령이 내려지고 막대한 현상금이 걸리자 감히 나서는 이들이 생겼습니다.”소욱은 상소문을 내려놓고 날카로운 눈빛 속에 살기를 띠었다.“어떤 수를 써서든, 황성에 들어와 소환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을 모두 처리해라.”“예!”진한길은 공손히 명을 받들었지만, 마음속에는 의문이 떠올랐다.소환만인가? 그들은 동방세도 죽이려 하는데…해가 저물며 저녁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유사양은 조심스레 물었다.“폐하, 저녁상을 들여올까요?”요 며칠 동안 황제는 황궁에서 저녁을 들지 않았다.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태황태후는 이미 말하기를, 어명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궁들을 여러 차례 교체했지만, 황제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이러다가는 태황태후께 크게 꾸중을 들을지도 모른다.소욱은 시간을 확인하며 냉담하게 말했다.“저녁상은 필요 없다. 조금 후에 궁 밖으로 나갈 것이다.”유사양의 마음은 완전히 얼어붙었다.…봉구안과 동방세가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소욱이 찾아왔다.“진한길, 그릇과 젓가락을 가져와라.”“예.”동방세는 채소를 집던 동작을 멈추고, 마주 앉은 봉구안을 보며 눈짓을 보냈다.‘이 황제가 또 왜 온 거야? 궁이 밥이 없어서 온 건 아니겠지? 설마.’소욱은 주변을 신경 쓰지 않으며, 무심한 듯 설명했다.“궁에는 자객이 있어서 언제든 내 목숨을 노리지.”“여기 있는 밥상은 독이 들지 않을 테니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봉구안은 담
오후.진한길이 황제에게 보고했다."폐하, 그 조성이라는 자가 끝내 아무것도 자백하지 않고 혀를 깨물어 자결했습니다."소욱의 눈에 한 줄기 날카로운 기운이 떠올랐다.자결이라니, 죄를 자백하지 않으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조성의 집안을 조사하고 재산을 몰수하라.""명 받들겠습니다!"곧이어 진한길이 다시 보고했다."폐하, 요즘 천룡회의 잔당들이 이미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 무림 사람들을 소집해 동방세와 소환을 잡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사악한 무리들을 제거하며 민심을 끌어들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소욱은 표정을 굳히며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다.저녁.소욱은 봉구안을 찾아가 이 문제를 이야기했다."지금 천룡회가 이미 모습을 드러냈다.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봉구안은 차분히 말했다."전부 죽여버릴 것입니다."소욱도 같은 생각이었다."사람이 필요하면, 주저 말고 나에게 말하라.""감사합니다, 폐하."봉구안은 공손히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소욱은 곧바로 그녀의 팔을 붙들며 말했다."나는 너를 친구로 여긴다. 그러니 이렇게 예를 갖출 필요 없다."그가 팔을 붙잡자, 봉구안은 당황한 듯 팔을 재빨리 빼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알겠습니다."…천룡회는 그동안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하지만 동방세와 소환이 무림의 공적으로 몰린 이후, 천룡회도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많은 무림 사람들은 그들이 과거에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믿으며, 그들의 부활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부활 의식을 거행하는 날, 천룡회는 널리 영웅첩을 보내 초청장을 돌렸다.과거에 그들을 죽이겠다고 외치던 각 문파가 이제는 앞다투어 모여들었다.조정이든 강호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법.지금 그들의 목표는 하나, 바로 동방세와 소환을 제거하는 것이었다.청우방의 부방주가 사람들 앞에서 외쳤다."그 두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지금쯤 조정에 투항했을 게 분명하며, 머지않아 대군을 이끌고 우리를
천룡회의 회의에 파견된 이들은 각 문파의 ‘주장’들이었으며, 모두 총명했다.장허가 천룡회를 지목하며 비난할 정도라면, 분명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을 터.그들은 모두 천룡회의 법사를 주시했다.“장허가 한 말, 사실입니까?”법사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허는 그를 가리키며 계속 말했다.“그리고 최근 성행하는 사악한 무리들 역시 천룡회가…”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자루 유엽도가 날아와 그의 목을 가르며, 즉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이 장허라는 청년은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다른 이들은 이 광경을 보고 크게 놀랐다.다음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입구의 기계식 돌문이 닫혔다.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이 위험에 처했음을 깨달았다.천룡회의 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단 한 마디를 내뱉었다.“죽여라.”순식간에 피비린내가 가득 찼다.입구의 돌문이 다시 열렸을 때, 각 문파의 정예들은 이미 시체로 변해 있었다.이후, 그 시체들은 천룡회에서 밖으로 옮겨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각 문파가 시체를 발견했고, 강호 전체가 요동쳤다.누군가는 그들의 치명상을 보고 외쳤다.“이건 동방세의 기술이다!”“이건 소환의 살인 검법이야!”“역시 그들이 한 짓이었어!”“여러분, 이 두 마수는 즉시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강호가 대혼란에 빠질 것입니다!!”…황성.오늘은 동방세의 죽은 아내의 기일이었다.그는 간단히 제사를 지낼 제물을 사러 길을 나섰다.도중에 익숙한 얼굴 하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맹주님! 드디어 찾았습니다!”이 사람은 감격에 겨워하며 눈물을 글썽였다.동방세는 그가 자양파의 대제자 노욱임을 알아보았다.노욱은 거의 무릎을 꿇을 기세로 말했다.“맹주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맹주님을 믿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습니다!”“저희 모두 천룡회에게 속은 것입니다!”“천룡회는 정말로 악독합니다. 그들은 정파를 이간질시켜 맹주님을 몰아내고, 그 후 저희를 공격해 왔습니다.”“며칠 전에는 문파의 장문이 잡혀갔고, 생사
소욱이 뛰어나갔을 때는 이미 봉구안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그는 속으로 안달하며 급히 진한길에게 명령을 내렸다.“소환을 찾아라! 반드시 그 자를 지켜야 한다. 필요하다면 묶어서라도 데려오거라!”“명 받들겠습니다!”봉구안은 저택을 나선 후 샛길로 향했다.그녀는 자신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길 바라는 듯했다.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그녀를 찾아왔다.“소 부맹주! 드디어 찾았습니다! 저는 자양파의 제자 노욱이라 합니다. 저희 방주님께서 이미 조사하셨는데, 부맹주님과 맹주께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방주님께서 붙잡히셔서…”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봉구안이 그의 목을 움켜잡고 뒤편 벽으로 내리쳤다.노욱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이 소환… 어찌 이리 잔혹할 수 있는가!’봉구안은 차가운 어조로 살기를 품고 말했다.“네놈이 이렇게 동방세를 꾀어내 간 게냐?”노욱은 숨이 막혀 겨우 말했다.“아, 아닙니다… 부맹주님, 정말로… 진상을… 밝히려다가… 저는…”말을 하던 그는 슬그머니 소매 속 화살을 쏘려 했다.그러나 움직이기도 전에 ‘딱’하는 소리가 났다.“악!”그의 손목뼈가 산산이 부서졌다.그 순간, 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 봉구안을 둘러쌌다.“소환, 이 마귀 같은 자야! 어서 노욱을 풀어 주거라!”봉구안의 눈동자는 차가운 연못처럼 깊고도 위험했다.“사람들이 참 많군.”그때, 어린아이가 우연히 이 장면에 뛰어들었다.놀란 아이는 몸을 돌려 도망쳤다.그러자 한 사람이 칼을 들어 아이를 향해 휘둘렀다.봉구안은 이를 보고 즉시 움직였다.하지만, 그녀가 나선 것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오히려 칼을 든 자에게 공중에서 한 발차기를 날렸다.그 자는 무공이 뛰어난 자로, 다른 팔을 들어 그 발차기를 막아냈다.봉구안이 착지하자, 놀란 아이는 그녀에게 달려가 보호를 구하려는 듯했다.그러나 아이가 가까이 오기도 전에, 봉구안은 다시 한 번 공
자양파 장문은 눈을 크게 뜨고 노발대발하였다.자신의 손이 잘려나간 것을 깨달은 그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아!!! 그를 죽여라! 소환을 죽여!!”사람들이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봉구안은 민첩하게 움직여 쇠사슬의 한쪽 끝을 붙잡고 있던 자양파 제자 옆으로 다가갔다.“딱! 딱!” 두 번의 소리가 울렸다.그의 손목뼈가 부러졌다.곧이어 또 다른 비명이 터져 나왔다.“아!!”봉구안은 다리를 들어 옆으로 힘껏 차올리며 그를 멀리 날려버렸다.그리고는 동방세 앞으로 돌진하여 그를 지켜주었다.단 몇 초 만에 동방세를 위협하던 두 명을 처리한 것이다.다른 사람들은 이를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과연 천하의 무공다웠다…자양파 장문은 서둘러 상처를 싸매어 과다출혈을 막으려 했다.그리고 제자들이 주저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며 소리쳤다.“어서 가라! 동방세를 집중적으로 공격해라!”동방세의 견갑골을 관통한 철발톱은 일반적인 쇠사슬과 달랐다.이것은 자양파에서 특별히 제작한 무기였다.이 무기는 견갑골을 뚫고 들어가자마자 사람의 손처럼 순간적으로 닫혀 단단히 고정된다.한 번 묶이면 풀어내기 어렵다.이 상황에서 동방세는 완전히 무력화된 상태나 다름없었다.비록 소환의 무공이 뛰어나다고 해도, 공격과 동시에 동방세를 지켜야 한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자양파 장문은 눈에 핏발이 서서 소리쳤다.“저들을 죽이는 자에게는 내 딸을 주고, 차기 장문의 자리를 물려주겠다!”이 말을 듣고 몇몇 제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봉구안의 눈은 차갑게 빛났고, 동방세에게 주의를 주었다.“움직이지 마.”그녀는 허리에서 긴 채찍을 꺼내들었다.그리고 한 번 휘두르자, 자양파 제자들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한 간 큰 자가 측면에서 공격을 시도했다.그러나 채찍은 그의 허리를 휘감아 당기더니 그대로 내팽개쳤다.쿵!그는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다른 제자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진법을 짜라! 함께 공격한다!”자양파의 진법은 강호에서 제일
“펑!”두 사람은 함께 지하의 암실로 떨어졌고, 머리 위의 입구는 즉시 닫혔다.봉구안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손에 힘을 주어 채찍으로 가면을 쓴 자의 목을 더욱 조였다.그 사람이 여전히 발버둥 치는 동안, 봉구안은 주변의 이상함을 느꼈다.한 손으로 화철자를 꺼내 밝혀보니, 이 지하 암실은 굉장히 넓었다. 심지어는 위의 도관보다도 훨씬 컸다.그리고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정확히 말하자면, 혼이 빠져나간 꼭두각시 같았다.그들은 텅 빈 눈빛으로 봉구안을 바라보더니, 이내 몰려들었다!…황궁.어전.지금까지도 소환의 소식이 없자, 소욱은 마음이 어지럽고 복잡했다.그녀가 동방세처럼 위험에 처하거나, 이렇게 실종될까 봐 두려웠다.“폐하! 급한 소식입니다!”진한길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와 말했다.“소인이 성내의 의원에서 수십 명의 자양파 제자들을 발견했으며, 심문 끝에 소환이 성남의 도관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소욱의 눈동자가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몸을 일으켰다.“말을 준비하라!”진한길이 충성을 다해 건의했다.“폐하, 사람을 보내 구조하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폐하께서는…”그는 황제가 직접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제는 이미 어전을 나가고 있었다.소욱이 궁전 문을 막 나서자마자, 맞은편에는 마침 영비가 서 있었다.그녀는 얇은 옷차림으로, 수척한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폐하, 이렇게 급히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소욱은 냉정한 표정으로,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궁 밖으로 잠시 나갈 것이다.”영비는 그의 팔을 붙잡으며, 다소 어두운 눈 밑을 드러냈다.“폐하, 태황태후께서 폐하께서 요즘 궁 밖으로 자주 나가시는 것을 아시고, 매우 화가 나셨습니다. 폐하의 몸은 만금의 가치가 있습니다. 어찌 위험에 노출되실 수 있단 말입니까?”“혹시 궁 밖에서 무슨 일이 있나요? 제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돕겠습니다. 네?”소욱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의 시선은 매우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